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제 14장
==========14:1상
마가는 수난 사화에서 시간 측정의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여 일련의 사건을 열거시키고 있다. 고난 주간의 사건들의 시간표는 당시 시간 계산법이 하루를 자정에서부터 계산하는 로마식과 해질 무렵부터 계산하는 유대식이 다같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계산하기가 좀 어렵다.
유월절은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지켜야 했으며 이 절기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유월절 식사 준비는 유대식으로 계산하면 수요일 저녁으로 추정되는 니산월 14일 저녁에 유월절 양을 잡는 것을 포함한다. 유월절 음식은 니산월 15일이 시작될 때 곧 수요일 저녁 해질 때부터 자정 사이에 먹게 된다.
=======14:1하-2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 산헤드린 회원들은 이미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했지만 일반 백성들이 봉기할까 두려워 그를 공공연하게 붙잡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교활한 방법으로 예수를 은밀히 체포하기로 했다. 그러나 무수한 유월절 군중 속에 있을 예수의 보이지 않는 지지자들 특히 총동적인 갈릴리 인들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명절 곧 니산월 14-21일까지의 8일 동안에는 체포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유다의 예기치 않은 제안이 상황을 촉진시킨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시간 계획대로 이루어 졌다.
=========14:3
배다니에 잇는 동안 예수는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유월절 음식을 대접받으셨는데 그는 분명히 이전에 예수께 치료를 받은 사람이며 일찍이 제자들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인은 나사로의 누이인 마르다와 아리아였다.
======14:4-5
제자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유다를 따라서 이 분명한 낭비적 행위에 분노를 표시했다. 그들 생각에는 이 향유가 1년분 품삯보다 더 비싸게 팔 수 있었고 가난한 자들에게 그 돈을 나눠 줄 수 있었다. 이것은 합당한 관심이기는 했으나 그 이면에는 제자들의 무감각함과 가룟 유다의 탐욕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녀를 책망하였는데 이는 마가의 독특한 언급이다.
======14:6-8
예수는 마리아에 대한 비난을 꾸짖으시며 그 행동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녀를 변호하였다.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그것을 그의 메시야로서의 환영받음 뿐 아니라 그의 다가오는 죽음의 빛 아래서 그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표현으로 보셨다. 그녀는 예수의 몸의 장례를 위해 미리 기름 부은 것이다.
===========14:9
엄숙한 서론적 말씀으로 예수는 마리아에게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그녀의 사랑의 행위가 복음 선포와 함께 증거 되어 “그녀를 기념하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다.
======14:10-11
이 구절들은 1-2절을 보충하면서 3-9절과 강하게 대조된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영향력 있는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무리가 없을 때” 그렇게 하겠다고 제안했다.(눅22:6) 이는 군중들로 인한 분쟁을 피하려는 것이었고 제사장들이 가장 염려하고 잇는 것이었다. 그들은 감히 바라지도 못했던 이 뜻밖의 제안을 환영하였다.
왜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기로 했는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진 여러 이론들이 제시되었다. 첫째로는 유다만이 열 두 제자 중 유일하게 갈릴리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회의 명령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둘째로 그는 예수가 정치적 왕국을 세우지 않는데 실망했고 또 물질적 이득을 얻을 가능성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를 배반했다. 셋째로 돈에 대한 사랑이 그를 옭아매었다. 결국 그는 사탄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14:12
여기서 무교절의 첫날은 니산월 15일(금요일)이 되지만 그러나 유월절 양을 잡는다는 언급이 있음을 볼 때 엄격히 말하여 니산월 14일(목)을 마가가 말하는 것 같다. 유월절 음식은 예루살렘 사면 성벽 안에서 먹어야 했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가 어디에서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기를 원하는지 물었다. 그들은 이 가족 축제의 음식을 그와 더불어 먹으려 한 것 같다.
=========14:13-15
이 이야기는 구조적으로 11:1절하-7과 병행한다. 이는 예수께서 초자연적 지식을 가지고 계셨음에 대한 또 하나의 예증으로 생각될 수 있으나 또한 안전에 대한 필요와 제자들의 질문 그리고 거기에 따른 예수의 지시를 볼 때 예수께서는 유월절 음식을 아무런 방해 없이 다같이 들기 위하여 미리 용의 주도하게 준비하셨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타당하다.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던 사람은 아마 동문 근처에서 두 제자를 만났을 것이다. 이런 특별하고도 시선을 끄는 광경을 볼 때 이는 미리 준비된 신호임을 보여준다. 보통은 오직 여자들만이 물동이를 이며 남자들은 가죽 부대를 가지고 다녔다. 제자들은 하인임이 틀림없는 이 남자를 따라 들어갔고 하인은 이들을 인도했다.
========14:16
아마도 유월절 음식 준비는 양고기를 굽는 것과 무교병과 포도주를 배열하는 것 그리고 식초와 포도주 및 그 외 양념에 적신 마른 과일 사이에 쓴나물을 배열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14:17
그 날(목) 저녁 곧 니산월 15일이 시작되었을 때 예수와 12제자는 해질 때 시작되어 한밤중에 끝나는 유월절 식사를 먹기 위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마가는 빵과 쓴 나물을 양념 그릇에 같이 찍어 먹는 사람 중에 자기를 팔 자가 있다는 예수의 선언과 식사 후 빵과 포도주에 대한 예수의 새로운 의미 부여를 강조하기 위해서 식사 중의 사건들을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14:18-20
절기 음식을 먹는 동안에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음식은 먹어야 했다. 이 자리에서의 배반은 다윗이 그와 함께 친밀한 식탁 교제를 나누던 이히도벨(삼하16:15-17:23)이 그를 배신했을 때 시편 49편에서 한탄한 그 한탄을 상기시켜 준다.
어떤 사람과 더불어 식사하고 즐긴 다음 그를 배신하는 것은 가장 큰 변절이었다. 제자들은 심히 슬퍼했다. 제자들은 한 명씩 한 명씩 자기가 결백하기를 원했다. 예수는 배신자의 배신 행위를 강조하면서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14:21
여기에는 가슴을 울리는 한탄 스러운 어조가 울려 퍼지고 잇다. 배신자는 사탄의 도구가 되었다. 무서운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어 차라리 나지 않았더면 좋을 뻔하였다. 비록 그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행동을 했으나 그는 그의 행동에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 했다. 유다에게 내려진 저주는 마리아에게 내려진 축복의 약속(9)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14:22
분명히 식사의 주된 시간 전에 그리고 유다가 이미 떠나 버렸을 때 떡을 가지사(납작하게 구원 무교병)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예수는 문자 그대로의 물건들을 말씀하셨으나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14:23
식사가 끝난 뒤 예수께서는 물과 혼합된 포도주 잔을 들고 “사례하고 저희에게 주시니 그들이 다를 마셨다.” 예수께서 기존의 유월절 의식을 그대로 따랐다고 본다면 이 잔은 준비된 네 잔의 포도주 잔 중 세 번째 잔이며 식사의 주된 시간을 마치는 의식에 사용되었다. 아마 그는 완성의 잔인 네 번째 잔을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14:24
“언약”이란 서로 대등한 당사자들끼리의 합의에 사용되는 말이 아니라 어느쪽의 주도하에서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에 의해서 설정되는 관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이 약속 된 모든 물질적인 축복들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그 땅에서 천년 왕국의 통치를 하 때 성취될 것이다.
=========14:25
예수께서는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죽음을 넘어서 있는 것과 연관을 시켜 이야기한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질적으로 새롭게 된 삶 속에서 식사의 교제를 즐길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땅 위에 세워질 천년 왕국을 말한다.
======14:26
유월절에는 찬양 시편을 부르거나 연주하였는데 두 시편(113, 114)은 식사 전에 나머지 넷은(115, 116, 117, 118) 식사 후에 저녁 예식의 끝 순서로 불려졌다.
식사 후에 있었던 예수의 선언과 기도가 끝났을 때는 거의 자정이 다 되었을 것이며 예수와 열 한 제자는 다락방과 마을을 떠났다. 그들은 기드론 계곡을 지나 겟세마네 동산이 있는 감람산 서쪽 기슭으로 갔다.
=====14:27
“버리리라”로 번역된 동사는 어떤 사람을 외면하고 죄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는 열 한 제자 모두가 그의 수난과 죽음에 흩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14:28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의 도망에 대한 예언을 부활 후 재결합한다는 약속으로 완화시키고 있다. 다시 살아나신 목자로서 그는 그들이 살고 있었으며 제자로 부름 받아 위탁 명령을 받았던 갈릴리로 제자들 보다 먼저 가실 것이다. 그들은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그들의 미래의 사역을 위해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가야 했다.
======14:29-31
이전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는 예수의 예언의 전반부에 관심을 기울이고 후반부는 무시해 버렸다. 모든 제자가 예언처럼 예수를 버리더라도 자기는 예외이며 자기는 결코 예수를 버리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베드로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보다도 더 심각한 것이라고 강조하여 말했다. 바로 그 날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베드로는 도망했을 뿐 아니라 예수를 세 번 부인까지 했다. “새벽”은 해뜨기 전의 이른 새벽을 뜻하는 속담적 표현이다. 오직 마가만이 수탉이 두 번 울었다고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 베드로의 직접적 증언을 명확하게 들었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14:32-34
예수와 열 한 제자는 겟세마네로 갔다. 그곳은 감람산 기슭 근처에 올리브 나무로 사방이 둘러싸인 곳이었다. 이 고립된 장소는 유다도 알고 있던, 그들이 즐겨 모이던 장소였다.(눅22:39, 요18:2)
네 명이 “동산”안에 들어갔을 때 예수는 심히 놀라며(깜짝 놀라다) 슬퍼하셨다. 그는 세 제자에게 그의 영혼이 슬픔으로 압도당하여 거의 죽기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그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명했던 것이다. 그 앞에 닥친 고난과 죽음의 무게 앞에서 예수는 거의 무너질 지경이었다.
=======14:35-36
기도의 중심은 “가능하다면 이 때가 그냥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하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이란 단어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탄원이 근거하는 구체적인 전제였다.
“이 때”란 예수가 고난 당하고 죽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을 말한다. 이것과 관계된 비유인 “이 잔” 역시 똑같은 사건을 가리킨다. “잔”이란 육신을 입은 자로서 받을 수밖에 없는 고난이나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보다 더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육체적일 뿐 아니라 고통과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14:37-41상
이제 마가의 이야기의 초점이 예수의 기도에서 깨어 있는 데 실패한 세 제자에게로 옮겨간다. 예수는 세 번이나 기도를 중단하고 제자들에게로 갔으나 그 때마다 그들이 잠든 것만을 볼뿐이었다. “아직도 쉬느냐?”고 하신 말씀은 죄를 깨우쳐 주는 말일 수도 잇고 역설적이나 애정 어린 명령일 수도 있으며 갑작스런 책망의 외침이라고 할 수도 있다. 37절 40절에 비추어 볼 때 첫째번 해석이 가장 타당한 것 같다.
========14:41하-42 41절
상반절과 하반절 사이에는 약간의 시간적 간격이 잇는 것 같다.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 라는 말로 인해 제자들은 일어났다. 그 때 예수께서는 때가 왔음을 알린다. 그리고 예수의 배신자가 도착하였다. 예수와 세 제자들은 도망치는 대신에 유다를 맞으러 앞으로 나갔다.
=========14:43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 곧 유다가 단검을 가진 로마 병사들과 몽둥이를 든 성전 지키는 자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유다는 밤에 겟세마네에 계신 예수에게로 그들을 인도하여 왔다. 그래서 아무런 소동을 일으키지 않고 예수를 잡을 수 있었다. 산헤드린이 예수의 체포를 위해 영장을 발급했을 것이고 대제사장은 로마 군대의 협조를 얻어 왔을 것이다.
=========14:44-47
유다는 동산에 들어가자 즉시 예수께 나아가 랍비여라고 인사하면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뺨이나 손에 입 맞추는 것은 당시 제자들이 그의 스승에게 애정과 존경을 표하는 통상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유다는 그것을 배신의 표로 사용했던 것이다.
====14:48-50
예수는 은밀하게 행동하는 혁명가가 아니라 분명한 종교 지도자 였다. 그 주간 내내 날마다 예루살렘 성전 뜰에 모습을 드러내어 가르쳤으나 그들은 그를 잡지 아니하였다. 마치 죄인처럼 한적한 밤에 인적인 드문 곳에서 그를 체포한 것은 그들이 겁에 질려 있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성경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물론 제자들은 예수를 버려두고 도망쳐 버렸다.
=========14:51-52
마가복음에만 있는 이 독특한 구절은 제자들이 모두 완전히 예수를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는 50절을 보충해 주고 잇다. 이 “청년”은 (24세에서 40세 사이의 한창 때의 나이) 마가 자신일 것이라고 주석가들이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이 청년은 잠을 자다가 예수를 체포하러 왔다는 소식을 알려주자 그는 옷 입을 틈도 없이 황급히 이 소식을 예수께 전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까지 뛰어 올라 갔다. 그러나 그가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예수께서 체포되신 후 였다. 예수의 뒤를 따라가다가 그만 발각되자 그는 홑이불을 팽개친 채 도망가 버렸다.
=====14:53
겟세마네에서 예수를 체포한 자들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집으로 예수를 끌고 갔다. 그때의 대제사장은 가야바였는데 그는 A.D. 18-36넌까지 대제사장직을 맡았다.
대제사장을 포함한 71명의 산헤드린 회원들은 야간 회의를 위하여 급히 다락방으로 모였다. 이것은 비공식이었는데 낮에만 재판을 허락하는 유대인들의 엄격한 법적 재판 과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새벽 이후에 공식적인 인가를 받아야 했다.
=========14:54
베드로는 다시 용기를 내어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갔다. 이 곳은 제사장 관저 앞 사각형의 정원이었다. 그는 예수에게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알고 싶었다.
=======14:55-56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에게 사형을 내릴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거짓 증언을 했지만 그들의 의견이 서로 엇갈려서 그들의 증언을 증거로 삼을 수 없었다. 아마 이들은 예수의 체포 이전에 이미 예비되어 있었으나 그들의 고소 내용을 서로 조화시킬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유대 재판에서 증인은 기소 자 역할을 할 수 있으나 그들의 증언은 각각 따로따로 행해야 했다.
=====14:57-59
그래서 그들은 성전에 대한 것으로 죄목을 삼았다. 여기서 말해지는 성전은 예수의 편에서 보면 그이 몸 된 성전을 가리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말을 오해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언급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예배 처소를 무너뜨린다는 것은 고대 세계에 있어서 엄청난 범죄였다.
=======14:60-61상
대제사장은 죄를 찾기 위해 질문을 했으나 예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예수의 침묵은 재판정을 좌절시켰고 재판의 과정을 벽에 부딪치게 했다.
14:61하-62 대제사장은 전술을 바꾸어 “네가 찬송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나?”라고 예수께 물었다.(문자 적으로는 계속해서 묻다의 뜻) 신약 성경 중에서 여기서만 발견되는 “찬송 받으실 자”라는 칭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용할 수 잇는 유대 칭호였다.
예수는 명확하게 “내가 그니라” 곧 “나는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대답하셨다. 마가복음에서는 이곳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예수는 자기가 메시야임을 공적으로 천명하였다.
========14:63-64
대제사장이 그의 옷을 찢었다고 할 때 그의 예복보다는 오히려 속옷을 찢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제사장은 자기가 예수의 담대한 선언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예수가 자기 스스로를 옭아매는 대답을 함으로써 더 많은 증거를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으므로 그는 또한 다행스럽게 생각하기도 하였다.
==========14:65
산헤드린 회원 몇 명이 그들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하여 예수를 모욕하고 침을 뱉기까지 했다.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은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며 엄청난 인격적 모욕을 뜻하였다.
=======14:66-68
대제사장의 비자 중 하나가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베드로가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임을 알아본다. 그 여자는 분명히 베드로의 신분을 파악하였으나 베드로는 그것을 부인하였다. 그는 자기 안전을 위하여 자기가 예수의 제자임을 부인했다. 더 이상 발각되는 것이 두려워 그는 길거리로 통하는 포장된 길 곧 앞뜰로 나아갔다.
========14:69-71
동일한 계집종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폭로하였다. 다시 그는 부인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난 뒤 곁에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를 고소하여 “확실히 너는 그들 중의 하나니 너는 갈릴리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갈릴리 사람들은 아람 방언을 말할 때 그 발음에 있어서 현저히 구별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단자인 예수의 제자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했다는 말은 그가 신성 모독적 발언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이며 법정에서처럼 부인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맹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4:72
두 시간이 채 못되어 베드로가 세 번째로 예수를 부인하자 그 즉시 닭이 정확히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는 통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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