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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누가복음 12장 주석

작성자예수사랑|작성시간03.07.11|조회수14,542 목록 댓글 0


누가복음 제 12장
=====12:1
그 동안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구'엔 호이스'(* )는 문장이나 문단을
시작하는 고전적인 관용구로, 여기서는 앞의 상황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며 그 의
미는 11:53,54가 진행되는 동안에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최소한 11:37부터 진행 되어
온 상황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거나 넓게는 11:29절 이하 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수만 명 - 헬라어'뮈리아스'(* )의 문자적 의미는 '만'(萬)인데 때로는
막연하게 무수히 많은 수를 나타낼 때나 과장법적으로 수의 많음을 표현 할때 사용
되기도 한다(행 21:20;계 5:11;9:16). 이는 11:29 이후로도 많은 수의 무리가 더 모여
들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수만 명'이라는 문구 앞에 정관사 '톤'(* )이 붙음
으로써 '늘 그러했듯이 수많은 군중'이라는 의미가 된다면 이렇게 많은 수의 무리가
모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 늘 있어왔던 현상에 불과함을
가리킨다. 이는 무리들이 모여든 이유와는 상관없이 적어도 예수의 명성이 얼마나 높
았었던가를 말해준다.
먼저 제자들에게 - 예수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빽빽히 둘러싸 그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 하심으로
써 청중들을 구분하고 있다. 사실상 당시 상황을 유추해 보건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은 상당 수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돌려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라는 말
로 청중들을 1-12까지의 말씀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무리'들의 영적 상태를 넌지
시 암시한다고 본다. 1-12절 내용의 요지는 '신앙의 절개'를 지켜야 한다는 요청
이다. 그런데 이 요청이 쟤자들에게만 주어지고 무리들 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
리들이 신앙의절개(節槪)를 지키라는 요청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들은 예수 주변에 열광적으로 모이들었지만 그 의도는 영적인 진리를 갈구해서가 아니
라 욕체적인 유익을 얻기 위해서였으며(요 6:24-26). 그 욕망이 채워지지 않자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 - 유대지도자들이 누룩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신 경우는
다른 복음서에도 있는데(마 16:6; 막 8:15) 이러한 경우'누룩'은 나뿐 의미로 사용된
반면 마 13:33에서는 좋은 의미로 표현되고 있다.이와같이 누룩은 좋은 의미로도 나뿐
의미로도 사용되는데,이는 '누룩'이 '파급적 효과'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서 적절하
기 때문이다.'외식'(* ,휘포크리시느)의 본래적 의미는 '배우','각
색'이라는 뜻으로 여기서 '위선'이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이 위선은 11-37이하의 내
용을 한 마디로 집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위선의 파급효과는 사람들을 부정하게
하고(11:44) 사람들이 구원의 길로 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11:52).

=====12:2
감추인 것이...숨은 것이 - 이와 동일한 말씀이 이미 8 :17에 나온 바 있고 마
10:26에도 평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전후 문맥상 그 의미가 조금씩 다르거게 적
용되고 있다.먼저 8:17 에서는 강조점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성이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고 만다는 데에 있으며, 마태의 평행 본문(마 10:26,27)에서의 강조점은,예수께
서 은밀히 가르쳐 준것을 두려워 하지 말고 공개적으로 선포하라는 격려에 있는데 비
해 본문의 의미는 바리새인들의 외식 행위가 감추고자 하는 그들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드러나고 말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깃은 '감추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케칼튐메논'(* )의 의미가 '모든 면을 완전
히 덮어버리다', '감추다'임을 감안할 때 더 분명해진다.

=====12:3
너희가...들리고 - '너희가'라는 표현이 지시하는 대상이 제자들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일반 사람을 가리키는지 분명치가 않으나 전후 문맥을 고려할 때 제자들 뿐만
아니라 무리들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럴 경우 본문의 의미는 은
밀히 이야기한 것이 비밀로 남아있지 못하고 밝히 드러나리라는 말씀이 된다(비교, 마
10:27).
골방에서...전파되리라 - 같은 내용의 말이 반복됨으로써 강조 효과를 나타낸다.여
기서 '골방'(* , 타메이오이스)은 '방의 안쪽'(Marshall),'광'(창
고)(Tyndale,눅12:24). '보물을 보관하거나 때로는 극비 회의를 여는 은밀한 곳'
(Hendriksen)의 의미이며 '집 위'는 공개성을 상징하는 격인적 표현이다.본문 역시 앞
부분과 같은 의미로 끝까지 숨겨지는 비밀은 없으며 모든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말해준다.한편 마태의 평행 본문에는(마 10:27) 앞 부분과 달리 제자들이 예수
께 은밀히 들은 것을 집위에서 담대히 공개적으로 전파하라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12:4
내 친구 - 요 15:14에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천구라"는 말씀이 있기는
하지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내 친구'라 표현한 것은 이것이 유일한 경우이다.
이는 예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과 예수의 친밀한 관계성을 말해주는 것이며
(Grundmann), 이 후에 이어지는 말씀이 매우 중요하므로 명심해서 들어야 함을 뜻한
다.
몸을 죽이고...두려워하지 말라 -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교훈은 진정으로 두
려워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의 죽
음이다. 다시 말해서 '몸'의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서 끝이 아니며, 인간에게 가장 불
행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며 더 중요하고 근원적인 것은 영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
서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세상 권력이나 악인의 위세에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 인간
사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또한 그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
족(一擧手一投足)을 감찰하시는 분임을 믿는 확신이 요청될 뿐이다(21:18).

=====12:5
지옥 - 여기 사용된 헬라어 '게엔나'(* )는 히브리어 '게엔놈'을 음역한
것으로 '힌놈의 골짜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아하스왕 이후 어린 아이를 몰록의 신에게 제물로 불태워 바친 곳이며(레 18
:21;왕하 23:10),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으로 이 우상 숭배가 근절된 후에도(왕하
23:16) 이 곳은 저주받은 곳으로 간주되었다(19:6;렘 7:31-34). 신약 시대에는 쓰레기
소각장으로 사용되었는 바 이 곳에서는 항상 불이 타고 연기가 피어 올라 지옥의 영원
한 고통을 상징하기도 하였다(Tyndale). 이러한 어두운 역사적 버경을 가지고 있는'게
엔나'는 종말론적인 심판 뒤에 악인들이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장소를 뜻하는 말로 사
용되었는데, 이런 의미에서 같은 '지옥'으로 번역 되지만 몸을 떠난 영혼들이 거하는
곳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 '하데스'(* )와 구분된다. '게엔나'에 던져넣을
수 있는 권세는 하나님에게만 있다(막 9:45,47;약 4:12).이 권세는 세상을 불의로 통
치하는 어둠의 권세(22:53)곧 죽음의 세력을 (히 2:14)능가하는 것으로 제자들이 진정
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권세이다.

=====12:6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 4, 5절에서는 인간들로부터 오는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겨 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을 하였는데 여기서는 하나님
이 제자들을 철저한 관심 속에 보살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위로
와 격려를 주고있다. '아싸리온'(* )은 드라크마의 1/10 데나리온의1/16
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적은 액수라고 할 수 있다(창세기 p.41 도표참조). 본문에서
강조되는 것은 새가 보잘 것 없이 작으며 그 가치도 결코 대단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 참새 다섯 마리의 중요성과 가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시해도 무방할 만큼 미미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단 한 마리
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사람들 특히 제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지극한 것인가를 보증해 주는 셈이다. 한편 본문은 날이 갈수록
인명(人命) 경시 풍조가 그 세(勢)를 더해가는 작금의 세태에 대한 하나의 경종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12:7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 하나님께서는 머리털로 비유되는 삶의 사소한 부분까지
도 세심하게 관심을 가지고 계실만큼 인간의 총체적 삶을 완벽하게 돌보신다는 것이
다. 본문은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하심을 나타내는 히브리 용법으로 구약성서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엿보인다.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삼상
14:45;왕상 1:52;행 27:34). 이렇게 완벽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제자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 앞절에서 언급된 '하나라도'와 대조를 이루면서, 단 한
마리의 참새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하나님이 하물며 많은 참새를 합한 것보다 귀중한
제자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논리정연하게 강조하고 있다.

=====12:8
사람 앞에서...시인할 것이요- 본문에서 반복되고 있는'앞에서'(*
,엠프로스덴)는 공개적인 고백을 강조하는 말로 판사 앞에서 증언하는 것을 연상시킨
다. '나를시인하면'(* , 호몰로 게세 엔 에모이)을 직역
하면 '내 안에서 고백하면'의 뜻이 된다. 이것은 예수께 대한 고백이 단지 하나의 당
위성 때문에가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 안에 사는 삶의 결과로서 표현되어져야 하는
것임을 뜻한다. 살아계신 주님과의 신령한 교제와 아울러 구체적인 결실을 맺어 보이
는 생명력있는 신앙 고백이야말로 오늘날 성도들에게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 자태(姿
態)이다. 마태의 본문은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대신 내 아버지 앞에서"로 서술되어
있는데, 누가는 법정에서의 증언을 염두에 두고 있고 마태는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성
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한편 본문에서 언급된 '인자'에 대해서는
5:24 절의 주제 강해 '인자의 개념'을보라.

=====12:9
사람 앞에서...부인함을 받으리라 - 앞절에서의 긍정적인 약속이 여기에서는 부정
적인 심판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예수를 부인한다는 말은 단지 사람들 앞에서 예수
를 부인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예수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교만이나 예수의 신성을 부
정하고 그의 가르침을 반대하는 행위까지도 모두 포함된다. 한편 8,9절 전체의 의미
는 바른 신앙적 삶에 대한 격려와 비신앙적 삶에 대한 심판 경고 등 양자를 모두 포함
하지만, 문맥상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분노에 의한 핍박이 예상되는 대목이라는
점에서(11:53,54) 후자의 의미가 조금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12:10
인자를 거역하면...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 마태와 마가는 바알세불 논쟁과 관련
하여 본문의 말씀을 다루어가고 있는데 비해(마12:31,32;막 3:28,29, 누가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증인의 자리에 담대히 서라고 격려하는 문맥에서 이
말씀을 기록한다. 그러나 위 말씀들에 의미는 거의 동일하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성
령 훼방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마 12:22-37의 주제 강해 '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보
라.

=====12:11
회당과 정사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 이 말씀은 제자들이 당할 고난 중 죄인으로
법정에 서게 될 것에 관한 내용이다.'회당'이 유대인의 법정을 뜻한다면 그 외의 것은
이방인의 법정을 뜻한다고 볼 수 있고 '회당'이 종교로부터의 핍박을 뜻한다면 그
외의 것은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핍박을 뜻할 수 있다. 제자들은 동족과 이방인, 종교
와 정치 세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종류의 핍박에 직면하거게 될것이나 성령께서 함
께 하는 한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격려의 말씀이 아닐수 없다. 삼엄
한 산헤드린(Sanhedrin) 공회나 로마에서 파송된 총독의 법정 앞에서 스데반 혹은
바울 등이 담대히 진리의 증거자로 설 수 있었던 것도 성령께서 함께 해 주셨기 때문
이다(행 7:2 ff.;24:10-21).
대답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폴로게세스데'(* )는
전문적 법률 용어로 '법적으로 자신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는 발언을 하다'는 뜻이며 본
절이 법정에 서게 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뒷받침 하는 말이다. 제자들은 두
가지 의미에서 자신들을 변호해야 할 것이다. (1) 자신들의 육체적 안전을 위해 무죄
함을 변호해야 하고, (2) 자신들이 선포하고 행하는 사역의 정당성을 변증해야 할 것
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여 법정의 심판관들을 설득시킬 수 있
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12:12
성령이...가르치시리라 - '곧 그때에'라는 표현은 제자들이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성령의 도우심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극적으로 표현해 준다.성령께서
제자들을 위기 상황으로부터 기적적으로 구출해 준다거나 방해 세력을 분쇄한다고 말
하지 않고 꼭 필요한 말을 가르치신다고 하신 점에 유의하자 .이것은 성령께서 결코
기적이나 무력을 사용하기 보다는 제자들을 무력한 객체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 그리
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게 하며 위기의 상황 조차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는 정공법(正攻法)을 채택하신다는 것을 암시 한
다.이 약속의 말씀은 베드로(행 4:8-12), 스데반(행 6:10), 바울(딤후 4:17) 등에게서
실제로 성취되었다.

=====12: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 '무리 중에 한사람'은 앞 부분(1절 ff.)과의 연결을 자연스
럽게하며 관심의 대상을 제자들로부터 무리들에게로 바꾸어 넣는 도입구의 역할을 한
다. 상속에 대한 규례는 율법에 명시되어 있으며(민 27:1-11;신 21:15ff.),법규에 따
라 분배가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랍비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지금 예수
를 찾는 이 사람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찾은 것이다. 이 사람이 정당한 몫의
유산을 받지 못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않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그가 예수를 율법
선생으로 곡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12:14
누가 나를...세웠느냐 - 예수께서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고 그 문제를 해결해 줄 권위나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사
람의 문제에 관여하기를 거부한 것에 대해서는 몇가지의 설명이 있다. (1) 에수는 그
런 문제에 관한한 당국의 권위를 인정해 주었기 때문.(2) 예수는 유산을 나누는 정
도의 일을 훨씬 능가하는 영혼 구원의 소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Hendriksen).(2)예
수는 소유 자체 보다는 소유에 대한 태도에 관심을 유도하고자 하셨기 때문
(Tyndale). 이 가운데 (2),(3)의 설명이 타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예수의 사명은 물
질을 관리하는 일을 넘어서는 깊은 차원의 것으로 특별히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일이
며 단순히 물질을 공정하게 분배하논 차원을 넘어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부터 근본적으
로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자기의 몫을 요구하는 이 사람은 그 심성 속에있는 물
질에 대한 탐욕으로부터 해방되지 않는 한 그의 몫을 받는다 해도 아무런 만족을 누리
지 못할 것이다.

=====12:15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 예수께서 그 사람의 요청을 거부하신 것은 그 사람이 당면
한 문제 배후에 있는 본질적인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었으며 그것은 한 사람 개인에게
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즉 '저희에게'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탐심'(* , 플레오녀시아)은'더 많은'의 뜻을 가진 '플레온'(*
) 과 '소유하다'의 뜻을 가진 '혀시아'(* )의 합성어로 만족할 줄 모르
는 욕심을 가리킨다. 여기서 지적되는 것은 단지 '물질'에 대한 탐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가는 모든종류의 죄악된 성향(性向)을 총칭
한다고 보아야 한다(시 39:6;합 2:9;골 3:5;딤전6:9-11).
생명이...있지 아니하리라 - 소유의 넉넉함 으로 인간의 진정한 삶이 영위되거나
보존되는 것이 아니다.특히 '생명'에 해당하는 헬라어 '조에'(* )는 하나님의 생
명 곧 영생을 가리킴에 주의하자.오히려 넉넉함을 추구하는 탐심은 생의 목표를 진리
가 아닌 것에 두게 하여 결국에는 멸망으로 이끌게 할 뿐이다.

=====12:16
한 부자가 소출이...풍성하매 - 예수께서는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는
것을 예증하기 위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여기서는 그가 부자였다는
간단한 사실만 언급될 뿐 부 자체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되지 않고 있
다. 따라서 우리는 이 부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시켰다고 굳이 해석할 필요
는 없다. 아마 그는 무절제나 방황에 빠지지 않고 오직 재물 모으는 일에만 전심전력
(全心全力)하였는지 모른다 .어쨌든 그가 재산의 노예로 보일 정도로 물질에 짐착하였
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12:17
심중에...어찌할꼬 - 밭의 풍성한 소출은 부자에게 고민을 안겨준다. 곡식을 쌓
아둘 곳이 없다는 것이 그의 고민이다. 이 고민은 그가 상당한 부자임을 말해준다.아
울러 이는 욕망의 무한성 곧 재물로써 채워질 길 없는 깊은 영혼의 갈증을 보여준다.
원문상 '곡식'이 '내곡식'으로 되어있어 자기 소유에 대한 강한 짐착을 잘 나타낸다.

=====12:18
내 곡간을 ..더 크게 짓고 - 그가 궁리한 끝에 내린 결론은 곡간을 더 크게 확장하
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곡간'(* ,아포데커)은 신약의 여러 곳에서 '창
고'의 의미로 사용되며(24절;3:17;마3:12;6:26;13:30), 여러가지 물품을 취급하는
'대형 상점 을 또는 매우 큰 '상점'을 뜻하기도 한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이 부
자는 대농(大農)일 뿐만 아니라 상인의 역할도 했으리라 짐작된다.

=====12:19
영혼아...마시고 즐거워하자 - 그의 총체적 실존이 지향하는 삶의 자세는 물질
에 의존하여 물질로 말미암아 쾌락을 즐기는 것일뿐 진리를 추구하는 의미의 문제나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이나 그에게 풍성한 소출을 허락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
의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피땀흘려 부를 축적한 자에게
있어 그 부를 이용하여 안락하고 풍족한 세월을 구가해 보고자 하는 보상 심리는 본능
적 욕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인생이라는 존재 자체가 흘러가는 구름 처럼 덧
없는 것임을 자각했어야 옳았다(사 51:6).

=====12:20
어리석은 자여 - 자신의 삶에 대해 용의 주도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부자에게
(18,19절) 하나님은'어리석은 자'라고 하신다.여기서'어리석은 자'(* , 아프
론)는 '정신없는 자','무분별한 자'라는 뜻이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이 생명의 근본이
심을 거부한 사람을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고 했다(시 14:1) 이러한 물질주의적 가
치관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의 뿌리가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치를 부인하다시피 하는 유물론(唯物論)에 박혀 있음은 물론이고,자본주의
체제에서 중시되는 소위 개인의 자유 역시 오직 자본 곧 물질을 확보하는 일에 집착되
어가는 경향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물질이냐 영혼이냐 세속주의냐 하나님 중심주의냐
하는 이 근본적인 가치 선택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논제임에 분명하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 부자는 '여러해'를 게획했으나 하나님은 '오
늘 밤'에 그의 영혼을 가져갈 것이다. '오늘 밤'은 그의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
감을 강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재물은 그의 생명을 단 하루 밤도 지속시키는
힘을 갖지 못한다. 여기서 '영혼'은 생명을 뜻하고 '도로 찾으리니'는 인간의 생명이
란 하나님께 대여 받은 것으로 언젠가는 되돌려져야함을 말해주며 생명에 관한한 하나
님이 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12:21
자기를 위하여...부요치 못한 자 -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부유함과 하나님께 대한 빈곤
을 대비시킴으로써 부자의 삶의 목표가 어디에 두어져야 하는가를 강조한다. 하나님
께 대하여 부요한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고(33절;마6:20), 가난한 이웃을 돕
는 것이다(마25:31-46).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생명과 재물이 하나님께 근거한 것임을
알고 겸손히 봉사해야 한다는 청지기 의식을 가질 때에만 가능하다(벧전 4:10).

=====12:22
목숨을...몸을 위하여...염려하지 말라 - 다시 예수의 말씀을 듣는 대상이 무리들
에서 제자들로 바뀌고 있다.제자들은 물질적 조건을 확보함으로써 안전을 도모하는 태
도를 가져서는 안된다. 또한 재산을 소유하지 못한 제자들로서는 무소유에 대해서 염
려해서도 안된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
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것들을 축적하기 위하여 노력하며(18절), 이것들이 획보되
지 않을 때는 염려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그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명령
이 주어진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즉 목숨과 몸을 위하여 재물을
축적하려 함으로써 싸움과 갈등을 일으키며 그러므로 안전이 아니라 염려만 더욱 증폭
되는 상황을 정지 시킬 수 있는 삼의 방식이라고 할수 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이 자신의 삶을 전폭적으로 내어 맡기고서 이기적 탐욕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은 염려하
지 않는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이다.

=====12:23
목숨이...중하니라 -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제
시되고 있다. 목숨이나 음식, 몸이나 의복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하
나님께서는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알고 게신다.목숨이 중요함을 아시므로 음식을
주실 것이고 몸이 중요함을 아시므로 의복을 주실 것이다 .적어도 이 사실을 알고 하
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이 말씀은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가치를 혼동하여 본
질적인 것이 아닌 음식을 위하여 본질적인 목숨을 가볍게 여기거나 중요하지 않은 의
복을 위하여 중요한 몸을 하찮게 여기는 세상 사람들의 전도(顚到)된 가치관의 어리석
음을 지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12:24
까마귀를...아니하며 - 7절에서는 참새에 비교하여 제자들의 귀중함을 강조했는데
여기서는 까마귀와 비교하고 있다. 마태가 단순히 '공중의 새'(마6:26)라는 표현을
사용한데 비해 누가는 까마귀를 언급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
다. 즉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까마귀는 부정한 새이다(레11:15;신 14:14). 그럼에도 불
구하고 하나님은 까마귀를 돌보신다. 하물며 새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증요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깃이다. 한편 까마귀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는다는 것은 사람은 심고 거둔다는 것 즉 노동을 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
이다. 따라서 본문을 노동하지 않아도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의미로 이해 해
서는 안된다.

=====12:25
염려함으로...더할 수 있느냐 - 본문은 해석상의 논란이 있다. 왜냐하면 '키'에 해
당하는 헬라어 '헬리키아(* )는 '나이'를 뜻하기도 하고(요9:21), '신장'
(身長)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19:3). 또한 '한 자'의 '자'(* , 페퀴스)는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기의 길이를 한 단의로 하는 '규빗'(창6:15)을 뜻하는데 이 단
위 역시 '길이'를 가리키기도 하고 '시간'을 가리키기도(시 39:5) 하기 때문이다. 그
래서 본문은 두 가기 의미로 해석 될수 있다. (1)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키를 한
자 크게 할 수 있는가"(Bengel,Godet,Farrar). (2)'시간'의 개념으로 보아 "생명을 조
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는가"(Bruce,Plummer,Vincent).

=====12:26
지극히...염려하느냐 - 본문은 마태의 평행 본문에는 없는 것으로 누가만의 독특
한 기록이다. 이 말씀은 25절에 대한 결론으로,염려함으로써 해결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염려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키를 늘리는 것이든, 생명을 연장(延
長)시키는 것이든 하나님께는 지극히 작은 일이다. 그러나 인간 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철저히 무능력함을 인정해야 하며 자기의 노력 으로써가 아
니라 하나님께 의지하는 믿음을 가짐으로써 삶의 안전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한다.

=====12:27
백합화를...못하였느니라 - 먹을 것에 대해서는 '새'에 비유하시고(24절), 입을 것
에대해서는 꽃에 비유하고 있다.여기서'백합화로 번역된 헬라어'크리논'(* )
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들이 있는데, '크로크스','터어키산 백합', '글라디올러
스'등이 그것이다. 또는 솔로몬의 자색 의복이 상응하는 자색의 아네모네 꽃일 것이
라는 견해도 있다(Dalman).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옷도 들의 백합화 만큼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 말씀은 인간의 유한성과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세심하신 배려를
또 한번 대조해 보인다. 특히 이 백합화는 28절에서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것으로 묘사됨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위엄을 더욱 뚜렷이 드러낸다.

=====12:28
오늘 있다가...들풀도 - 수명의 짧음과 무가치함을 실감나게 표현하신 말씀이다.
인간에 비하면 형편없는 가치를 가진 들풀을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이 사람을 입
히는 것은 자명(自明)한 사실이다. 들의 풀들이 자라며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내는 것
을 보면서 우주만물과 특히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예수께서 꾸짖으
셨던 당시의 세대들처럼(9:41)믿음이 전혀 없는 것도, 가나안의 여인처럼(마15:28)
믿음이 큰 것도 아닌 상태이며 당시의 제자들이 아마 이런 상태 즉 믿음과 염려가 교
차하는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12:29
너희는...근심하지도 말라 - 22절 에서 주어졌던 '염려'에 대한 금령이 여기에서
재차 반복되면서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 여기서는 '너희는'(* ,휘메이스)이
강조적 위치인 문장의 맨 앞에 나와있다. 또한 '근심하지도 말라'는 신약에서 여기에
만나오는 말인데 '허공에','높은 곳의'라는 뜻을 가진'메테오로스'(* )
에서 온 고대 동사로 '희망에 들뜨다', '공중에 높이 들다'는 뜻이다. 이는 허망한
욕망에 이끌려 상념이 가득찬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삶을 위한 정당
한 노력을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의 내적 열망 즉 궁극적 관심이 먹고마시
는 것에 고착 되어서는 안된다는 깃이다.

=====12:30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 - '세상 백성들'(* ,타
에드너 투 코스무)은 하나님을 믿지 일아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랍비적(Rabbinic) 표현
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아 물질적인 삶의 조건들에 집착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라면 의당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을 따로 구할필요가 없는 것이다.

=====12:31
그의 나라를 구하라 - 지금까지의 금지령(禁止令) 대신에 여기서는 적극적인 의미에
서 행위를 명하신다. 본문의 의미는 (1) 물질적 관심보다는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기
를 구하라. (2) 물질의 축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적 축복을 구하라 (3)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실천하라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하면...더하시리라 - 이것은 물질적인 조건들이 하나님의 나라보다 하위 개념
이며 물질이 하나님 나라에 종속되어 있음을 가리킨다.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물질적인 것들은 부속물로 주어진 것이지 그이상의 것은아니다.

=====12:34
너희 보물...마음도 - '마음'은 인격과 행위의 중심이며'보물'은 궁국적인 관심을
가리킨다.결국 하늘과 땅 또는 물질과 하나님 나라 이 중 어느 것에 궁국적 관심을 두
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가치가 결정된다.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미적지
근하고 이중적인 자세는 용납되지 않으며 성도는 그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마
6:24). 하나님을 선택하는 자는 재물을 덤으로 얻게 되지만 재물을 선택하는 자는 모
든 것을 잃게 되고 만다.

=====12:35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 제자들에게 두 개의 명령이 주어지고 있다. 첫째는 허리
에 띠를 띠라는 것이다. 팔레스틴 지역의 옷은 길고 통이 넓어 여행을 할 때나 활동
을 할 때는 허리에 띠를 띠었다(출 12:11;왕상 18:46;왕하 1:8). 따라서 이 명령은
일 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으라는 말씀이다. 두번째는 등불을 켜라는 것이
다. 이는 어두운 동안에도 활동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말해주며 뒤에
이어지는 말씀과의 연관에서 깨어있음을 상징하는 적절한 표현이다. 결국 본절은 언제
어느 때 예수께서 개림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이 그분을 맞아들일 수 있도록 만반의 준
비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함을 가르친다(벧전 1:13).

=====12:36
주인....기다리는 사람 - 13:25와 마 25:11 에서는 주인이 문을 관리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와 대조적으로 종이 주인을 기다리는 상황이 설정(設定)
되고 있다.유대인의 혼인 잔치는 밤에 열렸으므로 본문의 비유가 그 당시 유대인들에
게는 매우 실감나게 들렸을 것이다. 여기서 '주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리오스'(*
)는 신앙의 주(主)로서의 예수를 부를 때 많이 사용되는 말이나(마
26:22), 일반적인 의미에서도 사용되었다(막 13:35). 그리고 '돌아와'의 헬라어
'아날뤼오(* )문자적 의미는 '떠나다'이다(빌 :23;딤후 4:16). 그러나 본
문의 번역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혼인 잔치가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할 때
는 집으로 떠나가는 것이 되고 그 주인의 집을 중심으로 할 때는 돌아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본문은, 언제 오실지 알수는 없어도 반드시 오실 예수를 기다리며 늘 깨어
있는 삶을 살 것을 재차 강조한 내용이다(마 25:1-13)).

=====12:37
주인이 띠를 띠고...수종하리라 - 여기서도 '깨어있음'(* , 그레고레
오)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행20:31;고전 16:13;골 4:2;벧전 5:8;계 3:2, 3). 주인이
혼인집에 다녀왔을 때 종이 깨어있다가 문을 열어준다고 해서 그 종을 극진히 대접하
는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깨어있는 성도들은 그러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보여지듯이(17:7-10),정
당한 대가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은총에 의한 대접이다. 죄로 인해 영벌(永罰)에 처해
질 수 밖에 없었던 우리가 예수의 구속을 믿음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되었을 뿐만 아
니라 그분의 재림시에 함께 왕노릇 하게 되는 것은(계 20:4) 종이 주인으로부터 수
종받는 것보다 더 큰 은혜라 하겠다.

=====12:38
이경에나 혹 삼경에 - 당시 로마식 으로는 밤을 4경으로 나누었으며(1경:오후6-9
시, 2경: 9-12시, 3경: 12-1시, 4경: 3-6시), 유대식으로는 3경으로 나누었다(1경:
6-10시, 2경: 10-2시, 3경: 2-4시, 삿 7:19);애 2:19). 본문이 로마법에 의한 서술인
지 유대법에 의한 서술인지 분명치 않으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이 돌아올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과 그 시간이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상당한 어려움을 견디어 내
야 하는 늦은 밤이라는 사실이다. 늦은 밤에 이르면 수면을 취하는 것이 저연스러운
현상이듯이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깊은 영적 수면에 빠져들어가게 되
며 자칫하면 성도들마저 이러한 세상조류에 휩쓸려 들게 될 것이다(마 24:9-12)."인자
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18:8)는 말씀은 바로 오늘의 우리들에게 절실
하게 부딪혀 오는 것이다.

=====12:39
집주인이...알았더면 - 앞의 비유에서 신실한 행위에 더한 축복에 강조를 두었는데
여기서는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경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도둑침입의 돌연성(突然性)이 강조되고 있다. 도둑의 침입을 표현함에 있어서 '뚫고
들어오다'(* ,디오뤼쏘)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당시의 도둑들이 흙 벽
돌로 지은 집에 벽을 뚫고 들어 왔었던 사실에 근거한다(막 2:1-12주제 강해 '예수 당
시의 서민 가옥 구조' 참조).예고 없이 쳐들어오는 도둑으로부터 집과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늘 깨어서 경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주의재림
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자세도 이와 동일한 긴장과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12:40
생각지...오리라 - 35절부터 전개되어온 비유의 말씀은 결국 이 결론을 말씀하시
기위함이었다. 주의 재림을 예기치 않게 임박해 오는 사건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도
둑의 침입에 비유한 사례들은 이 밖에도 성서의 여러 곳에서 발견 된다(살전 5:2;벵후
3:10). 주의 재림일시를 정확히 아는 이는 오직 한분 하나님 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는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매일매일 자신
을 돌아보는 영적 파수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시 130:6).

=====12:41
베드로가 여짜오되 - 마태의 평행 본문에서는(마 24:44,45) 44절과 45절의 내용
이 단절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는데 비해 누가는 베드로의 질문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상 22절 이후 45절 까지의 말씀은 제자들을 대상으로 주신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가 베드로의 질문을 첨가한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 말씀
들이 자기 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하기 위함이다.

=====12:42
청지기가...누구냐 -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대답 대신 또 다
른 비유의 말씀으로 답하셨다. 비유의 내용은 일차적인 대상이 제자들임을 암시하고
있지만 누구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47, 48절)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고 보아야 하며 '누구냐'라는 질문은 청중들을 비유의 주체와 동일시하는 의미가 있
다(Bultmann,Grundmann). 여기서 '청지기'(* ,오이코노모스)는 주인을
대신하여 재산과 종들을 관리하는 직무를 가진 자로 자유인도 있고 종도있으나 여기
서는 후자의 경우이다. '청지기'에서 요구되는 것은 '충성'(고전 4:2)과 '지혜'
(16:8)이다. 청지기와 구분되는 '종들'은 헬라어 '데라페이아'(* ) 의
번역인데 이 말은 '돌봄' 또는 '섬김'을 뜻해 '주인을 돌보는 식솔' 또는 '주
인을 섬기는 자'란 뜻이다. 청지기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는 진실과 지혜로 생활을
절제있게 꾸려나가는 것과 종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자기에게게 맡겨진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경상으로 모범적인 청지기는 아브라함의 청지기 엘
리에셀과(창 15:2) 보디발의 청지기 요셉을 (창 39:4, 6) 들 수 있다.

=====12:43
주인이...복이 있으리로다 - 37, 38절 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축복이 선언되
고있다. 하나님의 칭지기 직분을 맡은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인데, 그 직분을 충
실히 감당한 자에게 상급이 있으리라는 약속이 주어진 것은 실로 놀라운 은혜이다. 우
리의 싸움은 결코 허공을 치는 것같지 아니하며 분명한 목표와 약속을 향한 것이다(고
전 9:26).

=====12:44
모든 소유를...맡기리라 - 이 세상에서 청기기직을 충성스럽게 감당한 성도에게 영
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광스러운 축복과 권세를 부여하신다는 의미이다. 주께 충성
을 다한 사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는 권세가 주어질 깃이며(마 19:28), 또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일반 성도들도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와 함께 왕노릇하게 될 것이다(딤후 2:12).

=====12:45
더디 오리라 - 이 말은 '시간'을 뜻하는 '크로노스'(* )에서 파생된 말
로 '시간이 오래 걸리다', '지체하다'의 뜻으로, 주의 재림 즉 종말론적 절정에 이
르기까지의 공백 기간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마 25:5).
노비를 때리며...취하게 되면 - 이것은 그 종이 청지기의 직분을 오해하고 있으
며 뿐만 아니라 매우 불성실함을 말해준다. 폭력, 무절제, 방탕스러움 등은 그가 청
지기로서의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적나라(赤裸裸)한 모습이다.

=====12:46
엄히 때리고 - (* ,디코토메세이)1는 '두 부분으로'를 뜻
하는 '디카(* )와 '자르다'는 뜻인 '템노'(* )의 합성어로서 '토막
으로 자르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말은 구약에서 재물을 토막내는데 사용하기도 하
며(출29:17), 아주 참혹한 처형을 표현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였다(Apocalypse of
Baruch). 그러나 여기서는 뒤에 이어지는 구절로 보아(47, 48절) 죽이는 것을 뜻하지
는 않으며 매우 준엄한 형벌을 내린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맡겨진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았을 때 내려지는 이 형벌은 잘 했을 때 받는 축복과(44절) 극명한 대조
를 이루고 있다.

=====12:47
알고도...많이 맞을 것이요 - '맞을 것이오'(* ,다레세타이)는 '
'가죽을 벗기다', '때리다'. '뜯어내다'의 뜻인 '데로'(* )의 변화형으로서
주의 뜻을 알고도 행치않는 자가 당할 형벌이 매우 심하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는 표현
이다. '알고 지은 죄'의 중함에 관해서는 성서 여러 곳에서 언급된다(히 10:26, 27;약
4:17; 벧후 2:21). 본문의 의미는 대략 두가지로 이해된다. (1) 지엄하신 하나님의 공
의는 심판과 형벌에 있어서도 만인에게 공정하게 적용된다. (2) 특권에는 항상 책무가
뒤 따른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누리는 위대한 특권의 소유자
를 뜻한다. 그러나 이름 뿐인 신자는 그만큼 더 큰 형벌에 처하게 될 것이다.

=====12:48
알지 못하고...적게 맞으리라 - 이 말씀은 의식적(意識的)인 죄와 무의식적인 죄
를 구분하는 구약의 기록들을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하고(민 15:30;신17:12;시 19:13),
하나님 앞에서 져야 할 책임의 불가피성에 대한 바울의 말과의(롬 2:12, 13) 연관성도
보인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이든 주의 뜻을 행치 않은 자에 대해서는 분명한 책임
을 묻는다는 것이다.
많이 받은 자...달라 할 것이니라 - 이 말씀을 결론으로 비유는 끝이 나고 있는데
본문은 이 비유의 강조점이 주의 뜻을 아는 자의 책임을 부각시키는 데 있음을 시사
한다. 주의 뜻을 아는 자는 많은 것을 맡은 자로서 많은 것을 주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마태의 결론처럼(마 24:51) 슬피 울며 이를 가는 형편에 처하
게 될 것이다.

=====12:49
불 - 본문에서 해석상의 쟁점이 되는 것은 '불'의 의미에 관한 것으로 이에 대해서
는 여러 견해가 있다. (1) 성령, 또는 성령의 능력(Grundmann,Ellis). (2) 영적 활동
(Bengel,Vincent). (3)심판 (Schlatter,Grasser).(4)로마의 침략(Clark).이 가운데
어떤 견해가 정확한 것인지를 판별하기란 어렵지만 앞의 비유와의 연관성을 고려하
건대 (3)의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이 불이...무엇을 원하리요 - 이 문구에 대한 해석 역시 다양하다. (1) 내가 어찌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하고 바라리오(Bleek,Wette). (2) 내가 무엇을 하리요? 이 불
이 이미 붙었으면(Alford,Meyer,Stier).(3)이 불이 붙었으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뇨
(Plummer). (4) 이 불이 이제 붙어지기를 내가 얼마나 바랐는가?(Marshall). 이 가운
데 "이 불이 이제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로 번역하고 있는 공동번역 성서
에 따라 (3)과 (4)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할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본절 전체의
의미는 예수께서 궁극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심판을 내리러 오셨는데 그 불이 결
정적인 의미에서는 아직 타오르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12:50
받을 세례가 있으니 - 여기서 '세례'는 십자가 에서의 즉음을 의미하며(막10:38),
바울도 이 사실을 재차 확언하고 있다(롬6:4).
이루기까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텔레오(* )는 '완성하다'의 의미이
며 이는 예수가 인식하고 있고 맞아들이려고 하는 그의 죽음이 '우연'에 의한 것이 아
니라 성취해야할 사명에 의한 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Kline).
답답함이 -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완성되어야 할 사명으로 인식하고 조금도 주
저함이 없이 그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 일은 결코 일시적 결단이나 가벼운 노력에
의해 성취될 성질이 아니라 실로 고통스러운 도전이었다. 골고다 언덕이 점점 가까
와 옴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닥치는 인간으로서의 고뇌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였던 것이다.

=====12:51
화평을...도리어 분쟁케 - 예수의 오심이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2:14;사 9: 6), 그 평화는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심판을 선행 요건으로 하는 것이다(49
절). 따라서 예수의 오심은 선과 악, 참과 거짓, 진리와 비진리간의 갈등과 분열을 필
연적으로 동반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화평이 아니라 검(劒)을 주기 위해 오신 것이
다(마 10:34).

=====12:52
한 집에...분쟁하되 - 이는 앞에서 언급한 '분쟁'의 성격을 밝혀주는 것으로 그
비극의 심각성과 비참성을 잘 보여준다. 이것이 최악의 상태인 까닭은 분쟁이 가족 안
에서까지 일어나며 그 결과는 천륜이라 할 수 있는 혈연 관계마저 깨트리는 것이기 때
문이다. 이 말씀은 10:21과 막 13:12와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이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당하게 될 고난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데, 이러
한 상황은 단순히 신자와 비신자라는 형식 때문에가 아니라 신자의 진리성과 비신자의
비진리성의 충돌로 인해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12:53
아비가 아들과...분쟁하리라 - 앞 절에서 언급한 ' 다섯 사람'이 구체적으로 열거
되고 있다. 이 집은 아버지, 어머니, 결혼한 아들내외, 그리고 아직 출가(出嫁)하지
않은 딸로 이루어진 5인 가족이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짝말들은 미 7:6 에서 온 것
으로 가족의 비극적 분열을 강조하기 위하여 서술된 표현이다.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
를 따르는 성도들은 예수와가족들 사이에서 양자 택일을 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하며 그것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될 것이다(마10:36;눅
18:29).

=====12:54
또...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 청중이 제자들에서 무리들에게로 바뀌고 있
다.이 말씀은 팔레스틴의 지리적 조건에서 비롯되는 기후의 상태를 알면 이해하기 쉽
다. 즉 팔레스틴에서의 비는 지중해의 습도 높은 바람에서 기인하는바 서쪽 다시 말해
서 지중해쪽에서 구름이 일어나는 것은 곧 비가 올 것에 대한 예고였다.

=====12:55
남풍이...심히 더우리라 - 이 역시 팔레스틴의 지리적 조건에 의한 일반적인 현
상으로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곧 아라비아 광야 방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뜻하며
따라서 이 열풍은 더운 날씨를 예고해 주는 것이다.

=====12:56
천지의 기상은...분변치 못하느냐 - '천지의 기상'에 대비되는 '이 시대'가 무엇
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몇가지 견해가 있다.(1) 예수의 선교 활동과 관련된 사
건들, (2) 인간들의 결단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행위(Marshall). (3)예루살렘의 멸망
또는 그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종말(Jeremias). 본문은 이러한 제견해들을 종합하여
이해되어야 옳을 것이다.예수는 이러한 시대적 징후를 분별하지 못한 유대인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시대를 분별하여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진지성이 결여된 태도 때문이었던
것이다.

=====12:57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 유대인들이 시대의 징후를 분별하려 하지않
음을 책망하는데 그치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촉구하는 말씀이다. 여기서는 '스
스로'가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일반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행동하지 않고 바
리새인이나 서기관들 같은 거짓 지도자들의 판단에 의존하려 한 것이 자의(自意)에 의
한 것이며 따라서 그 책임에 대해 변명될 수 없음을 지적한 말씀이다. 특히 '판단치
못하느냐'가 아니라 '판단치 아니하느냐'라는 표현은 그들의 자의적인 불성실함을 분
명하게 드러내준다.

=====12:58
내가...화해...힘쓰라 - 본문의 핵심은 법정에 서기 전에 화해를 해서 문제를 해결
하는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는 깃이다.'화해하기를'(* ,아팔라쏘)
은 '벗어나다' '떠나다'의 의미를 갖는 법률 용어로 고소자로부터 벗어나 자유한 상
태에 놓인다는 뜻이다. 본문에서 이 말이 지시하는 최종적 의미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촉구하는 것이라 하겠다(Hendriksen,Liefeld). 채무자가 법정에 서기전에 어떻게 해
서든 채권자와 화해하는 것이 감옥에 갇히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유대
인들도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법정에 서기전에 하나님과 화해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늦
기전에 시대의 징후(徵候)를 분별하여 회개하고 바로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한
편 '길에서 라는 표현은 화해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음을 암시하며, 기회가 있
을 때 즉 늦기 전에 속히 하나님과 화해하라는 것이다.

=====12:59
호리라도 - '호리'(* , 려톤)는 유대의 가장 작은 화폐 단위를 가리킨
다.마태의 평행 본문에는 '두 호리'에 해당하는'코드란테스'(* )로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하찮은 액수라 할지라도 갚지 않고는 감옥에서 나올 수 없음과
마찬가지로 일단 주어진 기회를 상실하여 하나님과 화해하지 못하여 심판을 받게 되
면 그 결과를 되돌리기가 불가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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