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러시아 정교회의 교회인 모스크가 아주 많이 있어서 모스크바로 불리운다.
2004 년경 아스팔트 프랜트 수출상담차 2 회 그리고 관광 여행으로 1 회 방문했는데 당시에 ㈜ 대우와 같이 업무를 해서 대우 직원과 같이 여러건설 업체와 미팅을 가진것같다.
업무는 낮에 하는것이고 저녁에는 그냥 저녁식사와 접대로 술집엘 가고 매일 새로운사람들 만나는게 일이다.
그곳에는 어떤 한국인이 호텔 20 층중 18 층을 전체로 빌려서 방이 20 개정도인데 한국출장자들에게 투숙을 하게 한다. 한국출장자들은 그게 편하기도 하다, 말이 통하고 가격도 저렴하니까. 바로 옆에는 백화점과 상가가 있는데 치안은 아주 안전하다고 한다, 마피아가 치안의 상당부분을 잡고있는데 안전해야 그들도 장사가 잘 유지되기 때문이라 한다, 주요 건물 입구에 검은색 롱코트를 입은 딱보면 영화에 나오는 덩치큰 마피아가 한명씩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유명한 바실리카성당
대통령궁 인듯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볼셰비키 정부는 1918년 3월 5일 다시 모스크바로 수도를 옮긴다. 아무래도 핀란드, 에스토니아가 독립 한데다 이들이 '부르주아의 나라' 다보니 페트로그라드가 더 이상 후방이 아니게 되었고, 바다를 통한 서방 연합군의 침략도 우려했기 때문. 공식적으로 소련의 수도가 된 건 소련이 건국된 1922년이다. 볼셰비키 정권의 수도가 되면서 제국 시절의 모스크바는 사회주의 이념에 맞게 개조되었으며, 1941년 모스크바 공방전 당시 영웅적인 전투를 수행함에 따라 영웅도시의 칭호를 받으며 1947년 소련에서는 모스크바 800주년 기념메달을 제정했다.
소련 시절 모스크바 인구는 급속히 증가하여 1926년 202만이던 인구가 소련 말기인 1989년에는 897만에 달했다. 당연하게도 모스크바에서 집 구하기는 소련시절에도 힘들었다. 아파트를 공짜로 배급했기 때문에 돈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몇년 동안 공동아파트라는곳에서 살면서 집이 나올때까지 몇년씩 기다려야 했다.소련 붕괴 직후 모스크바 경제는 말 그대로 망했고 시내에 유일하게 들어왔던 1호 맥도날드에서는 마피아들이 외국인을 상대로 자릿세를 받아가곤 했다.
당시 유학을 갔던 한국학생들도 주요 타겟 중 하나였다. 달러가 매우 귀했기 때문에 5달러 내외를 뜯곤 했다. 시내에 식료품점에는 농산품밖에 없었고 시내 중심가에 점점이 있는 간이판매소에는 콜라가 한 병씩만 비치되어 있었다. 다만, 전기를 끌어들이지 못해서 상온에 놔두었는데 모스크바 주민들이 사 먹지를 못해서 그 자리에서 먼지만 뽀얗게 쌓이던 시절도 있었다.
여성들은 당시 외국인을 상대로 매춘을 하기 위해서 거리와 지하철 역사를 떠돌았는데 특히 이 시대 러시아 매춘부들을 인터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부총리를 몰라보고 인터걸들이 몰려가서 삥뜯으려다가 역관광당해서 단속이 강화되었고 이전처럼 대놓고 하던 호객 행위는 매우 줄어들었다.
소련 붕괴 후 혼란기에도 아랑곳없이 2002년에는 1038만을 기록해 인구 천만을 돌파했고 2010년에는 1150만, 2018년 현재는 1250만으로 멈출 줄 모르는 인구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현재의 모스크바는 어느 대도시와 크게 다름없는 모습이고 악명 높던 스킨헤드도 거의 박멸되어 치안도 예전처럼 막장을 달리지는 않는다.
1인당 명목 GDP | 11,327 달러 | , 2019 년 세계 60위 |
인구 약 1.4억명
모스크바 의 라이브쇼는 가히 세계 1 위 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밤의 무대위에 나오는 누드걸들은 그대로 유럽의 fashion show 에 나가서 걸어다녀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몸매와 얼굴이 잘 빠져 있다.
라이브쇼에는 대개 20 여명의 여자들이 그야말로 하나하나씩 벗고 쇼를 하는데 미국, 일본, 태국, 필리핀 등 다 비교해도 모스크바가 일등인것 같다.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