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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종 ] 어느 창녀의 죽음 13 부

작성자풀잎향기|작성시간16.08.04|조회수181 목록 댓글 0

「네. 그저…….」

「그런데 아직까지 모르고 계셨던가요?」

「네. 어디 좀 다녀오느라고…….」

「바로 요 앞에서. 점심을 먹고 오다가 자동차 사고로 그렇게 되었죠. 똑똑한 친구였는데…….」

오 형사는 은행 직원과 헤어질 때 일부러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젠 집으로 돌아가서 잠이나 자고 싶었다. 정말 극도로 피로했기 때문에 그는 다섯 번째 사나이까지 찾아볼 마음이 조금도 나지 않았다. 더구나 명함을 보니 그 사나이의 소재는 인천이었다. 길목에 서서 잠시 머뭇거리던 오 형사는 머리를 설설 흔들고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배가 고파 눈을 뜨긴 했지만. 몇 번 몸을 뒤챈 다음 그는 다시 잠들어 버렸다.

토요일은 아침부터 바람이 불었다. 찌푸린 하늘에서는 조금씩 눈발까지 날리고 있었다.

아홉시쯤 출근한 오 형사는 직속 계장의 핏발선 눈초리와 부딪쳤다. 알고 보니 어제 오후 대규모 마약 사건이 터진 모양이었다.

결국 하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마약 냄새를 쫓아 몇몇 호텔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 바쁜 중에서도 어제 내팽개쳐 버린 그 일이 줄곧 마음에 걸려 왔다. 저녁 무렵이 되자 그는 자신이 그 일을 포기할 수 없음을 명확히 깨달았다. 겨우 틈을 낸 그는 서둘러 역으로 나가 막 출발하는 열차에 뛰어올랐다.

인천에 내렸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바닷가라 그런지 눈보라가 거세여지고 있었다. 그는 택시를 타고 바로 하역장으로 찾아갔다. 명함에 따르면 다섯 번째의 사나이는 어느 운수 창고주식회사 인천 지점 관리부장이라는 자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자는 하역 인부들을 감독하는 십장(什長)이었다.

「백인탄(白仁灘) 씨요? 아. 십장님 말이군요. 저어기 불빛 보이죠? 그 집에 가서 물어 보세요. 거기서 술을 마시고 있을 겁니다.」

창고 옆에서 모닥불을 쬐고 있던 인부들 중의 하나가 십장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부두에는 선박들이 험한 날씨에 대비해서인지 일제히 닻을 내리고 있었다. 파도 소리는 높아지고 있었고, 소금기를 실은 바닷바람은 차고 날카로웠다. 조금 벗어나자 거기로부터는 배도 없었고 건물도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어슴푸레한 시야 속으로 개펄을 막은 긴 둑이 나타났는데. 바로 그 곁에 판자로 지은 술집이 하나 서 있었다.

오 형사는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전기를 끌어들이지 못했는지 여기저기 남포등을 켜 놓은 실내는 어둠침침했다. 확 끼쳐 오는 술 냄새에 그는 약간 현기증을 느끼면서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서 너 평쯤 되는 흙바닥 위에는 판자와 각목으로 어설프게 짜 놓은 탁자와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고, 모두 부두 노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거기에 띄엄띄엄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의 말소리는 분명하지 않으면서도 크고 우렁우렁했다.

오 형사는 주모에게 십장이 누구냐고 물었다. 주모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턱으로 한 쪽 구석을 가리켰다. 오 형사는 세 명의 청년이 앉아 있는 구석 자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첫눈에 십장이라는 자를 알아 볼 수가 있었다. 포주가 말한 대로 십장은 몸집이 큰 미남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청년은 오 형사가 제시한 신분증을 흘끗 바라보면서 물었다. 술기운 탓인지 가슴을 벌리는 것이 매우 자신만만한 투였다.

「물어 볼 게 있어서 그러는데.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오 형사는 사내들의 시선이 차가움을 느꼈다.

「여기서 물어 보면 안 됩니까?」

하고 청년은 물었다.

「네. 좋습니다.」

오 형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십장의 명함을 꺼내 놓으면서,

「지난 일요일 밤에 종3에 갔었지요?」

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의외의 공격에 상대는 확 얼굴을 붉혔다. 그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동석하고 있던 친구들을 모두 밖으로 내쫓았다. 그러고는 하나 감출 것도 없다는 듯이,

「네. 종3에 갔었습니다 그런데요?」

하고 반문했다.

「어떻게 서울까지 원정을 가게 됐지요?」

「네. 사실은 친구한테 돈 좀 빌리러 갔다가…….」

「돈을 빌렸습니까?」

「못 빌렸습니다.」

「그 길로 종3에 간 건가요?」

「네. 전 아직 총각입니다.」

「거기 가서 누굴 만나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보시오.」

「왜…… 무슨 일 때문에 그럽니까?」

부둣가에서 굴러먹는 사나이답게 백인탄은 좀 버티어 볼 모양이었다.

「차차 이야기할 테니까 우선 그것부터 말해 봐!」

오 형사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청년은 풀이 꺾이며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오 형사는 술과 안주를 더 시킨 다음,

「자 술도 마시면서 천천히. 마음놓고 말해 봐요.」

하고 말했다.


[백인탄의 진술]

술에 얼큰히 취한 십장은 남근이 불끈 솟구치는 것을 느끼면서 종로를 걷고 있었다. 그는 여자가 그리워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최근의 그의 가장 심각한 고민은 성욕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정 견딜 수 없을 때 그는 사창가로 달려가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도 적잖은 돈이 들기 때문에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다. 사실 정력이 왕성한 노총각으로서 끓어오르는 열기를 그대로 눌러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자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없다는 데 대해서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그는 종3으로 기어들었다. 아무튼 오늘밤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여자를 하나 사야 한다. 여자는 살찐 것보다는 약간 마른 듯 한게 품기에 좋다. 약간 마른 듯한 여자다. 그러나 현재 그의 수중에는 여자를 살 만한 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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