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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로마서 2장 (최영찬 목사)

작성자예수사랑|작성시간03.07.02|조회수682 목록 댓글 0
제목: 도덕주의자들의 죄(1)(롬 2:1-3)


제 19호 (월-금요일 발행) 2000/06/29



타락한 이방 세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스스로 만들어낸 사상이나 종교로 이를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되 창조 주로 알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일이 무익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 대신 짐승이나 파충류를 만들고 그것에 경배하는 미련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불경한 태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정욕을 좆아 살도록 그대로 방치해 두셨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온갖 해서는 안될 불의한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만 이런 일을 행할 뿐 아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다른 사람들도 옳다고 인정했습니다(1:20,32). 그러므로 타락한 이방 세게 사람들은 자기의 불의한 행동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계속해서 또 다른 사람을 향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1.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2:1(상))
(2;1)에서 바울은 "그런즉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2:1)에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부른 대상은 누구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첫째 견해는 이 사람을 유대인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1장에서 이방 세계의의 죄에 대해 언급하고 나서, 2장에서 바로 유대인의 죄를 언급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2) 둘째 견해는 이 사람을 이방인 중에서 특히 양심적인 사람(도덕주의자)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유대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2:17)("유대인이라 부르는 네가...")부터 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이 (1:18-32)에서 타락한 이방 세계의 죄를 다룬 후에, (2:1-16)에서 이방인 중에 특히 양심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도덕주의자의 위선적 죄를 대해서 다루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바울이 (2:1)에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부른 사람을 누구라고 보아야 할까요? 우리는 이 사람들을 이방 세계에 살지만 양심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도덕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바울이 (롬 1:18-32)에서 다룬 사람과 (2;1-16)에서 다룬 대상은 다른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1:18-32)에서 언급된 사람들은 자신도 악을 행하고, 악을 행하는 다른 사람들도 옳다고 인정하는 사람인 반면에, (2;1-16)에서 다루고 있는 사람은 악을 행하는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18-32)은 악을 행하되 악을 행하는 다른 사람도 옳다고 인정하는 타락한 이방 사람들을, (2:1-16)은 다른 사람의 악을 비판하지만 자신도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위선적인 죄를 언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일부 학자들은 (롬 2:1)부터 언급된 사람들이 유대인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람들을 유대인으로 보기에는 그 내용상 불완전한 면이 있습니다. 바울은 (1:18-32)에서 타락한 이방 세계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그들은 온갖 불의한 일을 행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 세계에는 이렇게 극도로 타락한 삶을 사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방 세계 안에도 성인이라 불리우는 사람들과, 수많은 철학자나 윤리주의자들이 있습니다. 바울 당시만 해도 로마에는 세네카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 그리고 네로의 가정 교사와 같이 비윤리적인 행동을 보고 한탄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바울이 이방 세계에 대한 묘사를 (1:18-32)에서 끝내고 (2;1)부터 바로 유대인에 대해 언급했다면, 이방 세계에 대한 바울의 묘사는 무언가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용의 흐름으로 보아도 바울이 타락한 이방의 죄를 언급하고(1:18-32), 유대인에 대해서 언급하기 전에(2:17-), 이방인 세계 내에 존재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의 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이방인 세계에는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보고 비판하며 올바르게 살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양심을 따라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왔습니다. 철학자들이나 윤리 교사들, 그리고 종교인들은 나름대로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선악을 구별하는 양심의 기능이 탁월하며, 따라서 그들은 선악에 대해 남다른 분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생에 대해 일평생 연구하여 자신이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1:28-32)에서 언급된 불의한 행동들을 보고 동의하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없다(1)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하기 때문이라(1)."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 역시 남을 비판하고 자신도 그 일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적인 도덕주의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불의한 일을 보고 절대로 그들이 옳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리한 양심의 눈으로 그들의 죄를 지적하며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남을 선한 길로 인도하려는 사람들 역시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악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남을 정죄한 후에 자신도 그 일을 행하는 위선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양심적인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3. 진리대로 시행되는 하나님의 심판(2-3)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2-3)"

하나님은 남을 정죄 하고 자신도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 바르게 살아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들은 악을 행하지 않으려고 때로 금식이나 고행을 하고, 때로는 깊은 산에 들어가서 수행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죄 속에 사는 범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러한 자신을 보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이러한 자신의 이중적인 삶을 위장하고 위선적으로 행동을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이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악에 대해 분명한 판단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평범한 사람이 살인이나 간음을 했을 때보다, 교수나, 의사나, 성직자와 같은 사람이 죄를 지은 경우에 더 큰 비난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바울은 이방 세계의 양심적인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변명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우리 주변에는 어떤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는지 이야기해보자. 그리고 왜 이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는지 말해보자.
2. 우리는 남을 비판하고 나서 나도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3. 왜 하나님의 사랑을 핑계로 계속 죄를 짓는 사람들이 그릇되지 말해보자


제목: 도덕주의자들의 죄(2)(롬 2:4-11)


제 20호 (월-금요일 발행) 2000/06/30



우리는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징계가 즉시 임하지 않는 것을 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고 더 담대하게 죄를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죄인을 참고 기다려주시는 것은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회개할 기회를 주어도 계속 죄를 짓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본문은 이러한 사람에게 임할 심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심판이 지연되는 이유(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4)"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를 심판하거나 지옥에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모두 용서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인들을 참고 기다려 주시는 이유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핑계 대고 계속 죄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멸시하는 사람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의적인 행위는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진노를 저축하는 사람들(5-6)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이라(5-6)."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에도 계속 고집부리며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집"(스클레로테스)은 "완고함", "억지", "외고집", 또는 "심술궂음"을 의미하며, "회개치 않는 마음"(아메타노에톤 카르디안)은 "잘못된 것을 돌이키지 않고 계속 고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받을 진노를 저축해놓고(쌓아놓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당장은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해 형벌이 시행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젠가 그들의 행위를 따라 진노를 쌓아 두셨다가 정확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은 조금씩 돈을 저축하면서 그 돈이 증가해 가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우리는 당장 그 돈을 찾지는 않지만 언젠가 그것을 한꺼번에 찾게 될 것을 믿고 돈을 저축합니다. 회개할 기회를 무시하고 계속 죄를 짓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이 행한 악한 행위에 대해 언젠가 한꺼번에 징계를 받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시는 공정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의의 원리는 구약 전체에서 일관되게 언급하고 있는 원리입니다(시 62:12, 호 12:2, 렘 17;10, 겔 9:10 등). 그리고 신약에서도 예수님과 바울 역시 이러한 원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마 16:27, 고후 5:10). 어떤 사람은 이러한 바울의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할 지 모릅니다. "바울 당신은 앞에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고, 왜 이제 와서 다시 행위를 강조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행위대로 갚으신다는 것은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우리 행위를 따라 정확하게 시행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숨겨진 모든 은밀한 일까지 드러내어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고 그리스도도 믿지 않으며, 계속해서 죄를 짓는 사람은 반드시 그가 행한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날에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그 심판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증거는 바로 그들이 행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행위를 행위록에 낱낱이 기록해 두셨습니다.

3. 선과 불의를 좆는 자에게 주어질 보상(7-8)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않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7-8)."

사람들 중에는 마지막 심판 때에 "영생"을 받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것을 받을 것인지는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고(인생의 목적), 무엇을 행하며 살았는가? 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참고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는 것을 구하며 살던 사람은 영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참고 선을 행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영광("독산)은 장차 얻게될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며(롬 8:30), "존귀"(테멘)는 하나님의 자녀가 얻을 존귀를 말하고, "썩지 아니함"(압살씨안)은 "부활에 참여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는 것"을 구하는 사람은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악이 판치는 세상에서 "참고 인내하며 믿음으로 사살가는 것"은 참된 성도의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이런 사람은 심판 때에 영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당을 지어 진리를 좆지 않고, 불의를 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진노와 분노(엄한 심판)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당을 짓는다"(에리쎄이아)는 말은 "공직에 있는 사람이 부당한 수단으로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을 짓는 사람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기적인 욕심과 야망을 추구하며 살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름은 자연히 남을 시기하며 질투하고, 이로 인해 분열과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자기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거역합니다. "불의"(아디키아)는 "의롭지(올바르지) 못한 일"을 말합니다. 이기적인 욕심과 야망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의를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날에 크게 징계하실 것입니다.

4. 중심을 보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9-11)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9-11).

바울은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롭기 때문에 악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평안을 제거하고, 대신 고통과 고난으로 채워주십니다. "환난"(쓸맆시스)은 재난이나 시련을 말하고, "곤고"(스테노코리아)는 마음의 고통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는 자의 영혼에 이러한 환난과 곤고로 채워 주십니다. 이러한 심판은 유대인에게도 내려질 것이고, 헬라인에게도 내려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구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내하며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영광으로 입혀주시고, 그 이름을 존귀하게 하시며, 그 마음에 평안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중심을 보고 판단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잘못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고 판단하시기 때문에 심판에 있어서 사람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한 사람에게는 고통을, 선을 행한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의 징계가 즉시 시행되지 않는다고 방종하게 사는 일이 왜 위험한가? 2.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고(하나님의 영광, 존귀, 부활, 또는 자기 욕심이나 야망) 있으며, 또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선 또는 불의) 솔직히 말해보자.
3. 왜 악을 행하는 사람이 마음에 고통을 당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의 마음에 평안이 있는지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 해보자.


제목: 율법과 양심(롬 2:12-16)


제 21호 (월-금요일 발행) 2000/07/03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기준으로 우리를 심판하십니다(2:6-8).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실수가 없으며,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심판하십니다(2:9-11). 유대인은 하나님께 율법을 받아 선악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렇게 불평등한 입장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어떻게 공평하게 심판할 수 있을까요? 본문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 율법 없이 범죄한 자와 율법을 받고 범죄한 자의 심판(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12-13)."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똑같이 하나님의 심판의 범위 안에 넣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을 모두 "범죄한 자"라고 부릅니다. 그는 율법을 받지 않고 범죄한 사람(이방인)은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을 듣고 범죄한 율법을 통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방인과 달리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율법을 받아 선악에 대한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율법을 낭독하고 가르쳤습니다(13). 그러므로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심판하실 때에 율법을 근거로 해서 그들을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받았다고 무조건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는 사람은 율법을 듣고 행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받고 그 율법을 어긴 유대인들을 율법에 제시된 약속을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2. 이방인의 심판 기준: 양심(14-15)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14)"

그러나 이방인들도 율법을 받지 않았다고 불평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 안에 이미 율법을 새겨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율법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새겨진 '본성"이 율법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이방 인들도 십계명에서 명령하는 일들, 즉 부모를 공경하고, 순결과 정절을 지키며, 정직하게 살고,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가르치고,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그들의 양심이 율법처럼 분명하게 선악에 대해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희미하고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이미 양심을 통해 율법에서 요구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도덕적인 인간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율법을 받지 않았다고 불평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15)

양심의 법은 이방인들이 그 원칙을 벗어나서 살 때에 그 행위가 그릇된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양심의 법은 이방인의 행위에 대해 검찰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양심의 법이 우리의 행위가 옳지 않다고 고발하면, 우리는 스스로 우리가 그 일을 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시하고 스스로 변명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마음은 변호사의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은밀하게 음란한 행동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즉시 우리의 양심의 법은 우리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 고발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는 마음의 평정을 잃고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 한쪽에서는 우리가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일에 대해 변명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발과 변호가 반복되면서 우리의 마음은 갈등의 전쟁터로 변합니다. 그러나 이 갈등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마음은 우리가 행한 행동이 옳은지 그릇된 것인지 판결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죄하거나 위로합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 세상 법정에서 형벌을 받을 수도 있고,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 형벌을 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마음이 스스로 우리가 행한 모든 행동에 대해서 공정하게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심판(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16)."

그러나 우리의 죄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죄를 기록해 두었다가 마지막 날에 공정하게 심판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도덕적인 이방인들에게 나타날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바울은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최후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은 구원의 메시지인 동시에 심판에 대한 선언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믿는 사람에게는 구원을 약속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심판과 형벌을 선고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은 복음이 경고한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2) 둘째로 바울은 최후의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셨습니다(요 5:22.27).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 날에 심판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을 믿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행한 것을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3) 셋째로 바울은 최후의 심판은 "우리의 은밀한 모든 것"도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 때에 그 동안 숨겨진 우리의 행위를 모두 드러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마음과 중심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숨겨질 수 없습니다(삼상 16:7, 시 139:1, 렘 17;10, 눅 16:15, 히 4;12-13 등). 그러므로 마지막에 심판은 실수가 전혀 없는 공정한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모르고 있는 모든 일의 동기들과 은밀한 것까지 모두 고려해서 사람들을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왜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이나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 하나님의 심판에 있어서 평등한지 설명해 보자.
2. 우리가 법을 만들고, 선한 일을 가르치며, 선행을 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3. 우리 마음이 자기 행위를 비난하고, 변호하며, 판결을 내리는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4. 최후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의 성격 세 가지를 설명해 보자.



제목: 유대인의 죄와 심판(1)(롬 2:17-24)


제 22호 (월-금요일 발행) 2000/07/04



우리는 그 동안 타락한 이방 세계의 사람들과(1:18-32), 도덕주의자들(2:1-16)의 죄와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정죄의 화살을 이방인에서 유대인에게로 돌리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했으며, 진리의 규범인 율법을 받은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언약 백성의 표시로 할례 받은 일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과연 유대인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 받을 수 있었을까요?

1. 유대인이 받은 특권(17-20)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네가 스스로 소경의 안내자요, 어두움을 비추는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지도자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믿으니, 이는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졌기 때문이라(17-20)."

바울은 본문에서 유대인이 특별히 받은 특권을 7가지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유대인들은 자신이 유대인으로 불리어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 된 것에 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개처럼 취급하고 상종하지도 않으려고 했습니다.

2)유대인들은 '율법을 의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받은 유일한 민족으로서 율법을 받은 일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3)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를 선택하신 여호와가 세상에 계신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사실상 그들이 섬기는 여호와는 유일하신 하나님으로서 그들이 자랑할만한 분이었습니다.

4)유대인들은 "율법의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받았으며, 이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양심에 의해 다소 모호하게 알 고 있던 하나님의 뜻을 그들은 율법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5) 유대인들은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겼습니다." "선한 것을 좋게 여긴다"는 말은 (빌1:10)에서는 "다른 점을 분별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과 다른 가르침들을 비교하여 시험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역시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이시며,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가장 선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좋게 여겼습니다.

6) 유대인은 자기들이 "영적 소경인 이방인을 안내하는 사람"이며, "어둠에 사는 이방인들의 빛"이고,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성숙하게 해 줄 스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영적인 소경이며 어둠에 사는 백성이고 어리석고 유치한 어린아이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는 달리 자신들은 그들을 인도할 참된 지식과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7) 유대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통해서 잘 조직된 지식과 진리에 대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이방인들을 가르치고 인도할 안내자요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2. 바울의 공격(21-24)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21-22)"

바울은 유대인들이 가진 특권에 대해서 언급 한 후에 곧바로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다른 사람(이방인)을 가르치려고 하면서 자기는 가르치지 않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도적질이나(8계명), 간음하지 말라"(7계명) 가르치지만, 자신들은 도적질과 간음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보면 수많은 선지자들이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이웃의 물건을 훔치고, 음란한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우상을 가증하게 여기면서도 우상을 모시는 신당의 물건을 훔쳐 재물을 취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신당의 물건을 훔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 대체로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1) "신당의 물건을 훔친다"(히에로 술레이스)는 말은 "우상 신당의 약탈한다"는 뜻 외에 "성물을 침해하여 하나님을 모독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은 "유대인들이 우상을 가증하게 여기면서, 하나님께 드려질 성물(십일조, 헌물 등)을 드리지 않아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칼빈). 우상 숭배를 가증히 여기면서 하나님께 드릴 성물을 도적질하는 것은 큰 모순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유대인들은 우상을 가증히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의 신당에 있는 물건들을 훔쳐 팔아 재물을 취했다. 그리고 이 사실이 발각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해를 입히고 말았다."(머레이). 바울 당시에는 때때로 이방인의 신당에 있는 값진 물건이 도난 당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그 물건에 손댄 사람이 유대인으로 드러날 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경우에 이방인들은 유대인 뿐 아니라, 그들이 믿는 하나님도 모독했습니다(신 7:25-26, 행 19:23-37 참조). 그러므로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에 해를 입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23-24)."

바울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그 율법을 행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해를 입히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그 율법을 준행하는 일에는 게을렀습니다. 유대인들은 진신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았고, 우상을 섬겼으며, 안식일을 어겼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했습니다. 그들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으며, 살인과 간음과 도적 질과 거짓 증언을 일삼았고, 온갖 탐심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은 회개할 기회를 주려고 하나님께서 보낸 모든 종들을 박해하거나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을 버려 이방인의 포로가 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자기의 포로가 된 유대인들을 보고 그들이 믿는 하나님까지 모독했습니다(사 52:5, 겔 36:22). 이와 같이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먹칠했습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유대인들이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명예롭게 생각했는지 7가지로 설명해 보라.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성도로서 어떻게 자랑하고 있는지 이와 비교해서 말해보자.
2. 유대인들이 남을 가르치면서 자신은 그대로 살지 못한 3가지 예를 들어보자.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범하는 이와 비슷한 일들에 대해 말해보자. 3. 유대인은 율법을 자랑하면서 그대로 살지 못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누를 끼쳤다. 오늘날 우리도 성경을 자랑하면서 그대로 살지 않아 하나님 영광에 누를 끼친 일이 없는가?



제목: 유대인의 죄와 심판(2): 할례(롬 2:25-29)


제 23호 (월-금요일 발행) 2000/07/05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으로서 여러 가지 면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특히 율법을 받은 일에 대해서 매우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하나님의 정죄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자랑하는 율법을 스스로 범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울은 유대인이 자랑하는 또 다른 문제인 할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할례의 가치는 순종에 달려있다(25-27)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 할례가 되었느니라. 그런즉 무 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 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 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25-27)"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선택받은 선민이라는 표시로 난 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창 17:9-).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서 할례를 받지 않는 자는 언약 공동체에서 끊으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는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 할례는 그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되었다는 표시이며 보증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도 그들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부적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으면 무조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미신적으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랍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례 받은 사람은 게헨나(지옥)에 가지 않는다.", "할례는 이스라엘을 게헨나에서 구원해 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는 그들이 "율법에 순종할 때에만"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할례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동시에, 율법을 준행할 의무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할례는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표시이며, 또한 율법에 순종하겠다는 서약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율법을 행할 때에 분명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율법을 실천하지 않는 경우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고 서약합니다. 만을 우리가 예수를 믿고 신실하게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면 그 세례를 우리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그러나 세례는 받았지만, 예수를 믿지 않거나 말씀을 거역하며 산다면 그 세례는 우리에게 별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바울은 심지어 할례만 받고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 유대인보다는, 차라리 할례는 받지 않았지만 율법을 실천하는 이방인이 더 할례 자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이방인 중에는 율법이나 회당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완전히 개종하여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기로 서약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신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율법을 따라 살기로 서약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우리가 잘 아는 고넬료가 이러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중심으로 율법에 순종하려고 힘쓸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용납해 주셨습니다. 사도 행전에 이러한 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던 베드로에게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은 이방인의 집에 가는 일이 금지되었지만, 베드로는 성령의 명령을 거절 할 수가 없어서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으며, 온 식구가 그 말씀을 듣고 믿고 성령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이와 같이 하나님은 할례만 받고 율법을 무시하는 유대인보다, 할례는 받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율법에 순종하는 이방인을 기쁘게 받아 주셨습니다. 바울은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이 율법을 지킬 때에 할례를 받고도 율법을 무시하는 유대인을 비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할례를 받았다고 무조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은 진심으로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를 받고 성경책을 가지고 다닌다고 무조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오히려 진심으로 예수를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중에는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주님을 믿고 말씀을 따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도 하나님을 무시하며 죄를 일삼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할례나 세례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 하는 문제보다 그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명령을 따라 사느냐? 아니냐? 에 대한 문제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2. 진정한 할례는 마음의 할례이다(28-29)
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바울은 "표면적"(엔 토 파네로: 눈에 보이는)유대인"이 모두 다 유대인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육체의 살을 찢었다고 해서 모두 다 진정한 할례자가 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유대인의 혈통에서 태어나서 그 부모가 그에게 할례를 행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말씀에 거역하는 경우 그는 얼마든지 언약 공동체에서 끊어질 수 잇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진정한 유대인은 "이면적"(엔 코 크맆토: 숨겨진)인 유대인"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유대인은 마음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 무조건 기독교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려면 스스로 예수를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할례를 행하되 "육신에 하지 말고 마음에 하라"고 권고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육신의 표피를 자르는 일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이미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백성의 표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를 받아도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마음으로 예수를 믿고 주님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할례는 "신령"(프뉴마: 영)에 있고 "의문"(그람마: 문자, 율법)에 있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율법을 받고 그것을 들고 다닌다고 무조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역사로 만들어집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 주지만 그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는 동시에,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표시는 율법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성령께서 계시는가? 아닌가? 에 있습니다.

바울은 진정한 유대인은 "사람의 칭찬(인정)을 받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을 듣는 자"라고 말합니다. 유대인("유다")라는 말은 "찬송, 또는 칭찬"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진정한 "유다"(유대)인은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스마엘과 가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약속의 자손에서 제외시키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의 인정은 받았지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뒤늦게 약속을 통해 태어난 이삭과 동생 야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세례를 받았다고 무조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하나님(성령)께서 친히 그를 자기 자녀라고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사람의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까?


적용을 위한 질문

1. 왜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이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가?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마음으로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2. 다음 성경 구절을 읽어보고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할례가 어떤 것인지를 말해보자. 그리고 언약이 이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하고 있는지 말해보자(신 10:16, 30:6, 겔 44:9, 렘 :25-26, 겔 36:26-27).
3. 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의 표시는 율법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주어진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 자녀라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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