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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기도가 응답되는 조건

작성자박나무|작성시간26.06.10|조회수1 목록 댓글 0

기도가 응답되는 조건

 

기도는 믿음이 생활속에서 최종적이고 실재적이고 결정적인 것이다.

기도는 관심을 기도의 큰 원리는 자기의식을 따라 움직인다.

네 보물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내가 어디에 가치관을 두느냐에 따라 마음이 끌려간다.

돈에 가치를 두는 사람은 마음이 빠져도 돈에 들어간다.

이것이 간 빼주는 것이다.

간 빼주면 그 사람을 따라다니듯이 내 마음을 다른 것에 빼앗기면 내 인생을 빼앗기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간 빼주지 않는 인생을 살려면 절대로 몸 밖에다가 가치를 두지 않고 가치를 내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이것이 이기주의이다.

나아가 나에 힘을 주면 나는 밖의 것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밖에서 들어온다. 내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 힘을 주어도 아무것도 안된다.

힘을 주어보아야 똥밖에 안나온다.

간빼어주도 안되고 힘주어도 안되고...

이것을 해결하려면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주를 만든신 분이시다. 내 속에서 역사하시며 내 밖에서도 역사하시며 모든 것을 나에게 모아서 주시는 분이시며 내 속에 계신 주님은 나에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종, 도구로 쓰셔서 나를 인도해 주시므로 내가 주님 때문에 이웃의 섬기며 돈의 통로가 된다 할지라도 돈에게 간을 빼주지 않고 어떤 사람한테 내 인생중심이 흘러가지 않고 언제든지 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얼마나 멋있는가? 그리스도는 지혜중에 지혜이며 주님이상 지혜가 없다. 주님을 버리면 미련해 지는 것이다. 우리는 굉장히 똑똑한 것 같지만 인생을 헛집는 것이다. 우리가 내 자신을밖에 뺘앗기지도 않고 자기 자신에게 도취되지도 않도록 해야한다. 진리는 안팎이 서로통해서 주관과 객관이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 진리이다. 밖을 통해서 안을 채울 수있고 안으로 통해서 밖을 선택하고 표현할 수 있는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되는 것이 도이다. 이 하나가 되게 하시는 것은 주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중용은 반씩 하는 것이다. 반씩 하므로 중용은 다 중화가 되어서 아무것도 없어지는 것이다. 세상사람의 지혜는 반씩 택하는 것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사람은 반씩 해도 아무 능률이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강력하게 집중을 해야지 반씩하면 아무것도 안된다. 중용은 웃기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중용으로 극단을 피하고 평균치를 표준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활에서 쓰릴을 잊어버리고 자기를 시원하게 푤현하지 못하고 답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젏은 사람들이나 극단적인 사람은 중용에 속하지 않고 자기를 최대한 발휘하게 되는 것으로 영웅주의이다. 영웅주의를 고대하고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휘틀러같은 우상이 나올 때 따라하게 되는 것이고 이런 사람에 의해서 세상이 또 뒤집힌다. 이세상의 사람은 이런 가운데 실수를 반복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처럼 취급하고 주님처럼 만드시는 영웅주의이시다.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주역이 되게 하고 인생을 다스리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이웃을 위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기를 죽이고 부인해서, 비굴할 정도로 타협하고 비굴할 정도로 양보하는 극단적인 자기를 부인하는 양극을 다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복음이다. 그래서 복음으로 살면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 된다. 비굴할 때는 한없이 비굴하고 용감할 때는 인정사정 없이 용감한 사람이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다. 복음으로 산다는 것은 생활력이 강한 사람만 산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이 강한 사람은 정이 많은 사람, 눈물을 흘려야 할 때에는 최대한 눈물을 흘리고 참고 견딜 때에는 바보처럼 참고 견디면서 자기 인생을 조정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내 속에 있는 예수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 기도이다. 극단적인 영웅주의로서 나를 내세우느냐 참고 견디면서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 기도이다. 말씀을 배우고 다른 것을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종합적으로 모든 것이 내 속에 와서 하나가 되고 기도를 통해서 인격화가 되고 현실화가 된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 권세를 주셨다. 구하면 주시고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받게 되고 기쁨이 충만게 되도록 하셨다. 기도는 주님을 통해서 나를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기도를 통해서 인생을 가장 가치 있게 자기를 만드는 과정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속고 다른 사람에게 간 빼어주어서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한다. 기도를 통해서 자기에게 속고 환경에 끌려 다니는 소모적인 인생을 내가 잘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 기도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것도 끌려가는 것이고 속아 넘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많이 쓰는 것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고 사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가장 지식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기도가 응답되는 조건

1) 죄를 고백할 것(사59:1-2, 요일1:10)

(사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사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죄는 두가지가 있다. 밖의 것을 따라가는 죄, 내 속에 계신 주님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고 밖의 것을 따라가는 죄가 있다, 나를 너무 주장하느라고 이웃을 섬기지 못한 것이 죄이다. 죄는 내 머리로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 뿐이시다. 밖의 것을 너무 따라 가는 죄, 밖의 것을 섬기지 못한 죄, 내 속에 계신 주님을 의식하지 못한 죄, 나를 너무 의식한 죄, 자기 자신, 주님의 것을 통해서 내 것을 받지 못한 죄, 이것이 우상이다. 주님 외에 모든 것이 우상이다. 우상은 두 가지이다. 안에 있는 우상과 밖에 있는 우상이다. 안에 있는 우상은 자신으로 자기 자신의 탐심이나 신념이나 계획이나 이상이 다 우상이 되고, 밖에 있는 우상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다. 밖의 것은 이생의 자랑으로 객관적인 우상이다. 이런 것들은 다 나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언제나 참된 나는 주님이시다. 여호와는 who I am이다. 정말 하나님이 나다. 하나님으로 살 때 나를 느끼고 나를 실현되게 한다. 하나님으로 살 때 나가 실현된다. 보통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내가 손해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대치되는 것으로 안다. 미련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살아야 한다. 발의 형상은 양말이고 손의 형상은 장갑이다. 이렇게 양말과 장갑의 구실은 주인의 손발에 끼워쓰여질 때이다. 우리가 참된 나는 하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요일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범죄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필요없다는 것이고 나 혼자살수 있다고 하는 독립선언이다. 하나님과 대치되는 것이다. 마귀는 하나님과 대치시키는 인격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대치될 때 우리 인생은 근본적으로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죄의식을 너무 많이 가지면 좋지 않다. 환경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고 사람은 뭐든지 합리화할려고 한다. 합리화를 해주면 그 만큼 가벼워진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없을 때 가능한 것이다. 세상은 합리화를 하다보니까 자신에게 힘을 주고 미련하게 된다. 미련하게 되므로 환경을 통해서 받을 것을 받지 못하고 자기를 환경과 고립시킨다. 결국 매말라지게 하는 것이 합리화이다. 이 합리화는 자기의 이고 변명이다. 합리화하는 사람은 환경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다.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인정하게 될 때 하나님이 내게 주신 환경이나 사람을 통해서 통로가 열리게 된다.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부족을 너무 많이 인정하므로 자신이 무거워져서 슬퍼지므로 열등감, 우울증이 되지만 우리는 우리 속에 주님이 계셔서 죄를 인정하므로 환경을 긍정하게 된다. 믿는 사람은 현실적이다. 믿지 않는 사람은 필요 없어 하지만 믿는 사람은 내죄야 라고 고백한다. 고백한다는 것은 당신에게 받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받아들여야 살아남는다. 현실을 부정하면 살수 없다. 죄를 인정하므로 현실을 받아들이며 필요한 것을 선택하며 내 인생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내 죄를 인정하지만 주님이 내 죄를 맡아주신다. 그래서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현실에 사는 것을 인정한다.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내 속에 힘을 주지 않고 내 속에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자기를 감격할 수 있고 자기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는 것이 바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버틀란트 셀리는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라는 책에서 기독교는 죄 없는 사람에게 자꾸 죄라고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준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는 철학도 아니다. 어리아이의 수준이다. 그러나 자기 죄를 인정하는 사람이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고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다.

주님이 우리 죄를 다 지셨기에 우리를 다 몽땅 먹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높이는 것은 우리 주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것이다. 대속으로 우리가 주님을 높인다.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죄인인데 이 죄를 인정하고 처리하는 일에 달라서 인생이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도 민족의 죄도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죄도 고백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유익이 될 수가 있다. 하나님이 쓰시는 영적인 지도자는 자기, 이웃, 민족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을 쓰셨다.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쓰지 않는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죄를 고백할 때 성령께서 우리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 죄를 고백하는 것만큼 우리 인생에 내가 내 영역으로 그동안 차지하지 못했던 것을 차지하고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축복을 받는다.

2) 이웃의 죄를 용서할 것(마6:14-15)

(마6:14-15) 용서하면 용서한다. 다른 사람의 죄를 볼 때 내 죄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기에 내 속의 주님은 다른 사람의 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대속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의 죄에 걸려 있으면 내 속에서 주님이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주님을 통해서 그 사람에게 받을 복을 받지 못한다는 뜻도 있다. 상대방에게서 마음이 상했다든지 용서하지 않으면 그 사람으로 내게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죄가 내게 보이면 내가 살았다는 것이다. 자아는 나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사람들이 양심적이고 착한 사람들은 다 다른 사람보다도 자기가 잘났다. 양심적인 사람은 자아를 섬기는 것으로 결국 그 사람으로 잘되지 못했다. 우리는 양심적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하나이기 때문에 에너지가 통과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양심적인 사람은 자기가 속임을 당하고 억울을 당하는 것이 아프지만 그것 자체가 죄이며 미련이다. 우리는 이웃의 죄를 대속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애통하고 회개할 때 참된 내 속에 계신 주님이 역사한다. 이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통해서 주님이 역사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도 정죄할 수도 없고 정죄할수록 힘주므로 마귀만 들어온다. 아무 유익이 없다. 우리는 내가 내 자신을 통과만 시키면 된다. 우리는 내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있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동감하고 같이 되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인정은 하면서도 동화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지만 동화되지는 말아야 한다.

3)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할 것(요일5:14-15)

(요일5:14-15) 하나님의 뜻은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해 주신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구하면 우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메카니즘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 강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나도 흘러가면 쉽다. 우주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인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회로를 수정할 때 시간, 감정, 물질, 감정회로가 조정될 때 하나님의 뜻이 내 생활에서 고쳐지는 것이다. 생활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죄를 회개하고 벗어버리기만 하면 우주전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돌아가기 때문에 점점 내 것이 아닌 것을 내가 누리게 되고 가지게 되고 다스리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왕권이다.

4)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것(요14:13-14)

(요14:13)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응답되는 것만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아버지의 모든 영광을 예배를 받으실 수 있는 영광을 아들에게 주셨다. 우리가 주님께서 기도를 통해서 주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영광을 구한다고 할 때 어떤 병자나 가난한 자가 있을 때 필요한 것을 구할 때 우리가 가서 도와주고 공급받는다고 할 때 그 사람은 누구에게 영광을 받으시는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내가 구할 것이 아니라 이웃을 바라보고 행동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이다. 흉악한 결박과 멍에의 줄을 풀어주고 눌린 자를 놓아줄 때 그들이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베풀 때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그 마음으로 일생동안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내 유익을 구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안 나타아고 욕심만 더하고 불만만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할 때 내 눈이 더 밝아지고 내가 풍성해 지고 내가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가 되기 때문에 주면 줄수록 흔들어 넘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5)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할 것(롬8:26-27)

(롬8:26)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를 말이 많으나 너희는 감당치 못하리라 주님은 말로 제자들을 가르치지 않고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말로 이해를 하면 내 자의식이 높아진다. 자의식이 높아지면 자기에게 힘을 준다. 우리는 자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식으로 인도함을 받아야지 진리가운데서 살게되고 하나님이 내 속에 오셔서 살게된다. 자아의식으로 점점 잘되면 내 의식이 더 커진다. 그래서 자의식으로 기도할 때 점점 안되게 하는 하신다. 자의식이 점점 커지면 안 되는 법칙 때문이다.

6) 보이는 것에 좌우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할 것(잠3:5-6, 고후5:7)

(잠3:5)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명철이 자의식이다. 자의식은 1/2의식이다. 자의식이 밝다고 하는 것은 어두운 것을 전제로 해서 느껴지는 것이다. 좋았던 것을 상대로 해서 슬퍼기도 한다. 선은 악을 전제로 느낀다. 우리 자의식은 아무리 깨달았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1/2밖에 안되며 도리어 반대가 된다. 그래서 사람의 의식으로는 어떤 문제든지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범사에 인정해야 한다. 범사는 모든 형편에서 역사하시니까 모든 일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따라가니까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자의식을 버려야 한다. 우리 사람이 자기는 대게 똑똑한 것 같지만 그만큼 점점 미련해진 것이다. 그래서 범사에 그를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므로 말미암아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고전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음이다. 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지나가면 자꾸 달라진다. 지나면 싫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 믿음은 좋고 나쁜 것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실상을 상대로 한 것이다.

7) 어떤 처지든지 하나님을 찬양할 것( 롬8:28, 살전5:16-18)

(롬8:28)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우리의 자의식을 항상 하나님을 향해서 열어놓는 것, 기뻐하라 기쁨을 선택하여 기쁨에다가 채널을 맞추는 것이다. 기쁨에 채널을 맞추면 하나님의 기쁨이 내게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찬송하고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8) 항상 선한 말을 할 것(엡4:29)

(엡 4:21) 선한말 로 듣는 자로 은혜를 끼치라. 말은 영을 전달하므로 말 하나에도 잘못하면 상하게 된다. 농담이나 (5:14)누추한 말이나 마땅치 않는 말이 합당치 않다고 하였다. 환자나 기계를 고칠 때는 잘 고쳐야 한다. 잘 못 고치면 고장난다. 세미하게 조심스럽게 고쳐야 하듯이 말을 잘해야 하고 영의 회로를 아름답게 잘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말을 통해서 영혼이 만들어진다. 주님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셨는데 아름다운 말로서 아름답게 만드신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우리의 생활에서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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