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전도법
- 마르틴 루터와 시편74의 예언
마르틴 루터는 "유태인과 그들의 거짓말"이란 서신에서 유태인의 집과 회당들을 불사르라, 유태인들은 작은 지옥불로 던져넣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고 썼다. 바울사도는 갈라디아서에서 율법과 유태인을 아브라함의 사생아를 낳은 여종 하갈과 이스마엘로 비유,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라고 썼다. 그리고 기독교도들은 굳이 이런 가르침 때문은 아니겠지만, 200% 충실하게 천년 이전부터 유태인을 내어쫓고 - 율법 폐지는 물론이고 - 유태인의 회당에 불을 질러 왔다. 히틀러의 나찌가 일으킨 1939년 "수정의 밤" 폭동은 그 최근에 벌어진 기록일 뿐이다.
다음은 아삽의 시에 나오는 유태회당의 불살라짐을 예언하며 드리는 탄식이다.
시편74: 주의 대적이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
1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교훈을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 2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3 영구히 파멸된 곳을 향하여 주의 발을 옮겨 놓으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4 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 가운데에서 떠들며 자기들의 깃발을 세워 표적으로 삼았으니
5 그들은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
6 이제 그들이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
7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8 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리가 그들을 진멸하자 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
9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위의 글을 보면, 유태회당을 불지른 자들은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 무리에서가 아니라 바로 믿는 무리들이라는 것이 나온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때가 되면 너희들(**제자들은 유태인들이다. 전부)을 내어쫓고 죽이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할 때가 오겠지만, 그들은 하나님과도 예수님과도 상관없는 자들이라고 하신 말씀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마카베오서는 성전을 더럽혔던 안티오쿠스 왕 그 이전부터 유태회당이 유태땅과 주변지역으로 퍼져 건설되었음을 보여준다. 시74편의 저자 아삽은 그 훨씬 이전에 있었던 유다왕국에서 성전개혁을 했던 요시야 왕 때의 제사장 가문에 속한 인물이다.
즉 74편의 기도와 탄식은, 유태회당을 이천년간 불사르는 짓을 하던 기독교들이 예수를 부르짖었지만, 실상은, 예수와 관련없는, 주의 대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부 기독교인은 요한복음에 나온 예수님의 이 말씀 -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요15:2] -의 "너희"는, 유태인이 아니라 기독교라고, 예수님께서 기독교도를 향해 하신 말씀이라 주장할 테지만, 그렇게 볼 수 없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그들이 자부하면서 "(유태인을) 출교"할 것이란 점에서, 그 내어쫓고 잡아죽이고 하는 무리들은 이슬람이 아닌, 기독교에 해당될 뿐이다.
또한 아삽의 시편에서도, 주의 대적이 어디 있는가하는 단서가 나오는데 그것 역시 "주의 회중 가운데" 라는 말로써다.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를 빙자하지만, 사실은 주와 관계없는 주의 반대편에 선 대적자들, 사탄에 속한 무리이다는 것을 말씀한다.
- 오늘날 교회처럼 많은 숫자였던 유태회당들
기독교회는 자기들이 가장 전도를 열심히 한다고 믿겠지만, 예수님 시대 이미 유태교는 전도를 열심히 하여, 티토에게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때 예루살렘 안에만 유태회당이 394곳(요세푸스), 다른 기록에는 480곳 있었다. 성전에 돼지머리를 올려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했던 안티오쿠스 무렵부터 바리새파들은 성경공부와 성경으로 토론하는 일에 치중했다. 이런 모습은 회당에서 토론하신 열두살 때의 예수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사도행전에 나온 바울의 아시아 전도여행 관련기록들은 구체적으로 아시아 지역에 유태회당이 얼마나 많이 건설되었으며 그들이 얼마나 - 바울과 사도행전의 주장과 달리 - 외부의 설교자들에게 문이 활짝 열려 있었는지 보여준다. 이것은 바울이 우리에게 여태 전해주던, 못된 유태인, 예수교인에게 꽉 막히고 가혹한 유태인들이란 인상과는 매우 틀리다.
오늘날 교회에서 유태교 랍비들이 설교하기 위해 강단과 회중을 빌려달라 하면 아무도 허용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유태회당은 바울 뿐 아니라 다른 설교자들에게도 관대하게 문을 열어주었을 뿐 아니라 환대하였으며 수개월에서 일년이상 머물게도 했다.
또한 이런 유태회당, 성경공부에 치중한, 의 관용한 태도는 - 이천년전 당시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 랍비를 중심한 성경과 탈무드 연구자들, 대개의 바리새인들의 보편적 태도였다. 그러므로 악독에 사로잡혀서 예수믿는 자들은 전부 잡아죽이겠다고 제사장의 편지까지 청탁하여 받아들고 다메섹으로 길 떠나던 다르시스 출신 사울이 자칭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파라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 내용이다.
사도행전 4장에는 제사장과 사두개인이 예수교인을 매우 싫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데반을 죽게 한 것도 사두개인들이라고 봄이 옳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행4:1-3]
반면 바리새인들의 태도는 독기에 잡힌 사두개인들의 그것와는 사뭇 달랐다.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며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바울)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냐 하여"[행23:9]
바울의 전도는 주로 당시 아시아와 로마 곳곳에 활발한 유태인들의 전도를 따라 세워진 유태인의 회당에서 행해졌다. 다음은 사도행전에 나온 그 유태회당에서의 전도 행적이다. 이런 세부적 내용들이야말로, 우리가 보통 알던, 유태인들이 사탄이어서 바울의 전도를 극렬히 훼방하고 차단했다는 인상과 전혀 달리, 사도들의 전도행위들이, 각 지역마다 이미 세워지고 활발히 운영되던 유태인 회당들을 중심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유태회당에서 행한 바울 및 예수교인들의 전도 기록들 -
1. 다메섹유태회당에서 설교-"사울이 즉시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옛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행9:19,20]
2.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 유태회당에서 예수 믿는 자들이 설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태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행11:19]
3. 안디옥 유태회당에서 - "(바나바가 사울을)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 원: 선택받은 회중: 즉, 당시로는 선택받은 유태인회중의 회당 의미)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6]
4. 살라미 유태회당에서 설교-"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행13:5]
5. 비시디아 안디옥 유태회당에서 -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행13:14,43]
6. 이고니온 유태회당에서 -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헬라(그리스)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행14:1]
7. 데살로니가 유태회당에서 -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행17:1]
8. 베뢰아 유태회당에서-"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행17:10]
9. 아덴 유태 회당에서 -"바울이 아덴에서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행17:16,17]
10. 고린도 유태회당에서 -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행18:1,4]
11. 겐그레아 유태회당에서 - "바울이 일찌기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행18:18]
12. 에베소 유태회당에서 -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행18:19]
13. 에베소 유태회당에서-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달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행19:1,8]
이 후 에베소에서 두란노라 하는 학교를 세우고 유태회당안에 있던 자기 제자들을 구분해내어 따로 공부 시켰다. [사도행전19:9] 이것이 아마 바울사도가 이후 유태회당에서 독립해나간 시초가 될 것이다.
- 두란노란 용어의 비밀 -
한글번역 두란노의 헬라어 원어는 티라누스이며 뜻은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절대적 지배자다. 원래는 그리스 각 도시 지자체;폴리스에서 최고 권력자를 뜻했다. "오이디푸스 티라누스"는 유명한 그리스 희극이다. 이 두란노, 즉 티라누스 명칭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데는 오늘날, 공룡의 이름들이다. 티라노 사우루스 등등. 헬라어 티라누스는 이후 영어에서 폭군, 악당을 뜻하는 티라니가 되었다.
티라누스교회라는 이름은 그러므로 한글로 해석한다면, 폭군교회나 같은 뜻이다.
헬라에서 자라고 학문이 있던 바울이 티라누스가 어떻게 쓰이는지 몰랐을 리 없다고 본다면, 첫 교회학교에 폭압적 지배자란 의미를 붙인 그의 의도는 매우 이상해보이는 일이다. 이런 이름을 붙이었다는 이면에는 바울의 개인적 성향이 그러했을 수도 있다.
현재 나온 영어성경 번역대로 해석하면, 티라누스의 학교, 즉 "티라누스"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학교가 된다. 그러므로 사도행전19장에 나온 두란노학교는 어휘적으로 보면, 에베소의 독재자가 소유.운영하는 학교에로 사도 바울이 원래 유태회당에 다니던 제자들을 갈라내어 들여보내었다고 보는 편이 티라누스란 단어의 해석에 정확한 뜻이 되는 것이다.
이는 유태교의 "해악"을 바울은 헬레니즘에 입각한 가르침들보다 더 경계했다고 우리가 추측할 근거 마저 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사도 바울이 위에서 처럼, 그의 전도에 아시아에 이미 세워지고 운영되던 유태회당을 가장 많이 유효하게 이용했음에도 또 유태인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따뜻하게 대접한 경우들도 사도행전에 적지 않게 드러남에도 그의 유태인에 대한 반감은 보통을 넘었다는 점이다.
바울의 유태인 묘사에는 상식을 지나친 경우들이 보였다. (예: 롬1:18-32, 롬2:17-24, 뎃전2:14-16. 디도1:13-15, 고후11:14-22)
만약 다소의 사울이 스스로 설명하기를, 제사장과 절친한 사두개파 소속에서 출발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면, 차라리 타당하고 납득이 갔을 것이다.
- 바울에게 보여준 지중해 역 유태회당과 유태인들의 관대함 -
유태회당에서 설교할 기회를 갖는 바울에게 사도행전의 기록으로 보면, 보편적으로 유태인들은 진리에 대한 호기심 뿐 아니라 환대했던 편이었다.
1. 다메섹 회당에서: "(바울이 다메섹의)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누구 아니냐) 하더라" [행9:20,21]
2. 안디옥 헬라계 유태인 회당에서: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수많은 사람들이 믿고.."[행11:20,21]
3. 안디옥의 유태인들에게서:"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6]
4. 비시디아 안디옥 유태회당 태도: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행13:15]
콘스탄티노플 교회 수장이던 요한 크리소스톰에 의하면(366-387), 사도들의 시대가 지난 삼백년 후이던 당시까지, 기독교도들 특히 여자들은 교회보다 유태회당에 방문하기를 더 우선으로 하였으며 분쟁이 나면 유태회당으로 가져와 유태적 재판을 들었으며 맹세할 일이 있을 때도 회당을 이용했다고 기록했다.
5. 이고니온 유태회당 유태인들의 개방성 :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행14:1]
** 안디옥 교회에서의 다툼: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행15:1,2]
6. 데살로니가 유태인 회당에서 유태인들의 관대함: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파 유대인)의 큰 무리와 적지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행17:1-5]
7. 베뢰아 유대인 회당에서 유태인들의 관대함: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파 유대인)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행17:10-12]
8. 고린도 유태인의 관대함: "바울이..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본토)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행18:1-3]
9. 고린도 유태회당의 유태인들의 관대함: "안식일마다 바울이 (고린도 유태)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거기서 옮겨 하나님(**유태인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유태)회당 옆이라 "[행18:4]
10. 유태회당장의 관대함: "(고린도 유태회당)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행18:8]
11. 고린도 유태회당장 소스데네는 왜 맞았을까?: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행18:17}
(** 이 설명은 사도행전에는 나오지 않았다. 이 장면은 고린도에서 바울이 일년육개월 머물며 말씀을 가르친 끝에 유대인이 들고 일어나 바울을 대적, 법정으로 데리고 간 끝에 벌어진 결론이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바울을 때렸어야 말이 맞으나 거꾸로 회당장 소스데네가 맞았다. 왜 그랬을까? 사도행전에 나온 바울의 "관례"대로라면, 일년 육개월간 바울은 유태회당에서 가르쳤으며 그렇게 회당장을 바울의 전도장소로 (일년육개월씩이나) 제공해준 회당장에게 - 바울은 처벌하지 못하자,- 몹시 열이 받은 유대인들이 회당장을 흠씬 때렸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그리고 바울을 임의로 처리하지 않고 법정에 데려간 유대인들의 태도야말로 오히려 이성적이다. )
12. 겐그레아 유태회당에서 머리깍은 바울: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행18:18]
(** 아시아 주변 유태회당에마다 다니며 전도하는 바울의 행태가 유태인들 사이에 퍼지지 않았을 리가 없을 텐데도 겐그레아 유태회당은 바울에게 문을 열어 그가 정결예식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13. 에베소 유태회당에서 유태인들의 관대한 태도: "에베소에 와서 ...자기(바울)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행18:19,20]
14. 아볼로라는 유대인의 훌륭한 태도 및 아볼로에게도 문을 개방한 에베소 유태회당의 관대한 태도: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그(아볼로)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행18:24,25]
15. 예수교도들은 유태회당에서 머물렀음을 보여주는 귀절: "그(아볼로)가 (고린도 유태)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행18:25,26]
(**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역시 유태회당에 정기적으로 참석했음을 보여준다. )
16. 에베소 유태회당에서 유태인들의 관대한 태도: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행19:1-8]
(** 바울은 3달 동안이나, 에베소 한 곳, 유태회당에서 가르쳤다는 것이 여기서 드러난다. 석달동안 자기 교회를 이교도에게 열어줄 교회는 아무 데도 없을 것이다. 이런 관대한 친절을 받았음에도 바울은 이렇게 비방한다."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행19:9])
이토록 관대한 대접을 각지의 유태회당에서 받았음에도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이런 말로 유대인에 대해 나쁘게 전달했다.
"바울이 .... 그들(장로들)에게 말하되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행19:17-19]
- 로마 거주 유태인들 사이에서 이년반 -
17. 로마 거주 유태인들의 관대한 태도: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그들(청함받은 유태인 높은 사람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바울)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행28:17-22]
어디를 가든지, 전도할 때 듣는 청중이 모두 그 말에 찬동하리란 법은 없다. 그러므로 바울의 설교를 듣고 돌아오는 유태인도 있는 반면 거절하는 유태인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위의 로마에 있는 유태인들 역시 그랬고 일부는 믿고 일부는 믿지 않았는데 그런 유태인에게 보인 바울의 반응은 적의에 가득 찼음을 사도행전은 보여준다.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행28:25-28]
바울은 로마에 이태 동안 더 머물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다."[행28:30,31]
그 동안 로마에 있던 유태인들 누구도 바울에게 테러하거나 해꼬지 하려 들지 않았다. 또 바울을 맞을 때 보인 유태인들의 발언에서 보았듯, 예루살렘에 있다던 적개심으로 가득 찼다는 유태인들 누구도 로마에 있는 높은 유태인들에게 바울을 적대하라는 서신이나 전언을 보내지 않았다. 유태인들은 사도행전에 나온 기록들만 보아도 매우 이성적이고 관대했던 것이다.
- 부록: 마르틴 루터의 반유태 명령 -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썼다. 기독개신교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문헌이다.
"첫번째로, 저들의 회당에 불을 질러라. 학교에도 불을 질러라. 불타지 않는 것은 모두 먼지로 만들고 파묻고 덮으라. 그래서 아무도 거기서 돌 한개, 숯조차도 보지 못하게 하라. 이것은 우리 주님과 전체 기독교도의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행해져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독교도로 봐주실 것이다.
두번째로, 저들의 집들을 남김없이 철저히 파괴하고 파괴하라고 충언한다. 저들의 회당도 그렇게 해야 하지만, 이러는 이유는 저들이 같은 목적을 자기들 안에 이미 가졌기 때문이다. 저들은 지붕 아래에나 헛간에 집시들처럼 숨을 것이다. 저들은 우리 땅의 주인이 아닌데, 그런 것 같이 으스대고 우리 땅에 가정을 가지려 들고 있다. 저들은 추방당하고 체포되며 살아야 한다. 저들이 하나님 앞에 우리를 놓고 쉴새 없이 울부짖고 통곡하게 해야 한다.
세번째로, 저들의 기도책, 탈무드라고 쓴 것들, 그 안에 우상숭배, 거짓말, 저주와 불경을 가르치는 것들을 저들 손에서 뺏아야 한다.
네번째, 저들의 랍비들은 삶과 팔다리를 잃게 하는 고통에 빠지는 길을 가르치므로 금지해야 한다. 저들은 모세가 말한 대로 [신명기17:10] 가난한 유태 포로들을 사무실에 붙잡고 돈을 걷을 뿐인 것들이다. 거기서 저들은 자기네 선생에게서 사망행 위약금에다 모세가 말한 "그들이 너희에게 가르친 것은 주님의 율법이므로"를 달랑 얹은 것을 받고 복종한다.
저들의 회당을 불살라 없앨 것, 유황구덩이에 할수 있는 모든 것을 던져 넣으시오. 아무 유태인이든 작은 지옥불에 던져넣는 것도 좋은 일이오. 그리하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온 세계 - 유태인의 가옥을 허용하고 있는 - 에서 구출될 가장 확실한 해결책, 증거로 보여질 것이오. 저것들을 이 땅에 살게 하니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 아버지, 또 그 아들까지 욕하고 있는 것이오. 그것도 가장 수치스런 방법으로 지금까지도, 하지만, 우리는 저들을 자기들 한 댓가대로 정당하게 받게 해줄 것이오. 당장 !
저들의 회당을 불태우시오. 이미 세세히 설명했듯이, 모든 것을 금지하시오. 저들을 노동시키시오. 거칠게 대하시오. 모치 모세가 광야에서 했듯이, 전체가 죽지 않으려거든 삼천명을 살륙하시오. " [마르틴 루터: - 저 유태인들과 저들의 거짓말들 ]
- 부록: 바울의 서신에 나온 반유태 명령 -
다음은 바울의 서신에서 유태인들을 모독한 표현들이다.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롬2장]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1장]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뎃전2]
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디도1장]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고후11장]
이러한 사도 바울의 기괴할 정도의 유태인 혐오 논조는 나란히 놓고 보면 그야말로 르틴 루터의 그것과 별 차 없어보임을 알 수 있다.
- 바울은 유태인을 이용하고 비난했다 -
바울 뿐 아니라 예수를 믿던 다른 이들도 지중해 주변, 아시아 전도지역 곳곳에 세워진 데마다 있던, 여러 곳의 유태회당에서 설교할 기회를 장시간 얻었고 유태교 회당의 회당장들의 호의도 얻었으며 믿는 유태인들도 마찬가지로 다수 얻었다는 사실을 사도행전 기록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 바울이 유대인에 대하여 기록한 귀절들은 터무니없는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것은, 원래 예수와 예수교파를 적대하던 제사장, 사두개 연합 그룹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에 개방형이던 바리새파였다면서 유다르게 예수교인들을 도륙하려고 출발했던 다소 출신 사울의 개인적 독한 인격성과 연결하여 생각해볼 부분인 것이고, 어쩌면 바로 이런 독함을 물려받은 이방기독교회들은 이천년간 바울사도와 교회교부, 마르틴 루터 등 종교개혁가들이 뿌린 유태인에 대한 그릇된 적개심에 물들어 유태민족을 학살하기에 지루하지 않았던 것이다.
갈라디아에 나온 바울의 다음 가르침에 충실하고 지금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방기독교인 것이다.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4:30]
이스라엘과 유태민족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적장자였음에도 바울과 기독교는 그들을 모욕한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했다. 전도초기에는 유태인의 회당과 관대함을 이용하는 데 까지 이용했다가, 자기들이 유리해지고 유태인들은 불리해지자, 유태인들을 추방하고 못에 던져넣은 이중적 악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사도행전 대로 그대로 믿는다 해도, 유태인들이 바울과 예수 제자들의 가르침에 반감을 품고 적개심을 표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릇된 유태인의 태도가 물 한 방울 같다면, 그것에 복수한 이방기독교의 복수는 너무 장기간 너무 지독했다. 얼마나 회개해야 그 죄를 씻을 수 있을까 그것이 의문이다.
그렇게 "여종 하갈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명한 바울사도가 우리에게 더불어 "사랑"과 "기뻐하라"고 가르친 것은 아이러니다.
그리고 그런 가르침을 받은 이방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도 유태인들이 공산당과 협력, 수억명을 죽이고 세계지배를 꿈꾼다고 "진심으로" 믿는 중이다. "사랑"과 "기쁨", "믿음"으로 가득 차서, 저희들은 천당에 갈 것이라고 굳세게 믿는 중이다. 예수만 믿으면 모든 죄 사함 받는다고 믿는 중이다. 그런 그들에게 성경은 그들이야말로 여호와 하나님도 예수님과도 상관없는 무리라는 것을 이미 명확하게 예언해 놓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