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당신을 아무리 힘들게 할지라도
아주 먼 옛날, 어느 곳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가진 한 왕이 살고 있었다. 그 다이아몬드는 마치 누군가 한줄기 햇빛을 훔쳐다가 그 안에 집어넣은 것처럼 빛났다. 어느 날 다이아몬드가 무언가에 긁혀 그만 흠집이 나고 말았다. 왕은 몹시 실망했다. 그 나라에서 최고의 세공사들을 불러서 다이아몬드에 긁힌 자국을 없애고 원래의 아름다움을 복원시켜 놓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을 복원시키는 자에게 큰 상까지 약속했다. 하지만 세공사들은 하나같이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왕도 지쳐 거의 포기를 할 즈음, 한 지혜로운 사람이 왕을 찾아 왔다. 그는 왕에게 자신이 그 다이아몬드를 예전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겠다고 약속을 했다. 왕은 의심하면서도 그에게 보석을 맡겼다.
그는 뛰어난 재주를 이용해 흠집 끝은 사랑스런 장미꽃 봉오리로 만들고 긁힌 자국은 줄기로 만들었다. 다이아몬드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변해 있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내는 삶의 순간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한번 보내면 영원히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오늘은 어제의 부산물이다. 따라서 내일은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나치 수용소에서의 악몽 같은 경험을 책으로 펴낸 일이 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공포를 겪었다. 배고픔, 추위, 수면 부족, 혹독한 노동, 육체적 * 정신적 고문,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 등이다. 그러나 그런 비참한 조건아래에서조차,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는 수용소에서 고통을 인내하는 방식은 놀라운 내면의 성공이다고 했다. 절대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정신적인 자유였다. 신앙의 자유였다.
우리는 질그릇이다. 질그릇일지라도 그릇에 무엇을 담았느냐에 따라 그릇의 이름이 달라지고 그릇의 신분이 달라진다. 금을 담으면 금 그릇, 은을 담으면 은그릇, 사과를 담으면 사과그릇이다. 그러나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되고, 똥을 담으면 똥 그릇이 된다. 비록 질그릇같이 약하고 천한 존재이지만 보배를 지님으로 축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질그릇은 모양도 볼품없고, 약하여 깨어지기 쉬운 뿐 아니라 별로 귀히 쓰이지도 않는 가치 없는 물건이다.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이처럼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에 비유하면서 이런 질그릇에 보배가 담겨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당신의 삶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당신 안에 무엇을 담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신분과 미래가 달라진다. 당신도 보배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보배로운 사람은 질그릇에 보배를 담은 사람이다. 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4:7절)라고 말한다. 그 보배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있어 가장 보배 중에 보배가 되신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주실만한 이름이 없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 양의 문이 되신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어떤 보배와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보배가 되신다. 그 안에는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