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에 나타난 교회의 문제점
| 1. 서론 바울은 서신서를 통해 교회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 글에서는 7개의 바울 서신을 대상으로, 각 서신에서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특정한 문제와 그 자신이 제시한 답변을 찾아보고자 한다. 2. 로마서 가. 문제(불신앙, 정욕, 남을 함부로 판단함)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음 사도 바울은 로마서의 초반부터 로마 교회 교인들의 죄악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그들의 첫 번째 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에도 불구하고(1:19),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생각이 허망하여졌다(1:21).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 버렸다(1:22). 정욕에 사로잡힘 바울은 하나님께서 로마 교회 성도들을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셨다고 기록하고 있다(1:24). 그 이유는 저희가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겼기 때문이었다(1:25).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대로 내어버리신 결과, 그들은 동성연애를 하게 되었다. 곧,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고, 여인들도 같은 죄를 지었다. 각종 죄악 로마 교회 성도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살게 내버려 두셨다(1:28). 그래서 그들은 성도로서 합당치 못한 일을 많이 하였는데, 곧 모든 불의와 추악과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비방, 교만, 우매, 무자비 등의 죄악이었다. 그들은 이같은 죄가 사형에 해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이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고 했다. 남을 판단함 로마 교회 성도들의 다른 문제점은, 자신들은 그토록 많은 죄를 지으면서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판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시는 성품을 멸시하는 것이었다(2:4). 그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고집을 부리고 회개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는 쌓여만 갔다(2:5). 나. 바울의 답변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말함으로써 그들을 경고하고 있다. 바울은 남을 판단하는 그들에게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묻고 있다(2:3).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오래 참으심과 인자하심으로만 알고 있던 그들에게, 바울은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2:7),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며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2:8). 또한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환난과 곤고가 있는 반면,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인류를 세 분류로 나눈다. 곧 타락한 이방 사회(1:18-32),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비판적인 도덕론자(2:1-16), 박식하고 자기 과신적인 유대인들(2:17-3:8)이다. 그리고 나서 전체 인류의 죄를 고발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3:9-20). 각각의 경우에 그의 논증은 똑같다. 즉 아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 따라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특별한 특권들을 가지고 있다 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제받지는 못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3:9).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2:11).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였으므로 핑계할 수 없다. 3. 고린도 전서 가. 분쟁의 문제(분쟁, 시기) 고린도 교회에는 분쟁이 있었다. 어떤 성도들은 스스로를 바울에게 속한 자라고 했으며, 어떤 이는 아볼로에게, 게바에게,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하였다(1:12). 이들이 서로 싸우는 분쟁들은 단순하거나 개인적인 문제들이 아니라, 공동체의 모든 성도들의 마음과 영혼에 관련된 문제들이었다.그들은 성도이면서도 육신에 속한 자와 같았다(3:1). 서로 시기하였으며, 온 성도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집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또,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나. 바울의 답변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다룰 때, 먼저 자신이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바울이 더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더라면 이 분쟁은 더 커졌을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보내신 이유에 대해,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고 있다(1:17). 그러면서 자신이 전하는 복음, 즉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포하고 있다(1:18). 바울은 1:19에서 1:25까지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결국 이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는 자라고 해도, 그의 지혜로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하지만 그리스도 예수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고백대로 전도할 때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기보다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해야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2:5-6). 바울은 분쟁을 겪고 있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의 원칙 즉,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라” 또는 “온전히 합하라”는 말을 함으로써 그들의 협동과 하나의 교회로서의 조직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들은 서로가 지체이며 그 몸의 지체들이다. 그리고, 그 몸은 교회이며, 교회의 유기체적 생명은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하나님에 증거이다. 바울은, 그들 가운데 각기 다르게 추종했던 바울 본인과 아볼로에 대하여 역할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으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말하고 있다. 결국 바울과 아볼로는 똑같이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므로 성도들이 나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 문제를 다루며, 끝으로 성도들에게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3:16). 그리고 성도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3:23)을 말하며 온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연합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4. 갈라디아서 가. 문제(이단, 위선, 구원에 대한 오해) 이단의 문제 갈라디아 교회에는 이단의 문제가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를 ‘다른 복음’(1:7)이라고 칭하였다. 그는 갈라디아 성도들이 ‘그들을 부르신 이’를 속히 떠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1:7). 사도들의 위선 사도 바울은 베드로와 유대인들의 형식적인 신앙을 질책하고 있다(2:11). 베드로는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야고보에게서 어떤 이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를 피하였다. 그는 할례자들을 두려워한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유대인들도 베드로와 같이 외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구원의 문제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방인과 식사하는 문제’에 이어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식사의 문제는 율법의 문제이며, 율법의 문제는 곧 구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 자체가 틀린 것이었다. 나. 해결책 ‘다른 복음’을 전한 자들은 자신들의 메시지와 활동이 바울의 가르침과 사역을 보완하는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바울은 이단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였다. 그는 “다른 복음은 없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들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을 말하였다. 이어서 그는 복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가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1:12). 바울은 모든 기독교 사상과 삶의 시금석으로 자신이 전하고 받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회심자들 중에 있던 유대화의 위협에 대응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베드로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것처럼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신 분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도 바울이 유대교에 있을 때에 열심이 지나친 나머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을지라도 사도로 부르신 분이었다. 사도 바울은 그 은혜를 깨달았다. 그래서 혈육과 의논을 하지도 않고,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났다고 고백하고 있다(1:16). 바울보다 먼저 사도가 된 자 베드로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였다. 그는 이방인과 식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숨기고자 했다. 유대인 전통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식사하는 것을 기피했다. 유대인들이 지키는 율법에는 음식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었던 반면, 이방인들은 음식에 대한 분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베드로는 이방인과 식사를 하다가 유대인들로부터 비난받게 되자 그 자리를 피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도의 행동으로 보기에 너무도 연약한 모습이었다. 그는 이미 베드로 개인이 아니라, 당시 핍박받던 교회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행동은 파급 효과가 있었다. 다른 유대인들도 이같은 외식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사도 바울을 이들을 책망하고 있다.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않았다”(2:14)고 지적하고 있다. 이방인과의 식사 문제는 결국 율법과 구원의 문제였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유대인이라 해도 아직 율법에 얽매여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2:16). 바울은, 자신이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자라고 했다. 율법의 역할은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인도하는 것 뿐이며, 성도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후에는 자유함을 얻어, 더 이상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5. 빌립보서 가. 문제(분쟁) 빌립보 서신 전체에는 빌립보 교회가 모든 일에 있어서 다 잘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들이 보여 진다. 여기에는 해로운 이기심과 교만 등이 공동체에 존재한다는 암시들이 있다. 교회 안에 의견 불일치로 인한 강력한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던 두 여인이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었고, 교회는 편이 갈려 분열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빌립보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부터 바울을 도왔던 여성들이었다. 그들의 헌신과 지도력은 다른 교인들뿐만 아니라 바울 자신도 인정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그들을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4:3)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문제는 두 사람에게 분쟁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 바울의 답변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 이 두 사람의 분쟁에 대해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두 사람에게는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이며 낮아지는 마음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임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구원과 복락을 위하여 죽을 만큼 자신을 비우는 마음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울이 “같은 마음”을 품을 것을 요청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겸손과 자기희생을 발휘하도록 요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데 힘써야만 했다. 다음으로 바울은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에게, 그들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라고 요청하고 있다. 빌립보 교인들이 그들을 도와야 할 이유는 그들이 바울과 “함께 힘쓰던” 부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과 함께 힘쓰던”(헬, 수나드레인)은 시험이나 투기 경기장에서 유래된 은유적인 말이다. 이 말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힘을 합하여 싸운 것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싸움에서 야기된 고난에 동참한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울은 두 여인이 불화한 내용을 말하지 않고, 그들의 복음을 위한 공헌을 말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위해 다시 화합할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남의 단점보다 공을 내세워 높여 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바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기쁨이 없었기에,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였다. 서로 관용하며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뢸 것을 권면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4:6).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권면의 말을 전할 때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라는 표현을 썼다. 그만큼 그는 간절히 말하였다. 그는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였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하였다. 이 땅의 재물과 명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 받는 자신의 모습을 성도들이 본받고 따르기를 원했다.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참되고 경건하고 옳으며 정결하고 서로 사랑하기를 바랬다. 6. 골로새서 가. 문제(이단, 종교혼합주의) 골로새 교회는, 당시 골로새 지역에 퍼져 있었던 복잡한 혼합 종교들의 영향을 받고 또 그 영향에 의해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골로새 교회의 구성원은 거의 이방인이었다(1:12, 27). 그들은, 그들이 과거에 지니고 있던 이방 사상이나 이방 종교의 전통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또 그런 거짓 가르침에 쉽게 넘어갈 위험성이 많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도 빨리 혼합 종교의 위험에 빠지게 되었을까? 그들의 전통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에온’(영지주의자들이 믿는 반신반인적 존재) 가운데 하나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옛 종교 체계에 편입시키고, 기독교 예배의식도 과거 자기들의 종교의식과 혼합했다. 그 결과, ‘구원자와 세상의 통치자로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위협받게 되었다. 또한 기독교 예배도 골로새의 토착적인 혼합 종교들의 광란적이거나 금욕주의적인 예배의식과 섞여 진정한 사도적 전통이 위협받게 되었다. 이처럼 골로새 교회를 혼란시킨 이단사상에 대해, 바울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유대교 율법주의와 영지주의자들로 보인다. 바울은 2:8에서 ‘철학과 헛된 속임수’라고 표현했다. 할례와 세례 유대교 율법주의자들은 기독교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의 할례’ 즉 세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절기를 지키는 문제 절기에 대한 문제는 2:16에 제기되고 있다. 유대교 율법주의자들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에 관한 문제로 기독교인을 공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천사 숭배의 문제 어떤 사람들은 일부로 겸손한 채 하고 천사를 숭배하기도 하였다(2:18). 그들은 육체를 따르는 자들이었고 헛되이 과장하는 자들이었다. 때로 그들은 자기들의 몸을 괴롭게 하기도 하였다(2:23). 나. 바울의 답변 골로새서는 바울이 전한 기독교의 복음이 헬라의 혼합 종교와 부딪쳐서 그 순수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헬라의 혼합 종교의 체계 속으로 녹아들어가고 있을 때 이것을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바울은 이런 혼합주의로부터 복음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유일성, 절대성, 우주론적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골로새 교인들의 복음을 확고히 하려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믿음에 굳게 서기를 원했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노략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그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야말로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라고 하였다. 유대교 율법주의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였던 ‘할례의 문제’에 대해서는 성도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성도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하였다(2:12). 바울은 또 ‘십자가 사건’을,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신 행위라고 하였다(2:14).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은 절기를 지키는 문제도 제기하였다. 바울은 이에 대해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2:16). 바울에 의하면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영지주의자로 추정되는 자들의 행위에 대해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며 머리를 붙들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바울은 이들의 헛된 신앙을 ‘세상의 초등 학문’에 비유했다.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였다. 바울은 3장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권면하고 있다. 그 내용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죽은 것이며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인 것이기 때문이다. 7. 데살로니가 전서 가. 문제(재림에 대한 오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유대교나 이교에서 새롭게 회심한, 갓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들은 이제 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확신을 얻고, 기독교적 도덕 기준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의해 핍박을 받고 있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초신자들이 박해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지 않을까 염려하였다(1:3-4). 비록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심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했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일어날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상생활을 충실히 하지 않고 재림만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많았다. 바울은 본인 스스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만나 그들의 신앙을 확고하게 해 주고 싶었지만, 환경이 허락하지 않아 서신을 보내게 되었다. 나. 바울의 답변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라고 칭하였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다른 서신에서처럼 ‘하나님의 교회’라 부르지 않고 ‘하나님 ~ 안에 있는 교회’라고 것은 아마도 어리고 박해받는 교회에 대해 ‘하나님 안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모든 교회의 생명과 힘과 안정됨은 바로 그 분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 교회에 ‘은혜와 평강’이라는 인사말을 전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는 평강을 베푸시고 그것을 유지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 분이 값이 과분하게 주시는 은총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현실의 삶에 충실할 것을 명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이니 음란을 버리라”고 하였다.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를 취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라”고 하였다. 바울은 또, 성도들에게 형제를 사랑하고,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고 단정히 행할 것을 권면하였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할 것이며, 이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 말을 기록하며 성도들 간에 서로 위로하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재림 시기에 대해서는 “쓸 것이 없다”고 하였다(5:1). 주님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을 성도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날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갑자기 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 5:8에서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근신과 믿음과 사랑과 구원의 소망이다. 8. 디모데 전서 가. 문제(불경건, 교회를 훼방함) 사도 바울은 디모데 전서에서 징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1:18-20). 어떤 이들이 양심을 버리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기 때문이었다(1:19). 칼빈은, 악한 양심이야말로 모든 이단의 어머니라고 하였다. 그는 디모데전서 주석에서 “믿음을 정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인 일이 없는 무수한 사람들이 들짐승처럼 쾌락주의자들의 광기에 몰려들고 있으며, 그 결과 그들의 위선이 폭로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또, 바울이 ‘파선’에 비유한 것이 매우 적절하다고 평하였으며, 선한 양심대로 살지 않을 경우 마치 폭풍우치는 바다에서 파선하는 배처럼 가라앉을 것이라고 하였다. 디모데는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 루스드라에서 만난 인물이며 바울과 함께 베뢰아, 데살로니가, 고린도 등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서신 디모데 전서를 받을 당시에는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였다. 디모데는 몸이 좀 약하고 감수성이 풍부하였으며, 다소 소극적인 성격이었던 같다. 그러나 복음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진실하고 헌신적이었다. 바울은, 자신을 아버지처럼 섬기며 복음을 위해 일해 온 디모데를 자주 칭찬하였으며 아들로 여겨 조언과 권면을 하였다. 나. 바울의 답변 바울은 징계 받은 인물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거론하고 있다(1:20). 바울은 그들을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징계한 이유는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도들에게는 경건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호의의 증거로서 치료의 은총이 부여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불경건하고 반역적인 사람들을 마귀에게 넘겨주어 고문을 당하게 하거나 그들에게 다른 처벌을 부과할 수 있는 능력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에서(행 5:1), 바울은 마술사 바예수의 경우에서(행 13:6) 이 능력의 행사에 대한 예를 우리에게 각각 보여준 바 있다. 바울은 징계의 목적에 대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는 사랑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자칫 스스로 율법 선생이 되고자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을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불법한 자와 죄인과 경건치 못한 자를 위해 세워졌다는 점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징계의 문제’를 말하며 죄와 율법에 대해 말하고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1:15)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와 같은 죄인에 대해 오래 참으시고, 영생 얻는 자들의 본이 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징계의 문제를 조심해서 다룰 것을 말하고 있다.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에 따라 그것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1:18,19)고 하였다. 참고 문헌 Farrar, F W.『고린도전서(상)』풀핏성경주석시리즈 풀핏성경주석서 번역위원회 역. 서울: 한국광보개발원. 1982. 리처드 N 론제네커, 『갈라디아서』WBC주석시리즈 41 이덕신 역. 초판;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2003. 목회와 신학 편집팀 편, 『에베소서〮ㆍ빌립보서ㆍ골로새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두란노HOW주석시리즈 10. 서울: 도서출판 두란노, 2003. 존 스토트,『데살로니가전후서 강해』BST시리즈 정옥배 역. 초판; 서울: 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 1993. 존 스토트,『로마서 강해』BST시리즈 정옥배 역. 서울: 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 1996. 존 칼빈, 『고린도후서/에베소서/디모데전후서』칼빈성경주석,제9권, 존 칼빈 성경주석출판위원회 역. 서울: 성서교재간행사,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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