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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제자 공동체로서의 교회

작성자박나무|작성시간26.06.06|조회수1 목록 댓글 0

제자 공동체로서의 교회

방선기

 

선교단체들이 제자훈련 방법을 소개할 때 지역교회로부터 반발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교회 관이 희박하다는 것이었다. 그들 안에서 훈련을 받은 젊은이들이 지역교회에 들어와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하는 말이었다. 물론 그렇게 된데는 지역교회의 수용능력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그들의 제자훈련 방법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문제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훈련받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훈련시킬 때 공동체를 통해서 하셨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제자삼는 사역을 할 때도 개인들을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훈련시켰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의 제자훈련 사역 역시 개개인의 영성을 키우고 소명감에 대한 도전을 하되 그 일이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제 제자훈련을 성경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 제자도의 회복과 더불어 성경이 말하는 공동체의 의미와 특징을 바로 알고 현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이러한 공동체적인 교회를 형성 해가야 할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I. 공동체와 교회

우선 성경이 가르치는 공동체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일반적인 정의를 찾아보면, 공동체는 일반적으로 서로가 동질 감을 느끼고 정해진 도덕적인 규범을 따르는 사람들의 소규모 모임으로 정의된다. 공동체에 소속된 개인들을 생각하고 행동할 때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그들이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에 동시에 공동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도 한다. 이럴 때 그 모임은 개개인의 집합체(Cluster)가 아닌 공동체(Community)가 된다. 한국의 전통사회에 있었던 씨족마을이 좋은 예가 되며 현대사회에서는 가정이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교회가 또한 좋은 예가 된다. 일반 사회학자들은 사회학적으로 볼 때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교회와 같은 공동체는 필수적이라고 말하며 심리학자들 역시 한 개인이 공동체 안에 소속되므로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심리적인 위안을 얻게된다고 말한다. 특히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인해 우리를 잃어버리고 나만이 남아있는 현대인들에게 공동체라는 개념을 아주 필수적이라고 생각된다.

 

성경적으로 볼 때 공동체의 당위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우선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공동적인 인격체(Corporate Personality)로 여겨짐을 볼 수 있다1. 하나님이 수많은 백성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말했을 때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였던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이 개인을 향해 자기의 뜻 을 나타낼 때도 있었으나 그럴 때에도 하나님이 공동적인 인격체인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이 여전히 역사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공동체가 나타났는데 그것이 제자들의 공동체였다. 이어서 형성된 초대교회의 공동체는 그 당시의 규모로 볼 때는 이스라엘 민족공동체에 미치지 못했으나 성별과 계급과 민족의 벽을 초월한다는 면에서 우주적인 성격을 띠었다(갈3:28). 이 교회가 역사를 통해 내려오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고 때로는 변질의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의 교회로 형성되었다.

 

그런데 이와같은 공동체로 시작된 교회가 지금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의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지고 있다. 피터 새비지(Peter Savage)는 로잔 언약의 여섯 번째 항인 교회와 전도를 해설하면서 교회의 모델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2. 그는 (1)개신교의 전통에 따른 강당으로서의 교회 (2) 극장으로서의 교회 (3)종교를 판매하는 이미지를 지닌 회사로서의 교회 (4)풍요한 사회의 부산물로 생긴 사교 모임으로서의 교회 등 네 가지 모델을 소개하면서 사실상 이 모델들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경적인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크리스챤의 공동체로 정의했다. 이어서 그는 교회가 현재의 잘못된 모습으로부터 성경적인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요구하신 제자도를 따르는 제자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제자들이 참 제자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제자들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여야 하며 교회가 참 교회로 개혁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구성원이 성경이 원하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로마 가톨릭 신학자인 에버리 덜레스(Avery Dulles)도 그의 책 「교회의 모델들(Models of the Church)」에서 (1)조직체로서의 교회 (2)신비의 교제로서의 교회 (3)성례로서의 교회 (4)선포자로서의 교회 (5)종으로서의 교회를 언급한 후에 마지막으로 이들을 종합한 제자들의 공동체의 모델을 제시했다3. 그는 특별히 세속화해 가는 현대사회에서 크리스챤들이 제자로서 신앙을 유지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II. 제자들이 공동체

공동체의 정의와 함께 교회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았으면 이제 이 공동체가 지금까지 강조했던 제자들 개개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를 때나(창12:1~3)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를 때(막1:16~20) 분명히 개인적으로 부르시지만 언약을 맺을 때는 항상 공동체를 향해서 맺으신 것을 알 수 있다(창17:7, 행1:8).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개개인과 이들이 이루는 공동체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제자들의 공동체를 이해하는데 요건이 된다.

 

1. 기존 공동체와 개인을 부르심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부를 때 개인적으로 부르셨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는 철저하게 개인이 되어야 했다. 그를 따르는 데는 어떤 사람이나 그룹들이 방해가 되어서는 안되었다.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가 이미 새로운 개체가 되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옛날의 관계를 계속 요구하는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언제나 배척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부모와 처자를 미워해야 한다고 한 말이나(눅 14:26~27) 예수님이 이 세상에 화평을 주러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왔다고 한 말은(마10:34) 다 이런 제자도의 개체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제자의 첫째 요건은 기존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공간적이거나 사회적인 분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해서 문자 그대로 가정을 떠나거나 버리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가정에 대한 책임을 더 분명히 해야 한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비추어 볼 때 그 관계는 무의미해져야 한다는 일종의 영적인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제자가 되기 위해 떠나야 하는 이 기존 공동체는 가정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친구들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기존 교회 안에서 맺어진 인간관계일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공동체에서 떠나가야 한다. 마치 남자가 한 여자와 하나되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야 하는 것(창2:24) 과 같은 분리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2. 개인을 부르심과 새로운 공동체

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을 개인으로 자기 앞에 서게 하신다. 그러나 혼자 고립된 채로 남겨두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새로운 공동체를 약속하신다. 이 새로운 공동체를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고 한다. 각 사람 이 단독으로 따라 들어왔으나 예수를 혼자 따르는 사람은 없다. 말씀을 따라 과감히 개체가 된 자는 교회의 공동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부모와 자식을 버린 사람은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부모와 자식을 얻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한 말이나(마12:50)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고 한 식구가 되었다는 말씀이(엡 2:11~19) 바로 이 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성경적인 제자도를 강조하던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제자들의 공동체적인 특징이다. 본 회퍼가 「나를 따르라」는 제자도에 관한 책 다음에 「신도의 공동생활」이라는 책을 쓴 것은 제자도의 성경적인 특징을 잘 파악한 것이라 볼 수 있다4. 그는 이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 개체가 되어야 하지만 사실상 복음을 전해주는 형제가 전제됨을 말하면서 은총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성경과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에서 그리스도인의 사귐은 시작된다고 했다. 복음이 전해질 때 이미 전함을 받은 그 사람은 공동체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와 다른 그리스도인과 교제하는 때와의 관계를 말하면서 그는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인과 함께 사귀는 생활에 들어가기 훨씬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과 한 몸이 되도록 묶어 주셨다"고 했다. 이것은 제자들이 이루는 공동체의 유기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가 죄를 짓는다고 더 이상 형제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제에게 환멸을 느끼게 될 때가 바로 자신에게 유익 한 때가 될 수 있다. 지체가 상처를 입거나 이상이 생길 때 지체의 기능은 제대로 못할지 모르나 지체로서의 자격을 잃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답게 되도록 하는 노력은 필요하나 교회에 대한 이상에 매여 현실의 형제들을 멸시하고 그들에게 불평한다면 참 공동체를 이루는 제자의 모습이 될 수 없다.

 

본 회퍼는 그리스도인의 사귐을 그리스도인의 성화에 비유하면서 그리스도인이 항상 자기의 영적인 맥박이나 짚고 있으면 안되듯이 교회의 상태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회 속의 사귐을 더 깊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제자도를 강조하면서 기존의 지역교회들을 비판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안목을 제시하고 있다.

 

데이빗 왓슨도 그의 제자도에서 제자도(1 장)와 제자훈련(4 장) 사이의 두 장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함으로써 제자훈련은 제자들이 공동체가 기초되어야 함을 강조했다5. 그는 제자도가 한 사람의 믿는 사람을 개인 전도를 위하여 훈련시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개인 전도가 중요하지만 순수한 개인적 접근은 성경 적이 아니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모든 제자들이 똑같은 전도의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니므로 개인이 전도를 하도록 강요하기 보다 그들이 복음의 실재를 보여주는 교회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더 우선된다고 했다. 불신사회에 비추어 지는 복음은 결국 교회공동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교회가 교회되는 것이 얼마나 제자훈련에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다. 복음전파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나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교회가 전도를 위한 특공대들의 모임이 될 것이 아니라 우선 제자들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자들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안으로 공동체 속의 개체들의 불완전함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의 잘못을 용서해주기 위해서는 자기의 잘못을 서로 고해야 하는데(약5:16) 이런 모습이 이루어질 때 그 교회는 정말 제자들이 공동체가 될 것이다. 이런 공동체는 사실 제자훈련의 수단으로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이다. 엄밀히 말한다면 제자훈련은 교회공동체와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없으며 어떤 의미로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도 없으며 교회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그(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6)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신앙성장의 공동체성을 말하는 것이다. 크리스 석덴(Chris Sugden)은 교회를 제자훈련 센터라고도 표현했는데 그는 이 훈련이 주일학교와 같은 정해진 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여러가지 프로그램과 공동체적인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목회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은사와 삶의 터전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에 의해서 서로가 성장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6.

 

앞서 소개했던 에버리 덜레스는 교회를 "제자들의 공동체"로 정의하면서 기독교 신앙자체를 지적인 동의의 차원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이 공동체와 공동체가 갖는 공동 비전에 대한 동의를 포함시켰다. 그러므로 믿음은 강의실에서 내용을 전달함으로써 전해지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이루었던 공동체와 같은 인간관계의 맥락 속에서 신뢰를 얻은 지도자를 통해서 전달이 된다고 했다.

 

III. 제자 공동체의 필수 요소들

공동체로 시작이 되었던 교회가 세월이 지나가면서 조직화되고 결국은 사회의 또 하나의 조직체로 변했다. 이런 변화는 공동체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요소들이 사라져버리고 외형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제자들의 공동체로 계속 유지, 성장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요소를 알아서 그것을 계속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다.

 

1. 사랑

첫번째 요소는 사랑이다. 본회퍼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아가페적인 사랑이라고 했다. 이 사랑은 사람과 직접 접촉하기를 원하는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만 나눌 수 있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매여있는 사랑을 말한다. 그러면서 이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적인 교회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크리스챤이 말씀 아래서 함께 사는 삶은 한 운동이나 조직이나 단체나 경건한 이들의 모임이 되어 버리지 않고 한 거룩한 그리스도의 공교회로 이해될 때 비로소 건전하게 지속되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지식수준이나 영적인 상태를 따라 맞는 사람끼리 모이면 그러는 중에 인간의 자연적인 요소가 언제나 다시 숨어 들어와서 그 사귐에서 영의 힘을 박탈하고 교회에서 활동력을 거세해 버림으로 분파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현대사회의 문화적인 영향으로 공동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교회의 아픈 부분을 잘 찔러주는 말인 것 같다. 그는 제자들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인데 이 사랑은 세상에서의 경험하는 이기적인 사랑과 달라야 할 것을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오르티즈(Ortiz) 역시 제자들의 공동체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7. 그는 제자도에 대한 강한 도전을 한 후 제자들의 공동체에 핵심이 되는 요소인 사랑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산소(Oxygen)라고 말한다. 그는 제자들의 공동체란 말을 많이 쓰지는 않았으나 제자도(14장)에 이어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5-8장) 공동체를 이루는 제자상을 강조했다. 그는 이 사랑을 이웃사랑, 형제사랑, 삼위일체적인 사랑의 세 단계로 구분하면서 이러한 사랑이 제자 공동체의 핵심이라고 했는데 그에 따르면 결국 제자훈련의 궁극적인 결과는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랑을 나누는 방법이야 시대적인 상황이나 지역사회의 여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재산을 팔고 물건을 통용하던 초대교회의 모습을 문자 그대로 재연할 수 있는 공동체도 있을 수 있으나 공동체의 중요한 핵심은 역시 그 일에서 나타난 사랑의 나눔인 것이다.

 

2. 갈등

제자들의 공동체에서의 핵심이 사랑이라고 하면 얼핏 공동체 안에 어떤 갈등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반대다. 오히려 이 지상에서 갈등이 하나도 없는 모임은 진정한 공동체가 될 수가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정신과 의사인 스코트 펙(Scott Peck)은 공동체에 대한 그의 책 「다른 북(The Different Drum)」 에서 갈등이 없이 평온하기만 한 공동체를 가짜 공동체(Pseudocommmunity)라고 하면서 진정한 공동체에 갈등이 있는 것은 필연적임을 강조했다8. 사실 예수님과 함께 살았던 제자들의 공동체 안에서도 갈등이 있었고(막9:33~34) 성령충만을 체험한 제자들만으로 구성되었던 공동체인 예루살렘 교회가 초반부터 갈등을 경험한 것은, 진정한 공동체는 갈등이 있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증명하고 있다(행6:1 이하).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의 공동체는 갈등을 제거하거나 회피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자훈련할 때 훈련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때로는 내부적으로 생기는 갈등을 무리하게 인위적으로 제거하려는 노력을 하는 수가 있는데, 그렇게 될 때 그 공동체는 원래의 제자 공동체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제자 훈련은 있으나 사실상 제자의 공동체는 사라지게 되므로 제자훈련 자체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제자훈련할 때 엄격한 기준에 따라 훈련을 하지만 개개인에게 있는 갈등이나 서로서로의 갈등을 드러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그 훈련이 효과적이거나 성공적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예수님의 제자훈련이나 초대 교회의 제자훈련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3. 예배와 찬양

 

기존 대부분의 제자훈련이 개개인의 영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게 되므로 개개인이 소속되어있는 지역교회에서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을 그다지 표명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교회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강조하던 공공예배의 중요성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제자도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제자의 삶에 있어서 공동적인 예배의 중요성을 무척 강조한다. 사실 예배에 관해서는 이미 기존교회에서 강조해왔던 터라 예배에 대한 강조가 조금은 새삼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의 예배권을 전통적인 교회의 예배관과 비교해 보면 분명한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교회, 특히 개신교회에서는 예배의 중심은 말씀선포였고 나머지는 이를 둘러싼 장식품들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들은 예배 가운데 예식과 찬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들이 말하는 찬양은 흔히 보듯이 성가대의 찬양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한 마음 한 목소리로 하나님께만 드리는 찬양을 말한다. 사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교회의 예배는 크리스 석덴이 지적했듯이 "찬송이란 빵 사이에 독백이란 고기를 넣은 예배"였다. 이들은 이제 이러한 예배가 진정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로 바뀌게 될 때 비로소 교회가 제자들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와같은 찬양에 대한 관심과 강조는 성경적인 제자도를 강조하면서 제자 공동체를 말하는 이들 모두에게 공통으로 나타난다. 본회퍼는 그의 책에서 공동생활의 중요성에 대한 권면을 마치자마자 이어서 제자훈련의 과정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아침을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고(큐티) 시편을 통한 기도와 성경읽기의 중요성을 말하고 이어서 "함께"드리는 찬양을 말했다. 제자들의 찬양은 영혼에서 우러나온 음악으로서 영적인 훈련이 제대로 될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을 할 수 있다. 찬양이 공동체에서 중요한 이유는 함께 노래함으로써 같은 말을 동시에 말하고 기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결론적으로 함께 노래할 때 울려나오는 소리를 교회의 소리라고 말하면서 찬양을 통해서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왓슨도 제자훈련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방법으로써 찬양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승리를 체험하기도 하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기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 안에서 하나될 수 있었다. 사실 제자훈련 과정에 필요한 경건생활을 위한 활동들 가운데서 찬양만큼 성도들을 하나되게 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왓슨은 진정으로 찬양하는 교회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교회가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오르티즈는 찬양을 하나님 나라의 언어라고 정의하면서 제자훈련에서 찬양의 비중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제자도를 순종, 사랑, 찬양으로 요약할 만큼 찬양은 제자로서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했다. 그는 찬양을 강조하면서 진정한 찬양은 거룩한 단어만을 나열하는 찬양이나 주일 아침에 베풀어지는 말 잔치만의 찬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감사의 찬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자연을 보고 터져 나오는 찬양을 말한다. 바로 이러한 찬양들이 제자로서 성장해가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4. 하나님 나라의 실재(Presence)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공동체로서 시작될 때부터 주변 세상과 구별되는 또다른 하나의 사회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콘스탄틴 황제의 국교화 이후로 교회는 그러한 공동체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오늘날에도 교회가 사회 속에서 종교단체로서는 다른 단체들과 분명히 구별되지만 교회가 보여주는 가치관은 세상의 가치관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음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제자들의 공동체로 회복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그 삶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보여주어야 하며 미래에 우리가 함께 누리게 될 하나님 나라를 미리 보여주는 대안적 사회(Alternate society)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왓슨이 지적한 대로 교회는 현대사회의 가치관에 도전하면서 성경적인 비전을 실현하려고 애쓸 때 비로소 제자들의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 석덴의 진정한 제자도는 교회를 복음의 한 부분으로 여긴다는 말은 이런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기관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복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가 제자들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제자들 개개인이 그리스도가 하신 명령에 순종할 뿐 아니라 공동체가 그 명령에 공동으로 순종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그리스도인의 복음전파는 개개인들의 일대일 전도만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그 자체로서 복음을 나타냄으로써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역교회는 그가 속해있는 그 지역에서 모든 생활의 중심 역할을 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교회는 지역사회 안에서 종교적인 게토(Guetto)로 남아있어도 안되고 그렇다고 중세교회처럼 지역사회를 통제해서도 안된다. 현대 교회는 이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 그 나라의 가치관을 보여주어야 한다. 제자로 훈련시키는데 있어서 이러한 교회관을 심어주는 것은 예수님이 기대하는 제자를 만드는데 최종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IV. 제자 공동체의 형성과 참여

이상과 같은 공동체의 요소를 살펴보고 나면 이런 공동체의 모습을 나타내기에 기존교회의 구조는 부적당하다고 느끼게 되기 쉽다. 사실 그렇게 느끼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제자훈련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이유 때문에 기존교회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문제는 기존의 지역교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구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를 제자의 공동체로 만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쉽게 기존교회를 포기할 것 이 아니라 참을성을 가지고 기존교회 안에 앞서 말한 공동체의 요소들을 형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톰 사인(Tom Sine)은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9. 첫째, 교회의 전통적인 구조에 강조점을 두지 않고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일하는 소그룹의 공동체를 이루는 가정교회를 형성해서 참여하는 것이다. 둘째, 큰 제도적인 교회 안에 적은 공동체들을 여럿 만드는 것으로 미국의 에반스톤에 있는 레바 프레스 교회나 와싱턴의 구세주 교회가 좋은 예가 된 다. 셋째, 다른 그리스도인과 지역 공동체를 구성해서 참여하는 것인데 남미에서 활발하게 일어나는 "기초 공동체(Communidades de base)"나 미국의 와싱턴에 있는 소저너스 공동체(Sojourners Community)나 우리 나라에 있는 예수원, 두레마을 등이 좋은 예가 된다. 이들 공동체 혹은 공동체적인 모임은 어떤 정해진 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각 공동체의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공동체 교회는 하나됨의 표현을 공동금고(Common Treasury: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로 나타내기도 하고 찬양과 함께 침묵을 통해 하나됨을 나타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앞서 말한 공동체의 요소들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공동체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에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런 새로운 공동체의 등장이 기존교회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 새로이 나타나는 "가정교회"들의 등장을 반갑게 생각하면서도 이들 이 기존교회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서 부정하는데까지 가게 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역교회를 개혁을 통해 제자들의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오르티즈의 조언이 도움이 된다. 그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사랑을 새 포도주로 말하고 그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한 새 부대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기존교회의 구조변화를 역설했다. 그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공동의 삶을 나눌 수 있는 더 작은 공동체의 필요를 이야기하면서 이것을 세포로 정의했다. 그가 말하는 세포모임의 요소는 기도, 경배, 찬양, 고백, 나눔으로 이어지는 예배와, 말씀을 연구하는 토론 그리고 말씀을 기초로 한 계획수립, 행동화 그리고 재생산의 다섯 가지이다. 사실 그가 말하는 바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목표로 해서 이런 요소들을 재정비하게 되면 기존교회 안에서도 성경적인 공동체 의 모습을 얼마든지 형성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제자훈련의 강점은 개개인에 대한 관심과 이에 대한 영적인 훈련이었다. 이런 강조는 상대적으로 교회의 공동체성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성경적인 제자훈련은 그 초점이 개인과 공동체에 동시에 맞추어져야 함을 알게 되었다. 이제 제자훈련의 비전을 가지고 훈련에 임하는 사람은 개인에 맞추어진 초점으로 인해 공동체를 잃어 개인주의적인 신앙으로 흐르게 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공동체에 맞추어진 초점 때문에 전통적인 교회가 보여주었듯이 개인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성경이 보여준 제자훈련 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주(註)-------------------

1. H. Wheeler Robinson, Corporate Personality in Ancient Israel, Fortriss Press.

2. C. Rene Padilla (ed), The New Face of Evangelicalism, IVP.

3. Avery Dulles, Models of the Church, Image.

4. 본회퍼, 신자들의 공동생활, 기독교서회.

5. 데이빗 왓슨, 제자도, 두란노서원.

6. Chris Sugden, Radical Discipleship, Marshall Morgan & Scott.

7. 후안 카르로스 오르티즈, 제자입니까 , 두란노서원.

8. Scott Peck, The Different Drum, Simon & Schuster.

9. 톰 사인.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제자도. 두란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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