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와 지팡이 상장제도(喪葬制度)는 한번 토착 관습화되면 나름의 의미와 존재이유를 가지면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속성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백일상이나 하루를 한 달로 계산해서 행하는 역월단상제(易月短喪制)를 시행하였다. 또한 화장을 하거나 빈소를 사찰 내에 마련하여 추천제(追薦齊)를 올리거나, 초상이 나면 무당을 불러다 굿을 행하는 등 무속과 불교가 습한된 무불식상장의례(巫佛式喪葬儀禮)가 행해졌다. 이와는 달리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고려 말에 도입된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거하여 점차 무불식 상장요소가 배제되고 유교식 상장제가 보급되었다. 주자가례에 의거한 유교식 상례는 수 백 년을 내려오는 동안 우리나라의 전통적 상례가 되어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데는 나름의 원리가 있고, 이에 상응하는윤리관이 있어서 그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의례란 이름을 빌려 질서를 세우고 풍속을 바로잡고자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유교식 상례는 풍속을 교화시켜 질서를 세우고, 동시에 효 사상을 세우는 수단으로 삼아 국가에서도 이의 시행을 적극 권장하였던 것이다. 왜 상주는 지팡이를 짚는가 지팡이의 용도는 무었인가, 지팡이란 몸이 불편하거나 혼자의 힘으로 몸을 지탱하기 힘들 때 쓰는 보조용구이다. 그러나 멀쩡한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멀쩡한 데도 지팡이를 짚는 사람은 상주 밖에 없다. 상주라고 해도 모두 상장(喪杖)을 짚는 것은 아니다. 삼년동안 복을 입은 자식만이지팡이를 짚는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상주들은 허리춤 밖에 오지 않는 지팡이를 짚고 삼년상을 난다. 그렇다면 상주들은 몸도 멀쩡하고 불편하지도 않는데 왜 지팡이를 짚는가, 그것은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시신을 싸서 관에 넣으면 상주는 죽음을 인정하고 상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머리와 허리에는 죄인처럼 동아줄을 메고 지팡이를 짚고 3년을 난다. 머리에 메는 것을 수질, 허리에 메는 것을 요질이라고 한다. 상주가 머리와 허리에 죄인처럼 끈을 매는 것은 다름 아닌 효자의 애절한 마음의 표시이다. 그럼 지팡이를 짚는 것이 과연 제대로 먹지 못해 그런 것인가, 2천여 년 전에 쓰여진 예기(禮記)는 상주가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효자가 부모를 잃으니 몸과 마음이 상하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수가 없고 근심과 괴로움으로 3년 상을 나니 몸은 병들고 메마르기 때문에 지팡이로 병든 몸을 부축하는 것이다. 곧 아버지가 계실 때에는 감히 지팡이를 짚지 못하니 높은 어른이 있기 때문이요 대청에서는 지팡이를 짚지 않으니 높은어른의 처소를 피하는 때문이다. 또 대청에서는 빠른 걸음을 하지 않는 것은 허둥지둥하는 것을 나타내지 않기 위함이다. 이는 효자의 뜻이요, 인정의 열매이며 예의의 본보기이니 하늘로부터 내려온것도 아니고 땅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인정에 의한 것이다. 한마디로 부모상을 당한 슬픔으로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허약해지기 때문에 지팡이를 짚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풍속에서는 평소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해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하여 자식들이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겼다. 그래서 상주는 음식을 평상시처럼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었고, 잠은 찬대서 짚으로만든 베개를 베고 자니 몸은 자연히 쇠약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옛 어른들은 효자가 부모를 앓으면 몸과 마음이 상하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수없이 많고, 근심과 괴로움으로 3년 상을 나다보니 몸은 병들고 메말라 지팡이로 몸을 부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3년 상을 행하는 동안 몸을 너무 훼손시켜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생겨 도리어 불효를 저지르는 일까지 속출하였다.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해 어명을 내려 상중에 음식을 먹는 제도를 정하여 대대로 지키도록 하였다. 즉 왕세자와 대군이하 여러 아들은 3일을 굶되 죽을 조금 먹고, 3일 뒤에는 밥을 먹고, 한 달이 넘으면 조금 술을 마시고, 장사를 마치면 고기를 조금 먹는다. 거처하는 것은 더운 것에 따라서 판자상이나 온돌방을 쓰고, 베 이불과 베 베개를 쓰도록 하여 몸이 상으로 훼손되는 것을 막도록 하라고하였다. 임금이 돌아가시면 5개월 장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자식들은 그 기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아 십중팔구 몸을 상하였다. 요즘도 상을 당하면 이웃집에서 팥죽을 쑤어 갖다 주는 풍속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부상(父喪)이면 대나무, 모상(母喪)이면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는가. 상주의 지팡이는 몸을 가누기 위한 도구도 되지만, 한편 상주임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대나무 지팡이(竹杖)를 짚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는다. 누가 돌아가셨는지 물을 필요가 없다. 지팡이만 보면 그냥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상에는 대나무를, 어머니의 상에는 오동나무지팡이를 짚는 것에 대해 세종실록 오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를 위하여 대를 사용하는 것은 아버지는 아들에 있어 하늘과 같은 존재이니대가 둥근 것도 또한 하늘을 본뜬 것이다. 안팎에 마디가 있는 것은 아버지를 위하여 안팎의 슬픔이 있음을 본뜬 것이다. 또 대가 사시사철을 통하여 변하지 않은 것은 자식이 아버지를 위하여, 또한 겨울과 봄여름을 지나도 변하지 않음을 본뜬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상에 죽장을 사용하는 것은 대나무가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여 아버지를 가리킨 것이며, 오동나무지팡이 밑 부분을 깎아 모가 나게 한 것은 땅을 상징하여어머니를 나타낸 것이다. 이는 아버지가 중하기 때문에 대나무 지팡이를 다듬지 않고 거친 것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천지부모(天地父母)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또 아버지를 위하여 지팡이로 대를 사용하는 것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있어 하늘과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버지상에 안팎에 마디가 있는 대나무를 쓰는 것은어버이를 위하는 마음이 밖에서나 안에서나 항상 같아야하며, 대나무처럼 사시사철변함없이 효를 다하라는 뜻이다. 한편 어머니를 위하여 오동나무를 사용하는 것은 오동나무의 동자가 음이 같은 것을 취해 슬퍼함을 아버지와 같게 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오동나무가 대나무처럼 밖에 마디가 없는 것은 집안에서 두 분을 모두 높일 수 없고, 밖에서는 지아비에게 굴종함을 본뜬 것이다. 반면 오동나무가 없으면 버드나무로 대신하기도 한다. 이처럼 상주가 짚고 있는 지팡이만 보아도 누가 돌아가셨는지 알 수 있다. 우리조상들은 단순한 지팡이 하나에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구분했을 뿐만 아니라 유교의 근본사상인 효 사상을 깊이 박아주는 상징성을 담았다. 상주의 지팡이는 단순한 막대기가 아닌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지팡이 노릇을 해왔던 것이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출처] |작성자 샛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