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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누가복음 3장 주석

작성자예수사랑|작성시간03.07.11|조회수10,743 목록 댓글 0
누가복음 제 3장
=====3:1
디베료 가이사가...열 다섯 해 - 이 구절에 관해서는 학자들 간에 견해가 다소 다
르다. 그것은 디베료 가이사의 통치 연대 때문이다. 디베료는 전임 황제이자 양아버지
인 가이사 아구스도가 A.D. 14년 8월 19일에 죽자 그의 뒤를 이어 황제 자리에 즉위했
다. 당시 근동 지방에서는 왕위에 즉위한 때부터 연대를 계산하지않고 통치한 햇수에
의해서 연대를 계산했다. 율리우스력에 의하면 디베료는 A.D. 28년 8월 19일에서 12월
사이에 즉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열 다섯 해'는 로마의 일반적인 연대계산법으로
계산할 때 A.D. 28년 8월에서 A.D. 29년 8월까지가 된다. 그러나 안디옥 태생인 누가
가 시리아의 연대 계산법(군주의 통치 연대를 셀루시드(Seleucid)시대부터 사용해온
방법에 따라 계산하는 법, 통치의 기원을 9, 10월로 잡음)을 따랐다면 '열 다섯 해'는
A.D. 27년 9월 21일부터 A.D. 28년 10월 8일까지가 된다. 그렇지만 저자 누가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적 배경이나 이책의 독자들을 고려하건대 로마의 계산법을 따랐을 것이
라고 생각된다.
본디오 빌리도 - 이 빌라도는 A.D. 26-36까지 유대의 제5대 총독으로 있었다. 이
'총독'(* , 헤게모뉴온토스)은 고대의 로마 지방 장관
(procurator)을 가리킨다.
헤롯 - 이 헤롯은 보통 헤롯 안디바스(Herod Antipas)로 알려졌다. 그는 아켈라오
의 친형제이며 헤롯 대제의 아들이다. 헤롯 안디바스는 아켈라오의 유언에 의해 갈릴
리와 베레아 지방의 분봉왕으로 지내다가(B.C. 4-A.D. 39) 고울지방의 리용으로 추방
당하여 폐위된다(Hendriksen). 사복음서 상에 나타나는 헤롯은 대부분 안디바스를 가
리킨다.
빌립 - 빌립 역시 헤롯대제의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이
다(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아님). 그는 팔레스틴의 북서부 지방 이두래(Iturea)와
드라고닛(Traconitis ; 바위돌로 된 마당이라는 뜻)을 B.C. 4 - A.D. 33/34까지 통치
했다.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빌립은 훌륭한 인격자이고 선정(善政)을 베풀었던
왕이라고 한다. 그는 바네아스를 고쳐 가이사랴 빌립보라 명명하고 벱새다를 고쳐 벱
새다 쥴리아스로 명명했다.

=====3:2
안나스와 가야바 - 안나스는 A.D. 6년로마 황제 구레뇨에 의해 대제사장에 임명되
어 활동하다가 A.D. 15년 로마 황제 발레리우스그라투스(Valerius Gratus)에 의해 해
임되었다. 안나스가 해임되고 파비(Pabi)의 아들 이스마엘과 엘르아살(Eleazar)과 가
미데스(Gamithes)의 아들 시몬(Simon)이 A.D. 18-19년 사이와 A.D. 25-26년 사이에 그
뒤를 바로 계승했다. 그리고 그후 안나스의 조카 요셉이 그 뒤를 계승했는데 이 대제
사장이 바로 가야바(Caiaphas)이다(Jos. Antiq. 20, 198). 가야바는 A.D. 18-36년까지
대제사장직에 있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원래 대제사장직이 종신직(민 35:25) 이었으나
로마인들에 의해서 정치적 목적에 맞게 통제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대제사장직을 계속해서 종신직으로 여겼다. 따라서 유대의 최고기관인 산헤드린에서는
로마정부에 의해 해임되었지만 유대인에게는 여전히 대제사장으로 추앙(推仰)되는 대
제사장과 로마정부에 의해 새로 임명된 대제사장이 함께 남아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대제사장들'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Jeremias, Jerusalem, 157). 안나스는 봉
직 기간이 길었고 권력과 영향력이 산헤드린에 강력하게 미쳐, 그는 이스라엘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가야바는 또한 안나스의 사위이기도 하였다. 이런 여러 이
유로 공식적으로는 가야바가 대제사장이었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안나스가 행사했다
(요 18:13-29).
빈 들 - 세례 요한은 황량하고 거친 빈 들에서 기거했다(1:80). '빈 들'은 유대의
황무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서쪽의 유대산지와 동쪽의 사해 그리고 요단 저지대 사이에
있는 기복이 심한 지형을 일컫는다. 이 지형은 석회질로 이루어져 땅의 굴곡이 심하고
자갈과 암석 조각이 많이 있다. 특히 이곳은 광야 특유의 잡목들이 많고 독사들도 많
이 있다. 이 '빈 들' 북쪽으로 길게 뻗으면 요단강과 합류하게 된다(Hendriksen). '빈
들'이란 유대인들에게는 애굽을 탈출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방랑했던 장소로 연상되는
곳이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빈 들'(광야)이라는 말을 들을 때 종말과 연관된 것
을 연상하기도 한다(사 40:3;호 2:14).
'말씀'을 나타내는 헬라어 '레마'(* )는 실제로 말하여진 말씀(the actual
words spoken)을 의미하는 바 세례 요한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
함으로' 써였다. 결국 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사역을 시작하게도 하셨지만 사역을
끝마치게도 하실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모든 것의 끝이다(계
22:13).

=====3:3
요단 강 부근 - 하나님은 수세기 동안의 침묵을 깨시고 요한에게 임하여 당신의 말
씀을 대언케 하셨다. 그런데 요한이 주로 요단 강변에서 복음을 전파한 것은 '빈 들'
의 특성상 땅이 메마르고 바위가 많으며 물이 귀하였으므로 세례를 베풀기에 적합한
물을 찾아 요단강으로 나왔기 때문이다(요 3:22). 한편 간과할 수없는 것은 요한은 한
곳에서만 머물러 전도하지않고 각 처를 두루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다는 것이다.
저자 누가 역시 다른 복음서 저자보다 요한이 순회 전도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강하
게 시사한다.
회개(悔改)의 세례 - 세례요한이 베풀었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다. '회개'를 뜻하
는 헬라어 '메타노이아'(* )의 동사형 '메타노에오'(*
)는 '마음을 바꾸다', '회개하다'라는 뜻이다. '회개'는 요한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
심으로서 모든 죄악을 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불세례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부언컨대, '회개의 세례'란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가 죄사함을 얻는다는 약속의 구체적
인 표시였다. 왜냐하면 그 세례는 바로 메시야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예표하기 때문
이다(3:1-20, 주제 강해 '세례 요한의 세례' 참조). 그는 심판이 임박했음을 선포하
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그
의 권고는 종말론적 계시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긴박성을 보여준다.

=====3: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 세례 요한의 출현과 그의 사역은 사 40:3 말씀의 예
언성취이다. 이 이사야서의 인용은 사복음서가 모두 공통적이다. 그러나 누가만이 사
40:3-5전체를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쿰란 공동체에 속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광야에
서 격리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로서 사 40:3을 제시했다. 그들은 광
야에 격리되어 율법을 계속해서 연구함으로써 주의 길을 예비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마태와 마가와 마찬가지로 누가는 사 4-:3이 분명히 세례요한의 사역을 언급하는 것으
로 생각했다. 한편 '책'을 나타내는 헬라어 '비블로스'(* )는 구약의 개별
적인 낱권의 책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비볼리온'(* )은 '두루마리'를 나
타내는 것이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평탄케 하라 - 이 인용 구절은 바벧론의 포로 생활을
끝내고 기쁜 마음으로 고국 유대 땅으로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주실 구속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부분이다. 바벧론과 유대 땅사이에는 시리아 사막이
있다. 이 사막을 통과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하게 된다. 따라서 여호와의 구속의
행차를 맞이하기 위해 그 곳에 길이 닦여져야 한다. 그러므로 이 일을 전담할 하나님
의 사자가 행차를 위한 준비를 외치게 된다. 따라서 '...예비하라...평탄케 하라'라는
이 말은 좀더 정확한 의미에서 위대한 자유와 평강의 시대를 도래케 할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의 출현에 대한 예언인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게 될
때 세례 요한은 당연히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 하나님은 요한을 통하여 말씀하시며 메
시야의 오심을 위해 모든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그를 맞을 채비를 갖추도록 촉구하신
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
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했다'고 외쳤다(사 59:1, 2). 그렇다면 주의 오심을
예비하고 평탄하게 하기 위해 제거되어야 할 것은 바로 죄이다. 왕의 행차를 위해 왕
의 사자가 먼저 길을 예비하고 평탄(平坦)하게 하듯이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게 하고 그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했다.

=====3:5
모든 골짜기가...평탄하여질 것이요 - 은유적 표현으로, 누가는 세례 요한과 메시
야 예수를 잘 대비해 메시야의 탁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고대에 왕의 행차가 골짜기
나 높은 산, 굽고 험한 길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행로를 평탄하게 만들었던 것
은 흔한 일이었다. 마샬(Marshall)은 '평탄하여지다'는 말이 교만한 이들의 낮아짐을
암시하며 '굽은'이라는 말은 비뚤어진 인간들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이라고 이야기한
다. 한편 렌스키(Lenski)는 '굽은'과 '험한'이라는 말에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의미가
비유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즉 '굽은'은 히브리적 표현으로는 '속이는'(*
, 아크자브)을 뜻하고, 이것을 곧게 하는 표현의 히브리어는 '정의'와 '공정'(*
, 미쇼르)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고 '험한 곳'은 모든 종류의 악이 모여 있는
곳( , 르카심)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풀핏(Pulpit) 주석에서는 낮추어야
할 산을 바리새인들의 교만으로 비유하고 있고 메워야 될 골짜기들을 사두개인들의 도
덕적.종교적 무관심(無關心)으로 비유한다. 결국 이 비유들을 종합해 보면 이 구절은
인간의 죄된 심성의 교만과 거짓과 불의와 불신 등을 회개하고 정의롭고 순결한 심성
으로 구속의 메시야를 맞이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3 } 6 모든 윽체가 하나님왜 구웡하심을 보찌#. 투가는 이 부분을 %인역(낵췌 사 쐬
} 5에서 인용하였뉼데 그 전반부에는 '여호와의영광이 나타나고'란 구절이 수록되
어 있다. 위에서 모든 윽체(즉 유대인들만이 아닌 세계 만민)가 하나님의 구왼을 본다
는 것은 메시야로인한 세게적 구왼의 토대가 마련되었음을 뚱한다. 이는 하나넘히 아
들의 성육신(노7쏠02따사건 따 공생애로써 구체화되며, 하도시대 이후오늘날까지 온
세상의 모든 육체를 향해 그

=====3: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 누가는 이 부분을 70인역(LXX) 사 40:5
에서 인용하였는데 그 전반부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란 구절이 수록되어 있
다. 위에서 모든 육체(즉 유대인들만이 아닌 세계 만민)가 하나님의 구원을 본다는 것
은 메시야로 인한 세계적 구원의 토대가 마련되었음을 뜻한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incarnation)사건 및 공생애로써 구체화되며, 사도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온 세
상의 모든 육체를 향해 그 복음의 소식이 계속 전파되고 있고, 궁극적으로 마지막날
큰 구원에서 그 절정을 맞이할 것이다(Lenski). 이는 이방인에 대한 관심을 현져히 드
러내보이는 본서의 신학적 특징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

=====3:7
무리 - '무리'를 가리키는 헬라어 '오클로스'(* )는 '백성'을 가리키는
'라오스'(* )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리펠드(Lifeld)는 '오클로
스'가 '라오스'와 달리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것을 말한다고한다. 누가는 여기서
이 무리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 그
러나 마 3:7과 요 1:19, 24은 그들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었다고 밝힌다.
독사의 자식들아...진노(震怒)를 피하라 -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구약성경에 나타
난 선지자의 경고성 선포처럼 매우 날카롭고 엄하다. 이 설교는 마 3:7-10과 동일하
다. 여기서 '독사'는 사단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악인(시 58:3-5;사 59:5)과 메시야를
적대하는 자(시 91:13)에 대한 표현이다. 요한은 세례받으러 나오는 사두개인과 바리
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세례를 받으러 나
오기는 했지만 진실된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형식적인율
법 준수와 세속적인 명예심 등으로 부패한 마음이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독사의 자
식들'이라는 표현은 8절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표현과 대조를 이룬다. 후에 예수
역시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힐난(詰難)했다(마 12:34). 그리고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는 요한의 질문에는 그들이 세례를 받
으러 그에게 나아오는것이 마땅하지만 세례를 받으려는 마음의 동기에는 문제점이 있
다는 것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진노라는 표현은 구약 성경에서 30회 이상 언급되었고
신약 성경에서도 수차례 언급이 되었다. 이것은 불의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하신 반응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 진노를 때마다 일마다 표현하시지는 않는
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
다(벧후 3:9).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반드시 엄
한 심판을 행하신다. 또한 마샬(Marshall)은 지적하기를 이 질문은 수사적 질문으로서
종말에 있을 마지막 심판이 이러한 형태의 외적 종교예식(religiousrite)으로도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상황임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요한이 사람들에게 요구한 세
례는 심판을 모면하기 위한 방도가 아니라 회개의 표현으로서 촉구되었던 것이다.

=====3:8
회개에 합당한 열매을 맺고 - 성경에서 '열매'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하여 나타나는
선악간의 결과들을 표현하는 말로 종종 사용된다(시 1:3;렘 17:8;행 26:20). 나무는
그 나무에 맞는 열매를 맺는다. 따라서 진정한 회개는 그 구체적 결실을 드러내게 마
련이다. 물론이 열매는 가시적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내적변화에 의해 외적으로 표현되
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전인적(全人的) 변화가 일어나야만 한다. 회개란 죄에 대한 단
순한 외적 고백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인격적 변화, 곧 하나님의 품성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품성의 변화들이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한다.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돌들로도...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종교적 특권이나
혈연적 계보나 의식(儀式)이 구원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유대인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유와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은 자들이라는 이유로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
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따라서 패역한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이 요구하는 진정한
회개에서 자신들을 제외시키려고 했다. 세례 요한은 이러한 유대인들을 향해 칼날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은 첫인간 아담을 흙에서 취하셨다(창 2:7). 그렇기 때문에
빈 들이나 강 가의 돌들을 통하여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삼으실 수 있는 것이다. 진
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을 가리
킨다(갈 3:7). 렌스키(Lenski)와 슈어만(Schurmann)은 이 '돌들'이 바로 이방인들을
나타낸다고 한다. 어쨌든 '돌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와 주권적 권능을 강조한 말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진실된 회개이다. 우리의 구원은 외적조건
에 있지 않고 진정한 회개를 통한 삶의 변화에 있기 때문에 항상 우리에게는 바로 삶
에의 결단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고 인내하시면서 모두가 아
브라함의 자손이 되기를 원하고 계신다(벧후 3: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3:9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 8,9절에서 요한의 설교는 두 가지의 이미지(image)
로 묘사된다. (1)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찍혀서 제거된다는 것
이다. 이후에 예수도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에 대해서 언급한다
(6:43-45). 그리고 예수는 비유로써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를 찍어버리는것에 대해서
말한다(13:6-9). 요한은 아마도 '나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로
비유된 이스라엘을 연상케 했을 수도 있다(사 5:1-7). (2) 이미 도끼가 '뿌리에 놓였
다'는 것은 당장에 어떤 급격한 행동이 취해진다는 것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서 나무
전체가 찍혀서 곧장 불에 던져진다는 것이다(Liefeld). 이 구절에서는 상황의 긴박성
과 다급함이 강조되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일순간 아차 하는 사이에 나
무는 찍혀 넘어가게 되고 만다. 우리는 세례 요한이 구약의 선지자인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는 이사야와 예레미야처럼 예루살렘의 앞날의 운명을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
다. 세례 요한이 활동했던 시기는 A.D. 30-32년 사이이다. 결국 세례 요한의 경고의
메시지가 있은 지 약 40년 후 A.D. 70년 예루살렘은 멸망하게 된다. 이러한 운명을 깨
닫지 못한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의 경고를 경히 여겼다. 그들은 회개하고 믿기에 적합
한 때를 놓치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회
개하여 좋은 열매를 맺기는커녕 악의 싹을 계속해서 키우고 있었다.

=====3:10
무리가 물어 가로되 - 세례 요한의 설교에 대한 무리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무
리들 중에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구원얻고가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회개
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물었던 것
이다. 이 질문을 한 무리는 세례 요한에게 질문한 세 무리중 세리와 군인들을 시시한
나머지 사람들로 짐작된다.

=====3:11
옷 두 벌 있는 자는...그렇게 할 것이니라 - 세례 요한은 진정한 회개란 사랑과 정
의를 실천하는 구체적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좋은 열매'란 작
은 사랑의 실천으로부터 나타난다. 본문에서 '옷'을 나타내는 '키톤'(* )은
기다란 겉옷 '히마티온'(* )안에 입는 옷을 가리킨다. 팔레스틴 지방은
일교차가 심해 밤에 기온이 떨어질 때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여벌옷을 가지
고 다니거나 껴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요한은 이러한 여벌 옷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삶의 결단과 실천으로써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 것을
요청한다. 또한 음식물에 대한 경우에도 동일한 원칙이 주어졌다. 이것은 세례 요한이
주변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정황들을 보고서 그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임이 분
명하다. 이웃 사랑에대한 계명은 이미 율법 시대 때부터 가장 중요한 규범 중 하나로
규정되어 왔었다(레 19:18). 그리고 '나눠줄 것이요'를 나타내는 '메타도토'(*
)는 '함께 나누다'라는 뜻이며 '복음을 나눈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인의 올바른 물질관에 대해 배우게 된다. 재물은 축적만을 목표
로 하는 것이서도 안 되고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필요한 만큼
정당하게 사용되고 남은 몫은 주위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사용될 때 그 재물은 귀한
가치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마 25:31-46;딤전 6:18;약 2:14-16).

=====3:12
세리들 - 세리들은 유대인들의 미움의 대상이었으며 심지어 '죄인들'이라 지칭되었
다. 이들은 로마 정부로부더 관세나 통과세 등 각종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위탁받고
같은 동족인 유대인의 주머니를 털어갔다(막 2:14 주석 참조). 그들은 자신들의 생계
를 위해 로마에서 요구하는 금액보다 더 많은 액수를 징수하였고 그 일을 위해 직접
세금을 징수하는 하급 세리를 고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들은 세금 관계등의 일로 그
들의 압제자인 로마 사람들과 접촉하였다. 이로인해 그들은 '부정한 사람들'로 간주되
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마 11:19) 요한도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주었다. 세례 요한은 세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 정죄하는 입장에 서는 대신, 기
존 상황을 직시하여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되 다만 가능한 한 최선의 개선책을 제시하
고 있다.

=====3:13
정한 세...말라 - 요한은 사회 제도 자체를 전복시키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회
적인 폐단을 시정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사회적 폐단은 개인의 탐욕스런 마음에서 비
롯된 것이므로 세리들은 그들의 행위가 근본적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따
라서 세리들이 그들의 직업을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요한의 요구는 그들이 지위를 남
용하거나 개인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위해서 지나친 과세(課稅)를 하지 말고 공평하
고 정의롭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씀은 현대에 있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공정하고
정직하게 법을 지키며 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레
19:35, 36;잠 11:1).

=====3:14
군병들도...족한 줄로 알라 - 본문에서 '군인'을 나타내는 헬라어 '스트라튜오메노
이'(* )는 아마도 로마 군인이 아니라 국내 정세를 담당하
는 유대의 군인들을 언급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 군인들은 업무상 특정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소지가 많았다. 예컨대, 그들은 세리들의 징세 업무를 도와 수탈을 하
는 경우가 많았다. '강포'(强暴)를 나타내는 '디아세이오'(* )는 '맹렬
히 흔들다', '협박하다', '강탈하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또 '무소'(誣訴)를 가리키는
'쉬코판테오'(* )는 '억압하다', '착취하다'라는 뜻이다. 즉 이들
은 강압적 수단으로 백성들에게 돈을 강탈해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웠던 것이다. 이는
당시의 군인들이 얼마나 폭압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군인들은 월급이
매우 적어 생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따라서 그들의 부정은 갈수록 심화되었다고
한다. 한편 원어상 '우리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메이스'(* )는 강조 어구
로서 군인들의 심한 도덕적 갈급함을 암시해 주고있다. 따라서 이들에게도 역시 요구
되는 바는 정의롭고 공평한 회개의 열매이다. 이와같이 요한이 각 집단에게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어떠한 직업에 종사하든지 선을 위해 일을 해야지 악을 위해서는 안 된다
는 것이다. 실로 세 무리의 질문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 '진정한 사랑을 나타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으며 이 사랑은 각자가 처한 일상적인 생활에서부터 맺혀져야
할 회개의 열매들인 것이다.

=====3:15
요한을...의논하니 -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메시야가 곧 도래하리라는 기대가 팽배
했다. 더욱이 세례 요한의 메시지 가운데에 메시야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선포되
자 그들의 메시야 대망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리고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고조되는 메
시야 대망의 분위기 속에서 세례 요한이 바로 그 메시야가 아닐까하고 생각하는 사람
들이 생겨났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의 말씀 선포에는 그만큼 능력과 확신이 있었으며
그의 세례는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성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일
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이 유다 지파 출신도 아니었으며 또 아무런 기적을 일으키지
도 않았기 때문이다(사 11:1;29:18, 1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씀에는 엄청난 능
력이 있어 백성들을 반신 반의(半信半疑)하게 만들었다. 요 1:19-25에는 세례 요한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3:16
나는 물로...세례를 주거니와 - 요 1:20 에서는 세례 요한이 메시야가 아님을 스스
로 강하게 부인하는 내용이 나오는 반면, 여기서는 자신의 사역과 메시야의 사역을 비
교함으로써 메시야의 탁월성을 밝히 드러내 보인다. 고대 세계에서 물은 흔히 정결케
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즉 물은 정화(淨化) 의식, 예를 들면 제의적으로 정결함을
인정하는 의식에 사용되었다. 이 의식에서는 가능한한 흐르는 물이 사용되었다. 한편
정화 의식 외에도 물은 때로는 특별한 형태의 의식의 집행 과정에서 신성한 용도로 쓰
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의적인 예식이 죄를 씻어 버리는 것을 상징하였다고 보
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푼 것은 메시야께서 오셔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기 전까지의 예비적인 성격을 띤 것이었다(3:1-20, 주제 강
해 '세례 요한의 세례' 참조).
신들메를 풀기도 - 근동과 그리이스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맨발로 다니거나 샌달
을 신고 다녔다. 그러나 실내로 들어가거나 혹은 예배나 애곡, 금식 등을 할 때는 보
통 샌달을 벗었다. 이때 노예들은 주인들의 샌달을 묶거나 풀어주며 또 필요하지 않을
때는 샌달을 집으로 가져갔다. 이렇듯 주인이나 주인의 방문객들의 신발을 풀고 묶어
주며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은가장 낮은 노예의 의무였다. 요한처럼 이렇게 능력있고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이 발에 신기운 하찮은 신발끈조차 풀어드릴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면 도대체 예수는 얼마나 위대한 분이란말인가?
성령과 불로 - 성령 세례와 불 세례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원문을 보면
헬라어 전치사 '엔'(* , '...안에' 혹은 '...로써')이 '성령'과 '불'을 동시에 받
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은 세례 요한의 이 예언이 바로 욜 2:28의 성취인 오순
절 성령 강림 사건(행 1:5)을 뜻함이 틀림없다고 이야기한다. 성령이나 불과 같은 사
역이 심판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화(purification) 작업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살펴보면(사 40:3;겔 36:25-27;욜 2:28,
29) 성령은 정결케 하고 새롭게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으며 또한 불은 심판과 새롭게
함(refinement)이나 정죄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본문에서도 성
령과 불은 이러한 복합적 의미로 쓰인 듯하다. 또한 그렇게 자주는 아니더라도 성경에
서 성령은 분명히 메시야와 관련되어 언급되었다(사 11:1, 2). 메시야께서 오시면 그
는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역사하실 것이었다. '불세례'에 대해서는 행 1:4, 5의 주제
강해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하자.

=====3:17
손에 키를 들고...불에 태우시리라 - 성령과 불의 연관성을 설명하기 위해 요한은
농사 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든다. 농부들은 키를 가지고 곡식의 열매를 키질한
다. 그러면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이 구별되어진다. 무거운 것(알곡)은 키에 남게 되
어 타작 마당에 쌓이게 되고 가벼운 것(쭉정이)은 모아져 불살라지게 된다. 그리스도
께서 모든 신자와 불신자를 이렇게 구분하실 것이다. 즉 그가 재림하실 때 타작 마당
을 정(淨)하게 하듯이 심판의 마당을 정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이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말은 영원한 심판과 멸망을 가리킨
다(욥 20:26;사 34:9, 10;66:24;마 5:22;13:42, 50;막 9:43-48). 그리고 이러한 추수
와 타작이 심판과 관련되어 묘사된 예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는 바이다(시
1:4;잠 26장;사 41:15;렘 15:7;계 14:14-20). 요한의 이 경고는 매우 엄중한 것이었
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심판이란 자신들과는 무관하며 오로지 이방인들에게만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의 왜곡된 특권 의식을 지적하
고는 회개를 통하여 타작 마당의 심판에 대비하도록 경고한다. 이와같은 요한의 예언
은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셔서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는 날에 성취될 것이다.
그래서 그때 예수께서 악인과 선인을 구별하시고 악인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
는 지옥으로 던지실 것이다(벧후 3:7).

=====3:18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 요한의 메시지는 신랄한 경고와 책망이었음과 아울러
'좋은 소식'이었다. 타작 마당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엥겔리제토'(*
)는 사복음서에서 줄곧 '복음을 전파하다'는 내용으로 사용된다. 이
처럼 세례 요한은 메시야를 통한 절대적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자신의 사역을 마감하
게 된다.

=====3:19
분봉왕 헤롯은...책망을 받고 - 여기 헤롯은 1절에서 등장한 헤롯 안디바스(Herod
Antipas)이다. 요한은 백성에게는 '권하여' 말씀을 전하였지만 헤롯에게는 '책망'을
했다. 요한의 책망은 헤롯의 무분별한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을 촉구하
는 것이었다. 헤롯은 A.D. 26년경 그의 첫번째 부인인 아라비아 왕 아레타스(Aretas)
의 딸을 버리고 그의 조카이자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했다. 이것은 유대
적 전통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패륜(悖倫)이었다(레 18:16;20:21). 또한 헤롯
의 난잡한 생활과 악행은 유대 백성들에게 적지 않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요한의
헤롯에 대한 공공연한 책망은 많은 백성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백성들의
불만과 요한의 직선적인 공격은 헤롯의 권력 구조에 위기감을 조성하게 되었다. 따라
서 헤롯은 자신에 대한 반감 분위기의 진원지(震源地)라고 생각한 세례 요한을 체포하
게 된다. 이로써 헤롯의 악행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3:20
한 가지 악을 더하여...옥에 가두니라 - '더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티데
미'(* )는 '더하다', '첨가하다'등의 뜻 외에도 '같은 종류의 또
다른 행동을 하다', '계속해서 하다'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죄악을 뉘
우칠 줄 모르고 더욱 큰 죄악으로 빠져들어갔던 해롯의 타락된 심성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다. 세례 요한의 활동이 백성들 가운데서 계속되는 한 자신의 행동에 여러가지
제약이 따를 것이고 나아가 자신의 권위마저 땅에 떨어질 것을 염려한 해롯은 악한 권
력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세례 요한은 해롯의 탄압으로 옥에 갇히게 되고 결
국에는 해로디아의 농간에 의해 참수형을 당하게됨으로써 헤롯 정권의 윤리적, 도덕적
상황은 참담할 지경에 이른다. 누가는 본서에서 요한을 체포한 죄를 해롯이 저지른 악
행 중에서 가장 악한 죄였다고 기록하였다. 그것은 해롯이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요한
에게 손을 대어 그의 복음 전파를 침묵시켰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불의한 자들은 그
들의 잘못을 말하는 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한편 요한의 죽음에 관해서는
9:7-9과 막 6:17-29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3:21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 예수는 12살때 예루살렘에 와서 랍비들과 변론한 후 고
향 나사렛으로 돌아가 성장 기간을 보너셨으며(2:52) 그후 착실히 성장하여 마침내 공
생에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세례 요한이 물러가고 예수께서 나타나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예수가 세례를 받으신 것은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예수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죄인은 아니다(히 4:15). 따라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은 회개
할 것이 있는 죄인이어서가 아니다. 다만 예수는 자신이 구원할 사람들과 스스로를 동
일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마 3:15에서 예수는 자신이 세례를 받으므로 '모든 의(義)
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며 세례를 받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한편 마샬
(marshall)은 '백성들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께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요한의
활동이 절정에 달한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세례가 요한의 사역의
정점에 위치하였다는 뜻이다.
기도하실...열리며 - 누가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나서 기도를 했다고 언급한
다. 이는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예수의 첫번째 기도 모습이다(6:12;9:18, 29;22:41).
예수는 일생 동안 기도의 삶을 사셨다. 그의 혼신을 다하는 기도는 하늘을 열리게 한
다. 마가의 경우는 누가보다 하늘이 열렸다는 사건을 훨씬 더 생생하게 기술한다(막
1:10). 하늘이 열렸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제 곧 계시나 말씀을 주시려고 한다는
상황적 암시를 나타내며, 하나님께서 오랜 침묵의 기간을 깨시고 다시금 그의 능력과
권위를 행사하시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아울러 이는 예수께서 본래 하늘에 계시
던 분이며(요 3:13) 하나님과 하나이심을 암시한다.

=====3:22
성령이...비둘기 같이 -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하여 여
러가지 모습으로 현현(顯現)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출 24:10, 11;33:11;신
5:4). 그러나 이곳에서는 성령이 비둘기 같이 강림했다고 전한다. 누가는 성령이 임할
때 오직 예수만이 그것을 의식했고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하였다는
식의 별다른 보도를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아마도 그곳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은
성령 강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비둘기 같은 형체가 내려오는 것만을 보았을 것이
다. 한편 '비둘기'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학자간에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온유하
고 평화스런 속성을 나타낸다고 봄이 무난할 것이다. 한편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모습
과 그 의미를 도표화해보면 다음과 같다. 성령의 의 미모습 신자의 삶에서 죄를 소
멸시키며 성결케불하는 능력(사 6:1-7;행 2:3)영적인 삶을 충만하게 넘치도록 채우시
는 힘(요 7:37-39)신자를 당신의 것으로 소유하셔서 완전하게 영원한 교호(交互)를 약
속하심(엡 1:13) 기름 사역을 위해 부여되는 능력(행 10:38) 한편 이러한 성령 임
재는 구약의 예언대로 하나님이 그의 종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리라하신 약속(사
42:1)과 성령이 그 새로이 생겨난 가지에 임할 것이란 예언을 성취시키는 것이기도 하
다(사 11:2). 또한 예수가 하늘나라의 일을 위하여 위임을 받고 그 일을 시작하기 이
전의 준비 절차로 왕, 제사장, 선지자로서 기름부음을 받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너는...기뻐하노라 - 하늘로부터의 음성은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직접적으
로 공표하신 말씀이다. '사랑하는'을 나타내는 헬라어 '아가페토스'(*
)는 '사랑하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나 '아듸'이나 '딸'을 붙여 사용할 때는 '외
아들', '외동딸'이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여기서 '아가페토스'는 예수가 유일한 아
들, 즉 독생자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한편 이 구절은 변화산에서 들려진 음성과 마찬
가지로 그리스도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을 포함하고 있다(사 42:1). 유대인들은 하나님
의 아들이라는 개념 천사들(욥 1:6;2:1)과 이스라엘 국가와 이스라엘의 왕들(출 4:22;
삼하 7:14;호 11:1)에 적용시켰었다. 그러나 점차로 그 말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
로 사용되었다. 예수가 성령에 의해서 잉태될 것이라는 천사의 수태고지(受胎告知)에
서도(1:32) 예수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언급되어 있다.또한 '사랑하
는...기뻐하노라'라는 말은 하나님과 예수의 유일무이하고도 특별한 인격적 관계를 나
타낸다. 요컨대, 예수께서 받으신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공동 사역이라 할 수 있
었다. 즉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으심으로 인간의 구원을 향한 공생애를 시작하고, 성령
도 성자가 그 일을 감당하도록 협동하여 힘을 공급해 주시며, 성부도 그 일을 시작한
아들에게 하늘을 열고 땅을 향해 기쁨과 승인의 음성을 발하였던 것이다.

=====3:23
예수께서...삼십 세쯤 되시니라 - 예수의 나이가 기록되고 있는 유일한 구절이다.
누가가 공생애 시작 당시 예수의 나이를 '30세 쯤' 으로 밝힌 것은, 30세라 하는 나이
가 제사장들이 그들의 본격적인 임무를 시작하는 시기(민 4:3)인 점을 염두에 둔 것인
듯하다. 다시 말해 마침내 예수는 인류와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는 영원한 대제사장의
사역을 수행하실 시점에 이르신 것이다(히 5:10). 즉, 예수는 스스로는 전적으로 무죄
(無罪)하신 분으로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제물로 삼아 죄악의
장벽을 제거하심으로써 하나님께로 나아갈 새롭고 산 길을 여실(히 10:20) 시점에 이
른 것이다. 한편 그리고 요셉은 30세에 총리가 되었고(창 41:46) 다윗도 30세에 왕위
에 올랐다(삼하 5:4). 또한 산헤드린의 회원 자격도 30세가 되어야만 주어졌다. 따라
서 누가는 이러한 여러 배경을 감안하여 예수의 나이를 밝혔을 것이다. 예수는 한 인
간으로서의 일반적인 연륜을 감안해볼 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또 신앙적으로도
사역을 하기에 충분한 시기에 이르러셨던 것이다. 예수는 그의 생애를 통하여 항상 자
신의 '때'를 잘 알았다(요 7:6).
헬리 - 학자들에 따라 요셉의 의붓 아버지이거나 마리아의 아버지일 것이라고 추측
한다.

=====3:24
맛닷 - 이는 '선물'이라는 뜻을 담고있다. 이 이름은 29절에서 또 나타나고 '맛다
다'(31절)와 '맛다디아'(25, 26절)라는 이름과 비슷하다.
레위 - 이 이름의 어원은 불확실 하나 히브리어 '레위'( )의 뜻을 따라 일반
적으로 '점착(粘着)하다', '연합하다'등의 뜻을 담고 있다. 이 이름은 29절에서 다시
등장한다.
멜기 - 이 이름은 아마도 '말기야'( ,말키야, '나의 왕은 야웨이시다')의
축소형인 것 같다(G.Kuhn). 이 이름은 28절에서 다시 나타난다.
안나 - 이 이름의 뜻은 '조롱하다'이다. 이 이름은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3:25
맛다디 -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이며 26절에서 다시 언급된다.
아모스 - 이 이름의 인물은 성경 상에서 이사야의 아버지로(왕하 19:2) 혹은 선지
자(암 1:1)로서 나타난다. 이 이름은 '짐지는 자' 또는 '강함'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나훔 - 예수의 조상으로서 그리고 선지자로서 성경에서 언급된다. '위로하고 돕는
자'라는 뜻이다.
에슬리 - 이 이름은 다른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나를 가까이 함'이라는 뜻이
다.
낙개 - 대상 3:7에 나오는 '노가'( )와 비슷하다. '빛나다'라는 의미이다.

=====3:26
마앗( ) - '끊는 것'을 뜻한다. 대하 29:12;31:13에서 나오는 마핫과 비교
된다.
서머인 - 히브리어로 '시므이'(출 6:17등)가 된다. '몰약성'이라는 뜻이다.
요섹 - 바벧론 포로 이후의 인물인 듯한데 이곳 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요다 - 바벧론 포로기 때의 인물이다.

=====3:27
요아난 - 히브리어 '요하난'( )의 헬라어 음역이다. 요하난이란 이름은
(1) 유다 왕 요시야의 장남(대상 3:15) (2) 다윗의 여덟번 째 용사(대상 12:8-12) (3)
느헤미야 당시 도비야의 아들(느 6:14)등에게도 붙여진 바 있다.
레사 - '황태자'라는 뜻의 아람어로서 원래 스룹바벧의 칭호로 소개된 말이라고 주
장되기도 한다. 스룹바벧이 유대의 지도자로 바벧론에서 포로들을 인솔해 유대 땅으
로 귀환하자 백성들은 그를 유대 왕의 계승자로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황
태자'라는 칭호가 주어졌는지도 모른다. '스룹바벧'과 '스알디엘'은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도 나타난다(마 1:12). 스룹바벧이 스알디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뒷받침된다(스 3:2;학 1:1). 그러나 대상 3:19에는 스룹바벧이 브다야의 아들
로 기록되어 있다. 이 문제는 앞서 설명되었듯이 수혼(嫂婚) 관계에서 해결될 수 있
다. 대상 3:17, 18를 보면 스알디엘과 브다야는 여고냐의 아들로서 서로가 형제지간이
었다. 따라서 스알디엘은 스룹바벧의 법적 아버지이며 브다야는 그의 원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스알디엘의 아버지가 여고냐라고 대상 3:17에 기록되어 있는데 반해 본
문은 그의 아버지를 네리라 기록하고 있다. 이것 역시 수혼 제도로써 설명되어질 수
있다. 즉 여고냐가 아들이 없이 죽자(렘 22:30) 네리의 친아들이 여고냐의 법적 아들
이 되었다는 것이다(Machen, Plummer).

=====3:28
멜기 - 스룹바벧의 증조부로서 '왕'이란 뜻이다.
앗디 - 스룹바벧의 5대조이며 그 이름은 '붙들다'라는 뜻이다.
고삼 - '나누다'라는 의미이다.
엘마담 - 창 10:26의 '알모닷'이라는 이름과 비교된다. 바벧론 포로 이전의 사람이
며 그 이름은 '광대'라는 의미이다.
에르 - 이 이름의 인물은 구약성경에 두 명 등장한다. 한 명은 가나안 여인에게서
난 유다의 장자이며(민 26:19) 다른 하나는 겔라의 자손이다(대상 4:21).

=====3:29
예수(' , Jesus) - 구약의 '여호수아'(수 1:1)와 같은 이름이다. 유대 사
회에서는 보편적인 이름으로 '여호와의 구원' 혹은 '구세주'라는 뜻이다(마 1:21).
엘리에서 - 이 이름은 '엘리에셀'을 달리 번역한 것이다. 이는 창 15:2;출 18:4에
나타난 이름과 같은 이름으로 '하나님은 구원자이시다'라는 뜻이다.
요림 - '여호와의 칭찬'을 뜻한다.

=====3:30
유다 - 역시 이스라엘에서는 보편적인 이름이다. 본문의 인물은 바벧론 포로 이전
의 사람이다.
요남 - 다윗 이래 약 200년 후의 인물로 추정된다.
엘리아김 - 왕하 18:18에 나타난 것과 같은 이름이다. 이 사람은 바벧론 포로 이후
의 사람으로 추정된다.

=====3:31
멜레아 - 이 이름은 다른 곳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 이름의 주인공은 다윗의 고손
(高孫)이며 이름의 뜻은 '충만'이다.
멘나 - 이 이름 역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다. 이는 다윗의 증손이며, 이름의 뜻
은 '큰 고통'이다.
나단 - 다윗의 셋째 아들로 예루샬렘에서 출생했다(삼하 5:14;대상 3:5;14:4). 이
이름은 '양심' 또는 '주는 자'라는 뜻이다.
다윗 -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유다 지파이며 이새의 막내 아들이다. 이스라엘의 세
임금이며 지혜와 용맹과 많은 시편의 저작들로 유명하다(삼상 16장-왕상 2장). 이름의
뜻은 '사랑함'이다.

=====3:32
이새 - 다윗에서 아브라함에 이르는 족보는 마 1:2-6에 나오는 족보와 거의 같다.
이새는 베들레헴 에브랏 출신으로 다윗왕의 아버지이다(삼상 17:12). 사 11:1은 '이새
의 줄기'에서 메시야가 출현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오벱 - 보아스와 룻의 아들이다(룻 4:17, 21, 22;마 1:5). 룻은 이방 여인으로서
(룻 1:4) 다윗과 예수를 잇는 가계(家系)의 한 역할을 담당했다.
보아스 - 룻의 남편이며 살몬의 아들이다. 그는 또한 베들레헴의 큰 부호였다. 보
아스는 룻이 모압땅에서 시모 나오미와 함께 돌아왔을 때 그녀를 다방면에서 돕고 그
녀의 효성에 탄복하며 그녀와 결혼하게 되기까지 이른다(룻기)
살몬 - '그늘'이란 뜻. 가나안 땅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던 라합의 남편이다(마 1:5
비교).
나손 - '점쟁이'란 뜻. 보아스의 조부이다(룻 4:20). 마 1:4과 비교.

=====3:33
아미나답 - 유대 헤스론 계통인 '람'의 아들이다(룻 4:19;대상 2:10). 그리고 아론
의 아내 엘리세바의 부친이기도 하다(출 6:23). 이 이름의 뜻은 '나의 친척은 고귀하
시다'이다.
아니 - '높은 땅'이란 뜻. 룻 4:19과 대상 2:9에 히브리 이름 '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헤스론 - '닫힌'이란 뜻. 유다의 손자로 창 46:12;민 26:21;룻 4:18;대상 2:5;마 1
:3 등에서 언급된다.
베레스 - '파괴'란 뜻. 유다와 유다의 며느리 다말 사이에 태어난 쌍동이의 형이다
(창 38:24-30;46:12). 베레스에게서 두 종족이 생겼다(민 26:20, 21;대상 2:4, 5).
유다 - '찬송'이란 뜻. 야곱의 넷째 아들로 레아의 소생이다(창 29:35;마 1:2). 그
는 밧단아람에서 출생했으며 그의 며느리 다말을 통하여 쌍동이 베레스와 세라 두 아
들을 얻었다.

=====3:34
야곱 - '발 뒤꿈치를 잡다'란 뜻.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 태어난 쌍동이의 동생이다
(창 25: 21-26). 그는 형 에서에게서 팥죽 한그릇으로 장자권을 사고 그의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에 대한 축복을 가로챘다. 야곱은 하단의 외삼촌댁 라반의 집으로
피하여 레아와 라헬과 결혼하고, 그 두 부인과 부인들의 하녀 빌하와 실바를 통하여
12아들을 얻었으며 이 아들들을 통해 이스라엘 12 지파가 형성되었다(창 29장). 야곱
은 애굽 근교 고센 땅에서 살다가 147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이삭 - '웃음'이란 뜻.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낳은 아들이
다. 그는 브엘세바에서 태어났으며 그때 그의 아버지가 100세, 어머니는 90세였다(창
17:17;21:2, 3, 5). 이삭은 어렸을 때 아브라함에 의하여 하나님께대한 믿음의 증거로
제물로 바쳐지기도 했다(창 22:1-18).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들 브
두엘의 소생 리브가와 결혼하며 쌍동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그는 노후에 기럇
아르바 마므레에서 살다가 180세에 죽었다(창 35:27, 28).
아브라함 - '열국의 아버지'란 뜻. 데라가 70세에 낳은 아들이며 나홀과 하란의 형
이다. 갈대아 우르 출신이었으며 이복 누이 사라와 결혼하였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신이 살던 땅과 집을 버리고 가족을 이끌고 하나님이 지시
하는 땅으로 떠났다. 또한 그는 하나님과의 약속의 표시로 할례를 행하고 하나님이 약
속하신 아들 이삭을 100세에 얻었다. 그의 신실한 삶은 성경에서 믿음의 표상(表象)이
되고 있다.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어 막벧라 굴에 장사되었다(창 25:1-9).
데라 - '표백'이란 뜻.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의 아버지이다. 그는 다른 신들을
섬기며 우상을 만들어 파는 장사를 했다고 하며(수 24:2), 갈대아 우르에서 살다가 하
단으로 이사가서 205세에 죽었다(창 11:24-32).
나홀 - 아브라함의 조부이다.

=====3:35
스룩 - 아브라함의 증조부이며(창 11:20-23;대상 1:26) 이 이름은 '활'이라는 뜻이
다.
르우 - '친구'란 뜻. 셈의 6대손이다(창 11:19).
벧렉 - 셈의 자손 에벧의 아들이다(창 10:25-29;11:16). '나뉘다'는 뜻의 이름은
그가 태어날 즈음 세상 사람들이 나뉘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정
확히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종교적 정화 운동 혹은 바벧탑 사건이
일어났다고 짐작하는 견해가 있다.
헤버 - '과거'라는 뜻. '헤벧' 또는 '에벧'을 달리 번역한 것이다. 그는 노아의 6
대손이다.
살라 - '보내다'는 뜻. 노아의 고손이며 창 10:24;11:13;대상 1:18, 24에는 '셀라'
로 기록되어 있다.

=====3:36
가이난 - '철공'이란 뜻. 셈의 손자이나 창 10장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아박삿 -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을 가리킨다(창 10:22, 24;대상 1:17, 18), 그
는 노아의 홍수 이후에 출생했으며 35세에 셀라를 낳았고 그후 403년을 더 살다가 438
세에 사망했다(창 11:10-13).
셈 - 노아가 500세에 낳은 아들로 3형제 중 맏이다. 그는 하나님의 대홍수 심판을
피해 아내와같이 방주에 들어가 구원을 받았다(창 7:7;벧전 3:20). 또한 그는 술 취한
아버지의 실수를 조심성있게 덮어주어 축복을 받기도 했다(창 9:20-27). 또한 그는 셈
족의 조상이다. 그의 이름은 '이름' 또는 '명성'이라는 뜻이다.
노아 - 아담의 10대 손이다. 이 이름이 붙여진 연유에 대해 창 5:29은 "이름을 노
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고 설명한다. 그는 의인이어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창 6:9). 그리고 하나
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백성들에게 전파하며 그 심판
을 피할 방주를 건축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오직 그의 가
족과 동물 암수 한 쌍씩만이 구원받았다. 노아가 대홍수를 만났을 때가 600세였으며,
그는 홍수 후 350년을 더 살다가 950세에 죽었다(창 9:28).
레멕 - 구약성경에 '라멕'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는 182세에 아들 노아를 낳았다.
그는 노아를 낳은 후 595년을 더 살며 자녀를 낳고 777세에 사망했다(창 5:25, 28-31;
대상 1:3).

=====3:37
므두셀라 - 셋의 후손 에녹의 아들이다(창 5:21-27). 그는 969세까지 산 것으로 기
록되 성경상에서 그리고 인류 역사상 최장수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은 '대확장'
또는 '창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에녹 - 아담의 7대 손이며 야렛이 162세에 낳은 아들이다. 그는 65세에 인류 역사
상 최장수자(最長壽者) 므두셀라를 낳으며 그후 하나님과 동행하며 365세를 향수하며
자녀를 낳았다. 성경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하나님이 그를 데려갔으므로 죽음을
맛보지 않았다고 전한다(창 5:18-24;히 11:5;유 1:14). 그의 이름은 '교수' 또는 '시
작하는 자'라는 뜻이다.
야렛 - 에녹의 부친으로 마할랄렐이 65세에 낳은 아들이다(창 5:15-20;대상 1:2).
그는 므두셀라 다음가는 자로(962세) 알려져 있다.
마할랄렐 - 아담의 5대손이며 셋 계통의 한 조상이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찬
양'이라는 뜻이다.

=====3:38
에노스 - 아담의 손자이다. 셋은 109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는 90세에 게난을
낳았으며 905세를 향수했다. 가인의 시대가 폭행으로 표현된 반면 에노스의 시대는 경
건으로 표현되었다.
셋 - 아담의 셋째 아들로 맏아들 가인이 죽인 둘째 아들 아벧 대신에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이다(창 4:25).그는 아담이 130세 때 태어났다. 셋은 105세에 에노스를 낳았
고, 912세에 죽었다(창 5:3-8). 그의 이름은 '대신 주다'라는 뜻이다.
아담 -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류 최초의 인간이다. 그는 타락하
기 전까지 하나님이 그의 갈비뼈로 만드신 아내 하와와 낙원 에덴 동산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함으로 에덴 동산을 잃어버리고 노동의 수고로움과 해산의 고통을
맛보며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가인은 동생 아벧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자가 된다. 아담은 막내 '셋'을 130세에 낳고
그후 800년을 더 살다가 930세에 죽었다. 그의 이름은 '사람' 또는 '붉다'라는 뜻이
다.
하나님 - 하나님을 아담의 아버지라 기록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직접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에서 제시된 족보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예수가
아담의 아들로서 인류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해 주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누가는 불순종한 첫째 아담과 대조하여 비록 암시적인 주제이기는 하지만 예수를 하나
님께 순종했던 둘째 아담으로 묘사해 준다(고전 15:47). 이와같이 누가는 예수의 족보
를 하나님에게까지 연결시킴으로써 예수께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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