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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전서 4장 주석

작성자예수사랑|작성시간03.07.11|조회수13,240 목록 댓글 0


베드로전서 제 4장
=====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 베드로는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본
(本)을 강조하고 있다. '육체의 고난'은 문자적으로 '육체 안에서 고난을 받으셨다'라
는 의미로(KJV, RSV, NASB) 그리스도께서 '육의 생활영역'에서 죽기까지 고난받으셨음
을 시사한다(3:18, Michaels,Stibbs, Blum).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 '갑옷'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플리사스데'
(* )는 '무기'를 뜻하는 '호플론'(* )에서 유래된 단
어로 여기서는 전장(戰場)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싸움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현세의
삶 속에서 사상이나 이념들을 방어하기 위한 것을 의미한다(Lenski). 베드로는 그리스
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갑옷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제시하고있다. 여기서 '같
은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위해서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며 온유했던 대속적인
마음을 의미한다(빌 2:5, Cranfield).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활 속에서
고난당하시는 가운데 가지셨던 마음으로 무장해야 한다.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에 대해서
혹자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나(Kelly)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던 고난에 동참
한 '그리스도인들'을 일컫는다(Calvin, Bigg, Selwyn, Michaels, Blum). 세례를 통해
서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과 죽음에 동참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의 유혹과 권세
가 이기지 못하여 죄가 끊어지게 되며(롬 6:8, 11) 깨끗한 삶을 영위하는 성화의 한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Selwyn, Cranfield, Stibbs). 베드로는 수신자들에게 그리스도
의 고난과 죽음에의 동참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무장함으로 죄의 권세가
지배할 수 없는 성화의 삶을 영위하도록 권면한다.

=====4:2
그후로는...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 본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
여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하는 삶을 제시한다. '육체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사르
키'(* )는 '육체 안에서'라는 의미로 육체로 살아가야 하는 지상
생활을 나타낸다. 한편 '남은 때'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것은 그리
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생명이 남아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사람의 정욕을 좇지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 '사람의 정욕'과 '하나님의뜻'
은 강한 대조를 이룬다. '사람의 정욕'의 헬라어 '안드로폰 에피뒤미아이스'(*
)에서 '안드로폰'은 본서에서 한번을 제외하고
는(3:4) 모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6절;2:4, 15), '에피뒤미아이스'는 단
순히 성적인 욕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본성에서 비롯된 모든 죄악된 욕
망을 의미한다(요일 2:16, Selwyn, Michaels).한편 '하나님의 뜻'은 문맥상 죄를 그치
고(1절) 부끄러운 죄악들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2, 3절).비록 베드로는 본절에서 '하
나님의 뜻'에 대해 정의하지 않았지만, 본서 내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형제를 사
랑하며 왕을 공경하며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19절; 2:15,
17;3:17).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인간의 타락된 본성에서 비롯된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만 한다.

=====4:3
너희가...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다 - 본절은 수신자들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의 삶에 대한 묘사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삶은 과거 그
리스도인이 되기전으로 족한 것임을 시사한다. '이방인의 뜻'은 '하나님의 뜻'과 정
면으로 배치된다. 본절의 '뜻'의 헬라어는 '불레마(* )로 2절에서
사용된 하나님의 '뜻'(* , 델레마)과는 큰 차이가 있다. '불레마'는 확
고한 목적성이 없어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것처럼 변하기 쉬운 것을 가리키며 '델레
마'는 목적을 위해서 변하지 않는 뜻을 가리킨다(Caffin). 한편 '행한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테이르가스다이'(* )는 완료 분사로 수신자들
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전부 이방인 이었음을 암시한다.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수신자들은 더이상 과거 이방인의 삶과 동일한 죄악된 삶을 영위할 이유가 없다. 죄악
된 삶은 과거 이방인 시절로 족한 것이다. 베드로는 경고하기 위해서 과거 수신자들이
저지른 세 가지 부류의 죄악을 열거한다.
(1) 음란과 정욕 - 본문은 성(性)과 관계된 죄악이다. '음란'은 절제되지 않은 지
나친 정욕으로 인한 부도덕한 성행위를 가리키며.'정욕'은 사악한 욕망들이 내적
으로 감추어진 상태를 말한다. 이 '정욕'은 '음란'으로 향하게 된다(2절;2:11).
(2)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 - 본문은 '술'과 관계된 죄악이다. '술취함'의 헬라어
'오이노플뤼기아이스'(* )는 '포도주'라는 뜻의 '오이노스'
(* )와 '솟아 오르다'라는 뜻의 '플뤼오'(* )의 합성어로서
술에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방탕'은 술취한 사람들이 거리를 쏘다니며 난동을 부
리는 것을 의미하며 '연락'은 '큰 술잔치를 베풀어 즐기는 것'을 가리킨다. 술이 만
취 되었을때 사람들은 이성을 상실하고 쉽게 범죄하게 된다.
(3) 무법한 우상 숭배 - '무법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데미토이스'(*
)는 부정 접두어 '아'(* )와 '허락하다'라는 뜻의 '데미토스'(*
)가 합성된 말로서 자연과 양심의 법으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우상 숭
배를 가리킨다. 이러한 우상 숭배는 음주와 음란이 섞인 가증스러운 것이었다(왕상 21
:26; 겔 7:20; 롬 2:22). 그 결과 죄를 범할 뿐만 아니라 창조주며 구속주이신 하나님
을 기억지 못하게 되고 그분을 떠나 허탄한 우상에 빠져버리게 된다.

=====4:4
이러므로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 '이러므로'의 헬라어 '엔 호'(*
)는 본서에서 다섯 번 나타나며(1:6; 2:12; 3:16,19) '이러한 생활안에 있으므로'
를 의미한다.이것은 한때 이방인과 같은 생활을 하였지만 이제 그리스도로 인하여 변
화된 삶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이상히 여겨'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세니존타이'
(* )는 '이방인'을 의미하는 '크세노스'(* )에서
유래된 말로 '낯선 사람처럼 보이다'라는 의미이다(행 10:6, 18;17:20). 이방인들은
과거에 자신들과 같은 생활을 하던 그리스도인들이 낯선 사람처럼 행동하며 그들과 함
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이상히 여겨 비방한다(Bigg). 이러한 모욕과 비방은 단순
히 그리스도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 하지 아니하는 것을 - 본문은 이방인
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비방하는 이유이다. '극한'(* , 아소티아
스)은 자기 자신을 무모하게 버려 두는 것을 의미한다(눅 15:13). 그러므로 '극한 방
탕'은 자신을 절제하지 않으며 방종한 생활에 버려둠으로 도저히 구원받지 못할 생활
을 말한다(엡 5:18; 딛 1:6). 이방인들은 과거에 방탕한 생활을 하던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아 전혀 다른 새 삶을 사는 것을 보고 자신들처럼 살지 않는다고 비방한다.

=====4:5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 본래 하나님께
서 소유하고 계시던 심판의 권세를 그리스도께 주셨다(요 5:22,27; 행 17:31; 롬 2:
16).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생활에 대해서 마땅히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산자와
죽은자'는 그 당시에 살아 있는 사람과 이미 죽은 자들을 말한다(살전 4:15). 여기서
'죽은 자'는 복음을 듣지 못한자와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는 자들도 포함된다. '심판
하기를 예비하신 자'는 '마땅히 심판하시는 자'를 표현한 것으로 심판의 필연성을 나
타내는 말이다.

=====4: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 본절에 '이를위하여'(*
)라 함은 그리스도께서 산자와 죽은 자의 심판주가 되심을 가
리킨다(Selwyn).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자'의 '심판주'가 되시기 위해서 '죽은
자'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 '죽은 자'에 대해서 혹자는 영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한
다고 주장하나(Augustine, Frasmus, Luther) 이 견해는 문맥상 타당성이없다. 왜냐 하
면 앞절에서 육체적으로 죽은 자에 대해 이미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Stibbs). 따라
서 본절의 '죽은 자'는 살아있을 동안에 복음을 듣고 회개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재림
이 임하기전에 죽은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Dalton, Kelly, Moffat, Selwyn,
Cranfield).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
베드로는 '육체로'와 '영으로'를, '심판을 받으나'와 '살게 하려 함이니라' 대조시켜
서 본절이 '죽은 자'에게도 복음이 전파된 목적임을 나타내고 있다. '심판을 받으나'
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리도시(* )는 부정 과거로 육체로는 세상
에서 이미 심판을 당하였음을 시사한다. 반면에 '살게 하려 함이니라'의 헬라어 '조
시'(* )는 현재형으로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아 육체로는 죽음을 당하
였을지라도 하나님과 더불어 영으로는 영원히 살고 있음을 시사한다. 복음은 영원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하는 능력으로(요일 3:14)
그리스도인들은 육체로는 죽임을 당할수 있으나 영적으로는 복음이 제공하는 생명력으
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수 있다.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 '만물의 마지막'은 일반적으로 예수의 재림을 의미
한다(3:10, Stibbs). '가까 왔으니'의 헬라어 '엥기켄'(* )은 '가까이
잡아 당기다'라는 의미를 가진 '엥귀스'(* ) 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이것은 임박한 상황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베드로는 박해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낙심치 말고 소망을 가질 것을 권고하고 있다.
너희는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그리스도인
들은 더욱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정신을 차리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프로네사테'
(* )는 '소리'라는 뜻의 '소스'(* )와 '마음'이라는
뜻의 '프렌'(* )의 합성어로서 '올바른 마음', '침착한 마음'을 의미하며
'근신하여'는 환경에 따라 요동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중심을 잡는 조심성을 의미한
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
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무절제한 생활을 버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 '무엇보다
도'는 어떠한 일보다 사랑을 먼저 할 것을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열심으로 사랑하는 것
이다. '열심으로'(* , 에크테네)는 '힘껏 노력하는', '전심 전력하
는'이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인이 힘써서 할 사랑은 감정적으로 하는 일시적인 사랑이
아니라 의지의 결단을 가지고 행동을 수반하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을수 있다. 즉 피차간에 있는 허물을 덮어 주고 서로를 세워주고자
하는 사랑은 죄를 가리운다(잠 10:12). '죄를 덮느니라'에 대해서 혹자는 다른 사람
에게 자신의 친절한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그 보상으로 자신의 잘못이 가리워질 수있
다고 주장하나(Tertullian, Origen) 여기서의 사랑은 친절한 행위를 함으로 오는 반대
급부를 바라는 사랑이 아니다. 이것은 사랑을 하고 있는 주체자의 죄가 가리워지는 것
이 아니라 사랑을 받고 있는 객체자의 죄가 가리워짐을 의미한다.그리스도인들은 자신
의 죄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무조건적으로 용서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타인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4: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 '대접하기를'의 헬라어 '필록세노이'(*
)는 '사랑'을 의미하는 '필로스'(* )와 '나그네'를 의미
하는 '크세노스'(* )의 합성어이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나그네에게 사랑
을 베풀다'라는 의미로 당시에는 '여관'이 없었기 때문에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구
체적인 사랑의 표현 방법이었다(딤전 3:2; 5:10; 딛 1:8).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단
순히 잠자리를 제공하는 차원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고난과 핍박을 받는 그리
스도인들이 쫓겨다니면서 전도 생활을 하는 등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Lenski, Cranfield). 따라서 나그네를 대접하는 행위는 사랑의 행위 뿐만 아
니라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기회여서 사도들은 자주 이 덕에 대해서 언급하였
다(롬 12:13;히 13:2; 요삼 1:5-8). 한편 베드로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조건으로 '원망
없이'할 것을 권면한다. 당시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힘에겨울 수도 있었으며 많
은 어려움이 뒤따르기도 하였다. 그렇다 할지라도 불평하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 왜
냐하면 이러한 사랑의 행위는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
다(마 25:35, 38, 40 ).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서로 봉사하라 - '은사'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
로서 다양하다(롬 12:6;고전 12:4).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셨다
할지라도 그 은사는 서로 비교되거나 자기의 유익과 자랑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
라(고전 4:7) 교회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Cranfield).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자
신들이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서로 봉사해야 한다. 이 '봉사' 는 '상대를 섬기는 것'이
고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 본절은 은사를 받은 그리스도인들
이 은사를 통해 서로 섬겨야하는 자세를 나타낸다. '각양'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
킬레스'(* )는 여러 가지 특색의 은사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은
한사람에게 모든 은사를 주시지 않고 각 사람마다 다양한 종류의 은사를 허락하셔서
각 사람이 서로를 위해 섬기고 봉사하여 필요한 부분을 채우도록 하신다. 한편 '청지
기'는 본래 '집안의 재산을 관리하는 하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각양은사를 받은 그리
스도인들이 은사를 사용하는 방법을 말한다. 청지기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교회
를 섬기고 봉사하며, 관리하는 자로서 자신이 받은 은사를 통해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
는것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과 멋을 추구해야 한다(Robertson, Blum).

=====4:11
베드로는 본절에서 은사의 사용 범주에 대해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 첫번째 범주는 '말의 사
용'이다. 여기에서 '말하려면'에 해당하는 헬라어 '랄레이'(* )는 모든
종류의 말을 의미하며 '말씀'의 헬라어 '로기아'(* )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계시를 의미한다(Blum ). 그리스도인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간에 말
할 때 하나님의 말씀처럼 즉 성경 말씀처럼 해야한다(고후 5:20; 살전 2:13).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신탁'을 전하는 것처럼 그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표
본 삼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함을 시사한다(Lenski).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 둘째범주는 '봉
사'이다. 베드로는 봉사의 종류가 많기 때문에 다 열거하지 않고 한단어로 묶고 있다.
'공급하다'의 헬라어 '코레게이'(* )는 본래 '합창하다'라는 의미였
으나 후에 '하나님이 아낌없이 주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
의 유익과 덕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봉사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아낌
없이 공급해주시는 것을 염두에 두고 힘껏 봉사해야 하며 자기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는 것이 아니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봉사
해야 한다(Calvin).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함이니 -
본절은 그리스도인이 앞서 언급한 두가지 범주 즉 말과 봉사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처럼, 그리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처럼 해야 하는 이유
이다. 하나님께서 각양 은사를 베풀어 주신 것은 오로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어진 은사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 전영역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행해야만 한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
도를 통한 은혜로 인해서 가능한 것임을 암시한다(Beare).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 본절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송영이다(롬 11:33-36; 엡 3:20, 21). '그에게'의 헬라어 '호 에스틴'(*
)은 선행사가 예수 그리스도인지, 하나님인지 분명치 않으나 만약 '예수 그리스
도'라고 한다면(Stibbs, Michaels, Kelly, Goppelt, Selwyn)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영광'이란 의미가 되어 논리에 어긋난다. 따라서 '예수그
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 논리상 타당하므로 본절에 해당하는 선행사를 '하나
님'으로보는 것이 적절하다(Blum, Clement).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시
고 영광이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께 연결되기 때문에(롬 16:27; 유 1:25; 계 1:6, Lens
ki, Robertson) 찬미 대상이 누구든 간에 의미에는 특별한 차이가 없으며 아마도 베드
로도 대상을 구별하지 않았을 것이다.한편 혹자는 송영이 이곳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원래 본절이 독립된 것이었는데 삽입된 것으로 주장하나(Clement) 성경에서 그리스도
의 위엄을 강조할 때 자주 사용되기 때문에 이 주장은 적절치 못하다.

=====4:12
사랑하는 자들아 - 베드로는 본절부터 다시 핍박 받는 자들에 대한 권면을 한다.
본문은수신자를 향한 베드로의 애정어린 마음을 나타내며(2:11) 동시에 새로운 권면의
시작을 알리기도 한다.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 본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오는 시련은
'불시험'으로 묘사된다. '시련하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 페이라스몬'(*
)은 진위(眞僞)를 가리는 것으로 유혹이아니라
시험(test)을 의미한다. 이 '시련'은 본절에서 '불 시험'과 동일시되고 있다. '불 시
험'의 헬라어 '테 엔 휘민 퓌로세이'(* )는 문자적으
로 '너희 중에 타고 있는 불'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고통스럽게 타는 불'로서 소돔
성을 파괴시킬 때의 불로 묘사되며(Josephus) 또한 종말에 '바벨론 성'을 멸망시킬 불
로 나타나기도 한다(계 18:9, 18). '퓌로세이'는 순수한 금속을 얻기 위해 제련하는것
으로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시련이 불같이 뜨거울 것을 상징한다(시 66:10; 잠
27:21; 계 3:18, Stibbs, Blum). 이러한 시련을 끝까지 믿음으로써 견디는 자는 저주
로부터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한편 '오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노메 네'(*
)는 현재분사로 베드로나 수신자가 이미 경험했고 또한 현재에도 고난을
당하고 있으며 장차 계속 다가올 시험임을 시사한다.
이상한 일 당하는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 '이상히 여기지'의 헬라어 '크세니
제스데'(* )는 실제적인 박해에 의해서 '사람을 마비시킬 정도의
충격'을 의미한다(Beare).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 앞에 다가오는 시련을 엄청난 충격
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그 시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그 고난의 동참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쁨과 영광에 참예케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Stibbs, Blum).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 고난을 당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것이라면 그것은 가치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여러 가지 핍박과 치욕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
가 십자가의 고난을 겪을 때와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된다. 그러
나 그것은 영광의 승리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즐거워
하라'의 헬라어 '카이레테'(* )는 현재분사로 그 즐거움이 일순간적
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을 때 후에 주어질 영광의 승리를 바라보며 항상 어떤 조건하에서도 즐거워해야 한
다.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때에 너희로 줄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 - 본절은
'히나'(* ,'...위하여')로 시작하는 절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때 즐거워
하는 목적이며 마지막 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갖게한다. 현재에 당한 고난은 육체적
으로나 정신적으로 견디지 못할정도로 어려운 것이지만 그날의 영광을 생각하면 능히
이기고도 남을 만한 것이다.'기뻐하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갈리오메노이'(*
)는 너무 기뻐서 어찌할바를 모르는 극도의 기쁨을 나타내는 단어로
(Lenski)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과 극명한 대조를 통해 고난보다 즐거움과 기쁨이 훨
씬 큰 것임을 암시한다.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 엔 오노마티 크리스투)는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표현은 주님이 하셨던 표
현이며(마 5:11) 초대 교회 당시에는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받는 박해가 당연한
것이었으므로 거의 전문적인 표현 방식으로 성경의 여러 곳에서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
다(마 10:22; 요 15:21; 행 9:16; 15:26; 21:13; 계 2:3; 3:8, Kelly). 한편 '욕을 받
으면'은 믿지않는 사람들로부터 비방이나 능욕을 받는 것으로 본서에서 여러 번 사용
되었다(4절; 2:12, 15; 3:16).이것은 70인역에서 악인들이 하나님과 백성들에게 비방
했던 것에 대해 많이 사용했으나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가 받은 모욕을 나타낼때 많
이 사용되었다(마 27:40 - 44; 롬 15:3; 히 13:13).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
으로 인해서 고난을 당하고 욕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활에서 당하신 고난
에 동참하는 것으로 후대 영광에 참여할 복된 것이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 본문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
난당하는 자들이 복 있는 이유이다. 본절에서 '영광의 영'은 '하나님의영'과 동일시되
어 '성령'을 나타낸다.'영광의영'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테스 독세스'(*
)는 문자적으로 '그영광의 그'이다. 이 표현은 쉐키나(S-
hekinah)를 묘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영광을 가리킨다(출 16:7; 24:
16; 29:43; 40:34; 민 14:10; 왕상 8:10, 11; 사 6:1 ; 겔 1:28,Cranfield, selwyn).
'하나님의 영' 곧 '영광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핍박받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임하게 되며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의 소유됨을 시사한다
(Stibbs). '계심이라'의 헬라어 '아나파우에타이'(*
)는 '쉬게 하다', '자리잡다'라는 의미로 성령의 임재를 시사한다. 성
령은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임재해 계셨으며 스데반이 순교할 때도 하나님의 영이 임했
다(행 7:55, Bigg).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시 임재를 통해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서 그
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한 고난이 동참할 때 하나님의 두드러진 속성인 영광을 보게 된
다(행 7:55).

=====4: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
을 받지 말려니와 -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이름'때문에 받는 것이어
야 하며 세상에서의 잘못 때문에 고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악행
으로 받는 고난은 결코 그리스도의 영광이 아니며 그 악행 자체는 형벌을 받아 마땅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고난과는 별개의 것이다. 여기서 '...로'(* , 호스)는 앞의
세 가지 범죄와 다음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사이를 분리하여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를 강조하고 있다.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는 '남의것을 탐내는 사람'이나
(Deismann), '금지된 일 하는 자'(Bigg) 혹은 '밀고자'(NIV)를 가리킨다. 이러한 자
들이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도,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받는것도 아
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로 인해 고난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 받은즉 - '그리스도인으로'는 '그리스도의 고난' 즉 '그
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받는 고난'이다(13절).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주 사
용되는 표현은 아니지만(행 11:26; 26:28) 그 말은 예수를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 처
음에는 '제자','형제', '성도'라는 호칭이 사용되다가 안디옥에 교회가 설립되었을 당
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아그립바는
그리스도인을 경멸할 때 사용하여(행 26:28) 초기에는 주로 신자들을 박해할 때 사
용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Goppelt). 따라서 신약성경 기록 당시에는 보편적인 단어
가 아니었으나 그후 A.D. 64 년 경까지 로마에서 신자사이에 이 말의 적합성을 깨닫
고 그들 스스로가 보편적으로 사용하였다(Tacitus, 행 11:19 - 26 주제 강해 '그리스
도인' 참조).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본절은 베드로 자신
의 수치인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건을 암시한다(막 14:66 - 72, Blum). 베드로는 처음
에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였으나(막 14:68) 이제 그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있다. '그 이름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토 오노마티투토'(* )
는 후기 사본에서 '이런 이유 때문에'(*
, 엔 토 메레이 투토)로 기록 되어 있다(K,L,P). 그래서 흑자는 이 구문을 '그리
스도인의 자격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라는 의미로서 신분 의식이 강조되
어야 한다고 주장한다(Selwyn, kelly). 그러나 '그이름으로'는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라는 이름으로'라는 의미이다(Blum, Stibbs). 왜냐하면 당시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름만 붙어도 고난과 핍박을 당하였기 때문이다(14절).

=====4: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 '하나님 집'은 교회를 가리킨다(고
전 3:16; 딤전 3:15; 벧전 2:5). 왜냐하면 구약시대 선지자들의 예언에 하나님의 심판
이 성소에서 시작된다고 했기 때문이다(렘 25:29; 겔 9:6; 말 3:1-6 ). 그리스도인들
이 고난을 받는 것으로 인하여 이미 심판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있으나(마 24:8, 9) 이
심판은 멸망당할 심판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것임을 공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본절은 종말의 모습이 먼저 그리스도인에게 임해서 성결케 하
고 다음에 확대될 것이라는 사상을 표현하고있다(1:7; 슥 13:7-9; 말 3:1-5, Stibbs,
Blum).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
떠하며 - 그리스도인들도 심판을 받게 되는데 하물며 악인들은 어떠하겠는가? 이 심
판 앞에서는 아무도 피할 수 없다. 베드로는 앞서 언급한 '하나님 집'과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대조시켜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는 하나님 집도심판
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더 크고 분명한 심판을 받을
것임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세상에 선포된 그리스도
인의 메시지'로(막 1:15; 롬 1:1; 살전 2:2, 8, 9, Michaels),이런 복음에 순종치 아
니하는 자는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살후 1: 5-10).

=====4:18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 본절은 잠
11:31(LXX)의 인용이다. '의인'은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
라도 구원은 쉽게 얻는 것이 아니며 어려운 불 시험을 통과하여야만 한다(12절). 그러
므로 경건한 자들이 얻는 구원도 '겨우' 얻는 것이다. 혹자는 '겨우'(* ,
몰리스)를 '고통'이라고 하나(Scott) 여기서는 '간신히', '겨우'라는 말이 합당하다.
의인인 그리스도인도 심판을 통해서 겨우 구원을얻는다. 의인들도 그러할진대 경건치
않은 자들은 당연히 그에 합당한 심판을 받고 멸망당할 것이다. 베드로가 본절에서 의
인의, 구원을 이렇게 표현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방탕한 길에 빠지지 않고 경각심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Calvin).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영위하는 가
운데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찾아오는 많은 시련
과 고난을 겪는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는 모든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지켜주시
며 돌보아 주시기 때문에 그 고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은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구
원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1:6; 5:6).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 그리스도인들은 아
무리 고난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박해하는 핍박자들에게 악으로 갚을 수 없다.
그래서 베드로는 도리어 선을 행하므로 갚아야 하며, 확신을 가지고 고난 가운데에도
자신의 영혼을 보호해 주실것을 부탁해야 한다(Stibbs). '부탁할지어다'의 헬라어 '파
라티데스도산'(* )은 '예금하다', '맡기다'의 '파라티데
미'(* )에서 유래된 말로서 '완전한 신뢰를 가지고 의탁
하는 것'을 뜻한다. '파라티데스도산'의 대표적인 예는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마지
막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의탁하는 것과(눅 23:46) 스데반의 의탁이다(행 7:
59). 한편 '조물주'(* , 크티스테)는 외경에는 많이 등장하지만 신약성
경에는 이곳에만 나온다. 이러한 표현은 능히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시사한다(Bi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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