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회주스님을 덩실덩실 춤 추게 한 "한 물건"이 있었으니........중국선종사찰 순례. 그 첫번째 이야기 [새로운 빛깔의 9월 초하루 법문]
작성자圓 觀작성시간10.10.25조회수25 목록 댓글 2◆새로운 빛깔의 9월 초하루 법문◆
중국선종사찰 순례 ... 그 첫번째 이야기
수 년 전부터 지금까지 초하룻날마다 회엄경 약찬게 또는 화엄경에 대해
법문을 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부터 주제를 좀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새로운 빛깔의 법문을 들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부터는 제가 중국에 있으면서 직접 참배하고 경험한 선종사찰을
소개하면서 그에 따른 재미난 얘기와 교훈을 곁들여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 합장하십시오.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은 불완전하다.
직접 경험한 것도 때로는 오류일 수 있다.
그러니 함부로 말하지도 말고 함부로 듣지도 말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제가 중국 천지를 다니면서 느낀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한계가 있는가, 또 알고 있다는 것이
직접 경험하지 않을 때는 얼마나 많은 오류가 따르는지...
그러한 것들에 대해 제가 많이 느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늘 내 눈을 조심하고, 내 입을 조심하고,
내 귀를 조심할 일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스님들이 걸망을 메고 이리저리 다니는 것을 행각이라고도 하고 만행이라고도 합니다.
한 번 따라해 보십시오. 행각! 다닐 행行자에 다리 각脚자입니다. 걸어다니면서 온갖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을 행각이라고 해요, 또는 일만 萬자, 다닐 行자를 써서
만행이라는 말도 씁니다. 행각 , 즉 만행을 하다보면 스스로 체험하고 경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진리에 대한 체험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통해서 교양을 넓히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진리를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참선하고 기도하는 수행이 바로 그 일이라고 말하는 그것입니다.
참선하고, 기도하는 수행을 통해 내가 진리적 체험을 하게 된다 이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기도수행, 참선수행 등을 부단하게 꾸준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체험된 것만이 자기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봤을 때
스님들이 하는 행각, 만행과 진리적 체험을 하는 참선, 기도 등이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초하룻날 이렇게 직접 걸음을 떼서 오신 것은 오신 그 자체가 체험하려는 것이다.
부처님을 체험하고 진리를 체험하려는 것이니까 오신 것 자체가 부처님의 큰 가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따라 하십시오.
佛光普照
불광보조! 부처님 불자에 빛 광자, 넓을 보자에 비출 조자,
부처님의 빛이 널리 비추어진다 이 말이지요
부처님의 빛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쏟아지고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지고 있고....
지금 우리는 부처님의 가피 속에 있다
우리가 법당에 앉아있는 이 자체가
큰 부처님 가피속에 있다는 것을 늘 느끼셔야 됩니다.
◆역대조사를 친견하다.
그러면 본론에 들어가서, 중국 선종사찰 순례기에서 제가 첫번째 주제로 잡은 것은
육조혜능스님과 그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이 육조라함은 여섯번째 조사라는 말입니다.
우리부처님의 법이 마하가섭 존자에게 전해지고 그 뒤에 아난존자, 그 뒤에 상나화수존자,
그 뒤에 우바국다존자, 이렇게 내려오다가 그뒤에 27대 반야다라존자가 나타났고 그 뒤에
28대 조사, 달마대사가 나타납니다.
반야다라존자가 달마대사에게 부촉했습니다,
"너는 동방으로 가서 불교를 전해라." 해외포교에 나서라는 그 말이지요.
그래서 달마대사가 저 인도차이나 반도 아래 남쪽해로를 통해 중국의 광동성으로 오게
됩니다. 그래서 육조혜능스님께서 삭발하고 수계했다는 당시의 광호사에 들르게 됩니다.
지금의 광효사, 즉 법성사는 달마대사가 중국 들어와서 최초로 들른 절이 그곳이 되는데
기이하게도 육조혜능스님이 몇 백년후에 그곳에서 삭발수계를 하게 됩니다.
광효사 앞마당에 가면 달마대사가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갔다는 비문을 볼 수 있습니다.
육조혜능스님 삭발수계 기념탑{사진11]
광동성 광주 광효사라는 절마당에 있는 탑인데
육조혜능스님의 삭발수계를 기념하는 탑입니다.
뒤에 보이는 나무는 보리수나무입니다.
달마대사께서도 이 광효사, 즉 법성사와 인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달마대사는 죽음을 각오한 여정을 통해서 중국땅에 들어오셨고
중국에서 많은 시련을 거쳐 육조라고 하는 위대한 인물을 배출해
내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초하룻날마다 소개해 드릴 이 육조까지의 이야기와 그 이후로
소개해 드릴 황벽희운스님까지 대단히 중요한 법맥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육조까지는 가능하면 외워두셔야 합니다.
한 번 따라 해 보십시오.
초초달마
이조혜가
삼조승찬
사조도신
오조홍인
육조혜능
자다가 누가 옆구리를 쿡 찔러 물어도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초보리달마부터 육조혜능스님까지는 무조건 외워야 합니다.
이건 대단히 중요한 상식입니다.
저 인도에서 초조는 누구라 했지요? 마하가섭존자.
마하가섭존자로부터 달마대사는 몇 조이지요? 제28조.
달마대사가 동토에서는 초조가 되지요.
그래서 육조혜능스님까지 합하면 33조입니다.
33이 의미하는 것은 많습니다. 우리가 하는 33년 대수행정진도 있지요.
달마대사가 중국에 오셨는데 달마대사가 중국에 온 큰 의미는 무엇인가?
선종의 성립입니다. 물론 교와 선은 한 뿌리입니다.
그렇지만 굳이 나누자면 불교는 교종과 선종으로 나누어집니다.
억지로 분별심을 내어 굳이 나누자면 그렇습니다.
교는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고,
선이라하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에 계합하는 것이니까
참선하고 기도하는 일체의 모든 수행을 선이라고 보면 됩니다.
꼭 화두들고 하는 참선하는 것만 선이 아니라 마음닦는 일체의 모든 수행,
사경과 절하는 것을 포함해서 일체의 수행을 모두 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육조혜능스님이 한국불교사에 끼친 영향
그렇다면 당시의 불교 분위기는 어떠했는가?
경전을 공부하는 사람은 많아도 수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겁니다.
그래서 그러한 분위기를 깨기위해서 달마대사께서 중국까지 오셨다고 보시면
돼요. 교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이거지요.
우리 한국불교대학에서 경전 강의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경전강의를 듣는 것에
머물러서는 절대 안되고 반드시 수행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참선, 기도, 사경, 독송,
절하는 것 등이 수행에 다 포함됩니다. 그것을 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중국에 오신 달마대사가 중국선종의 초조가 되고 그 뒤로 이조, 삼조, 사조, 오조,
육조 이렇게 법맥이 이어지는데 중국에 가보면 승찬스님이 계셨던 그 절을 바로
삼조사, 도신스님이 계셨던 절을 사조사, 그리고 오조사, 육조사라 해서 조사에
숫자를 붙여서 바로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종사찰 순례기중에 첫번 째 주제로 삼은 육조혜능스님이 우리 한국불교
교단사에는 얼마만큼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육조혜능스님이 현재 한국불교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어요.
중국과 인도를 포함해서 한국불교에 영향을 끼친 분을 꼽으라면
육조혜능스님만한 분이 없어요. 육조혜능스님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겁니다.
종명을 대한불교조계종이라 그러잖아요. 바로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종명이 육조혜능
스님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사진을 보시겠습니다.
조계 현판이 걸려있는 이 곳은 중국의 남화선사입니다.
남화선사의 전각에 걸려있는 "조계" 편액입니다.
육조혜능 스심이 계셨던 뒷산이 조계산입니다.
그래서 조계산 보림사, 조계산 남화선사라고 말하는데 얼마전부터 여기에 온천이 개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온천욕을 하러 오게 되면서 이 조계산이 더욱 더 유명해 지게 되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이라 해서 조계라는 말을 빌어쓰는 것은
우리는 육조혜능스님의 법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요즘은 수십 개의 유사 조계종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이름만 가지고는 속기 쉽지요.
잘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한국불교조계종, 미륵조계종, 선교조계종 등 많은 미사여구를 붙여 조계종이라 하는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이 가장 정통적 맥을 가지고 있다보니 그것을 흉내내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모양입니다. 그 스님이 진짜 조계종 스님인지 알려면 정식으로
조계종 총무원의 승적에 등록되어 있는가를 보셔야 돼요.
대한불교조계종의 스님들 그리고 한국불교의 신도들도 육조혜능스님의 사상을 아주 많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육조혜능스님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육조단경입니다.
이 육조단경과 혜능스님과의 이야기는 차차 말씀드리기로 하고 내용적, 사상적으로 우리
한국불교에 있어서 육조혜능스님은 대단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조혜능스님은 어떻게 생기셨을까?
육조혜능스님의 등신불
그림을 보십시오. 좀 안면있는 거 같지요?
저는 처음에 육조혜능 스님을 뵙고 안면있는 사람이 앉아있네 생각했어요.
가사장삼을 수하고 계시고 얼굴이 까맣게 되었는데 옻칠을 해서 그렇습니다.
살아생전 모습 그대로 입니다. 썩지않고 1300년 세월을 이렇게 앉아 계신 겁니다.
이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지요.
이것은 함부로 찍을 수가 없는데 제가 한국에서 육조단경을 강의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좀 찍자고 했더니 자기네 스님을 칭찬하고 그 사상을 강의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들도 인색할 이유가 없는 거지요. 그래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었습니다.
육조혜능스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다비하지 말고 바로 옻칠해서 모시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혜능스님 외에도 명나라 때 스님 두 분이 옆에 더 모셔져 있습니다. 법력이 수승하지 않으면
법신이 이렇게 지탱되지 않습니다, 다 썩어버리지요. 이런 모습자체가 혜능스님의 교화능력
이고 법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큰스님의 이러한 교화능력, 법력이 지금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혜능스님 앞에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
다음 초하룻날 헤능스님의 사진들을 확대해서 나누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혜능의 탄생
이런 위대한 큰스님들은 날 때부터 남달랐던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성은 노씨였어요. 그러니까 나중에 노행자가 된 거지요.
태어난 날짜는 2월 8일, 출가재일에 태어났어요.
방 안에 백호광명이 비추고 기이한 향기가 나더니 산기가 있더니 자시에 아이를 낳았어요,
새벽에 아버지가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 스님 두 분이 집 앞을 지나가다가 아버지를
불러내더니 "애기 낳았지요?"하며 아기 이름을 혜능으로 하라고 했어요,
이 이름을 주면서 慧혜는 중생들에게 널리 혜택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이고
能능은 부처님일을 능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혜능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혜능은 날때부터 받은 이름입니다. 법명이자 속명이 된거지요.
그렇게 육조혜능 스님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뗄나무를 해서 장에 내다팔며 홀어머니 밑에 살게 되었어요.
◆ 금강경 한 구절에 발심한.........청년 혜능
그렇게 해서 어느 덧 혜능은 스물네 살의 장성한 청년이 되었어요,
어느 날, 시장에 가다가 글읽는 소리가 나서 가만히 듣는데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말이 있느냐! 그 소리에 혜능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런 좋은 말씀이 어디에 나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금강경에 나오는 말씀이라고 하며 책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어디 가면 금강경을 배울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황매현에 가면
오조홍인대사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에게 가면 배울 수 있습니다.
거기 가면 아마 당신도 큰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꼭 한 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 사람이 스님이었는지 속인, 불자였는지 표시가 안되어 있습니다.
단경에는 그냥 '객'이라고 되어있어요. 그 표현으로 봤을 때 스님은 아니고
재가불자가 아닌가 생각해요. 재가불자가 신도가 황매에 있는 오조홍인대사에게
가르침을 받다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튼 청년 혜능이 그 사람에게 지도를 받아서 황매로 가기로 했어요.
금강경을 읽었던, 그 객이라는 사람이 안목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혜능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으니 홀머머니를 살게 해 드려야
할테니 내가 은전 열 냥을 줄테니 이것으로 어머니께서 수십 년 동안 살 수 있도록
잘 간직하도록 하라"했어요. 그래서 은전 열 냥을 가지고 집에 가서 어머니께 말씀
드리니까 쉽게 허락을 안해요, 불심이 그렇게 없는 상태였던가 봅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자식을 자기 곁에 두고 싶지 출가 시키고 싶은 사람이
많지 않아요. 요즘도 더러 할머니가 손주 데리고 절에 오면 하도 귀엽고 예뻐서
"이놈, 스님 만듭시다." 그러면 그 뒤로 다시는 그 할머니는 그 애 데리고 절에 안 옵니다.
출가시킬까봐 싶어서 그렇지요. 그게 다 애착이지요.
요즘은 교통도 좋고 하니까 출가해도 된다고 쉽게 허락도 되지만 그게 만만치 않아요.
자기 애가 출가하겠다면 출가시킬 사람, 손 들어봐요.
봐요. 몇 명 안되잖아요. 지금......
이런 불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불교를 지탱하느냐 이거요.
데리고 있어도 그 놈이 그 놈이요.
속 섞일 놈은 역시 속 섞이고,
출가시켜도도 효도할 사람은 효도하는 거요.
만일에 내 자식이 "아버지, 저 출가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출가하겠습니다."하면 동의할 사람 손들어봐요.
어~이제 좀 많아졌네요.
동의해야 됩니다. 동의해도 아무 문제 없고......
◆출가의 길
어머니가 혼자 결정하기가 힘들어서 헤능스님을 데리고 외삼촌에게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외삼촌이 뒷동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큰 바윗덩이를 보고 "네가 저 바윗덩어리를 깨는 날, 너를 출가시켜 주겠다." 했어요,
그 큰 바윗덩이가 어떻게 깨어지겠어요. 그 말은 뭡니까? 출가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혜능스님이 금강경을 가르쳐 준 객에게 기도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혜능 스님이 거기서 보름 동안 열심히 기도를 했어요. 보름 가까이 되었을때
마른하늘에 뇌성벽력이 쏟아지더니 바위가 두 토막으로 탁 갈라지는 거에요.
그러자 그걸 본 외삼촌이 "그래, 네 뜻대로 하거라."했다는 거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은전 열냥을 드리고 그 길로 오조홍인 대사를 찾아갑니다.
사진을 봐요.
여기가 오조사 정문 앞입니다.
걸망메고 있는 총각 보이지요? 안면 있습니까?
청년 혜능이 드디어 오조홍인대사 앞에까지 갑니다.
◆스승이 계신 곳.....동선사
오조홍인대사가 사셨던 땅 이름이 황매현입니다. 지금도 황매현입니다.
황매현 황매진 동선촌이라고 되어 있어요.
지금 보고 있는 오조사는 원래의 오조사가 아니고 후일에 오조홍인대사가
옮겨서 지은 절이고 혜능청년이 오조홍인대사를 찾아갔던 절은 동선사라고 하는
자그만 절입니다.
사진②번이 오조홍인대사께서 처음에 계셨던 절입니다.
문패에 보면 東자가 하나 보이지요. 그 알래 없어진 글자는 참선 선禪자 입니다.
그런데 이 절이 왜 이렇게 폐허로 남게 되었는가?
나중에 오조스님께서 육조헤능 행자를 남쪽으로 보내고 난 뒤
시끄러우니까 이 절을 버리고 지금의 오조사 쪽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당시 나라에서 오조홍인대사에게 시주를 했습니다.
이 터를 중심으로 수십 리 안의 모든 땅이 동선사 땅이었어요.
육조혜능스님이 동선사를 찾아갔다고 되어 있는데
바로 이 옛날 절, 동선사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스님들은 지금의 오조사를 찾아간 것으로 착각을 해요.
실제로 답습을 해 보면 옛날 동선사를 찾아간 겁니다.
폐허로 남은 동선사... 그 까닭은?
지금 이곳이 이렇게 천 여년 동안 동선사 땅으로 내려오고 있는데
왜 여기 절이 못들어 서고 폐허로 남아있나?
옛날 터를 중심으로 수십리 안의 땅이 모두 동선사 땅인데 오래 관리하지 않다보니
동선사 주변에는 주민들이 정착해서 살게 되었어요. 그런데 동선사 중심에는
누가 들어오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사고가 생겨요.
화재가 난다거나 가족이 아파 죽거나 이사하려고 날을 잡아놓으면
뱀이 우글거려서 도저히 들어와 살 수가 없어요. 그런 소문이 도니까
동네주민들도 더 이상은 접근을 못하고 천년동안 방치해 두게 되었어요,
터가 세다고 보면 되지요.
이런 사정을 가만히 보면, 이렇게 절이 있던 곳이나 자기가 시주한 것도 아닌 것을
자기 것으로 하려고 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교훈을 주는 절이기도 합니다.
바로 옆에 비구니 스님이 새로 만든 동선사가 또 있어요.
옆에 별도의 동선사를 지어서 관리하고 있는 비구니스님을 만났는데
아주 자세하게 많은 이야기를 해 줬어요. 스님은 다시 지어진 오조사에서
파견된 新동선사 주지스님인데 이름이 석달지입니다. 달지스님이 그 지역
소개를 많이 해 주고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주었습니다. 오조사와 新동선사는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수 년 전에 일본사람이 폐허가 된 동선사를 중심으로 수만평을 사들여 불사를
하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동네사람들이 반대를 해서 계획이 무산 되었다 그래요.
그래서 달지스님이 일대의 땅을 조금만 사들여서라도 오조홍인스님이 계셨던 곳을
복원하려고 했더니 주민들이 놀고 있던 땅에 이것저것 뭘 갖다 심어서 나중에 보상
받으려고 애를 쓴다는 거요. 그러면서 저한테 하는 얘기가 "선진국가나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 백성들은 그러지 않을 건데 중국사람들은 너무 심하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그랬잖아요. "한국 사람도 똑~~같습니다^^."
자기 땅도 아닌 절 땅에 살고 있으면서 절에서 중창한다니까 자기 땅인 것처럼
온갖 작물을 갖다심고 보상받으려고 하니 비구니스님이 속이 상해 있더라고요,
지금 절 주변에는 동네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폐허가 된 절 옆에 붙여서 시멘트로
건물을 짓다가 사고가 나서 빙치해 두고 있어요. 그러니 더욱 더 겁이 나서 이 절
안에는 못들어가는 거지요.
이 말을 .....누가 꼭 좀 전해 주세요
절 주위에 더러 이런 일이 많습니다.
우리도 복지법인에서 운영하는 생필품 매장이 있는데 그 건물이알박이로 있어요.
15년전부터 "좀 파십시오, 파십시오" 해도 "알박이다. 안판다" 그러고 .....
"얼마주면 팔겠습니까?" 하니 "11억 내놔라"하는 겁니다.
작은 건물, 그걸 11억 내놔라하는 겁니다.
혹시 주인 알면 제 얘기를 좀 전달해 주세요.
저는 거기에 탑을 세울 생각입니다.
안에 찻집도 하는 그런 탑 있잖아요,
중국탑 보면 11층 12층 올라가는, 안의 공간도 사용하는 그런 탑 있지요.
그런 탑을 세울 거니까 현재시가보다 조금 낫게 받든지 해야지
어째 그리 두 세 배나 더 많이 받을 수 있냐고 좀 전해주세요.
절 근처에 있는 사람이 그런 사람 많아요.
절에서 사들일 때는 정상가격으로 사들이거든요.
그런데 가격을 높여서허욕을 부려서 그럴 거 뭐 있나 이거지요.
절에 시주도 하는데...
아무튼 불이 나고, 사고가 나고, 뱀이 나오니까 전부 겁을 먹고 본 근거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방치해 둔 상태지요. 절의 돈을 유용한다거나 자기 것도 아닌데
절의 물건을 가지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걸 봤을 때.....
절에 시주할 생각은 못하더라도 어떻게 절의 것을 빼앗아 가려고 하느냐 말이지요.
절을 상대로 무슨 덕을 봐야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겁니다.
◆위대한 제자 - 혜능, 위대한 스승 - 홍인
옛 동선사에서 얼마되지 않는, 10~20분 거리에 이모돈이라는 곳이 있어요.
이별할 離, 어미 母자, 이모돈입니다.
이모돈 사진입니다.
이모돈은 절이 아니고 기념 당우입니다. 뭐를 기념하느냐?
오조홍인대사가 어머니와 7세때 이별, 출가한 것을 기념하는 장소입니다.
지금 육조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육조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홍인대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조 홍인스님이 육조스님에게 법을 전했고 그런 위대한
인물이 배출 되는데는 스승 오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조 혜능스님이 오조홍인대사의 발탁에 의해 육조가 되었기 때문에 혜능 스님의
그런 큰 그릇됨은 홍인대사의 안목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홍인대사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겁니다.
혜능스님이 그냥 육조가 되는 게 아니라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홍인대사의 바른 안목, 혜능이라고 하는 걸출한 인물을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안목이 있어서 후계자를 잘 선택했던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홍인대사를 살피는 일이 중요한 겁니다.
한 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제자는
위대한 스승이 있기 때문이다.
오조홍인대사는 위대한 분입니다
제가 봤을 떄, 육조혜능이상으로 위대한 분입니다.
위대한 스승, 오조의 탄생
오조홍인대사는 4조 도신스님을 출가 전에 두 번 만났어요.
첫번 째는 전생에 만났고 두번 째는 현생에 만났어요.
한 번은 4조 도신스님이 길을 가는데 일곱 살짜리 아이가 길을 막았어요
"스님, 제가 스님한테 출가하고 싶습니다. 스님이 되게 해 주십시오."
"너는 아직 어리니까 안된다"
"스님께서는 제가 나이 많아서 왔을 때도 거부하더니
나이 어리다고 또 거부하시면 어떡합니까?"
4조도신스님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8년 전에 어느 길거리에서 노인네를 만났는데
그 노인네가 출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거부를 했는데 그 노인이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일곱살짜리 이 아이, 오조홍인스님은 희한하게도 아버지 없이 태어났어요.
전생에 그 노인이 어느 집 앞을 지나가는데 그 집안에 어떤 아가씨가 복숭아를 다
먹고 씨앗을 들고 있어서 "하루 유숙할 수 있겠습니까?"하니까 안에 들어가서 물어
보겠다고 하면서 아가씨가 안으로 들어가길래 이 노인네도 따라 들어갔는데......
그 후로 노인네가 보이지가 않더랍니다.
필시그 농인네가 그 처녀의 몸에 들어가지 않았겠나....
그래서 그 길로 처녀는 임신을 했어요,
그로 인해 열달 만에 아이를 낳았어요
오조홍인스님이 그렇게 해서 태어났어요.
집에서는 보통일이 아니었겠지요. 뼈대있는 가문인데 창피스럽다고
그 처녀를 쫓아내 버렸어요. 그러니 애 딸린 아가씨가 구걸해서 먹고 살았어요.
그 어머니를 한 번 생각해 봐요.
그 어머니에게 어떤 느낌이 있었겠지요.
나는 아무런 관계도 하지 않았는데 이 아이가 태어났으니
이 아이는 필시 대단한 아이가 될거다 생각했겠지요.
그러니 구걸해서라도 이 아이를 키우려고 얼마나
애썼겠습니까!
어머니와의 이별
그런데 이 아이가 일곱살 때 어떤 스님을 보더니 출가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해요.
그때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 했겟습니까? 이놈이 저 길로 가서 큰 인물이 될 것인가보다
생각했겠지요.
일곱살 이 아이가 4조 도신스님과 대화를 합니다.
"너의 성이 무엇인고?"
"성이 있기는 하나 흔한 성이 아닙니다"
"무슨 성이길래 흔하지 않은가?"
"저의 성은 부처님 불자, 불성입니다"
4조 도신대사가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걸 누가 가르쳐 주었느냐?"
"그걸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일곱살짜리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전생부터 공부가 된 거죠.
육조혜능스님도 전생부터 공부가 됐던 분이고.............
여기에 앉아 계신 신도님들도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다음생에 부처님 세계로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오조홍인대사가 4조 도신이라는 큰스님, 은사를 만나
어머니와 이별한 장소가 이모돈이라는 이 집입니다.
어머니가 "그래 그러면 너는 스승따라 가거라."했어요
몇 살에 어머니와 이별했느냐? 출가하기전, 일곱살때 했습니다.
이별했다는 것은 출가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에게 출가를 했느냐? 4조도신에게 한 거죠.
후일에 여러가지 자료를 봤을 때 어머니를 자기가 거처하는 절에 모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를 혼자 거지처럼 다니게 할 수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추정할 수 잇는 것이 오조사에는 성모전이라 해서
어머니를 부처님처럼 크게 모셔놓은 법당이 있어요.
그리고 신동선사에도 불모탑이라고 해서 오조홍인대사의 어머니를 모신 탑이 있고
법당에도 어머니가 모셔져 있어요. 이모돈 안에도 홍인대사의 어머니가 모셔져 있어요.
이런 것으로 봤을 때 오조홍인 대사가 살아생전에 어머니를 같이 모시고 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모돈에는 스님은 안계시고 보살님 두 분이 살고 계시는데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며 음료수도 가져다 주고 빵떡도 가져다 주었는데
가이드는 그런 거 함부로 먹으면 배탈나서 큰일난다고 먹지말라고 만류를 해요.
그래서 먹지도 못하고 그랬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이모돈에 홍인대사의 어머니도 모셔져 있고 불전함도 있고 해서 불전을 넣고 절도 하고.......
여기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보살님이 불전함을 언제
열었는지 제가 넣은 불전까지 합해서 한웅큼 가지고 와서는 스님 가지고 가시라고 해요,
그렇지만 극구사양하고 가져오지 않았어요. 자기자식 챙기즛이 하는 것을 보고 제가 아주
마음이 찡했어요. 오조홍인대사의 어머니를 모시는 이런 대보살들도 계시더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러한 설화를 가지고 있는 오조홍인대사입니다.
일곱살짜리 아이가 4조도신 아래에서 큰 공부를 해서 오조홍인이 된 것입니다.
오조홍인대사는 처음에는 동선사에 계시다가 육조혜능이 행자로 법을 전해 받으면서
대중들이 폭동을 일으켜 어쩔 수 없이 나중에 자리를 옮겨 오조사라는 절에 계시게 됩니다.
스님이라 해도 어찌 할 수 없는...... 부모와의 천륜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출가한 스님들도 부모와의 천륜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
그리고 大도인들도 고향쪽으로 가서 죽으려고 많이 애를 썼고요,
육조혜능스님도 나중에 연세가 들어 돌아가실 때 국은사라는 절을 짓고
고향쪽으로 가셨어요, 국원사에 가면 시 전체가 육조혜능스님의 동상을
여기저기 세워놓고 많이 좋아해요. 부처님께서도 열반하실때 쿠시나가라라고
하는 곳으로 가셨는데 카필라라고 하는 자신의 나라 가까이 가신 것이 거든요.
도인이 되고 부처가 됐다 하더라도 부모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형제는 어떻게 할 수 있다 해도 부모는 어떻게 못해요
부모는 영원히 부모일 수 밖에 없는 거지요.
저의 경우도 우리 부모님이 제가 장손이라고 늘 아끼셨던 모양인데
자식 된 입장에서는 아껴주는 줄을 잘 모르지......
나중에 부모님이 연세가 많아서 돌아가실 때
"죽어서도 너랑 같이 있고 싶다."그래요. 그게 무슨 말이야?
납골당 하나 만들어라 이거지요. 그래서 납골당을 만들 게 된거요.
대웅전 2층에 납골당 있지요? 처음에 납골당 지으면서 주민들이 반대룰 해서
허가를 못받아 애를 먹었어요. 지금은 많이 후회를 하고 있지요. 많은 곡절이
있었지만 지금 납골당이 깨끗하게 증축되어 잘 조성되어 있지 않습니까?
부모된 입장에서 자식을 챙기는 것도 그렇고, 자식된 입장에서도 부모를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자식된 도리로 제가 부모님을 모시겠다 하고 제사 모시고
조상님들 제사도 모두 지내 드리고 1년49주 천도재 돌아오면 해 드리고.....
그 정도는 해드려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모진 고뇌를 맛 본...... 일곱 살의 홍인
다시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처녀가 애를 낳아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키우자니
동네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멸시와 천대를 받았겠습니까?
구걸을 하러 다니는데 밥인들 제대로 줬겠습니까?
그렇게 따라다녀던 아이를 생각해 봐요.
일곱살 짜리 아이 홍인, 그 고뇌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우리가 받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동네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 했을 것이고 ....
그 어린나이에 어머니와 같이 밥을 빌어먹고 다니고
욕을 얻어먹으면서 다녔다고 생각해 봐요.
남자도 없이 처녀가 애를 낳았으니 본인은 떳떳하다 하더라도
그 엄청난 사회적 지탄을 어떻게 감당했겠느냐 이거지요.
그것도 부잣집 딸이었는데.....
'남자도 없이 낳은 이 아이가 훌륭할 것이다, 이 아이는 하늘이 준 아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고는 있었겠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고뇌가 얼마나
컸겠느냐 이거요.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한테서 낳다고 대단하게 보는데
따지고 보면 오조홍인도 동정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거요, ^^
보통 사람이 몇 평생에 걸쳐 받을 고통을 껴안고 일곱살 소년이 출가 했으니
이 아이가 훌륭하게 되지 않으면 누가 훌륭하게 되겟느냐 이거지요.
오조홍인이라는 대단한 인물이 태어나게 된 것은
일곱 살까지의 모진 고뇌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도고마성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 않습니까
읽어 보세요
道高魔盛
도가 높아지려면 마구니가 치성하다.
어떤 일이 그냥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산을 넘어야 하고, 그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러한 시련과 역경이 있었을 때 큰 일이 이루어집니다
탄탄대로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수행도 마찬가지고 세속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일이 좀 어렵다하더라도 열심히 하다보면
그 역경을 딛고 큰 일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역경에 지면 끝입니다.
만약 지금 어려운 일이 있고 힘든 분들이 있다면
절대 용기를 잃지 말고 홍인대사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보다는 쉽지 않겠습니까?
홍인대사의 어머니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큰 고통이 따랐겠습니까!
그렇지만 인류역사상 홍인대사만한 인물도 없지 않느냐 말입니다.
◆위대한 스승과의 만남
다시 육조헤능 스님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헤능이라는 스물네 살 청년이 한 달이 걸려
황매현 동선사, 오조홍인 대사 앞에 나타났습니다.
홍인대사가 청년 혜능에게 묻습니다.
혜능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너는 어느 지방 사람이며 무슨 물건을 구하려고 왔는가?"
"제자는 영남의 신주 땅 사람인데 오직 부처님 되기를 원할 뿐입니다."
"너는 남쪽 오랑캐 사람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느냐?"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을지 모르나 불성에 어찌 남북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조홍인이 큰그릇이 왔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그런데 일부러 그것을 숨기려고 "어디 오랑캐가 함부로 말을 하느냐!" 하면서
방아나 찧으라고 하면서 방앗간으로 쫓아버렸어요. 방앗간에서 무려 8개월을
기다렸습니다 아마 혜능행자도 언젠가는 은사스님이 찾아오리란 걸 예감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오조홍인대사가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방앗간으로 찾아갔습니다.
" 나쁜 무리들이 너를 해칠까 두려워서 많은 말을 하지 못했다.
네가 내 뜻을 알아 들었더냐?"
얼마나 의미있는 얘기입니까 이게!!
그러니까 혜능행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 그래서 저도 스님 방문 앞을 절대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이심전심한 거죠 이미...
혜능의 그릇을 알고 오조홍인대사가 대중들에게 자기가 깨친 바가 있으면 글로
적어내라고 하니 다른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데 교수사로 있던 신수
스님이 법을 이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데중들에게 떠
밀로 글을 적어 내게 됩니다. 신수스님의 게송이 아주 유명합니다.
받아 적으십시오.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신시보리수 심여명경대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시시불근식 물사약지애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맑은 거울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 앉고 때묻지 않도록 하라.
얼마나 훌륭한 글입니까
신수스님이 이 글을 복도 한 켠에 써 두었습니다.
그러자 오조홍인대사가 이 글을 보시고 모든 대중들에게
내용이 참 좋으니 이 글을 외우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시고는 개인적으로
신수를 불러서 아직 공부가 덜 됐다 좀 더 차원 높은 이야기가 있으면 다시 적어
오도록 하라고 합니다. 오조홍인 대사의 인격도 대단하죠. 그렇지만 신수스님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포기하고 맙니다.
대중들이 이 글귀를 외우고 다니니까 방앗간의 혜능 행자도 그것을 듣게 됩니다.
한 번은 동자가 신수스님의 글을 외우고 다니는 걸 보고 그 글이 어디 있더냐고
물으니 "오조홍인대사께서 후계자를 지목하려고 깨딜은 바를 내놓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제출하지 못하고 신수 교수사가 드디어 게송을 복도에 붙여
두었는데 스님께서 보시고 훌륭하다고 모두 외우라고 하셨는데 어디 행자가 그것도
모르고 있느냐"하고 핀잔을 주었어요. 그런데 혜능행자가 가만히 들어보니 아직 덜
깨친 글이었어요.
그래서 혜능이 동자에게 "그 글 붙은 곳에 나랑 같이 좀 가 주면 안되겠느냐?"부탁하고
동자와 같이 글이 붙어있는 곳으로 갑니다. 그때 장일용 거사가 거기서 그 글을 읽고
있었는데 혜능이 장일용 거사에게 나도 저 정도 시를 외울수 있는데 내 말을 좀 받아
적어줄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내가 얘기 듣기로 너는 남쪽 오랑캐이고 행자인 주제에
네가 무슨 글을 쓰겠느냐! 더구나 글을 몰라 대필해 달라고 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그러자 행자가 얼마나 당돌한지 "사람을 가볍게 보면 죄가 됩니다."하고 아주 무서운
말을 했지요 .
장일용거사가 그 말에 겁을 먹고 대필해 주면서 "만약에 오조홍인대사로부터 법을 전해
받으면 나부터 좀 구제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신심은 있었던가 봅니다.
그때 혜능행자가 불렀던 구절입니다.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보리본무수 명경역대비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
보리수 본래 없고
명경 또한 대가 아니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 앉고 때가 끼겠소.
글 모르고, 불교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 글에 대단한 무엇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니 모든 대중들이 모두 다 감탄했어요,
어찌 우리가 저렇게 훌륭한 사람을 방아나 찧게 했냐는 소문이 막 돌았어요.
오조홍인 대사가 소문을 듣고 허겁지겁 가 봤습니다
신수스님이 써 놓은 글 바로 옆에 장일용 거사가 대필해 놓은 글이 적혀 있어요.
홍인대사가 봐도 깨친 사람의 글이라!
얼마나 다급했든지 자기 신발을 벗어서 침을 묻혀가면서 지워 버렸어요.
저 글을 다른 사람이 더 많이 보면 안된다 이거지요
체면 따지지 않고 한 것이지요. 스승의 자비지요.
행자가 다치게 된니까 그런 거지요.
"이놈도 아직 깨치지 못했어. 아직 멀었어." 하면서
자신의 신발을 벗어 침을 발라가며 다 지워 버리고는 가 버렸어요.
그리고 바로 뒷날, 오조홍인대사가 방앗간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쌀은 다 찧었느냐?"
"쌀은 이미 다 찧었으나 아직 키질을 못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홍인대사가 감을 잡고 방아머리를 세 번 치고 말없이 가버렸어요.
방아머리를 세 번 쳤는데 행자는 삼경에 자기 방으로 오라는 뜻이라는 감을
잡았습니다.
◆대발심, 대오 그리고 부촉
삼경에 스님 방을 찾아 갔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가사장삼을 벗어 방안의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았습니다.
그리고 딱 펼쳐 놓은 게 금강경 한 권이었어요.
금강경을 오조홍인 대사에게 독선생으로 배우게 됩니다.
스승에게 응무소주 이생기심에 대한 설명을 듣는 중에 대오를 해 버립니다.
시장에서 우연히 들은 응무소주 이생기심에서 발심을 했는데
스승으로부터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듣는 중에 대오를 해 버렸어요.
거기서 크게 발심해서
거기서 크게 깨달았어!
그러자 큰스님께서는 부촉을 합니다.
"돈교와 가사와 발우를 너에게 전한다.
너는 이제 육대 조사가 되었으니 중생을 제도하고
법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라."
행자에게 법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 명이 넘는 대중스님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을 싹 무시하고
행자에게 법을 전했다고 생각해 봐요. 오조홍인대사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그리고 "속히 떠나거라. 사람들이 너를 해칠까 두렵다."고 하시며
내가 구강까지 건네 주겠다시면서 새벽에 스승이 혜능 행자의 손을 잡고
구강나루까지 직접 데려다 줍니다. 남쪽으로 행자를 빼돌리는 거지요.
舊동선사에서 구강까지는 10킬로미터 정도되는 거리입니다.
그러면 지금도 구강이 있느냐?
1950년대까지 계속 홍수가 일어나고 범람하여 중국에서 물줄기를 돌려버렸어요.
그래서 지금은 강이 있던 곳은 모두 메꾸어져 버렸고 강심사 절만 있습니다.
강심사
지금의 구강은 양쯔강의 지류로 형성 되어 있습니다.
지류라 하지만 그 당시 구강은 한강의 서너 배 되는 크기였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큰 강이 아니지요.
그렇게 강에 다다르자 배가 한 척 있었습니다.
스승이 미리 강에 배를 준비해 두었던 모양입니다.
"스님, 제가 직접 노를 저어 건너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너를 건너게 해 주겠다."
"제가 미혹했을 때는 스님께서 건네 주셨지만
제가 깨달은 후에는 저 혼자 건너도 됩니다."
스님들의 대화는 그냥 말하는 것 같아도 그 속에 철학이 있어요.
아무튼 그렇게 강을 건너면서 스승이 말합니다
너로 인해서 불법이 크게 흥왕할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럽다.
너는 이렇게 가고 나는 3년 후에 열반에 들겠다.
앞으로 법난이 몇 번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남쪽으로 가서 법을 펴되 절대 서두르지 말라.
잘 가거라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일이 뭐냐?
절에 들어 온지 8 개월 밖에 안 된 행자에게 법을 전한 것,
일자무식꾼에게 법을 전한 것입니다.
대단한 일이지요.
정법을 성취하고 부처님 가피를 입으려면
첫째, 나이를 의식하지 마라, 나이를 초월해라.
나이가 많은 적든 의식하지 마라.
둘째, 사회 학식을 초월해라.
내가 사회에서 어떤 사람인데 법문이나 듣고 앉아 있겠느냐고 하는 사람, 있지요?
정신 빠진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회 학식을 초월해서 부처님 공부해야 돼요.
셋째, 정을 초월해라.
우리 삼촌이 스님인데..... 내 아들이 스님인데.... 하는 이런 생각을 버리고
스님 앞에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신수스님같은 경우는 수십 년 동안 홍인스님을 모셨습니다.
그렇지만 정때문에 법을 전해 주지는 않았잖아요.
절에 수십년 다니는 것도 좋아요. 그렇지만 그것보다 지금 현재 얼마나
정성껏 다니느냐가 중요하지 장판떼가 많이 묻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다.
선방에 수십 년 다닌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스님생활 수십 년 한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 내가 얼마나 정성껏 부처님을 모시고 얼마나 열심히 절에 다니고
기도에 열심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겁니다.
넷째, 제도를 초월해라.
제도대로 따르자면 교수사인 신수스님이 법을 전해 받는 게 당연하지만
홍인대사는 그것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제도를 초월하신 거지요.
◆처음으로 법을 설하다
걸어서 두 달 반쯤에 대유령에 도착했다고 되어 있어요
대유령 고갯길은 옛날식으로 돌을 쫙 깔아 놨어요, 바닥이 잘 정리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매화나무가 많이 심어져 매령이라고도 합니다. .[사진⑦]
대유령 고갯길을 넘어가는 사나이는 바로 칭다오 도량 주지 태허스님입니다
이 고개를 넘어서면 광동성 영남이 됩니다
고개 하나를 두고 양반과 오랑캐가 나누어져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사발우를 뺏기 위해 동선사에 거주하고 있던
천 명의 대중이 여기까지 쫓아 왔어요.
가사발우만 뺏으면 육조가 된다는 욕심에 그런 것이지요.
혜능행자가 이 대유령 고개를 막 넘어서는데 뒤에서 누가 부릅니다.
"노행자, 거기 섰거라"
돌아보니 혜명이라고 하는 장군출신의 수좌가 끝까지 따라옵니다.
그래서 가사발우를 돌 위에 올려 놓습니다.
그리고 혜능은 숨어 버렸습니다.
육조혜능스님이 가사와 발우를 올려놓았던 의발석
그러자 혜명수좌가 "아이구 이제 내가 육조가 되었다." 하고
기분좋게 들어 올리려 하는데 1키로도 안되는 가사발우가 들리지 않는 겁니다.
그때서야 당황해서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 합니다.
"행자여, 이 무슨 일인가?
나는 법을 구하려고 왔지 가사발우만 취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행자여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러자 혜능이 말합니다.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마라.
불사선 불사악하라"
이러할 때, 혜명 너의 진면목은 무엇인가?"
혜능이 행자로서 사람을 상대로 처음으로 법을 설한 것입니다.
첫 제자, 혜명이 여기서 깨치고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이시여! 뒤에 오는 대중은 제가 막아드릴테니
어서 더 남쪽으로 가십시오."
그래서 남쪽으로 막 내려 갑니다.
그리고 나중에 조계산에 이르게 됩니다.
원래 조계산에는 보림사라는 절터가 있었어요.
무슨 이유로 그 당시에 폐허가 되었던 모양인데
동네 사람들이 의논해서 거기에 작은 절을 하나 지어 주어서 거기서 살았어요.
◆몸을 숨기다
행자가 오조홍인대사에게 가사발우를 받아서 남쪽으로 갔다는 소문이
중국천지에 나게 되면서 나쁜 무리들이 혜능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어요,
공부는 하지 많으면서 육조는 되고 싶고......그러다 보니 그 가사발우를
뺏으려고 혈안이 된 거요.
조계산에 허름한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해 아홉달쯤 지났을 즈음,
나쁜 무리들이 또 쳐들어 왔어요. 죽이려고......
그래서 거기서 한 시간쯤 달음박질 해 당도한 산 속에 숨었습니다.
거기에 아주 큰 바위가 하나 있었습니다.
육조혜능스님의 법신을 안전하게 숨겨 준 피난석
제가 이렇게 자상하게 다 찍어왔어요. 이렇게 자상한 남자 있습니까? 세상천지 없지.....*^^*
아무튼 혜능이 이 산에 숨어 있는데 나쁜 무리들이 이 산에다 불을 질러버렸어요.
타 죽으라고,.,,,,
그런 것 보면 스님될 필요도 없지...
그런데 이 바위에 구멍이 뻥 뚫려 있지요.
원래는 바위가 붙어있어서 굴이 더 깊었습니다.
그래서 이 구멍으로 들어가면 밖에 불이 나도 괜찮았던 모양입니다.
대동아 전쟁때 일본 사람들이 포를 쏘아서 바위를 반 깨어 버렸어요
그래서 이 바위가 육조혜능행자가 피난했던 바위라 해서 피난석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이것은 광동성에 간다해도 보기 힘듭니다.
마침 좋은 스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스님이 따라와서 잘 안내해 줬어요.
다른 사람들은 잘 찾지도 못하는 곳인데.....아주 고맙죠.
나이가 많아 강원에 갈 수 없다고 하길래 나이를 물어보니
서른 여섯 살이라 그래요. 서른 여석이 뭐 많은지....
그런데 중국은 서른살 넘으면 강원에 가지를 못해요.
◆사냥꾼이 되다.
그렇게 숨어 지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 은사스님 말씀대로 급하게 법을 펴려고
해서는 안되겠구나!" 생각하고 그로부터 15년 세월을 사냥꾼을 따라다니면서
몸을 피합니다. 앞으로 15년 세월이 필요한 거요, 15년 세월......
그래서 15년 후에 어디에 나타나느냐?
법성사라는 절에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사진⑪ ]
깃발이 움직인다?
바람이 움직인다?
아니다. 너희들의 마음이 움직이느니라
그렇게 정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15년 세월은 기니까 그 뒷 이야기는 다음 초하루때 연결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재미있지요? 예~~
아주 재미있는 드라마입니다 이게....
제가 사진까지 찍어와서 보여주면서 이야기 해 드리는데 재미 없으면 안되죠~^^
상사화[피안화]
또 하나 더 말쓰드리면 6번 사진에 있는 꽃이름이 뭐지요? 상사화입니다.
대유령 의발석 주변에 이 상사화가 꽉 피어 있어요.
상사라는 말이 뭡니까? 그리움 아닙니까.
상사화를 피안화라고도 해요.
피안이 뭡니까 저언덕, 부처님 언덕 아닙니까
피안화가 피어있는 것을 보고 법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으면
이 상사화가 산천을 물들였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더라고요,
여하튼 이 대유령 고개를 넘으면서 의발석을 발견하고 하도 기뻐서
제가 그 위에서 춤을 췄다니까요 ㅎㅎ^^
제가 춤 추는 사진을 나중에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초하루 기도에 동참하시고 늘 와서 정진하시는 공덕으로
가정이 편안하시고 하시는 일드리 잘 되시기를 기도 드리겠습니다.
마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법문에 쓰인 사진은 회주스님께서 중국 선종사찰을 순레하시면서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