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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믿음과 신념의 차이

작성자박나무|작성시간26.06.10|조회수2 목록 댓글 0

믿음과 신념의 차이

 

믿음과 신념은 단백질로 비교하면 유사한 아미노산 배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매우 다르다. 믿음은 영원하며 신념은 유한하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믿음은 진짜고 신념은 일종의 이미테이션이다.

 

그리스도인에게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믿음과 신념을 구별하는 것은 피상적으로만 보면 쉽지 않다. 그리스도인이 마음에 확신을 가지게 되면 감정과 기분이 새로워지고 마음에 의지와 용기가 살아나며 현실에 대한새로운 이해와 깨달음이 주어진다. 이런 현상은 믿음과 신념 두 가지 모두 비슷하다.

 

신념과 믿음이 따로 분리되는 것은 확신이라는 최초의 인자에 있는 것인지 확신을 다루는 과정에 있는 것인지 명확하게알 수는 없다. 하지만 신념이 인간중심적인 것이고 믿음이 하나님 중심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확신이 들었을 때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새로워진다. 그리스도인들이 만일 이 차원에서만 머문다면 그 확신은 인간적인 신념에 불과하다. 이것은 긍정의 힘에서 말하는 논리와 같다. 의지가 강하고 겸손한 사람들은 그 신념을 잘 가꾸어 결과로 가져가는 것이고 의지가 박약하고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신념을 다 엎어 버리고 포기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은 이러한 신념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일단 그리스도인이 확신을 가지게 될 때 그것이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면 신념이다. 즉 이성과 감성에 호소하여 불러 일으켜진것이라면 신념이다. 하지만 영혼에 호소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면 그것은 들음에서 난 믿음이다. 그것이 비록 무모해도 그것은 믿음이다. 믿음은 신적 권위(divine authority)를 갖는다.

 

신념은 한시적으로 살아있는 것이지만 믿음은 영원한 것이다. 믿음은그 자체에 생명력을 갖는다. 따라서 믿음은 계속해서 발전한다. 믿음은 처음 가졌던 확신에서 머물지 않고 더 구체화되며 더 강해지기도 하고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매우 역동적이다. 물론 신념도 이런 형태를 보이기는 하지만 한시적이다. 결과적으로 믿음과 신념은 그 열매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신념은 악한 사람에 의해서도 소유가 가능하고 기능을 하지만 믿음은 그 태생이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한 사람이 믿음의 작용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별히 믿음은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정화작용을 한다. 그리스도인이라할지라도 처음에 확신을 가지게 될 때 그 확신 안에는 하나님의 의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간적 욕망과 바램들도 있다. 심지어 그것이 진행되면서 때로는 인간적 수단과 방법들이 더 첨가되기도 한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믿음은 마치 상공에 쏘아올린 로켓처럼 그런 무거운 인간적 요소들과 분리된다.믿음은 더 높은 대기권으로 올라가면서 더 이상 인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요소들이 동행하지 못하는 층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작용 가운데 나타나는 정화작용이다. 따라서 믿음을 가지며 살아가는 삶은 반드시 자기 부인을 동반한다. 자기부인이 되지 않는데 참 믿음이 제대로 작용되는것은 있을 수 없다.

 

믿음은 말씀과 상호작용을 한다. 믿음은 말씀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성령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믿음은 살아있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운 확신을 요구한다. 성령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일마다 믿음을 주신다. 우리가 믿음을 받을때 이것은 새로운 이해, 깨달음, 마음의 새로워짐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성경은 이것을 한 마디로 전 존재의 새로워짐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면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고 새사람을 입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없이 믿음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씀을 통해서 나의 삶이 definition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매 삶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삶,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는 삶이 된다. 따라서 믿음을 가지는 사람은 자신이 말씀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것은 다시 말해 말씀이신 그리스도예수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가지고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고 히브리기자는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믿음으로 대한다. 그 문제들이 해결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직선그래프처럼 문제가 해결되는 데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문제가 해결되는데 시작점에서 우리는 믿음을 가진다. 그리고 완전히 문제가 해결되는 끝지점까지 믿음을 가지고 질주한다. 믿음은 계속 살아서 나와 삶을 재해석하고 새롭게하며 새 힘을 준다. 믿음의 삶을 달리기라고 한 점은 바로 이런 과정을 가지고 비유한 말씀이다. 믿음의 과정이 공짜로나 자동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해진 race를 달리는 경주와 같다. 따라서 그 경주가 완주될 것을 믿는사람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달리게 된다. 최선을 다해서 달리는 것이 믿음이다. 따라서 믿음은 우리에게 게으름과 방만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믿는사람은 현실적으로 가장 근면하고 성실하며 민첩하고 지혜롭다. 이것은 상식 선에서 이야기이다. 믿음을 지나치게 신비적으로 치부하여 독단과 독선에 빠지는 것은 그 믿음을 개인화한 결과이다. 믿음은 철저히 개인적이면서도 절대로 개인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믿음의 권위authority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그 믿음은 ‘우리의 믿음’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유익 즉 공익을 추구하며 최소한 믿는 사람들과 소통과 공유가 가능해야 한다.

 

삶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믿음의 경주를 함으로 우리는 궁극적인 믿음의 경주를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혹은 개인적 죽음에 이르는 경주이다. 전자가없이 후자만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존재하며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말씀에 의해서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더 쉽게 말하면 처음에 믿음을 가지고 기도한 제목은 내일 다시 새 기도제목이 되어야 한다. 기분만이 아니라 기도를 하는 나의 의식과 그 내용과 목표가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믿음의 내용이 목표는 갖되 그 문제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입장이 정반대가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틀렸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믿는 사람의 속사정은 충성 그 자체이다. 때로는 병을 고치는 것이 믿음이기도 하고 안 고치는 것이 믿음이기도 하는 것이다. 목적은 그 병자를 구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믿음이 새로워지는 것에 있어서 게을러서는 안 된다.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순간 위기와 절망이 찾아왔다면 그 때는 믿음을 다시 업그레이드할 순간이 온 것이다. 믿음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 부분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은 과감해야 하며 혁신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최종 승리를 확신하는 승자의 마음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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