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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마가복음 14장 (최영찬 목사)

작성자예수사랑|작성시간03.07.11|조회수1,457 목록 댓글 0
예수님의 수난 사건의 의미



묵상 내용



* 예수님의 수난 기사에 대해서
이제 마가의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막 14-16장)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가복음의 절정이며 주제이자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주제를 마가복음 전체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3:2:1-3:5)에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결정한 사실을 이미 언급했습니다(3:6). 그리고 (3:16-19)에서 유다를 "예수를 판 자"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마가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 이후부터 계속해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에고했습니다(8:31, 9:12,31, 10:33,45). 이러한 주님의 수난 사역은 마지막 예루살렘 사역에서 그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11:18, 12:12).


* 수난 기사의 의미
(막 14:1-11)은 마지막 주간의 수요일에, 그리고 (14:12-15장)은 금요일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마가가 금요일 하루에 일어난 사건에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왜 메시아가 수난을 거쳐 부활에 이르러야 했는 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수난은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생각해 왔던 메시야 사역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로마를 정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코 메시아가 이방인의 손에 넘겨져서 조롱 받고 십자가에 처형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왜 메시아가 수난과 죽음의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를 자세히 언급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가 복음은 메시아가 수난을 당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세 부분의 구약 성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구절은 (사 53:4-12)에 나오는 "고난받는 종"에 관한 기사이며, 둘째는 의인의 고난 과정과 승리를 다룬 (시 22편)이었으며, 세 번째는 고난을 받으나 승리할 의인에 대해 언급한 (시 69편)이었습니다. 이 세 부분의 본문은 모두 다 메시아의 수난과 승리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2) 순교의 위협 앞에 놓인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승리의 비전을 주기 위해서
마가 복음 당시의 독자인 로마 교회 성도들은 온갖 박해와 순교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자원해서 수난과 죽음을 맞이하시는 주님의 모습과, 사망을 정복하신 주님의 소식을 통해서 그들에게 죽음을 넘어선 승리의 메시지를 전해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당시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용기와 힘을 줄 가장 적합한 메시지였습니다.

3)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에
복음의 핵심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그 아들을 보내어 우리 죄 값을 지불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복음의 핵심 내용인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 사건을 자세하게 기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사 내용은 이미 초대 교회 때에 교회에 전달되었습니다. 이 복음은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사도들과 바울이 주님께 받은 소식도 이것이었고, 그들이 우리들에게 전해 준 소식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고전 15:3-5 참조). 이것은 바로 복음의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 수난 기사의 구조
이러한 수난 기사는 다음과 같이 3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서론적 사건들(14:1-52)
* 주님을 죽이려는 음모와 유다의 배신(14:1-11)
* 수난의 의미 설명(유월절 식사, 떡과 잔에 대한 설명)
* 배신으로 인한 고통(제자들의 부인, 고독한 기도, 체포와 제자들의 도주)
2) 수난 장면(14:53-15:20)
* 유대인의 정죄(14:53-65): 산헤드린 앞에서 자심이 메시아임을 시인함(14:62)
* 빌라도의 선언(15:1-20): 빌라도에게 자신이 왕임을 선언하심(15:1-).
3) 십자가와 죽음(15:23-47)
* 이방인 백부장이 주님의 죽음을 보고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함(15:38)


* 수난 기사의 의의
마가의 수난 기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유월절 만찬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의 수난의 의미(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를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 재판과 심문 과정을 통해서 유대인(산헤드린)과 이방인(빌라도)들이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 했는 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분명히 예수님이 무죄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증거를 거부하고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 죽였습니다. 주님은 그 때에 분명히 그들에게 자신이 메시아이며 왕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3) 이방인 로마 백부장의 입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였습니다. 마가는 유대인과 로마인이 주님을 정죄하고 사형시켰지만, 이방인의 입을 통해서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 수난 사건의 의미
1. 주님의 수난-부활은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일어났다.
2.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은 주님을 거부하고 정죄하여 죽여버렸다.
3. 유대인이 거부한 주님이 이방인의 입을 통해 영광을 받게 되실 것이다.


적용을 위한질문
1. 왜 마가는 주님의 수난-부활 사건을 자세하게 기록했는가? 복음서에 주님의 수난-부활 기사가 없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지 말해보자.

2. 우리는 수난, 죽음, 부활하신 주님의 기록을 대하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며, 우리가 이 원리대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보자.

3. 왜 복음이 유대인으로부터 우리들에게 전파되야만 했는지 말해보자.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막 14:1-2, 10-11)



묵상 내용



(막 14:1-11)은 샌드위치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마가는 종교 지도자들과 유다의 간악한 음모(1-2, 10-11) 사이에 한 여인의 헌신 사건을 삽입하였습니다(3-9). 마가는 이와 같이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두 사건을 함께 기록하여, 예수를 배반하고 죽이려는 간악한 무리들과, 진정한 믿음을 가진 여인의 참된 헌신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14:1-2)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1). 가로되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2)."

유월절 이틀 전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모여서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하기 위해서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중에 10번째 재앙은 첫 번째 태어난 짐승과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의 사자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어린양을 잡아 그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 문 앞에 피를 바르지 않은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게 하셨습니다. 이 재앙으로 인해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보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마침내 온갖 귀금속을 가지고 당당하게 애굽을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유월절은 바로 이 날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니산 월(4-5월) 14일 저녁에 어린양을 잡아서 그 고기를 쓴 나물과 함께 먹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음식을 먹으면서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했습니다. 유월절 행사는 니산 월 14일 저녁에 시작하여 15일 한 밤중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 주간 동안(15일부터 21일까지)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 때는 유월절과 무교절이 되는 날이 되기 이틀 전이었으므로 니산 월 13일이었을 것입니다. 유대 나라는 날을 계산할 때에 해지는 저녁부터 다음 날 해질 때까지를 하루로 계산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시간으로 14일 저녁은 유대 시간으로는 14일이 끝나고 15일이 시작되는 밤이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은밀하게 체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주님을 체포하려는 음모는 오래 전에 시작되었지만(3:6, 11:18, 12:12), 그들은 그 동안 무리들을 두려워해서 주님을 체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성전에 나타나서 상인들을 쫓아내고, 종교 지도자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게 되자, 그들은 더 이상 주님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월절에는 주님을 체포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때에 주님을 체포하면 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인구는 평상시에 약 5만 명이었는데, 절기 때가 되면 약 25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이 때에는 조금만 자극적인 일이 생겨도 예루살렘은 큰 소요에 휩싸이고, 이러한 소요는 군중들의 폭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에는 종종 이러한 소요가 일어났기 때문에. 로마 총독은 절기 때마다 특별 군인들을 예루살렘에 주둔시켰습니다.

예수 당시에 주님에 대한 종교지도자들의 반응은 4가지로 나누어졌습니다.
1) 일부 사람들은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주님을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기꾼이나 사악한 이단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나중에 사도가 된 사울(바울)이 이러한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2)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직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검토하였으며,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람은 니고데모였습니다.
3)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주님을 추종했습니다(눅 13:31, 행 6:7).
4) 일부 지도자들은 주님을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로 간주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직업적인 성직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자기들의 전통과 권위를 반대한다고 생각하고 주님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대표적인 사람은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와 안나스였습니다.


* 유다의 배반(14;10-11)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10), 저희가 듣고 기뻐하며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11)."

그러나 이러한 종교 지도자들의 계획은 배반자 유다로 인해 변경되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을 찾아가서 민중을 자극하지 않고 주님을 체포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그 대가로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유다는 이때부터 대제사장에게 은밀하게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10-11). 그러면 왜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였을까요?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유다의 배반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12제자 중에 유다 만이 갈릴리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다른 제자들보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내린 명령("누구든지 예수 있는 것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요 11:57)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2) 유다는 처음부터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기대와는 달리 정치적 왕국을 세우는 데 관심이 없는 것을 보고, 정치적인 실권자인 산헤드린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을지도 모릅니다.
3) 유다는 재정을 맡을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가까이 하는 것을 보고 질투가 나서 주님을 배반했을 수도 있습니다.
4) 유다는 처음부터 재물을 노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실제로 주님의 재정을 맡으면서 돈을 훔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이 물질을 쌓는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을 보고 부자가 될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주님을 배반했을 지도 모릅니다.
5) 유다는 예수가 가짜 메시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이대로 가면 소요가 나게 되고, 그 주동자인 예수는 체포되어 죽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자기도 화를 면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때에 사단이 유다에게 들어가서 예수가 잡히기 전에 배반하여 자기 생명을 구할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요 13:27).

그러나 주님이 체포되고 수난과 죽음을 당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원래 유월절을 피해서 예수를 체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들과는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유월절 양이 되어 유월절에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일어낫다고 해서 예수님을 배반하고 죽인 종교 지도자들과 가룟 유다가 아무 책임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무죄한 사람을 고의적으로 주님을 정죄하고 사형시켰으며, 유다는 의로운 분을 돈을 받고 팔아먹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하여 우리는 그 섭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사단은 종교 지도자들과 유다를 통해서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 음모를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는 데에 사용하셨습니다.

* 이 사건이 주는 의미
1.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2. 직업적인 종교인은 이권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쉽게 반대할 수 있다.
3. 주님을 가깝게 모시면서도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사단이 그의 마음에 들어가서 악의 두고로 이용 할 수 있다.

적용을 위한질문
1. 왜 예수께서 대제사장에게 넘겨진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는가?

2. 주님에 대한 종교지도자들의 4가지 태도를 말해보자. 이 중에서 하고 내 견해와 일치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해보자.

3. 사단은 외식하는 성도들은 어떻게 미혹할 수 있는지 이야기 해보자.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막 14:3-9)



묵상 내용



마가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사악한 음모와(1-2) 유다의 배신(10-11) 사건 사이에 한 여인의 참된 헌신에 대한 기사를 삽입하였습니다. 마가는 음모와 배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한 여인의 감동적인 헌신 사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음모와 배반 사건이 검은 색이라면, 이 여인의 헌신은 어둠을 비추는 한 줄기 밝은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과 가룟 유다가 주님을 죽이려고 음모의 독을 뿜어내고 있을 때에, 자기 모든 것을 드린 여인의 헌신은 그 독소를 제거하는 해독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참된 헌신(14: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3)"

베다니 촌은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찾아가는 순례자들이 머무는 마지막 휴식처였습니다. 이 곳은 예루살렘에서 약 오리 정도 떨어진 감람 산에 있었습니다(11:1). 주님은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줄곧 베다니에 계셨습니다(11:11). 주님은 어느 날 베다니에 살던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셨습니다. 문둥이 시몬이 누구이며, 또 왜 그를 문둥이라고 부르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요 12:1-8)를 근거로 해서 이 집이 나사로와 관계가 있는 집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문둥이 시몬이 나사로의 누인인 마르다의 남편이었다고 추정합니다. 만일 이 추측이 맞다면 시몬은 문둥이였다가 예수님에 의해 고침을 받고, 마르다와 결혼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 경우 나사로의 가정은 주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은 가정이었습니다. 주님은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 주셨고, 마리아의 형부인 시몬의 문둥병도 고쳐주셨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역시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얼마전에 오라비 나사로가 죽은 일로 주님을 원망했습니다(요 12:3). 그러나 주님은 그녀를 책망하지 않고, 그녀의 오라비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그녀는 그때의 은혜와 감격을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주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앞둔 주님으로부터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에 대해서 여러 번 예고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 에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음모와 유다의 배신은 불안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주님을 위해 무언가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주님께서 오라비를 살려주신 후부터 주님이 예루살렘에 오시면 향유를 부어드리려고 준비하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주님을 팔아 넘길 기회를 찾고 있을 때에, 이 여인은 주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리기 위해 준비하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두 사건은 첨예하게 대조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녀가 드린 나드는 인도에서 자생하는 뿌리에서 추출한 아주 값비싼 향유였습니다. 이 향유는 매우 귀해서 그 향기를 보존하려고 용기 속에 넣고 밀봉했습니다. 대개 이 향유를 담는 그릇은 주전자 모양으로 된 옥 그릇이었습니다. 이 향유를 사용할 때에는 보통 주전자의 목 부분을 깨고 그 곳으로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렇게 한 번 사용한 나드 향은 다시는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고급 향유는 어머니가 딸에게 전해 주는 가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팔레스타인에서는 잔치에 초대한 주인이 손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항유는 값이 싼 것을 사용했습니다.


* 헌신에 대한 비난(4-5)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4)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5)."

사람들은 값비싼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붓는 것을 보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이 향유가 매우 귀한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 복음의 기자는 비난을 한 사람이 가룟 유다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요 12:4). 그는 주님의 재정을 맡았기 때문에 그 비싼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붓지 않았다면 그 향유를 판돈을 자신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 향유를 팔아서 그 돈으로 구제를 하는 것이 더 나았다고 불평했습니다(요 12:5). 대개 유대인들은 절기 때에 구제 행사로 함께 거행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러한 유다의 비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향유는 약 300 데나리온 정도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300 데나리온은 노동자가 300일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루 임금을 5만원으로 계산한다면 300 데나리온은 1500만원의 가치가 있는 돈이었습니다.


* 선하고 아름다운 헌신(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6).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7).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8)."

그러나 주님은 그녀를 괴롭게 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주님에게 좋은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헬라어에서 도덕적으로 선하다는 것은 "아가도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도 선하고, 외형적으로 아름답기도 한 것은 "칼로스"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이 좋은 일을 했다고 하신 것은 "칼로스"였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의 헌신이 도덕적으로도 선하고, 또 감동을 줄만큼 아름다운 일이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선하고 아름다운 헌신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그녀를 변호해주셨습니다. 주님은 구제보다 그녀의 헌신이 더 좋은 일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그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든지 구제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곧 죽을 것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주님께 헌신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가 지금 주님께 향수를 드린 것은 적절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녀의 헌신을 비난하지 못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녀가 자기의 가진 힘을 다해 자기 몸에 향유를 부어 장례를 준비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이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 전에 이 여인을 통해서 미리 장례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녀는 그 일에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다해 충성했습니다.


* 보상을 받은 헌신(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9)."

주님은 그 여인의 헌신에 대해서 최상의 보상으로 갚아주셨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드려 주님의 죽음과 장례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녀가 자신의 부활과 영광에 참여하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다시 살아난 후에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할 때에 이 여인의 헌신 사건도 함께 전하여 기념할 수 있게 하라고 제자들에게 지시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드린 향유는 과부가 드린 두 렙돈과 같은 진정한 헌금이었습니다. 이러한 참된 헌신은 주님을 감동시키고, 또 그것을 보는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마가는 이 여인의 헌신 사건을 복음서에 기록하여 오늘날 우리들이 그 일을 듣고 기념하게 했습니다.

* 이 사건이 주는 의미 *
1. 주님은 최선을 다한 헌신에 감동하신다.
2. 참된 헌신을 보고 비난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3. 주님은 자신의 고난에 참여한 사람들을 영광에도 참여하게 하신다.


적용을 위한질문
1. 이 여인의 헌신의 특징이 무엇인가? 이 헌신과 우리 헌신을 비교해 보자.

2. 우리는 참된 헌신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 한 적은 없는지 반성해 보자.

3. 우리는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 죽음과 고난에도 참여하고 있는가?


유다의 배신에 대한 예고(막 14:12-21)



묵상 내용



* 유월절 식사 준비(14:12-16)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12)"

유대인들은 니산월(4-5월) 14일에 저녁에 먹을 유월절 만찬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한 장소에 모여서 함께 유월절 만찬을 나누며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해질 때부터 다음 날 해질 때까지를 하루로 계산했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 만찬을 드는 14일 저녁에 해가 지면 다음 날인 15일로 계산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로마 성도들을 대상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로마식으로(자정에서 자정까지 하루로 계산함) 시간을 계산하기도 했습니다. 유월절 만찬을 위한 준비물은 어린양 고기와, 무교병(누룩 없는 빵), 포도주와 쓴나물, 그리고 양념과 빵이나 쓴나물을 찍어먹는 소스였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유월절이 되면 그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200-300만 이상이 되는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때에 십 여명이 함께 음식을 먹을 숙박 시설이나 음식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14일이 되었는데도 아직 숙박시설이나 음식에 대해서 아무 지시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어디에서 유월절 만찬을 준비해야 하느냐?" 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이 만찬 준비를 지연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당시 대제사장이 자기를 잡으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만찬 장소를 일찍 정해놓으면 가룟 유다가 그 정보를 대제사장에게 미리 알려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유월절 만찬에 아무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제자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은밀하게 장소를 정해 두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 중에 둘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13),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14). 그리하면 자리를 베풀고 예비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라 하신대(15),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의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16)."

주님은 제자 둘을 조용히 보내어(유다도 모르게) 성안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성안에 들어가면 물동이를 이고 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동이는 대부분 여자들이 이고 다녔기 때문에, 물동이를 이고 있는 남자는 쉽게 구별되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집주인과 미리 약속해 둔 신호였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해서 은밀하게 유월절 만찬을 준비시켰습니다. 주님이 유월절 만찬을 드실 장소가 미리 알려지면 대제사장은 군사들이 보내서 주님을 체포할 가능성이 있었으며, 이렇게 되면 주님께 집을 제공한 사람도 해를 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은밀하게 만찬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물동이를 이고가는 사람을 따라가서 "주님과 제자들이 유월절 만찬을 들 객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주인이 유월절 만찬을 위해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여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 곳에 유월절 만찬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따라서 성으로 가서 물동이를 이고 가는 사람을 만나 그들이 제공한 방에서 만찬준비를 했습니다.


* 유다의 배신을 예고하심(14:17-21)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와서(17),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18), 저희가 근심하여 하나씩 하나씩 여짜오되 내니이까?(19) 이르시되 열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0).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21)."

마침내 유월절 만찬을 드는 저녁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만찬을 들기 위해서 제자들을 데리고 만찬을 준비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유월절 만찬은 저녁에 시작해서 한밤중에 끝이 났습니다. 주님과 제자들은 마침내 유월절 만찬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만찬을 들면서 자기 제자 들 중에 한 사람, 곧 주님과 함께 먹는 사람이 주님을 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시 41편)에 나오는 다윗의 시를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시 41편)에서 자신과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던 모사 아히도벨이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의 편이 되었을 때에 그의 고통스러운 심정을 표현하였습니다. 유대인에게 친교의 식사를 나눈 후에 그를 배신하는 일은 가장 큰 배반 행위에 해당되는 일이었습니다. 이 예고는 가룟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마 26:14-16,20-25, 눅 22:3-6,14,21-23, 요 13:21-30). 그러나 유다는 간사하게 주님과 한 식탁에 앉아서 주님을 넘길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 중에서 한 사람이 주님을 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제자들은 근심하여 한 사람씩 "나는 아니지요? 그렇죠?" 라고 물었습니다.

"근심한다"는 말(뤼페이스다이)은 "무거운 마음이 되어 매우 슬퍼한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 중에 한 사람이 주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심한 근심과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가만히 주님의 행동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치 먹이를 노리고 있는 뱀과같이 음흉하였습니다. 주님은 유다가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셨습니다. 주님은 배신자가 누구인지 유다가 알 수 있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기와 함께 빵과 나물에 초를 찍으려고 양념그릇에 손을 넣는 사람이 주님을 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회개할 기회를 거부하고 회개하지 않는 유다에게 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선고하셨습니다. 그는 자기 죄가 드러난 상황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 음식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인자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갈 것이지만(시 22:, 사 53:), 인자를 파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차라리 그가 세상에 나지 않았으면 더 좋을 뻔했다고 하셨습니다(21).

* 이 사건이 주는 의미
1.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방해와 음모 속에도 방해받지 않고 진행된다.
2. 하나님은 사람들이 범죄하기 전에 반드시 여러 번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3. 회개할 기회를 줄 때에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엄한 형벌을 받게된다.

적용을 위한질문
1.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믿는가?

2. 죄의 유혹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신 일이 있는가?

3. 회개하라는 성령의 음성을 거부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 지 말해보자.


유월절과 성만찬(막 14:22-26)



묵상 내용



* 유월절 음식과 그 의미
1) 어린양: 열번째 재앙 때에 양을 잡아 그 피를 바르고 고기를 먹은 양
2) 무교병: 애굽에서 나올 때에 먹은 무교병(발효시킬 여유도 없이 나옴)
3) 쓴 나물: 애굽에서의 고역
4) 소스(샤로셋): 벽돌 색깔-애굽에서 벽돌 굽던 노예 생활을 기억함.
5) 4개의 포도주 잔
가. 바로의 학정에서의 구원
나. 애굽의 고역에서의 구원
다, 애굽과 죽음의 사자로부터의 구원
라.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감사함


* 유월절 만찬의 순서

1) 식사 준비
첫 번째 포도주 잔을 들고 바로의 학정에서 구원받은 일과 유월절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신 일을 감사 드리고 그 잔을 마심. 그 후에 음식을 들기 위해 손을 씻음(이 때에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겼음). 그리고 나서 쓴 나물을 소소에 찍어서 먹음(이때에 주님이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심).

2) 유월절 식사
두 번째 포도주 잔을 들고 애굽의 고역에서 해방된 것을 감사함. 가장이 자녀들에게 유월절의 의미를 설명함. 그 후에 어린양의 고기와 무교병을 먹음(이때에 주님께서 떡을 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하심)

3) 감사드림
세 번째 포도주 잔을 들고 애굽과 죽음의 사자로부터 구원해 주심을 감사함(이 때에 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심).

4) 찬송함
네 번째 포도주 잔을 들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된 것을 찬송함(이 때에 주님의 일행이 찬미하며 감람 산으로 감).


* 무교병(떡)(22)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22)"

22절은 두 번째 포도주 잔을 들고 유월절 만찬(어린 양, 무교병)을 드는 순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순서에는 먼저 두 번째 포도주 잔을 들고 애굽의 고역에서 해방된 것을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면 집안의 연장자가 자기 자녀들에게 유월절에 대한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이때에 자녀들은 부모에게 "왜 이 날이 다른 날과 다르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각 집의 가장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가정은 이러한 절차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구원받은 일에 대해서 대대로 전수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이 때에 출애굽에 대해서 설명하는 대신 자신을 통해서 완성될 진정한 유월절의 의미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음식으로 먹은 "어린양과 무교병"이 바로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될 자기의 몸"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22).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의 사자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희생된 어린양과, 애굽에서 나갈 때에 음식으로 먹었던 무교병은 바로 인류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희생된 주님의 육체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 포도주(잔)(23-24)
"23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유월절 식사가 끝이 나면 세 번째 포도주 잔을 들고 애굽과 죽음의 사자로부터 구원해 주신 일에 대해 감사드렸습니다. 마가는 이 순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23). 떡이나 잔을 마실 때에 항상 그 집의 가장이 먼저 떡과 잔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 후에 다른 모든 식구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 세 번째 포도주 잔은 원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과 죽음의 사자로부터 구원해 주신 일을 감사 드리는 잔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잔의 보다 깊은 의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잔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4)" 원래 이 포도주 잔은 이스라엘을 죽음의 사자로부터 구하기 위해 문에 발랐던 어린양의 피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마시는 잔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때에 이스라엘을 위해 어린양이 피를 흘린 것처럼 자신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피를 흘려야 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잔이 바로 우리를 위해 흘리는 자신의 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 잔이 새 언약의 피를 상징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옛적에 모세는 시내 산에서 짐승을 잡고 그 피를 뿌려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때에 모세가 뿌린 피는 "옛 언약"을 위한 피였습니다. 이 옛 언약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율법을 준행하기만 하면 그들을 이 세상에서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의 종들을 보내 그들을 돌아오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보낸 종들을 모두 죽이고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은 "옛 언약"을 파기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포로가 되어 아브라함이 나왔던 앗수르와 바벨론 지역으로 다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때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새 언약"을 선포하셨습니다. 새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이 자기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성령을 주어 스스로 말씀을 준행하는 백성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바로 이 새 언약이 자기의 피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12지파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짐승의 피로 "옛 언약"을 맺은 것 같이, 주님은 새 이스라엘이 될 12 사도와 함께 자기의 피로 "새 언약"을 맺으셨던 것입니다. 이 새 언약은 주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죄를 용서받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유월절 만찬 때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실 것에 대해서 약속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새 언약에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죄와 싸워 이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와같이 주님과 제자들이 마신 세 번째 포도주 잔은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주님의 피, 곧 새 언약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 하나님 나라의 잔치와 어린양의 혼인 잔치(25)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이 잔을 마지막으로 하여 자신이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제자들과 함께 이 잔을 들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종종 잔치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주님은 천국을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준비한 잔치와 같다고 비유하셨습니다. 이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준비해 주신 새 언약(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잔치에는 먼저 초대받은 유대인들의 거부로 인해 죄인들과 이방인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잔치는 주님의 재림으로 인해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의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나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 구원에 대한 감사 찬송(26)
"26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가니라."

이 모든 예식이 마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네 번째 포도주 잔을 들고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노래로 불렀습니다. 주님과 그 제자들도 식사를 마친 후에 구원을 노래하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유대인들은 식사 전에 (시 113-114편)을 노래로 불렀으며, 식사 후에는 (시 115-118편)을 찬송으로 만들어서 불렀습니다. 이 찬송 중에는 (시 118:6-7, 17-18, 22-24)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찬송이었습니다. 주님의 일행은 구원의 찬송을 부르면서 기드론 계곡을 지나 겟세마네 동산이 있는 감람 산 서쪽 계곡으로 나아갔습니다(26). 후에 이 예식은 성만찬이 되어 세언약에 참여한 모든 기도교인들이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 지키는 예식이 되었습니다.

* 이 사건의 의미
1. 주님은 많은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고 피를 흘려주셨다.
2. 주님의 피는 새 언약을 위한 피였다.
3. 새언약은 주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 죄의 용서와 성령을 약속하고 있다.

적용을 위한질문
1.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새 언약에 동참한 사람들이 되었는가?

2. 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를 흘리셔야만 하셨는가?

3. 사죄의 확신이 있는가?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싸워 승리하고 있는가?

제자들의 도망과 베드로의 부인 예고(막 14:27-31)



묵상 내용



이 부분의 기사도 샌드위치 형식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마가는 제자들의 도망에 대한 예고(27-31)와 성취(43-52) 사이에 겟세마네 기도 사건을 삽입하였습니다(32-42). 이것은 홀로 고난을 당하시는 주님의 모습과 도망치기에 급급한 제자들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조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인류를 위한 고난의 극치를 아버지와 함께 맞이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체포되고 제자들이 흩어질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이 죽은 후에 다시 부활해서 흩어진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14:27)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주님은 겟세마네로 가는 도중에 모든 제자들이 자기를 버리고 흩어질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27). 이 일은 다음과 같은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슥 13:7)." 주님은 이러한 스가랴의 예언이 바로 자신과 제자들을 통해서 성취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스가랴는 메시아 시대에 "죄와 부정을 씻는 샘"이 이스라엘을 위해 열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슥 13:1). 주님은 이 예언대로 인류의 죄를 용서하는 새 시대를 여셨습니다. 하나님은 칼에게 명령하여 "자신과 짝(파트너)이 된 목자"를 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슥 13:7). 이 목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스가랴는 칼이 목자를 칠 때에 양들이 흩어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흩어지는 영들은 바로 주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고난을 당할 때에 시험에 들어서 그들의 신앙을 지키는 일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님의 수난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스가랴는 주님을 치라고 명령하신 분이 하나님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칼로 칠 때에 그 목자를 따르는 양들은 보호하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이 고난을 당할 때에 양 떼를 흩어지도록 하신 것은 그들이 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주님도 자신이 체포될 때에 자기만 체포하고 제자들은 건드리지 말라고 요청하신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 편에 서서 싸우면 그들도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이 흩어질 때에 그들을 그대로 두셨던 것입니다.


* 다시 합류하게 될 것을 예고하심(14:28)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그러나 주님은 자신이 부활한 후에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28). 주님은 인류의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이방인(로마)의 손에 넘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에 제자들은 흩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 값을 지불하신 후에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그 곳에서 흩어졌던 제자들을 다시 모으실 것입니다(막 16:7 참고). 스가랴는 하나님께서 자기 짝인 목자를 치고 양 떼를 흩은 후에, 남은 자기 백성을 연단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슥 13:9). 그리고 나서 다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슥 13:9).


* 베드로의 부인 예고(14:29-31)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시몬 베드로는 이러한 주님의 예고에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다 주님을 버린다고 해도 자기만은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만은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자신이 체포될 것과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흩어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0). 주님은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는 장면을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예언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체포될 때 베드로가 자신을 모른다고 부인할 할 것을 아셨습니다. 베드로는 후에 대제사장의 종 앞에서 자신이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거듭해서 부인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형수의 제자라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새벽을 알리는 두 번째 닭이 울 때까지(날이 밝아오기 전에)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세 번 부인한다는 것은 주님을 철저하게 부인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다가 마지막에는 저주까지 하면서 주님을 부인했습니다(막 14:72). 베드로의 항의를 들은 다른 제자들은 자신들도 역시 주님과 함께 죽음을 당해도 절대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님께 다짐했습니다(29-31). 그러나 그들은 그로부터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주님을 버리고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주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연약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자신들이 아주 작은 유혹에도 넘어지고 마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다른사람은 넘어져도 나는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도 크게 넘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이 사건이 주는 의미
1. 주님의 수난과 제자들의 부인은 이미 예고된 하나님의 섭리였다.
2. 하나님은 잠시 주님을 치시고 양을 흩으실 것이나 다시 모으실 것이다.
3. 우리는 연약함을 알고 실족하지 않도록 성령안에서 깨어 기도해야 한다.

적용을 위한질문
1. 사단의 유혹에 빠질 때에도 주님의 보호가 계속된다는 것을 믿고있는가?

2. 잠시 환난을 당해도 궁극적으로 승리가 보장되어 있음을 믿고있는가?

3. 자신의 연약함을 통해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고 있는가?

제목: 겟세마네의 기도(막 14:32-42)


마가 복음에는 예수께서 한 밤중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한 것이 세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주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치유와 귀신 쫓는 것을 보고 열광하고 있을 때에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주님은 5병2어의 이적을 본 무리들이 열광했을 때에 제자들을 먼저 보내시고 홀로 남아 기도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주님은 자신이 체포되어 죽기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피 땀을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이 세 가지 사건은 모두 영적으로 위협 적인 사건이었으며, 기도하지 않고는 극복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마가는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한 기사를 제자들의 도피에 대한 예고(14:27-31)와 그 예고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14:43-50) 사이에 삽입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극심한 고난을 당할 때에 모든 제자들은 주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박해와 순교의 위협 앞에 놓인 로마 교회의 성도들은 이러한 주님의 모습 속에서 용기와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순교의 위협을 받고 있던 로마 교회 성도들은 주님과 같이 심각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처럼 피땀을 흘리는 기도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들은 겟세마네에서 엎드려 기도하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들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 기도해야 할 때(32-34)
"32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겟세마네는 예루살렘 성밖에 있는 아름다운 동산입니다. 예루살렘 성은 좁아서 그 성안에 동산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부유한 사람들은 성밖에 땅을 사서 그 곳에 동산을 만들었습니다. "겟세마네"란 말은 "기름을 짜는 곳'이란 뜻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곳에 감람나무 기름을 짜는 곳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 오면 주로 이 곳에서 기도를 하셨기 때문에 이 장소는 가룟 유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수난과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절실하게 기도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그리고 나서 주님은 세 제자(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들만 데리고 조금 더 가셨습니다. 이 세 명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기도해야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조금 전에 모두 주님을 배반해도 자기만은 배반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는 주님의 좌우 편에 앉기 위해 주님이 마시는 잔을 마시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과 함께 깨어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때에 주님은 심히 놀라고 슬퍼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심히 놀랐다"는 말(에크담베이아다이)은 "극도의 놀람과 공포", 또는 "두려움과 당혹감"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리고"슬퍼했다"는 말(아데모네인)은 "가장 큰 고통"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마가는 이러한 단어를 사용해서 주님께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고통을 겪으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곧 닥칠 십자가의 고난을 바라보시고 크게 당황하며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주님은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세 제자들이 함께 깨어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 첫 번째 기도(35-36)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주님은 세 제자들을 남겨두고 뒤로 조금 더 앞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홀로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이 수난과 죽음은 주님께서 홀로 지셔야 할 짐이었기에 주님은 홀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 때가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때"는 주님이 배반을 당하여 체포되고 처형될 때를 의미합니다. 지금 사단은 주님을 향해 십자가를 피하라고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육신을 가지셨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그 때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아바"는 "아빠"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에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십시오!" 이 "잔"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과 저주가 담긴 심판의 잔이었습니다(사 51:17, 시 11:6, 눅 22:42).

이 "잔"을 마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잔을 죄 없는 주님이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인성을 가지셨기에 이 잔을 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인간인 동시에 또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죽게 하여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기에 죄인의 죄를 심판하길 원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용서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죄 없는 주님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고난을 피하고 싶었으나,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참된 기도는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힘을 달라고 구하는 기도입니다.

*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37-38)
"37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기도를 마치신 후에 주님은 세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때에 세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하고 잠을자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한 시간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고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은 여기서 배드로를 부르실 때에 "반석"의 의미를 가진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육 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시몬"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세 제자들이 기도하고 싶었지만 육신이 연약한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세 제자들은 아침부터 유월절 준비를 하고, 밤늦게까지 유월절 예식을 하느라고 몹시 피곤했습니다.

* 기도의 승리(39-42)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저희가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 알지못하더라. 41 세 번째 오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쉬라. 그만이다. 때가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가자 보라. 나를 파는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주님은 다시 앞으로 가셔서 같은 내용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얻으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돌아왔을 때에 세 제자들은 또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잠에서 깨어 주님이 오신 것을 보고 몸둘 바를 몰라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그대로 두고 다시 가셔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세 번의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행할 수 있는 힘과 확신을 얻으셨습니다. 세 번째 기도를 마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오셔서 이제는 "자고 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세 번의 기도를 통해서 확신과 평안을 얻으셨습니다. 주님은 확신과 담대함으로 십자가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이 유다를 통해서 죄인의 손에 넘겨질 때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배반한 유다가 군사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유다가 데리고 오는 군사들이 있는 곳을 향해서 나아가셨습니다. 주님은 세 번에 걸친 피의 기도를 통해서 고난과 십자가를 맞을 힘과 용기를 얻으셨던 것입니다.

* 이 사건이 주는 교훈 *
1. 주님은 사단의 강한 유혹이 있을 때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2. 참된기도는 자기 뜻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길 구하는 것이다.
3. 영적인 위기의 때에 깨어 있지 않으면 시험에 빠지게 된다.

* 적용을 위한 질문
1.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한적한 곳을 찾아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가?
2. 우리가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서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3. 깨어 기도하지 않다가 시험에 빠진 경우가 있으면 이야기 해보자.

제목: 체포되신 예수님(막 14:43-52)


* 유다의 배반(43-45)
"43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 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세 번의 기도를 마치신 후에 자기를 체포할 사람들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때에 가룟 유다가 산헤드린이 보낸 군사들과 함께 그 곳에 도착했습니다. 산헤드린은 백성들의 대표인 대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로 구성되는 국가 최고 의결 결정 기관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예수님을 체포하라는 영장을 발부하였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무장한 군사들이 파송되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주님을 체포하기 위해 (레위인으로 구성된) 성전 수호병만 제외하고, 성전 지역을 지키던 사병들까지 함께 무장시켜서 보냈습니다. 이 군사들은 죄인을 체포하여 법정까지 이송하였으며, 그리고 법정에서 언도한 형을 집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주로 칼과 나무 손잡이가 달린 창을 무기로 사용했고, 폭도들을 진압용 몽둥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체포하기 위해 온 군사들은 칼과 폭동 진압용 몽둥이로 무장을 했습니다. 군사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다와 함께 은밀하게 신호를 정했습니다. 그들이 미리 정한 신호는 입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유다는 선생님에게 입을 맞춤으로 입을 맞추는 그 사람이 체포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보통 존경의 표시를 나타내는 "입맞춤"은 헬라어로 "펠레인"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45절에 나타난 "입맞춤"이란 말은 정렬적인 키스를 의미하는 단어인 "카테필레센"이 사용되었습니다. 유다는 배신을 위장하기 위해서 주님께 정열적으로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 것은 유다가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를 위장 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무모한 저항(46-48)
"46 저희가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섰는 자 중에 한 사람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유다가 주님께 입을 맞추는 것을 본 군사들은 즉시 주님을 체포했습니다. 아마도 주님을 체포한 사람은 산헤드린이 발송한 체포영장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주님 당시에는 로마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은 산헤드린이나 지방 행정 책임자들이 마음대로 민법이나 형사법을 집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무 제재도 받지 않고 합법적으로 주님을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에 제자 중 하나(베드로)가 칼을 뽑아서 주님을 체포하려는 사람을 쳤습니다. 이로 인해서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가 잘려나가고 말았습니다(요 18:10). "말고"라는 이름은 나바티아인이나 수리아에서 널리 사용되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대제사장의 개인 몸종으로 일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때에 주님을 체포하기 위해 파송된 군사가 아니라, 겟세마네에서 일어난 일을 대제사장에게 신속하게 보고하기 위해 파송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는 목숨을 걸고 주님을 체포하는 일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체포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일로 인해 제자들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항거하면 그들도 주님과 함께 체포되어 큰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저항하는 베드로를 말리시면서 참으라고 권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사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대제사장의 떨어진 귀를 다시 붙여 주셨습니다.

* 성경을 이루려 함이라(48-49)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그러나 주님은 칼과 폭동 진압용 몽둥이를 가지고 주님을 체포하려고 온 군사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은 마치 강도를 잡으려고 무장을 하고 온 것을 보고 못 마땅해 했습니다. 주님은 그 동안 계속해서 성전 마당에서 공개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이 주님을 잡으려고 했다면 공개적으로 체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공개적인 장소를 피해서, 그것도 한 밤 중에 완전 무장을 하고 주님을 체포하려 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행위는 그들이 하는 행동이 불법이라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죄나 저항 의사가 없는 사람을, 그것도 한 밤중에 몰래 총과 칼을 들고 가서 강제로 연행하는 것은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 자신이 체포되는 것이 성경의 예언을 성취된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만일 주님이 체포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주님은 체포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지금 당장이라도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불러서 그 군사들을 모두 멸할 수 있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주님께서 인류의 죄를 지고 "범죄자 중 하나"로 취급될 것에 대해 예언하였습니다(사 53:12). 그리고 스가랴 선지자도 하나님께서 칼로 주님을 치게 하실 것이며, 그 때에 제자들이 흩어지게 될 것을 오래 전에 예언했습니다(슥 13;7). 주님의 체포는 바로 이러한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 제자들의 흩어짐(50-52)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주님은 이 일이 성경의 예언의 성취임을 아셨기 때문에 자원해서 체포되셨습니다. 주님이 자진해서 체포되고, 제자들의 노력이 금지 당하게 되자 제자들은 더 이상 주님을 위해 할 일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체포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모두 도망을 쳤습니다. 이것은 (슥 13:7)이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항거를 막아서 그들이 아무 피해를 받지 않도록 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때에 과감히 주님을 따른 한 청년(네아니스코스; 24-40세 젊은이)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유월절 만찬 후에 급히 주님을 따랐기 때문에 속옷을 입지 않은 채로 겉옷만 입고 있었습니다. 이 겉옷은 털로 된 것으로 부유층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도 무리들에게 체포되게 되자, 겉옷을 벗어 던지도 나체로 급히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교부들은 이 청년이 마가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학자들은 마가의 집은 예루살렘 안에 있었으며, 주님이 유월절 만찬을 드신 곳은 마가의 다락방이었다고 말합니다. 학자들인 이 날 사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만찬을 마치고 주님과 제자들이 마가의 집을 떠났을 때 마가는 홑이불(겉옷)을 덮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마가는 측근을 통해서 유다가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을 체포하려고 군사를 부르러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게된 마가는 유다의 배반 소식을 주님께 전하기 위해 겉옷만 두르고 급히 겟세마네 동산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마가가 겟세마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주님이 체포되신 후였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일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려고 겉옷만 입은 채로 주님의 뒤를 따라 갔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대제사장이 보낸 군사들이 그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놀라서 급히 벗은 몸으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학자들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마가는 주님의 체포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 본 생생한 증인이었습니다.

* 이 사건의 의미
1. 유다의 배반과 주님의 체포 사건은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었다.
2.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죽음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가셨다.
3. 주님은 체포되는 순간에도 자기 제자들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셨다.

* 적용을 위한 질문
1. 우리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나 의인을 대적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자.
2.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고난 받을 때에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가?
3.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제자들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시는 주님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말해보자.

제목: 산헤드린의 심문(막 14:53-65)


한 밤중에 체포 되신 예수님은 먼저 안나스에게 예비 심문을 받으셨으며(요 18:12-14, 19-24), 계속해서 대제사장 가야바가 의장으로 있는 산헤드린 의회에서(마 26:57-68, 막 14:53-65)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이 심문은 밤새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해가 떠오를 때에 이르러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로 판결(마 27:1, 막 15:1, 눅 22:66-71)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밤중에 열렸던 산헤드린의 심문 과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될 것입니다.

* 산헤드린 법정과 베드로(53)
"53 저희가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주님을 체포한 무리들은 주님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고 갔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은 가야바였는데, 그는 18년에서 37년까지 약 19년 동안을 대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임기가 4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는 매우 오래 동안 대제사장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아마도 그는 외교적 수완이나 행정력이 매우 뛰어 났었을 것입니다. 산헤드린의 회원들은 예수를 체포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님을 심문하기 위해서 급히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모였습니다(53). 산헤드린은 이스라엘의 국가 최고 결정 기관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당시 영향력 있는 세력가나 부유한 지주들이었던 장로들과 율법 전문가인 서기관들로 구성된 70명의 회원과 의장인 대제사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정원의 1/3(23명)만 모이면 회의를 열 수 있었습니다. 산헤드린 회의는 가장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이 회의는 피고인을 공정하게 판결하기 위해서 회의 장소를 시장과 같이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설치했으며, 밤에 은밀하게 재판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만일 특별한 이유로 인해서 밤에 결정을 한 경우에는 새벽 이후에 다시 산헤드린의 공식적인 인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특히 사형과 같이 중대한 사안을 다룰 때에는 신중한 판결을 위해서 당일에 결정하지 않고 며칠씩 시간을 두고 결정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또한 산헤드린 회의는 보통 절기 때에는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심문은 이러한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심문은 유월절에 이루어졌으며, 그것도 공개적인 장소가 아니라 가야바의 집에서 은밀하게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회의를 열 수 없는 밤에 은밀하게 모여서 재빨리 판결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재판 과정은 주님을 심문한 회의가 얼마나 불법적으로 행해졌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직하게 주님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밝히기 보다, 무조건 죽일 증거만을 찾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리들이 반항을 막기 위해서 가야바의 집에서, 그것도 한 밤 중에 모여서 신속하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심문한 산헤드린 회의는 불법적인 날치기 회의였음이 분명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심문을 받을 때에 용기를 내서 대제사장의 집에 있는 뜰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찬 밤공기로 인해 추워서 성전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54).

* 첫 번째 증언 실패(55-56)
"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거가 서로 합하지 못함이라."

유대 나라의 재판 제도에는 우리 나라와 같은 검사 제도가 없습니다. 유대 나라에서 검사의 역할을 하는 것은 죄를 목격한 증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재판을 열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죄를 짓는 것을 목격한 증인이 2사림 이상 있어야 했으며, 그 증인들의 말이 서로 일치해야만 했습니다. 증인들의 증언이 끝나면 피고인이 나와서 증인의 말에 대해 변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피고인의 진술이 끝난 후에 산헤드린의 회원들은 최종적으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날 밤에 주님을 고발하던 증인들은 서로 말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들은 너무 급히 모여서 서로 입을 맞출 시간이 없었을 것입니다(55-56).

* 두 번째 증언 실패(57-59)
"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여 가로되,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 오히려 그 증거도 서로 합하지 않더라."

그때에 또 다른 증인들이 앞에 나와서 "예수가 성전을 헐고 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을 3일만에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고발했습니다. 이 말은 주님이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이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고 다시 3일만에 지을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거룩하게 여겼기 때문에 성전을 무너뜨린다는 발언은 신성모독의 죄에 해당했습니다. 그러나 이 증언을 한 사람들의 말도 서로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산헤드린 회원들은 주님이 유죄라고 판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 세 번째(대제사장) 심문(60-62)
"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가로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1 잠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그러자 마침내 대제사장 가야바가 직접 일어나서 주님을 심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야바는 주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증인들이 하는 고발에 대해서 변명하지 않는가? 너는 그들의 고발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야바는 주님에게 말할 기회를 주면서 주님의 대답으로부터 직접 유죄가 될만한 증거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사실상 증인들의 말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주님은 아무 변명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주님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에게 결정적인 유죄를 찾을 수 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찬송 받으실 분)의 아들이냐?" "네가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고 하는데 그 것이 사실이냐?" 대제사장이 주님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려면 주님이 신성모독 했다는 증거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 질문을 가지고 주님을 신성 모독 죄로 몰아 붙이려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의 마음을 분명히 알고 계셨지만, 대제사장에게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I am He !")라고 분명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주님은 산헤드린 회원들 앞에서 분명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동안 제자들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숨기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공개적인 법정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임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침묵을 지키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임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위험하지만 진실을 그대로 증언하셨습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권능 자(하나님)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심판을 위해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주님은 자신이 장차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게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선언은 (시 110:1, 단 7:13)에 기록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자신을 통해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밝힌 것이었습니다.

* 산헤드린의 판결(사형)(63-65)
"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64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대제사장은 마침내 자기가 찾으려던 신성모독의 증거를 찾았기 때문에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는 산헤드린 회원들 앞에서 옷을 찢으면서 주님의 발언에 대해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회개, 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발언을 들을 때에 슬픔과 분노의 표시로 옷을 찢었습니다. 모세는 신성모독적 발언을 한 사람은 돌로 쳐서 죽일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제 대제사장은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산헤드린 회원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결국 산헤드린 회원들은 예수님의 사형을 만장일치로 결정하고 말았습니다(63-64). 산헤드린 회원 중에 몇 사람은 자기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주님에게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얼굴을 가릴 후에 주먹으로 때리면서 누가 쳤는지 맞추어보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네가 만일 진정한 선지자라면 눈을 가려도 너를 때린 사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그 종들도 손바닥으로 주님의 얼굴을 때리며 조롱했습니다(65).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모욕을 당하면서도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인류의 죄 값을 지불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 이 사건이 주는 의미
1. 주님을 판결한 산헤드린의 판결은 불법적인 절차를 따라 행해진 불법적인 회의였다.
2.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임을 분명히 증거했으나 유대인들은 이를 믿지 않고 주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3. 주님은 이 일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정한 길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변명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셨다.

* 적용을 위한 질문
1. 우리는 손해가 된다고 단체의 힘을 이용해서 의로운 사람을 해친 적은 없었는가?
2.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과, 주님의 부활, 승천, 재림을 믿는가?
3. 고난의 길이라 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기꺼이 그 길을 갈 수 있는가?

제목: 베드로의 부인(막 14:66-72)


마가는 산헤드린의 심문 과정 사이에 베드로의 부인 사건을 삽입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사의 배열은 주님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무력하게 흔들리는 베드로의 모습을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흔들리는 베드로의 모습은 마치 박해 앞에 흔들리던 마가 당시의 로마 교회 성도들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 첫 번째 부인(66-68)
"66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비자 하나가 와서 67 베드로의 불 쬠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가니..."

대제사장의 집안에서는 무리들이 사형이 선고된 예수님을 때리며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집밖에서는 수제자인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대제사장의 하인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었습니다. 아마 그때에 그들은 주님에 대한 말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체 하며 그들 중에 끼어서 함께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베드로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대제사장의 여자 종이었습니다. 그녀는 전에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사실을 부인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깨달을 수도 없네!" 그는 얼마 전에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자기가 사형수의 제자였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에 대한 신의와 충절을 버리고 여종의 말을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여종의 말에 당황하여 그들의 눈을 피하려고 급히 앞뜰로 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에 첫 번째 닭이 울었습니다.

* 두 번째, 세 번째 부인(69-71)
"69 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 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71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그러나 그 여종은 끈질기게 베드로를 공격했습니다. 그 여 종은 자기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분명히 예수님의 일행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은 사람들은 의심에 찬 눈으로 베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또 다시 자신이 주님의 제자였다는 것을 부정했습니다. 조금 후에 무리들은 또 다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예수의 일행임이 분명하다." 무리들은 베드로의 말을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몇 가지 후음을 구별하지 못해서 다른 지방 사람들과 쉽게 구별되었습니다. 이것은 북한 사람들이 "ㅊ"을 발음하지 못해서 "하늘 천"을 "하늘 턴"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사투리를 들으면 그 사람이 경상도 사람인지, 아니면 충청도 사람인지 알 수 있듯이 갈릴리 사람들도 그 발음으로 쉽게 구별이 되었습니다.

무리들은 이런 야밤에 갈릴리 사람이 그 집에 와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예수님의 제자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나사렛 예수의 추종자가 재판 상황을 정탐하기 위해 침입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베드로는 다시 한 번 완강하게 자신이 주님의 제자임을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예수님의 일행이라고 사람들을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는 예수님의 일행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를 그러한 사형수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가 말하는 그 사람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러한 맹세와 저주는 베드로가 예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절대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주님의 예고대로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 베드로의 회개와 통곡(72)
"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바로 그 순간에 닭이 두 번째로 울었습니다. 유대에서 닭은 한 밤중에서 새벽 세 시까지 3번 정도 울었습니다. 한 밤중이 지난 지 약 30분 후에 첫 번째 닭이 울었고, 다시 한 시간이 지난 후에 두 번째 닭이 울었으며, 그리고 다시 한 시간이 지난 후에 세 번째 닭이 울었습니다(H. Kosmala). 그러므로 베드로가 주님을 첫 번째 부인하고 나서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두 번째로 닭이 울기까지는 약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베드로는 두 번째 우는 닭의 울음소리를 "네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자기가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심한 가책으로 인해 즉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통곡을 하며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주님을 부인했다는 죄책감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을 부인하며 통곡하던 베드로의 모습은 마가 복음의 독자였던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는 매우 이해하기 쉬운 모습이었습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은 지금 베드로와 비슷한 상황과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부인하지 않으면 직장과 재산을 잃고, 때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교회 성도들 중에는 주님을 부인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자들의 도피와 베드로의 부인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 중에 아무도 다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흩어지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 편에 서서 공개적으로 항거한다면 그들도 주님과 함께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을 흩어지게 하여 해를 입지 않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제자들을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베드로가(제자들이) 아주 넘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 미리 기도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후에 넘어졌던 베드로를 회복시켜 주시고, 그를 통해서 넘어진 다른 형제들을 세워 주게 하셨습니다.

* 이 사건이 주는 교훈
1. 우리는 신앙에 대해 자만하지 말고 항상 성령님께 은혜를 구해야 한다.
2.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부인할 때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지켜 주신다.
3. 주님은 넘어진 후에 다른 넘어진 형제들도 일으켜 세워 주어야한다.

* 적용을 위한 질문
1. 세상에서 살면서 기독교인이 아닌 척 한 경우가 없는지 반성해 보자.
2. 왜 넘어지는 순간에도 주님이 붙드신다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하는가?
3. 넘어졌다가 일어난 후에 다른 넘어진 형제를 일으켜 준 경험이 있는가?
4. 신앙에 굳게 서서 복음을 위해 살 힘을 주시도록 성령님께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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