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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누가복음 16장 주석

작성자예수사랑|작성시간03.07.11|조회수16,327 목록 댓글 0


누가복음 제 16장
=====16:1
어떤 부자 - 현장에 관리를 둔 대지주(大地主)이거나 (Jeremias) 혹은 당시 갈릴
리에 흔하였던 부재 지주(Grundmann)를 가리킨다고 본다. 아무튼 사람들이 그에게 빚
진 정도를 보아 그는 큰 부자임에 틀림없다. 한편 부자가 누구를 상징하는가 하는 것
에는 많은 의견듸이 있다. 알포드(Alford)에 의하면 '그 부자'는 이 세상의 아들을,
메이어(Meyer)는 맘몬(돈의 신)을,올스하우젠(Olshausen)은 마귀를, 쉴라이에르마허
(Schleiermacher)는 로마인을 상징한다고 본다. 그가 누구를 가리키든 간에, 본 비
유의 초점은 위기의 때를 맞아 지혜롭게 재물을 융통한 청지기에 맞춰져 있다.
청지기 - 이 말은 맡은 재산을 관리하도록 위탁을 받은 '고용인'이나 '대리인'을
가리키는 광범위한 말이다.KJV에는 '간사' 혹은 '급사', '집사'의 뜻인 '스튜어드'
(steward)로 번역한다. 청지기는 주인의 조일 수도 있으며(창 39:4-6) 또한 자유인으
로서 주인과 고용 계약을 맺은 자일 수도 있다.그런데 이 비유에서와 같이 그들은 맡
은일의 성격상 재산을 관리하는 동안 부정(不正)을 저지를 가능성이 항상 있었다.한편
이 청지기가 누구를 상징하는가 하는 것도 그의 주인인 '어떤 부자'에 관한 의견과도
같이 다양하다.알포드(Alford)에 의하면 청지기는 모든 제자들 즉 그리스도의 교회 안
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한다.한편 바리새인 혹은 가룟 유다 심지어는 본디
오 빌라도를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그러나'어떤 부자'와 마찬가지로 이'청지
기'또한 개별적으로 특정 사람을 가리킨다기 보다는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
다만 예수는 당시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었던 본 비유와 같은 전체적 상황을 통해 당
신의 제자들에게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 교훈하고자 하셨을 것으로
짐작 된다.
허비한다 - 헬라어 '디아스코르피조'(* )는 돈이나 재물 등을
마구탕진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아마 청지기는 횡령 혹은 부실 경영을 퉁해 주인의 재
산을 축내었으리라 보여진다. 예레미야스(Jeremias)에 의하면 고대 근동사람들은 부
기(簿記)나, 규정된 회계 감사등을 몰랐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유에 나오는 셈
(account), 증서(statements) 등의 용어로 미루어 보아 그 당시에도 이미 장부(帳簿)
등은 사용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6:2
이 말이 어찜이뇨 - 헬라어 '티 투토'(* )에 대해서는 (1) '이것이
무슨 말인가?', (2)' 왜 내가 이것을 듣게 되었는가?'등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물음은 단순히 주인이 듣게 된 내용의 사실성 여부를파 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들은 내용의 일부 혹은 전부를 사실로 여기고 '왜 그러한 잘못
을 행했는가'라고 질책하는 말이기 때문에 (2)의 해석이 보다 정확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네 보던 일을 셈하라 - '보던 일'의 헬라어는 '로고스'(* )이다. 로고스는
'말씀', '이성', '사건' 등의 뜻도 있지만 본절에서는 '계산'(account)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청지기는 주인의 모든 재산을 다 관리할 뿐만 아니라 재산 목록과 장부 및
각종 문서를 작성,보관하는 일까지 챗임맡고 있는 관리인이라 할수 있다. 한편 '셈하
다'의 뜻인 '아포디도미'는 단순히 계산하는 것만이 아니라 (결산해서) '넘겨주다',
(증서를) '양도하다'(render,KJV)는 의미까지도 내포된 말이다. 그러므로 본절 전체는
'네가 지금까지 해오던 모든 사무를 청산(淸算)하여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라'는 의미
가 된다.

=====16:3
땅을 파자니 - '파다'의 원어 '스카프토'(* )는 일반적으로 정신 노동과
반대되는 의미에서의 육체 노동을 가리킨다. 본절에서는 육체 노동 중에서도 농사짓는
것이을 의미한다.
빌어 먹자니 - '에피이테오'(* )는 '위를(위에)'이라는 뜻의 '에피'
와 '요청하다'는 뜻의 '아이테오'의 합성어로서 '구걸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렇듯
삶의 위기 의식을 느낀 칭지기의 독백은 무엇을 해도 절망적이기만한 급박한 상태를
나타낸다. 한편 그 청지기는 비록 부정을 저질렀지만 신속한 판단과 빈틈없는 사고의
소유자였다. 즉 자신의 처지와 능력을 파악하고 즉시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결단한 것이다. 결국 이 같은 결단은 곧 우리 인생 전반에 걸쳐 항상 우리가 잊지
말고 생각해야 할 바를 제시해 주고 있다.즉 우리 인간은 자신의 삶에 주어진 여러 가
지 난감한 상황 속에서 현실을 회피하거나 스스로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자신
있고 결단력 있게 살아야 함을 가르쳐 준다. 사실 신앙 생활을 한 마디로 특징 짓는다
면 그것은 결단(決斷)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해고된 모습에서 우리는 자
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16:4
직분을 빼앗긴 후에 - 이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이 마치 자신의 것인양 흥청 망
청 써 버렸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안 주인은 그를 해고하게 되고 그는 난처한 상황에
서 살길을 찾아 헤매게 된다. 이 같은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자신이 부여받은 힘과 지혜와 재물 등 모든 것들이 마치 자신의 것이며 자신의
능력에 의해 스스로 획득한 것인양 여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에 불과하며 우리 인간들은 그것들을 가지
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창 1:28-31;욥 1:21).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을 낭비라는 삶은 곧 이것들을
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이며,교만한 소행인 것이다.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대하여
청지기 의식(stewardship)을 가지고 겸손한 자세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19:13;마 25:14,15;고전 6:20;벧전 4:10).

=====16:5
빚진 자 - 여기서 주인과 빚진 자의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예레미야
스(Jeremias)에 의하면 빚진 자들은 아마도 토지수확의 일정량을 소작료로서 지불해야
될 소작인들이거나 또는 채무 증서를 쓰고 곡물을 받은 도매 상인들을 가리킨다고 한
다. 그런데 청지기나 빚진 자들이 이미 전에 서명한 '증서'를 위조(僞造)할 수 있었다
고(6, 7절)한다면 아마도 이 빚진 자들은 청지기와만 계약을 맺은 것 같다.

=====16:6
기름 백 말 - 빚을 기록한 증서는 헌금이 아닌 물품으로 적혀 있는데 이는 아마도
이자의 실제적인 양을 숨기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W.L.Liefeld). 본문에서 빚진 자들
의 빚진 수량은 대단히 많았는데 예컨대, 밀 백말은 약 백 에이커(acre)의 땅에서
산출되는 양이라고 한다. 요세푸스(Josphus)에 의하면 '말'의 뜻인 헬라어 '바토스'
(* )는 대략 23리터(l)에 해당된다. 따라서 기름 백 말은 약2,300 리터에 달
한다. 팔레스틴에서 감람나무 한그루의 평균 수확량은 올리브 열매로 120Kg,기름으로
는 25리터가 된다. 그러므로 기름 백말은 감람나무 약 92그루의 소산에 해당하며,돈
으로 환산하는 경우에는 천 데나리온 정도가 된다.
증서를 가지고...쓰라 - '증서'의 뜻인 헬라어 '그람마(* )는 '문서',
'글'을 가리키는 말인데 본 절에서는 '채무 증서'를 가리킨다. 본문의 청지기는 채
무자들에 의해 작성된 임대차 계약서나 채무 증서 또는 약정서롤 보관하고 있었는데
증서를 채무자들로 하여금 자필로 다시 고쳐 쓰게 하거나, 새로 쓰게함으로써 속임수
가 들키지 않도록 했다. 한편,율법에 의하면 이자롸 받는 행위가 불법으로 되어 있으
나(출 22:25;25:36, 37;신 15:7, 8;23:19, 20)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경우가 흔했다. 따라서 본문의 청지기 또한 주인 몰래 이
자를 착복해 오다가 궁지에 몰리자 그 이자부분 만큼 탕감해줌으로써, 빚진 자에게 선
심을 쓰는 한편 주인에게도 손해가 가지 않도록하는 기지를 발휘했던 것으로 짐작된
다.

=====16:7
밀 백 석 - '석'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로스'(* , 히브리어 '코르'( )에
서온 마른 곡식을 재는 단위)는 약 27,500Kg으로 42헥타아르 정도의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량이다. 돈으로 환산하면 밀 1 코르의 표준가격은 금 25 데나리온이며 은
화로는 25데나리온에 해당한다. 따라서 밀 백 석 은 2,500데나리온에 해당된다.
팔십 - 기름을 백 말 정도 빌린자에게 그 절반인 오십 말로 공재(控除)해 준것에
비해 밀 백 석을 빚진 자에게는 5분의 1정도인 20석만을 공제해 주었는데 이는 두 물
품의 상품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 팔레스틴에
서는 밀이 기롬보다 훨씬 비쌌다. 빚진 자들이 가각 삭감받은 수량 즉 기름 50말, 밀
20석을 돈으로 환산하면 모두 각각 5백 데나리온 정도가 된다.오백 데나리온이라고 하
는 금액은 1데나리온이 임금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음을 감안해 볼 때 노동자 한 사
람이 약 16개월 둥안 일해야 벌수 있는 금액이다.
네 증서를 가지고 - 청지기는 주인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채무자들이 직접 자필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일은 청지기가 임대차 계약이나 채무자들과의 계
약을 전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청지기는 채무자들에게 유
리한 방향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여 각각 절반에서 1/5정도로 부체를 탕감(蕩減)해 주었
다. 미루어 짐작컨어 다른 채무자들에게도 이러한 수준에서 빚을 탕감해 주었을 것이
다. 이렇게 빚을 탕감해준데 에는 그 채무자들이 청지기가 쫓겨난 후 그에게 받은 은
혜로 인하여 그의 생계(livelihood)를 책임져 줄 것이라는 저의가 숨어 있다.

=====16:8
이 세대의미...더 지혜로움이니라 -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보다
자신들의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더욱 지혜롭다는 뜻이다. 즉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
의 일처리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더욱
지혜롭고, 단결이 잘 되며, 열성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때때로 그들은 목적을 위해 수
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유대(紐帶) 관계가 하나넘의 자녀들
끼리의 관계보다 더욱 긴밀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도 세상의 사
람들에게 배울 것이 많다.즉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서로 반목(反目) 하며
자신들만이 진리에 선 것 것처럼 타인을 멸시하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하지만 본
절의 목적은 불신자들이 지혜롭게 행한 것보다 성도들은 더욱 지혜롭게 행하여야 한다
는 데 있지 결코 불신자들의 부정직과 사기술을 칭찬한 데 있지 않다(롬 2:6-8).

=====16:9
불의의 재물 - 혹자는 이 말을 금욕주의적인 쿰란(Qumran)종파의 이원론과 같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 즉 인간의 육체를 비롯한 모든 물질을 악하다고 보는 관점에서
나온 히브리적 표현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부정직하게 얻은 재물'이라기
보다는 '하늘의보화'에 반대되는 의미로서의 '세상의 재물'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겠
다.
친구를 사귀라 - 재물이 선용(善用)되지 못하고 악용될 경우 황금만능 풍조가 만연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의 재물일지라도 그것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재물을
선용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시친구를 사귄다고 하는 말은 KJV에서는 '스스로 친
구가 되게 하는 것'(make to yourselves friends)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 '친구
들'이라고 하는 말은 어떤 특정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Danker), 예수께서는 물론,
누가 자신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구제해야 할 '가난한 사람들'을 말한다.
따라서 이 말은 세상의 재물을 사용하는 유일한 방법 중의 하나는 자신이 가진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의 진정한 이웃이요 친구가 되라고 하는 말인데 이
는 곧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길'(12:33;마 6:20)이 된다. 이 의미를 좀더 확대하
면 '친구'는 곧 '하나님'을 의미한다고도 볼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가난한 자
들과 불우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것이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12:33; 마 :20;19:21;25:31-46).
없어짙 때에 - 세상의 재물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쌓아 두어서는 안된다. 왜냐하
면 언젠가는 부요함이 사라지고 남는 것이 전혀 없는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12:21).한편'없어지다'라고 하는 말의 헬라어 '에클레이포'(* )
는 일반적으로 부와 세상 재물이 다 소용없게 되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
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후반부의 '영원한 처소'를 단순히 재정적(財政的)인 면에서
안전한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성도의 영원한 고향인 하나님의 나라로
서 이해한데 따른 것이다.
영원한 처소로 - 일반적으로 장막의 뜻인 '스케네'(* )는 일시
적인 거주지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영원한 것 즉 영구적인 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하나
님이 임재하시는 곳으로서의 초월적인 영원한 나라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 전체의
의미는, 재물을 잘 사용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도움을 주면 이 세상에 종말이 오고 죽
음을 맞이하게 되어도 하나님이 그를 잊지 않고 영원한 하늘나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께서 구원의 방법론으로 제시하신 것은 아니다.

=====16:10
지극히 작은 것..,큰 것 - '지극히 작은'의 뜻인 헬라어 '엘라키스토스'
(* )는 '작은'의 뜻인 '미크로스'(* )의 최상급으로,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이 잣은 것, 보잘것 없는 것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큰', '많
은'의 뜻인 폴뤼스(* )는 원급 형용사이다. 이 지극히 작은 것과 큰 것의 또다
른 표현은 11절에 의하면 불의한 재물과 참된 것, 12절에 의하면 남의 것과 너희의 것
이된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세상의 재물은 하늘의 보화 즉 복음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응 정도로 작은 선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세상 재물을 지극히 작은 것이라고 부
름으로써 주님은 우리에게 재물의 가치를 과대 평가하는 것을 경고(警告)하셨다.
충성되고 - 직역하면 '충성된 자가 된다'고 하는 말이다, 여기서 '충성된 자' 헬라
어로 '피스토스'(* )인데 이 말이 어원은 '믿다, 옳게 여기다'의 뜻인 '페
이도'(* )이다. 따라서 지극히 작은 것 즉 불의의 재물에 '충성하는 자'란 재
물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고 '돈의 힘'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
니라, 재물을 주고받고 또 보관하는 등의 경제 생활 영역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
뢰를 받는 사람임을 의미한다.결국 본 주석에서는 비록 청지기의 죄가 간사한 것이긴
하지만 난관을 타개해 나가는 열심과 지혜만큼은 칭찬을 받았다고 설명하였다. 반면
리빙 바이블(Living Bible)은 이를 죄악된 술수로 규정할 뿐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자
녀들이 이 청지기와 같은 식으로 처신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투로 번역하고 있다. 이러
한 상이한 해석에 관해 정확 한 답을 제시하기는 힘들지만 전체적 문맥을 고려하건데
본 주석의 해석이 무난하리라 본다.

=====16:14
돈을 좋아히는 자라...비웃거늘 -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과 노고에 비추어 그만한 물질적 대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당연한 측복이라고 생각했으며 나아가 사회적 특권을 이용하뗘 축재하는 일
을 당연시 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는 결과를 초
래했다. 그들은 위선(僞善)의 탈을 쓰고서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척 하는 자들이었
지만 그들의 주관심사는 재물에 었었다. 이렇듯 탐욕이 가득하면서도 스스로 의인으로
자처하는 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여러가지 비유(15:1-16:13)로써 그들의 잘못을 날
카롭게 지적하셨다. 이에 대해 그들은 한낱시골 출신의 이름 없는 선생인 예수를 비웃
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 교만한 자들은 그 눈이 어두워져 진리를 올바로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18:11;욥 33:9;요 9:41;계 3:17).

=====16:15
스스로 옳다 하는 - '옳게 여기다' '정당화하다'의 뜻인 '디카이오오'(*
)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정당화하려고 애쓰다'이다. 즉 이는 성도가 그의
믿음 즉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의 게명을 지킴을 통해서 인정받게 되는 '하
나님의 의'와는(롬 1:17) 대조적으로 사람 앞에서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고 이를 정
당화(justify)하려고 애쓰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 앞에서...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 스스로를 의롭다 하고 그것
을 정당화하려는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으니 그들은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기 원
하는 자들이었다. 특히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 메우 엄격하였으며 당시 헬라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신들과 이스라엘의 종교를 지키는데 앞장섰기 때문에 대단한
자존심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따라서 그들은 당시 이스라엘 종교계의 다른 분파들
인 사두개파(Sadducess)와 에세네파(Essenes) 그리고 일반 백성들을 멸시하였다. 그
리고 그들은 정통적인 율법의 수호자이며 백성들의 종교 지도자로서 자처(自處)하여
일반 백성에게 존경을 받으며 국가로부터도 그에 합당한 대접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교만한 속마음을 다 아셨다. 즉 그들이 인간의 눈은 속일 수 있
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시 139:7-18). 그런데 그들의 이 같은
영적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이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의 교만은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원인이 되며 우리 종교인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영적
교만의 한 예가 된다고 할 수 있다(18:11;요 9:41).

=====16:16
율법과 선지자 - 율법은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의 모세 오경을 그리고 선지자의 글
은 모세 오경을 제외한 구약의 나머지 부분을 가리킨다. 따라서 '율법과 선지자'라
는 말은 구약성경의 대명사이다(마 5:17;7:12).
요한의 때까지요 - 마 11:12 에는 '세례 요한때부터로 되어있으므로 율법 시대와
복음 시대의 구분속에서 세례 요한이 어디에 속하는가 하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헬라
어 상으로는 마태복음의 '때부터'의 뜻인 헤오스(* )나 누가복음의 '때까지'의
뜻인 '메크리'(* )는 모두 요한을 율법 시대에 포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역
사의 전환점을 이루는 요한에 대한 본절의 언급과 관런하여 콘첼만(Conzelmann)은
구속사적 시대 구분이 이 부분에서 행해졌다고 주장한다. 결국 역사는 (1) 율법과 선
지자들의 활동시기와 (2) 예수 자신의 활동시기 (3) 또한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
후의 성령 혹은 교회의 시기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는 예수의 핵심적인 메시지
로서 당신의 가르침 속에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4:43;6:20;9:2;13:
18;17: 21;21:31 등). 그 사상은 성서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구약에는
'나라'라는 말 자체는 자주 언급되지 않으나 하나님 나라의 기본 개념 곧 여호와가
왕으로 살아계셔서 온 세상을 다스린다는 개념이 저변에 깔려있다. 예컨대 하나님은
온 우주의 왕으로서(왕하 19:15;시 29:10;33:13,14),특히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신
35:5;시 48:2) 묘사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현실상의 모든 불의와 궁핍이 제기된
이상적인 미래의 왕국에 대한 비전도 제시되어 있다(시 146:10;사 24:23;34:12;52:7).
이례듯 구약 속에서 그림자처럼 암시되던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
도의 사역과 더불어 이 땅에 실제로 임하게 된 것이다.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 마 11:12 에는 '침노를 당하다'라고 하는 수동태
로 되어 있는 것에 반해 본절에서의 '비아제타이'(* )는 '침입하다'의
중간태 형이다. 여기서는 능동태와 복음에 대해 역동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의 적극
성을 나타낸다. 여기서 사람마다 그리로 들어가기를 힘쓰고 있다고 하는 표현은 만인
에게 복음이 개방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누가의 관심을 반영한다. 다시말해, 율법과 예
언자들은 천국을 예언하는 일을 하였고, 세례 요한은 도래할 천국을 예비(豫備)하였으
나 메시야이신 예수를 통해서 천국은 이미 도래했으며 따라서 사람들이 그 천국을 붙
잡을 수도 있고 얻을 수도 있으며 거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천국이 비록 종
국적(終局)완성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수안에서 그와 더불어 하나의
강력한 현실로 세상에 들어왔고 따라서 사람들이 소유하게 되었으니 누구라도 믿음으
로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본절의 의미는
이미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는 가고 그들 앞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는데도 불구하
고 바리새인들이 게속 율법 준수를 고집하는데 대한 깨우침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16:17
한 획 - 마 5:18에 의하면 이는 '일점 일획'(一點一劃)이라 표현되어 있다.
'획'은 히브리어에 있어서 한 문자를 다른 문자와 구분 지어 주는 역할을 하는 가
장 작은 단위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점'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히브리
어 문자 중 가장작은 글자인 '요드'( )를 가리키며 헬라어의 '이오타'(* )와 상
응한다. 한편 '일획'이라 했을 때는 '벱;카프/달렛/헤;헷( ; / ; / ; )따위
등의 비슷한 모양의 글자를 구별해주는 돌출 표시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은 율법
의 절대성과 영원성을 강조하는 말로 구약성경의 붓한번 살짝 움직인 정도의 아주
조그마한 내용 조차도 모두 권위(權威)를 갖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이 말은 세상
이 없어지기 전에는 결코 구약의 말씀이 변치 않으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의도는 비록 복음이 이 땅에 전파되어 복음의 시대가 임했지만 구
약의 예언과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리라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서였다(마 5: 18). 왜
냐하면 복음은 율법의 완성에서 오는 사랑과 은혜와 용서의 결실이므로 복음과 율법은
나누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셨을 뿐 율법을 폐기하
신 것은 절대로 아니다. 사실 율법의 말씀을 바르게만 이해한다면 구원(救援)의 확실
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갈 3:24). 이렇듯 율법과 복음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며
상호 보완적 역할에 의해 영원히 존속될 것이다.

=====16:18
무릇...간음함이니라 - '음행한 연고'라고 하는 단서를 붙인 마 5:32절보다 본문
은 훨씬 더 엄격한 인상을 준다. 당시 이론에 관한 견해는 매우 다양했으나 그중 보수
적인 샴마이학파(School Hillel Shammai)의 진보적인 힐렐학파(the Hillel School) 의
견해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었다. 전자는 이혼 조건을 부정(不貞)이나 율법 파기
등에 국한시킨 반면 후자는 어떤 이유든 어느 한 쪽에서 이혼 의사를 밝힐 경우
에는 이혼이 가능하다고 가르쳤다. 특히 힐렐의 경우는 여자 음식 솜씨 여하에 따라
이혼도 가능함을 시사하였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부도덕한 결혼 생활을 반영하
는 표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께서 갑자기 '이혼 문제'를 제기한 깃은 특별
히 '이혼 문제'를 통해서 율법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무지를 지적하시
고 율법의 영구성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 19:6-8의 '하나님이 짝지어주
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은 바로 율법의 진정한 정신을 잘 나타낸
말씀이다 .그러나 모세가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보내라'(신 24:1-4) 한 말씀은 다만
사람의 마음의 완악함을 인해서 허락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율법과 선지자는 요
한의 때까지이고 지금은 복음과 메시야의 시대지만 율법의 진정한 정신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16:19
한 부자가...연락(宴樂)하는데 - 이부자는 왕같이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
였다. 그의 의복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이었는데 자색 옷은 당시 왕이나 귀족들만이
입던 매우 비싼 옷이었으며 고운 베옷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두 배나 더 비쌌다. 또
한 그는 매일 잔치를 벌여 세상 연락을 즐기는 생활을 하였다. 사실 부자가 누리는 부
(富) 자체가 죄일 수는 없다.다만 넘치는 부를 누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위에 있는 가난한 거지 나사로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데에 부자의 잘못
이있다. 일반적으로 부자는 자신의 부귀가 스스로의 뛰어난 노력에 대한 대가로 주
어진 것이라 믿으며 가난한 자들의 가난을 무능과 게으른 탓이라고 돌려버리기 쉽
다. 따라서 부자는 점점더 특권 의식과 교만에 사로잡히게 된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
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 만큼 어렵다고 경계하신 예수의 말씀은(18:25)
재물의 강한 부정적 흡인력을 경계하신 것이기도 하지만 부자들의 이러한 냉혈성을 염
두에 두신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16:20
나사로 - 이는 히브리어 '엘리에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
라는 뜻이다. 예수의 비유들 속에서 등장 인물에 이름을 붙인 경우는 이곳 한 군데 뿐
이다. 이는 가난한 사람의 경건을 암시하기도 하나 그가 지금은 고통 중에 있으나 죽
은 후에는 평안을 누리게 됨을 암시하기도 한다. 한편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종의 이
름과 일치하는가 하면 나사로는 요 11장에 나오는 인물 마르다, 마리아의 오라버니요,
예수께서 죽음 가운데서 다시 샬린자의 이름과 같다.
헌데를 앓으며 - 나사로는 몸도 꼼짝할 수 없는 불구자(* , 에베블
레토. '던져져 있는')이며 피부병을 앓는,거지이다. 그의 병이 '궤양' 혹은 '종기'라
고도 하지만 문둥병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사로가 문둥병 환자라고 한다면 그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함께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대문 - '퓔로나'(* )는 보통의 대문과는 달리 장식이 된 높은 솟을 대
문과 갈은 것으로서 그 부자의 집의 호화스러움과 사치를 엿볼 수 있는 말이다.

=====16:21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 대개의 유대인들의 경우 일단 그릇에서 바닥에 떨어
진 빵조각은 먹어서는 안 되며 도로 접시에 담지도않는데 이는 전염병을 염려해서 생
긴 습관이다.오히려 그들은 찌꺼기를 식탁 아래로 버린다(S.Kraub). 여기서 '떨어지
는 것'이라는 말은 '던져지다'의 의미이다. 즉 부자의 식탁에 앉은 자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음식을 땅 바닥에 던진것을 뜻한다.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 여기서 개란 사람들이 집 안에서 기르는 개인
'퀴나리온'(* )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납게 거리를 쏘다니는 개의
뜻인 '퀴온'(* )이다. 이러한 개에게 시달리는 사람이란 고대 유대교의 인과
응보(因果應報)사상에 의하면 하나님에 의해 벌을 받고 있는 죄인을 의미한다. 리펠
드(Liefeld)에 의하면 개들이 와서 헌데를 핥는 것은 나사로가 '개'에게까지 모욕
을 당한 것을 뜻한다고 한다. 한편 몇몇 학자들은(Vincent,Geldenhuys,Alford) 개들
만이 나사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헌데를 핥아주었다고 해석한다.

=====16:22
천사들에게 받들려 - 성도들의 삶을 보호하고 인도할 뿐만 아니라 사후에는 그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천사의 역할을 보여주는 표현이다(행 27:23;히 1:14). 한
편 후기 유대교 사상에 의하면 의로운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을 선한 천사들이 받들어
모셔가고, 악한자가 죽으면 악귀들이 데려간다고 한다. 아마도 성대한 장례식이 있었
을 부자의 죽음과는 달리 거지인 나사로는 장례식도 없이 공동 묘지와 같은 곳에
버려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그들의 영혼이 도달하게 된 장소는 전혀반
대였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 '아브라함의 품'은 낙원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일반적
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막 12:26;행 7:32)
이시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약 2 :23)으로서 낙원에 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본문은 간접적이나마 사후의 중간 상태에 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많
은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부분이다. 인간이 죽은 후 머무는 처소에대하여 성경이 결
정적인 확증을 주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성경 여러 곳의 종합적 고찰을 통해(단
7:10;마 25:31,46;롬 14:10;고전 15:44;히 9:27) 대략 다음과 같이 추론해 볼수 있다.
즉, 사후에 인간의 육체는 무덤에서 부패하나 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 상태인 낙원
과 음부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성도들의 영은 낙원에, 불신자들의 영혼은 음부에 가
는데 낙원은 이 세상에 비해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곳인 반면, 음부는 이 세상에 비
해 고통스러운 곳이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도래할 완전한 천국과 지옥에 비하면 그야
말로 그림자에 불과하다(23:43;고후 12:4;계 2:7;6:9-11;7:9,10;20:13).

=====16:23
고통 중에 - 24절에는 그가 '불꽃'가운데서 고통당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지
옥의 상태가 종종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당하는 고통 상태로 묘사된다(막 9:43).
이 불로인해 당하는 고통이 문자 그대로인지 아니면 상징적인 것인지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거지 나사로의 축복된 모습과 비교해 볼 때
철저한 결핍과 소외의 상태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즉,의인들이 풍성하고 사랑
가득한 교제의 축복을 누리는데 반해, 악인들은 그 마음 속에 있는 엄청난 탐욕과는
정반대로 결핍 가운데서 목말라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 부자의 돈을 매개로 찾아든
수많은 사람들의 아첨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말자 더 큰 결핍과 소외에 직면케 된
것이다.
눈을 들어...보고 - 예레미야스(Jeremias)는 말하기를 '의인들과 악인들이 저 세상
에서 서로 마주 본다고 하는 것은 후기 유대교에 잘 알려진 표상'이라고 하였다. 그러
나 13:28에 의하면 저주받은 자들이 축복받은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은 최후심판 이후
에나 있을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여기서 예수께서는 장차 지옥에서 당할 끔찍한 고통
의 장면을 어느 정도 앞당겨 보여줌으로써 경고의 뜻을 강조하고 있다 하겠다.

=====16:24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신앙의 조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를 가리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요 8:39). 이 부자 역시 아브라함
의 혈통을 이어받은 유대인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부자는 아브라함의 자손됨을 자랑
하는 바리새인들처럼(마 3:9) 혈통적 특권에 의지하여 긍횰을 얻기를 간구한다.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 21절에서의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이라는 표
현과 대조가 된다. 후기 유대 사상에 의하면 의인들이 있는 곳에는 생수가 흐르고 있
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상태가 저 세상에서는 완전히 뒤바뀌
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고민하나이다 - '오뒤나오'(* )의 원래 뜻은 '괴로움을 겪다', '고통당
하다'이다. 이 말은 '고틔', '근심', '비탄'의 뜻인 '오뒤네'(* )에서 온 것
으로, 고틔 으로 인해서 울부짖지 않을 수 없는 극심한 상태를 나타낸다. 이는 육체적
고통을 의미할 수도 있으나 영적 절망과 소외감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

=====16:25
얘 - '테크논'(* )은 일반적 으로 부모가 자녀를 부르는 호칭으로 남자
아이일 경우 '아들아'하는 말이며 여자 아이일경우 '딸아'라는 말과 같다. 아브라
함은 그를 '아들아'라고 부름으로써 그 자손됨을 시인(是認)하였지만, 다음에 나오는
구절의 내용으로 보아 자신의 자손 즉 선택된 민족이라고 하는 유대인만의 특권이 결
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가치로는 인정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네 좋은 것...고난 - '네 좋은 것'(your good things,NLV)의 '네'라고 하는 소유
대명사는 12:21에서 볼수 있는 바와 같이 '자기를 위하여'라는 의미와 유사하다. 그
러나 나사로가 받은 고난(bad thing,NLV)앞에는 소유 대명사가 없음으로,부자가
받은 '좋은 것'은 자신의 재물로 누린 안락인 반면 나사로는 자신의 잘못에 의해
서 받은 고난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나사로가 사회의 구조적인 악 또는 가난
등에 의해서 바리새인들로부터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라는 정죄를 받았던 세리와 창기
들과 같은 자였음을 암시한다.
위로를 받고...고민을 받느니라 - '위로를 받고'의 원어 '파라칼레오'(*
)는 '옆으로 혹은 자기가 있는 쪽으로 부르다'의 뜻이 있다.이는 고통이나 슬픔
을 당한 사람 옆에서 그를 격려,고무하는 것과 같은 행위를 의미한다.한편 본 구절이,
지상에서의 부유함이 저 세상에서는 고난을,지상에서의가난함이 저 세상에서는 위로를
받는다는 단순한 인과 응보론적 논리를 가르치거나 부는지옥을,가난은 낙원을 예비한
다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탐욕과 이기심과 허영을 위해 자기자신의
재물을 사용하는 사람보다는 가난하여 다른 사람을 돕지는 못했으나 그의 이름'나사
로'(하나님의 도우시는 자)에서 그 견건성을 추측할 수 있는 거지가 더욱더 하나님의
나라에 어울리는 자라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수 있다.한편 스탤톤(Stanton)에 의하면
'그 부자는 재물만을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무관심한 죄 때문에정죄 받
았다'고 한다. 즉 여기서 무조건 정죄되고 있는 것은 바로 재물의 남용,과소비와 가난
한 이웃들에 대한 묵가심과 외면이다.이 비유는 그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이웃을 향하여
나내었던 냉혹한 태도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16:26
큰 구렁이 끼어 있어 - 정확한 의미는 '큰 구렁이 영원히 고정되어 있어서'이다.
'큰구렁'의 원어 '카스마아(* )는 '벌어진 틈'을 가리킨다. 이 큰 구렁은
팔레스틴의 사막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형으로서 장마철외에는 전혀 물이 없는
골짜기를 지칭하는 말인 '와디'나 '협곡'을 가리킨다. 이 큰 구렁에 대한 아브라함의
언급은 하나님의 결정이 결코 변경될 수 없는 것임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서 이는 (1)
이 땅에서는 회개할 기회가 있지만 죽고 나면 더 이상 그 같은 기회가 없게 된다는 것
과(2) 죽음에 의해 결정된 각자의 처소는 어느 누구의 권세의 능력으로도 변경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톨릭에서는 '연옥'(purgatory)이
란 교리를 만들어 지상이 있는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들이 연옥에 가있는 자를 위
해 미사나 헌금, 각종 교회 봉사를 행할 때 그는 점차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김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이는 성경에 위배되는 사상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벧전
3:18-20).

=====16:27
나사로를...보내소서 - 유대인들 중에는 죽은 사람을 퉁해서(물론 그 방법은 꿈이
든지 환상일 수 있다) 산 사람들에게 전갈을 보낼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많았다. 그
들은 그 예를 구약의 사울이 엔돌에서 죽은 사무엘을 만나본 사실에서 제시하기도 한
다(삼상 28:8-19).그러나 사람이 죽게되면 그 영혼은 즉시 지상의 세게와 다른 차원의
영적 세계로 옮겨지고 지상의 세계와 교통하지 못한다고 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
거해 볼 때(19-31절;23:43;고후5:1) 사울의 경우는 사단의 기만에 속은 예였다. 한편
여기서 부자는 나사로를 여전히 그의종 정도로 생각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하
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현세에서의 신분 차이가 저 세상에서도 여전히 효력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말이다.

=====16:28
증거하게 하여 - '증거하다'의 헬라어 '디아마르튀로마이(*
)는 '자세하게 모든 것을 증언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확언이나 맹세 또는 경고
등을 의미한다.이는 죽고나서 음부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심판의 엄정함과 무서움을 깨
닫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가족에게만 나사로를 보내주도록 요청한 것은
여전히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음을 나타낸다.

=====16:29
모세뫄 선지자들...그들에게 들을지니라 - '들을지니라'의 원어 '아쿠오'(*
)는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이해하는 것, 더 나아
가서는 들은 바대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에서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은 그들의 말씀을 듣고 암송할 뿐만 아니라, 그대로 행하라고 하는
의미이다. 한편 부자는 나사로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그의 다섯 형제에게 나타난다
면 그들이 나사로를 하나님의 사자로서 확실히 믿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
수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를 끊임없이 강조한 모세와 선지자들을 그들이
믿지 않는다면 그들은 설령 죽었다 살아난 자가 경험담을 이야기해준다고 해도 그것을
거짓으로 단정해 버리고 말것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기적인 삶의 방식
은 그 완악한 심령 가운데 이미 굳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의 말씀 가운
데 들어있는 아이러니(irony)를 주목해 보라. 예수는 그가 죽음에서 다시 일어났을 때
조차도 예루살렘의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이 이를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
게 알고 계셨다.그러나 예수는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향한 그의 발걸
음을 멈추지 않으셨다.

=====16:30
죽은 자...회개하리이다 - 이 부자의 생각은 오늘날일반인들의 생각과 같다.즉 초
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면 불신자들도 믿음을 지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기적 자체에만 연연하는 자는 그 기적이 드러내고자 하는 참된 진리에는 오히려 무관
심하다. 더욱이 초자연적 기적이 계속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은 곧 자신의 세
속적인 삶으로 쉽게 복귀 하고 만다.

=====16:31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 아브라함은 이중
의 폐단을 제시하며 부자의 요청을 거절하였다.하나는 현재적 사실로 그들이 현재 율
법과 선지자의 글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그 글에서 지시하는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는다 하는 것과 또 하나는 미래의 가능성,즉 요11장에서 바리새인들이 죽음에서
부활한 나사로를 보고서도 회개치 않은 것처럼,누군가가 살아 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으로부터 맡겨진 재물을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사용하는 참신앙적인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이브라함의 이말은 이 비유 뿐만 아니라 본장 전체의 결론에 해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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