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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종 ] 어느 창녀의 죽음 12 부

작성자풀잎향기|작성시간16.07.31|조회수178 목록 댓글 0

그렇다면 그 사람이 단골인지 어쩐지 모르겠군」

「네, 거기까지는…….」

포주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전에도 춘이가 외상 거래를 한 적이 있나?」

「없었습니다.」

오 형사는 혼란을 느꼈다. 사실 알고 보면 간단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수사 단계에서는 이처럼 혼란을 느끼는 일이 많았다.

포주의 말을 그대로 전부 믿는다는 것도 우스웠다.

「그러니까 당신 생각은 그 남자가 춘이를 데리고 나가서 죽였다, 이건가?」

「아니. 그렇게 말한 건 아닙니다. 춘이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그놈이 제일 의심스럽습니다.」

「직접 보지 않은 이상 누구를 의심한다는 건 금물이야. 당신 혹시 전과 없나?」

오 형사의 질문에 포주는 어깨를 웅크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전과가 없을 리가 있나. 조사해 보면 다 알 수 있겠지. 그건 그렇고…… 춘이는 자기 짐을 가지고 나갔나?」

「짐이래야 뭐가 있어야죠.」

「가지고 나갔느냐 말이야!」

「그건…… 그대로 있습니다.」

「당신도 낫살이나 먹은 사람이 다른 직업을 생각해 봐야지…… 그런 더러운 일에만 빠져 있으면 되겠어.」

「그렇지 않아도 종3도 폐지되고 하니까 그만둘까 합니다.」

사내는 얼굴을 찌푸리며 참회하는 빛을 보였다. 오 형사는 그 얼굴에 붙어 있는 가면을 벗겨 버리고 싶었다.

「지금 당신 집에 가서 춘이 소지품을 조사해 봐야겠어, 아직 처분하지 않고 그대로 있겠지?」

「네, 그대로 있습니다.」

오 형사는 앞장서 취조실을 나갔다. 추운 데 오래 있었기 때문에 그는 뱃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춘이의 소지품은 낡은 비닐 백 하나뿐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 속에는 입을 만한 옷가지도 없었고, 그녀를 말해 줄 만한 물건도 하나 없었다.

오 형사는 흔적도 없이. 마치 이슬처럼 스러져 버린 한 창녀의 영혼을 가슴에 품은 채 불안한 밤을 보냈다. 밤새에 그는 여러 가지 꿈을 꾸었는데, 그중에 가로등도 없고 어둡고 추운 거리에서 거지가 되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몹시 추워 한밤중에 눈을 뜬 그는 연탄불이 꺼진 것을 알고는 갑자기 외로움을 느꼈었는데, 아침이 되어도 그 기분은 사라지지가 않았다.

열시가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지만 그는 출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전에도 그는 아무 이유 없이 결근하는 일이 종종 있곤 했다.

그는 드러누운 채 한참 동안 조간 신문을 읽다가 배가 고파서 일어났다. 밥통에는 어제 해 놓은 밥이 한 그릇쯤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그대로 먹을 것인가. 아니면 버릴 것인가 하는 문제로 망설이다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 먹기로 했다. 주인집 연탄불을 얻어 뜨거운 물을 끓이고 겨우 식사를 끝마친 것은 열두시가 지나서였다.

밖은 어제처럼 흐려 있었는데. 추위가 조금 가신 것이 곧 눈이올 것 같았다.

오 형사는 검정색 코트를 걸치고 시내로 나갔다. 그는 출근하는 것을 아예 단념하고 우선 다방부터 들러 커피를 마셨다.

춘이의 소지품 중에서 그가 가져온 것은 다섯 장의 명함이었다.

그것은 춘이를 찾은 손님들 중 솔직하거나 아니면 바보 같은 자들이 남기고 간 것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들 중에 춘이의 죽음과 관계 있는 자가 있다면 매우 다행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춘이에 대해서 더 이상 추적해 보는 것을 단념해 버릴 수밖에 별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다섯 장의 명함을 검토하던 오 형사는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그만큼. 명함에 박혀 있는 그들의 직업은 모두가 가지각색이었다.

그는 우선 접촉하기 쉬운 사람부터 만나 보기로 했다.

그가 명함을 가지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어느 수도 사업소(水道事業所)였다. 그 과장이란 자는 사십대의 사내였는데. 오 형사가 신분을 밝히면서 용건을 말하자 무조건 그를 다방으로 데리고 가서는 돈부터 집어 주었다.

「여편네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앞으론 조심하겠습니다.」

사내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종3에 마지막으로 갔을 때가 언젭니까?」

「한…… 한 달쯤 됐습니다.」

오 형사는 뇌물이라고 집어 준 돈을 돌려주었다. 수도 사업소 직원은 사창가 출입 단속에 걸린 줄 알고 거의 울상이 되어 그에게 매달렸다.

「잘 봐 주십시오.」

「그런 데 있는 여자들한테 명함을 주면 안돼요.」

오 형사는 탁자 위에 그자의 명함을 던져 놓고 일어섰다.

그가 두 번째로 찾아간 사람은 이마가 벗겨진 오십대의 식당주인이었는데, 명함에는 사장(社長) 아무개라고 되어 있었다. 사장 역시 수도 사업소 직원처럼 돈을 내밀고 잘 봐 달라고 부탁했다.

포주의 말대로 키가 크고 미남인 청년은 세 번째, 네 번째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세 번째는 구청 직원으로 작은 키에 안경을 낀, 역시 중년의 사내였다. 네 번째 사내는 은행원이었는데 동료직원의 말에 의하면 죽은 지가 열흘이 넘었다고 했다.

「친구 되시는가요?」

하고 그 직원은 이쪽 신분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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