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제 4장
=====4:1
그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운'(* )은 바울이 앞에서 언급한 교리적인
내용중 영적인 특권과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관한 추론으로서(Wood, Mitton) 교리적인
교훈에서 실천적인 교훈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실천적인 교훈이 기독교 교리에서 비롯
된 것임을 시사한다(Foulkes).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 3:1에서와 마찬가지로 본절에서의 '주 안
에서 갇힌 나'는 바울이 그리스도에 대해 충성하다가 감옥에 갇혔음을 의미한다
(Mitton, Foulkes). 이것은 이후에 바울이 권면하고자 하는 내용의 진실성과 권위를
암시한다(Foulkes, Lincoln).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 '합당하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악시오스'(* )는 문자적으로 '다른 들보를 하나 더 세워'라는 의미로 그리
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함을 의미한다(Wood, Lincoln). 그 기준은
'부르심'으로서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을 통한 새 생명에의 초대이다
(1:4, 5, 12, 13). 본절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함으로써 하
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신앙인의
고백과 실천 사이에는 항상 평형(平衡)이 유지되어야 함을 시사한다(마 3:8;10:38; 행
26:20; 빌 1:27; 골 1:10, Mitton, Lincoln).
=====4:2
본절은 부르심을 입은 성도가 지녀야 할 구체적인 덕목들을 제시한다(Bruce).
(1) 겸손 - 이것은 자신의 부족과 무가치함을 깨닫고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 자세이다(빌 2:3). 당시 '겸손'은 비열한 마음과 노예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미덕이 아니었다(Foulkes, Wood). 그러나 예수님이 친히 낮아지시는 모범을 통해 겸손
의 미덕을 보여주셨기 때문에(빌 2:6-11; 벧전 5:5)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모든 미덕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 은유 - 이것은 '이해심 깊음'이라는 말로서 '정중함'(gentleness)이라고도 번
역된다. 이 미덕은 그리스도의 성품이며(고후 10:1) 성령의 열매로서(갈 5:22, 23)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중용'(中庸)을 뜻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어
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의미할 때 사용된다. 둘째, 자신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본능적인 욕구 등을 스스로 자제하는 덕성을 의미한다(약 3:3-8).
(3) 오래 참음 - 이것은 죄인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며(롬 2:4;9:22; 벧전
3:20; 벧후 3:15) 그리스도인들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내야 할 성령의 열매로서(고
전 13:4; 고후 6:6; 갈 5:22; 골 3:12), 복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복수하지
않는 정신이다(Lightfoot, Lincoln).
(4)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 본문은 앞서 언급한 '오래 참음'의 확대된 미
덕이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단순히 '서로 용납하라'고 권면하고 있으나(골 3:13) 본
절에서는 '사랑 가운데서'를 삽입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타인을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
는 유일한 수단은 '사랑'이다. 여기서의 '사랑'은 성령에 의해 공급되어지는(롬 5:5)
새 시대의 능력으로(고전 13장; 갈 5:14, 22), 어떤 보상이나 조건을 내걸지 않은 자
기 희생적인 무조건적 사랑이다.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하는 것은 상대방의 연약함과
결점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Lincoln).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것을 힘써 지키라 - 바울은 하나됨의 생활
곧 일치의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일치의 생활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수단은 '평안
의 매는 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원수된 관계를 화해시키고,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화해를 이루셨으며(2:14-18)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됨'을 유지(維持)하도록 하기 위해서 평안과 화해의 대리자라는 직분을 주셨다
(고후 5:18). 이러한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치가 분열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매는 줄'(* , 쉰데스모)은 성도들을 서로 묶어 주
는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골 3:14) 것으로 족쇄보다 강한 결속을 시사한다. 이러
한 성도의 일치됨은 궁극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얻을 수 있다(Calvin, Bruce).
한편 '힘써 지키라'의 헬라어 '스푸다존테스'(* )는 '노력하
다'보다 강한 표현으로서 어떤 목적을 향한 진지하고 열심있는 태도를 가리킨다
(Blaikie). 이것은 평안을 통해서 하나를 이루는 것이 매우 급박한 것이며 단호한 결
심이 뒤따라야 하는 어려운 일임을 나타낸다(Wood, Lincoln).
=====4:4
몸이 하나이요(* , 헨 소마) - 이것은 문자적으로 '한 몸'을 의미한
다. '한 몸'을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뜻한다(1:23;
2:14-22). 이러한 '한 몸'은 서로 나누어질 수 없는 온전히 하나로 묶여진 유기체로서
통일성을 이룬다(고전 6:15;10:17; 골 1:18).
성령이 하나이니(* , 헨 프뉴마) -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
나님의 성령을 영접하였다고 선언한다(1:13, 14).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 사이의 공
통적 근거로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의 유기체적인 통일성을 이룸을 시사한다
(Wood, Lincoln, Mitton).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 교회가 통일성
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부르심의 한 소망'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인들을 특별한 소망을 위해서 부르셨는데 여기서 '한 소망'은 '우주적 통일성'에 관한
소망을 가리킨다(1:9, 10). 이 '우주적 통일성'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하
신 구원의 목적으로서 이에 대한 소망은 교회를 통일시키고 화해를 이루게 한다
(Lincoln).
=====4:5
주도 하나이요(* , 헤이스 퀴리오스) - 이것은 초대 교회의 신
앙 고백으로(롬 10:9;14:8, 9; 고전 8:6;12:3; 빌 2:9-11)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
정하고 주를 따르며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HedriKsen). 교회는 한 통치자의 인도
하에 있으므로 통일성을 이루는 것이 마땅하다.
믿음도 하나이요(* , 미아 피스티스) - 믿음은 개인적인 면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따라 충성하며 자신의 삶 전체를 의탁
(依托)하는 것이다(Wood, Lock, Lincoln).
세례도 하나이요(* , 헨 밥티스마) - '세례'는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되어 있다고 하는 외적인 표적으로 물세례를 가리킨다(Bruce, Lincoln,
Wood). 이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며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 그리스도
의 몸과 연합되었음을 시사하는 표시이다(1:13;2:5, 6). 한 주를 믿는 한 신앙인임을
고백하는 공적인 의식인 세례를 통해서 교회는 하나가 되었다(고전 12:13; 갈 3:27,
28).
=====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 바울은 하나됨의 마지막 원리로 만유
가운데 충만하게 임재하시는 '한 하나님'에 대해 언급한다. '한 하나님'은 '만유의 아
버지'이시다. '만유의 아버지'는 인간을 구속하는 아버지로서의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
이나 다음에 나오는 구절들로 보아 '우주적인 아버지'의 의미도 담고 있다(Wood).
만유 위에 계시고 - 이것은 하나님의 지고성과 초월성을 나타낸다.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 이것은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시사한다. 온 우주의 아버지
이신 '한 하나님'은 교회의 통일성을 위한 근거이시다.
=====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 바울은 지금까지
의 교회 전체의 하나됨이라는 주제에서 방향을 바꿔 이제는 교회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각 지체 곧 개인에 대해 다루고 있다(Wood). 본절의 '은혜'는 '은사'와 동일시할 수
있다(롬 12:1; 고전 12:4, Bruce, Lincoln). 이런 은사의 다양성은 하나된 몸을 이루
는 각 지체인 성도들의 조화를 강화시키며 촉진시켜 줄 뿐만 아니라 교회의 하나됨을
충만한 상태로 계속 유지하게 한다(Calvin). 한편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는
'은사'와 동일시되는 '은혜'가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 반면에 다른
신약성서에서 '선물'이나 '은사'는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난다(고전 12장).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은혜의 수여자이며 성령
을 통해서 은사를 수여하시기 때문이다(Bruce, Lincoln).
=====4:8
그러므로 이르기를 - 바울은 앞에서 논의한 것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확증하고 있
다 '그러므로 이르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오레게이'(* )는 직
접 인용한 출처(出處)를 밝힐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서(Wood) '성경이 말하기를' 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Bruce).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 본
절은 승리의 찬송인 시 68:18의 인용이다(Calvin). 본절은 시편을 그리스도에게 적용
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대적한 자를 정복하신 후 하나님 보좌에 오르셔서
자기 백성에게 은사를 주심을 의미한다.
=====4: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 '땅 아랫
곳'의 헬라어 '에이스 타 카토테라 메레 테스 게스'(*
는 문자적으로 '땅의 낮은 곳'을 의미한다. 이것은
'내리셨던 것'과 관련된 것으로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언급하는지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음부에 내리셨다'는 의미(Meyer, Robinson, Buchsel). (2)
'성령 안에서 내려오셨음'을 의미(Caird, Abbott, Houlden). (3) '성육신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음'을 의미(Wood, Bruce, Gnilka, Mitton). 이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
가 가장 타당하다. '타 카토테라 테스게스'는 '이 땅'을 가리키며(Bruce, Calvin) '이
땅'과 관련하여 '내리셨던 것'은 '성육신'을 의미한다(Wood, Bruce).
=====4: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 '모든 하늘'이라는 것은 유대인들
이 하늘을 일곱층으로 생각했던 것을 암시하는데(Wood, Lincoln) 그리스도는 그 모든
하늘보다 더 높은 곳에 계신다.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 본절은 '히나'(* , '하기위하여')로 시
작하는 목적절로 본절이 그리스도께서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목적임을 시사한다. 그
목적은 '만물을 충만케 하는 것'이다. '만물을 충만케'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로세
타 판타'(* )는 온 우주에 임재해 있을 뿐만 아니라
만물을 그의 주권 아래 두심을 뜻한다.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를 통치하는 통치자가 되
셔서 모든 존재들의 생명을 주관하시며 영향력을 행사하신다(Bruce).
=====4:11
그가...주셨으니 - 본절에 언급된 직분중 세 직분 즉 '사도', '선지자', '복음 전
하는 자'는 전체 교회를 대상으로 사역했던 것인 반면 나머지 두 직분 곧 '목사'와
'교사'는 지역 교회에 국한된 직분들이다(Wood, Foulkes). 이러한 직분들에서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 직분의 다양성이다(고전 12:5). 교회는 한가지 직무나
은사만으로 운영될 수 없으며 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개성이나 은사로 서로 협력하
는 가운데 진정한 하나됨을 발견할 수 있다. (2) 직분의 통일성이다. 이러한 다양한
직분들은 서로 협력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는 영적인 유기체이다.
사도 - 하나님에 의해서 보냄을 받은 자로 교회를 설립하고 교회를 섬긴 자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외에 바울 자신과 바나바(행 14:14), 실라(살전 2:6) 등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예수님을 목격하고 부활하신 주를 증거하였다(행 14:4, 14; 고전
15:5; 갈 1:19).
선지자 - 하나님의 계시를 중재하며, 죄를 깨닫게 하고(고전 14:24) 교회를 훈계하
기도 하였다(행 15:32). 이들은 극심한 박해(迫害)와 직권 오용 그리고 정경의 등장으
로 인해 후에 교회에서 사라졌다(행 13:1; 고전 12:28, Foulkes, Lincoln).
복음 전하는 자 - 선교의 차원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 빌립(행 8:4-7), 디모데
(딤후 4:5), 에바브라 등이 이에 해당된다.
목사와 교사 - 혹자는 두 직분 사이에 관사가 하나밖에 없다는 이유로 같은 직분이
라고 주장한다(Barth). 그러나 직분상 그 기능이 어느 정도는 중복된다 할지라도 동일
한 사람으로 볼 수 없으며, 관사가 하나밖에 없는 것은 두 직분이 지역 교회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음을 시사한다(Lincoln). 따라서 '목사'는 교회를 양육하고
돌보며 인도하는 자이며 '교사'는 사도적 교훈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자라고 볼 수 있
다.
=====4:12
바울은 교회 안에 다양한 직분을 세우신 목적에 대해서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성도를 온전케 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 톤 카타르티스몬'(*
)은 외과 의학에서 부러진 뼈를 맞추거나 찢어진 그
물을 수리할 때(마 4:21), 또는 범죄한 자를 바로잡는다고 할 때(갈 6:1) 사용되었다.
즉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목적을 실현하며 성도들이 온전케 되도록 회복시키고 훈
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전 1:10; 살전 3:10, Lincoln, Foulkes).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 이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직분이나 기능을 감당
할 수 있도록 '틀'을 제공하는 것으로 회복(回復)과 훈련을 통해 온전케 된 성도들이
하나됨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벧전 2:4, 5).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은사를 주신 궁극적인 목
적으로서 성도 각자의 특별한 직분을 사용하여 교회를 성장시키고 온 성도들을 영적으
로 성장시킴을 시사한다. 비록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 가는 것이 모든 지체의
과제이지만(16절) 특히 사역자들은 사도적 복음과 전승을 전달하고 해석하는 독특하고
중요한 과제로 나머지 지체들을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Lincoln).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
어 -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의 헬라어 '에이스 안드라 텔레이온'(*
)은 문자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완전히 성장한 인간이 되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안드라'는 남성 단수형으로 전체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한 새사
람'을 이룸을 시사하며 '텔레이온'은 '완전'보다는 '성숙'의 의미를 내포한다(고전
2:6;14:20; 히 5:14). 이것은 다음 절에서 언급되는 어린 아이와 대조적인 것으로 '성
숙한 성인'에 강조점이 있다. 본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 교회가 원리
상 교회 내에 이미 성숙함과 온전함을 획득하였음을 암시한다(2:15, Lincoln). 한편
'믿는 것'은 믿음의 행위라기보다 믿음의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며 '믿는 것'과 마찬가
지로 아는 일은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구원에 포함된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런 '믿음'과 '지식'의 대상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바
울의 전통적인 기독론적 칭호이다(롬 1:3, 4, 9;5:10;8:3; 고전 1:9; 고후 1:19; 갈
1:16;2:20;4:4; 골 1:13; 살전 1:10).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되게 하는 것은 목사와 교사들에게 부여된 과제로서, 목사와 교사는 그리스도에
대한 한 믿음과 한 지식을 향한 점진적 진보가 있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Lincoln).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 교회가 지향해야 할 완전한 영
적 성숙을 나타낸다(Bruce). 여기서 '장성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헬리키아스'(*
)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Wood). (1) '나이'를 의미한다(요 9:21). 이것
은 성인이 된다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유년기를 벗어나 '영적으로 성숙한 분량의
연령에 이름'을 시사한다. (2) '키'를 의미한다(눅 19:3). 헬라의 고전 작품에서는
'분량'을 나타내는 헬라어 '메트론'(* )과 함께 사용하여 '영적으로 자라
난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눅 2:52). 본절은 전체 교회가 추구해야 할 목표(1:23)를
위하여 더욱더 그리스도의 속성과 능력을 채워가야 함을 시사한다(Best).
=====4:14
본절은 '히나'(* , '...하기 위하여')로 시작되는 목적절로, 그리스도의 장성
한 분량까지 성장해야 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 본절은 성인이면서도 영적인 면
에서는 아직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자의 특징을 나타낸다(Wood). 신약성경에서 '어
린아이'는 영적 미숙을 시사한다(고전 3:1, 2;13:11; 히 5:13).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 '궤술'의 헬라어 '퀴베이아'(* )
는 문자적으로 '주사위를 던지다'는 의미로 당시의 속임수나 사기를 가리킨다. 또한
'유혹'의 헬라어 '파누르기아'(* )는 거짓 교사들이 미성숙의 길로
들어서도록 교활하게 유도함을 의미한다.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함이라 - 영적 미숙아의 특징은 '요동하
는 것'이다. '요동치'로 번역된 헬라어 '클뤼도니조메노이'(*
)는 조타 장치가 없는 배처럼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의미한
다. 따라서 이들은 조그만 어려움이나 거짓 교리에 대해 쉽게 넘어간다.그러나 성숙한
자는 진리를 분별(分別)하는 능력을 가지며(히 5:14) 어떤 거짓된 풍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Bruce). 한편 '모든 교훈의 풍조'는 바울이 앞절에서 말한 '믿는 것과 아는 일
이 하나가 되는것'에 반대되는 모든 교훈을 의미한다(Lincoln,Bruce). 즉 바울은 영적
미숙아가 앞서 말한 거짓교사들의 사기와 교활함에 쉽게 빠지지 않기 위하여 그리스도
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해가야 함을 권면한다.
=====4:15
개역 성경에는 '데'(* ,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앞절과 본절을 대
비시키고 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 본절은 교회 성장의 수단을 나타낸다. '참된
것을 하여'의 헬라어 '알레듀온테스'(* )는 문자적으로 '진리를
말하여'를 의미하는데(speaking the truth, NIV) 이것은 교회가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
는 것을 시사한다(2:5). 교회의 복음 선포는 '사랑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랑'
은 진리에 대해 충성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 '범사에'에 대해서 혹자는 '우주'로 해석하여 그리
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목적을 우주에 전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Meyer,
Schlier). 그러나 '범사에'는 부사적 목적격으로 '모든 방법으로'로 이해되어야 한다
(Lincoln). 왜냐하면 앞절과 본절에서 성장에 관계된 것은 우주가 아니라 교회이기 때
문이다. 한편 그리스도인의 성장의 목표와 척도(尺度)는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인의
전 생애 과정 속에서 일관된 목표는 그리스도를 닮는 것으로, 질적인면에서 그리스도
의 충만한 분량에까지 자라야한다.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 '연락하
고'의 헬라어 '쉬나르몰로구메논'(* )은 '함께 연
결하고'를 의미하며, '상합하여'의 헬라어 '쉼비바조메논'(*
)은 '함께 연합하여'라는 의미로 동의어로 사용된다(Bruce). 이것은 지체들간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한 표현이다. 한편 '마디'에 해당하는 '하페스'(* )는 세
가지로 해석된다. (1) 감정이다(Meyer). (2) 접촉이다(Abbott, Barth). (3) 결속이다
(Foulkes).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즉 '마디'는 각 지체와 머리 사
이의 연결을 제공하는 결속을 나타낸다(Lincoln).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각 지체'는 교회의 다양성을 지시하는 것으로, 본절은 '각 지체'가 몸 전체를 위해
서 자신만이 갖고있는 독특한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시사한다. 특히 '스스로'는 비록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성장의 근원이 된다 할지라도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교회의 자발
적인 참여를 필요로 함을 말한다(Lincoln). 각 지체가 유기적으로 잘 연합함으로 몸은
성장할 수 있다(Wood). 한편 각 지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비밀의 열쇠는 '그리스
도의 사랑'으로(고후 5:14) 사랑은 교회성장의 척도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강권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자랄 수 있다(Bruce).
=====4:17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 '허
망'의 헬라어 '마타이오테티'(* )는 신약성경에서 때때로 우상 숭
배와 관련된 단어로 사용된다(Bruce).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생명으
로부터 분리된 삶에서 비롯된 것으로 무책임한 처신에 이르게 하는 '쓸모 없는 생각'
을 가리킨다(롬 1:21; 벧전 1:18, Wood). 바울은 이제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백성
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과거의 삶처럼 목적없이 헛된 것에 욕망을 기
울여 무익하고 공허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말 것을 권면한다.
=====4: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 '총명'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노이아'(*
)는 70인역에서 '사랑을 인식할 수 있는 중심부'를 의미하는 '카르디아스'(*
, '마음')와 서로 혼용된다(창 8:21;27:41; 출 28:3). 본절은 하나님을 모르
는 이방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더 이상 궁극적인 진리를 인식할 수 없음을 나타낸
다.
저희 가운데 있는...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 '하나님의 생명'은 모든 생
명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근원이다(Bruce, Lincoln). '하나님의 생명에서의 떠남'은 곧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하는 것으로 '죽은'(2:1, 5), '하나님이 없는'(2:12) 상
태를 가리킨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이다.
무지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그노이안'(* )은 선천적인 죄에
대한 무지를 가리킨다(Lenski).
마음이 굳어짐 - '굳어짐'의 헬라어 '포로신'(* )은 돌같이 딱딱한
상태를 묘사하는 것으로 '마음이 굳어짐'이란 말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양심(良心)
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 완고해지
는 것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골 1:21, Lincoln).
=====4: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 '감각 없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펠게코테스'(*
)는 신약성경에서 본절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앞절에서 언급한
'마음이 굳어짐'과 연관된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이란 의미로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함을 시사한다. 바울은 이러한 이방인의 삶을 다음 세
가지로 나타낸다.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어떠한 것에도 제한받지 않으며 수치나 두려움을 모르고
육욕(肉慾)에만 얽매이는 행동을 말한다(고후 12:21; 갈 5:19). 한편 롬 1:24-32에서
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내버려 두셨다고 되어 있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이방인 스스로가
자신을 '방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이방인의 도덕적 책임성을 강조한 것이다
(Lincoln).
모든 더러운 것 - '더러운 것'의 헬라어 '아카다르시아스'(* )
는 기본적으로 성적 부도덕을 가리키나, 본절에서는 '모든'이란 말로 수식되어 '모든
부도덕'을 의미한다.
욕심 -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벗어나 만족을 모르는 삶을 가리키는 것으로,
'탐욕'이나(5:3, 5) '우상 숭배'(5:5; 골 3:5)와 연관된다.
=====4:20
개역성경에는 '데'(* ,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앞절에서 언급한 이
방인의 생활과 현재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대조하여 보여준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 '너희'는 앞절의 '감각
없는 자'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그리스도인, 특히 에베소 교인을 지칭한다. 한편 '배우
지'의 헬라어 '에마데테'(* )는 단순한 학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종
이나 제자가 되어 철저한 훈련으로 배우는 것을 말한다(Wood). 본절에서는 '그리스도'
를 배운다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에 관해 배우는 것을
지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Lincoln).
=====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 본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
라는 호칭에서 '예수'(구원자)라는 칭호로 바꾸고 있다. 이 칭호는 죽음에서 다시 부
활하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의 구원자임을 보여준 역사적 사실을 암
시한다(Bruce, Wood).
너희가 과연...가르침을 받았을 진대 - '진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 게'(*
)는 확실한 가정을 의미하는 것으로(3:2) 에베소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가르
침을 받았음을 바울이 전제로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4:22
너희는...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옛 사람'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
린,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인간이다(Calvin). 또한 '옛 사람'은 중생하기 이전의 행
실, 성격, 태도를 총칭하는 말로서 옛생활을 되풀이하려는 육적인 본성을 시사한다
(Moffatt, Bruce). 그리고 이것은 악이나 그 세력의 지배 하에서 살아가는 삶을 의미
한다. 한편 '벗어 버리고'는 24절의 '입으라'와 대조적 개념으로 죄로 물든 옛 생활
방식에서 떠나는 것을 시사한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은 이미 세례를 통해 이루어
졌다. 그러기에 본절의 이 금지 명령은 세례를 반복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옛 사람을
포기하는 생활을 지속하라는 권면이다(Lincoln).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은 현재
시상(時相)으로 점점 더 악화되어가는 부패의 과정을 의미한다(Wood). 이 '썩어져 가
는 구습'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의 이방인 생활을 가리킨다(2:3). 이것은 과거의
이방인 생활 방식을 포기하는 '그리스도를 닮는 삶'과 대조된다. 이방인의 옛 생활 방
식은 '유혹의 욕심'에서 비롯된다. '유혹'의 헬라어 '아파테스'(* )는 진리
의 말씀인 복음과 반대되는 개념으로(마 13:22; 막 4:19; 히 3:13) 거짓 교사의 교리
를 나타낸다(골 2:18). 바울은 이렇듯 복음과 반대되는 허망한 것을 추구하는 삶을 영
위할때 그 결과는 죽음이기에(2:1, 5; 벧후 1:4) 에베소 교인들에게 벗어버리라고 권
면한다.
=====4:23
개역성경에는 '투 노오스 휘몬'(* , '너희 마음의')이 생
략되어 있다.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 '심령'의 헬라어 '프뉴마티'(* )에 대
해서 혹자는 '성령'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Gnilka, Houlden, Schlier). 그래서 본절
을 '성령에 의해서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하라'로 해석한다(Houlden).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마음의'라는 속격에 의해서 수식당하는 것은 개연성(蓋然性)이 없다
(Mitton). 따라서 본절의 '심령'은 인간의 영과 마음을 가리킨다(Lincoln). 따라서 본
문은 '너희 마음의 영을 새롭게'라는 의미이다. 한편 '새롭게 되어'의 헬라어 '아나네
우스다이'(* )는 현재 부정사 수동태로, 성령에 의해서(고후
4:16; 딛 3:5, Wood) 날마다 계속적으로 새로와져야 함을 시사한다.
=====4:24
하나님을 따라...지으심을 받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카타 데온 크티스덴
타'(* )는 문자적으로 '하나님과 같이
창조된'이란 의미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재창조되었음'을 시사한다(골 3:10, Bruce,
Lincoln). 하나님은 죄로 잃어버렸던 그의 형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현시켰고 그의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심으로(Bruce, Wood)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도
록 하셨다(Lincoln).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디카이오쉬네 카이 호시오테
티 테스 알레데이아스'(*
)는 문자적으로 '진리로부터 나온 의와 거룩함 안에서'를 의미한다. '의
와 거룩함'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재창조함을 받는 새사람의 윤리적 덕목이며 자질(資
質)이다(Lincoln). '의'는 모든 생활 가운데 올바르고 충실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며
'거룩함'은 세상으로부터 떠나 하나님께로 속한 삶으로 악에 물들지 않는 성결한 삶을
의미한다. 이런 두 가지 덕목은 '진리'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진리'는 복음과 사도적
전승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실재다(21절;1:13).
새 사람을 입으라 - 본절은 22절의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와 대조된다. '새 사
람'은 문자적으로 '갓 만들어낸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2:15)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속 사역을 통해 재창조된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이러한 '새 사
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재창조된 자에 합당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
=====4:25
그런즉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접속사는 '디오'(* )로 '옛 사람을 벗어버림
으로써 새 사람을 입었은즉'(Robertson)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접속사를 사용함으
로써 바울은 원리적인 교훈과 실천적인 교훈을 연관시키고 있다(Wood).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옛 사람의 특징 중 하
나는 '거짓'이다(골 3:9). '거짓'은 모든 종류의 부정과 속임수 혹은 궤계를 가리킨
다. 반면에 '새 사람'의 특징은 '참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가랴 8:16(LXX)
의 인용으로 그리스도인은 상호간의 친교 가운데 솔직해야 함을 시사한다(Bruce).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 본절은 그리스도인이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
을 말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지체로서
(4:15, 16;5:30; 롬 12:4, 5; 고전 12:12-15)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서로 진실함
으로써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왜냐하면 진실을 통한 상호간의 신뢰감 대신에 거짓으로
인해 생겨난 불신은 유기체를 분열시키고 파괴시키기 때문이다(Lincoln).
=====4:26
말며'는 시 4:4(LXX)의 인용으로 역설적 명령이다. 왜냐하면 본절에서는 분을 허용
하는 것처럼 보이나 27절에 사단에게 빠지지 말라는 명령과 31절에 모든 분에 대한 금
지 명령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은 '노하기를 더디하라'는 권면(마 5:22; 갈
5:20; 골 3:8; 딤전 2:8; 딛 1:7; 약 1:19, 20)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
님께서도 '의분'(義憤)을 내신 적이 있었다(막 3:5; 요 2:13-17).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을 금지시킨 이유는 그릇된 방향으로 변질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해가
지도록'은 '분'을 처리하기 위한 시간 제한이다. 즉 시간 제한을 통해 한밤중까지 분
을 품지 않도록 함으로 죄에 빠지는 잘못을 막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Bruce,
Lincoln).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 본절은 앞절에서 언급된 금지 명령의 동기이다.
분노를 마음에 오래 품음으로 탐닉(眈溺)하게 되면 사단에게 자유롭게 영을 유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분을 품는 행위를 멈추든지 아니면 분을
마음에 오래 간직하는 습관을 갖지 말라고 권면한다(Robertson).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분노로 가득 채워지기 전에 반드시 적당한 때에 풀어야만 한다(Calvin).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 이것은 십계명 중에서 제7계명에 대한 언
급이다(출 20:15; 신 5:19).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윤리이다
(막 10:19; 롬 13:9). 여기서 '도적질하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클레프톤'(*
)은 직업적인 '도적'(* , 호 클레프테스)을 가리
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부당한 착복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람의 판단으로 정죄
할 수 없는 사소한 도적질까지 포함한다(Calvin).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사람은 이러
한 것들을 끊어 버려야 한다(Wood).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
라 - 바울은 '도적질'을 하지 말라는 권면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노동을
통해 빈궁한 타인을 도우라고 권면한다. 본절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본질적인 부분인
(눅 6:29-36; 고후 8:1-15;9:6-12) 기독교적 노동 윤리를 나타낸다. 그 노동의 목적은
부의 축적이 아니라 궁핍한 이웃을 돕는 선한 일에 있다(갈 6:1).
=====4:29
본절은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에 대한 권면이다.
더러운 말은 너희입밖에도 내지 말고 - '더러운 말'은 문자적으로 '부패한' 혹은
'썩은'이란 의미로 단순히 좋지 않은 언어가 아니라 악의 있는 험담과 중상 모략을 나
타낸다. 이것은 남에게 해를 끼치고 분쟁을 일으킨다.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 '선한 말'은 도덕적으로 건실하고 옳은 말로서 말을 잘 선별하여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런 선한 말을 하는 목적은 교회와 그리스도인 상호 간에 덕(德)을 세우며
(Bruce) 일상적으로 대화하는 언어 생활에서 타인에게 은혜를 끼치기 위함이다.
=====4:30
개역성경에는 '카이'(* , '그리고')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더러운 말을 통
해서 성령이 근심하게 됨을 암시한다(Wood).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 본절은 사 63:10의 사상을 반영한다. 부주
의하고 옳지 못한 말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성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근심케 한다(고전 3:16; 살전 5:19).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인격
적인 안내자이며 지도자이시기 때문에(롬 8:26; 갈 5:17) 그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
고 자신을 더럽히면 그를 근심케 만드는것이 된다(Calvin).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 '인치심'은 하나님께서 그
리스도인의 소유주이심을 나타내는 보증의 표이다(1:13, 14). 한편 '구속의 날'은 본
서에서만 나타나는 표현으로 구원과 심판의 완성을 동반하는 '주의 날'(고전 1:8; 살
전 5:2; 살후 2:2) 혹은 '그리스도의 날'(빌 1:6, 10;2:16)을 가리킨다. 성령은 성도
의 일시적인 범죄로 떠나버리지 않고 그리스도의 재림하시는 날, 약속하신 기업을 주
시는 날까지 성도의 확실한 보증이 되신다(요 14:16; 요일 3:2, 3). 그러나 이 보증은
단지 미래에서만 경험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재 구속 곧 죄사함의 확
신을 경험하며(1:7) 미래의 구속의 날에 몸전체의 구속을 경험하게 된다(롬 8:23).
=====4:31
너희는...버리고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버려야 할 악에 대해서 열거
한다. '버리다'의 헬라어 '아르데토'(* )는 문자적으로 '깨끗이 쓸어버리
다', '제거되게 내버려 두라'는 의미로 더 이상 모든 악독과 관계를 갖지 말아야 함을
시사한다(Wood).
악독 - 이것은 과거에 당한 손해나 모욕에 대한 원한을 버리지 않고 마음 속에 품
어두어서 이웃과 화해하기를 거부하는 마음 상태이다(행 8:23; 롬 3:14; 히 12:15; 약
3:14).
노함과 분냄 - 이 두 가지는 대개 동의어로 사용되나 엄밀히 구별하면, '노함'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분노로서 급격한 감정 폭발이며(고후 12:20; 갈 5:20), '분
냄'은 통렬하고 악독한 적의가 마음에 자리잡아서 지속적이고 습관적으로 표현되는 것
을 말한다(딤전 2:8; 약 1:19, 20).
떠드는 것 - 이것은 신약에서 본절에서만 악한 덕목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고 소리지르는 것을 의미한다.
훼방하는 것 - 이것은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모욕적인 인사를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
다(막 7:22; 골 3:8; 딤전 6:4; 딤후 3:2).
=====4:32
바울은 앞절에서 금지 명령을 한 반면 본절에서는 행해야 할 덕목을 제시한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 '인자'는 본서에서 하나님의 속성으로 나타난
다(2:7). 이것은 타인의 필요를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다(고후 6:6; 갈 5:22; 골
3:12). 또한 '불쌍히 여기는 것'은 '자비', '인자'와 함께 신약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
으로 타인의 필요에 공감하고 동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서로'에게 표현해야 하는 덕목이다.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 - '...과
같이'에 해당하는 원어 '카도스 카이'(* )는 '일치'를 나타내는 표
현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하신 것이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기준과 근거
가 됨을 시사한다(Lincoln).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구원 행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행위인 원형(原型)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용서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인도 타인에 대해 용서해야 하며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용서 자세는 반드시 사랑으로부
터 출발되어야 한다(Wood). 한편 '하라'의 헬라어 '기네스데'(* )는 실
제로 '되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예수를 본받아 그렇게 되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예수를 본받아 그렇게 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서로 용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들의 교제 가운데서 반드시 드러나야 할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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