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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한국교회 분열의 원인과 연합의 방안

작성자박나무|작성시간26.06.16|조회수2 목록 댓글 0

한국교회 분열의 원인과 연합의 방안

박명수 교수(서울신대교수, 공공정책포럼대표)

 

들어가는 말: 분열에 대한 새로운 이해

오늘의 주제는 한국교회에서 가장 많아 논의되어지는 토픽이다. 그것은 이 토픽이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면서 가장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이 문제가 가장 많이 토론되어졌기 때문에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새롭게 접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오늘 우리는 먼저 분열과 분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화해와 협력을 말하는 순서로 되어 있다. 필자의 생각에는 이것이 적절한 순서라고 생각이 된다. 먼저 문제점을 분명하게 지적해야 한다. 그래야 그 대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금까지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에 대한 토론은 무조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아래 분열에 대해서 성토하는 모임이었다. 사실 분열에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무조건 합하라고 한다고 해서 과연 합할 수 있는 것인가?

사실 개신교에는 일치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충성이다. 진리에 합하고 일치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분리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신 때문에 바로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천주교는 분열을 죄악시하였지만 개혁자들은 진리를 위해서는 분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분열이 정당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왜 분열할 수 밖에 없었는가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주류교회의 입장에서는 분열은 기성교회는 파괴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비주류교회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개혁을 외치고,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 왔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분열한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신흥교파는 교회의 갱신을 외치고 분열을 시작한다. 따라서 새로 시작하는 교파의 입장에서는 분열은 교회 갱신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항상 주류교회는 왜 새로운 교파가 생기게 되었는가를 겸손하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열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교파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과거 국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의 종교에 두었다. 따라서 무조건 종교는 하나가 되어야 하며, 종교의 분열은 곧바로 국가의 분열로 이어졌다. 하지만 근대사회에서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었고, 더 이상 국가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을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다양하게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정교분리의 사회에서 교파제도의 출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계속 분리된 상태로 서로 싸우는 것이 좋은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지금은 여러 교파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공통목적을 위해서 함께 연합해야 할 때이다. 필자는 지금 필요한 것은 일치가 아니라 연합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일치가 가능한 시대가 아니다. 카나다, 인도, 일본의 교회가 교파를 합동했지만 이것은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교회의 영적 침체를 가져왔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차원에서 새롭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세속적으로 말한다면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화해와 일치를 말하기 전에 먼저 왜 분열했는지, 그리고 분열했을 때 제기되었던 문제는 해결되었는지에 대해서 질문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분열의 근본동기

먼저 한국교회는 교파제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장로교 계통의 4 교파와 감리교 계통의 2 교파가 한국에 들어옴으로서 한국교회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 두 교파는 들어오면서부터 선교의 주도권을 놓고 심각한 경쟁을 하였다. 장로교선교사가 제중원을 만들어서 의료선교의 주도권을 갖자 감리교선교사들은 배재학당을 만들어서 교육의 주도권을 잡았다. 하지만 이런 경쟁을 통하여 한국교회는 더 크게 성장하였다.

사실 이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교파의식이 분명하지 않았다. 장로교선교사 언더우드도 한 때 감리교로 옮길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곤 했다. 그래서 1904년에 하나의 한국교회를 만들고, 그 이름을 대한예수교라고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첫 번째 이유는 본국에서 반대했기 때문이요, 둘째는 한국교회가 성장해서 장로교, 감리교가 각각 독자적인 교파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와 같이 한국교회가 하나로 통합하려는 움직임은 해방이후에도 있었다. 소위 남부대회를 통하여 한국교회를 통합하려고 했던 시도가 그것이다. 일제는 그 말기에 강제로 한국교회를 하나로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해방이후에도 그 통일된 교회조직을 유지하려고 했다. (사실 일본교회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이것을 거부했다. 한국교회는 하나의 통일된 교회보다는 다양한 교파제도를 선호했던 것이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분열하고, 많은 교파가 생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한국의 교파형성의 일차적인 원인은 선교사에게 있다.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는 한국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만들어진 교파가 들어온 것이다. 여기에 뒤늦게 한국 땅에서 출발한 외국 교파들은 현지인들과 함께 새로운 교파를 시작한다. 그리해서 해방 후에도 한국에는 수많은 교파들이 생기게 되었다. 늦게 도착한 교파들은 대부분 기존의 교역자들 가운데서 사역자를 찾는다. 이들은 선교사들과 함께 새로운 교파를 만든다.

두 번째, 한국교회의 교파생성의 원인은 선교사와 한국인 사이의 갈등이다. 선교사들은 한국교회를 지배했다. 여기에 대해서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한국인만의 교회를 세우든지, 아니면 새로운 선교사들과 관계를 맺던지 해서 새로운 교파를 만들었다. 사실 선교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선교사와 현지인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경우는 선교사의 지배가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너무 일찍이 리더쉽을 현지인에게 넘겨준 것도 문제가 되기도 한다.

세 번째는 신사참배에 대한 태도이다. 사실 일제 잔재를 어떻게 청산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해방이 되었을 때에 한국교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일제 말 신사참배한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였다. 사실 한국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서 실패했다. 순교자는 겸손해야 했고, 참배자는 참회해야 했다. 하지만 한쪽은 교만했고, 한쪽은 변명에 급급하였다.

네 번째는 신학적인 문제였다. 한국교회는 성서를 사랑하였다. 하지만 한국교회에 밀어닥친 고등비평은 전통적인 한국교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따라서 정통신학을 수호하려는 교파와 새로운 신학의 흐름을 받아들이려는 교파사이에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미국의 많은 교파들도 이와같은 신학적인 견해 때문에 분열하였다.

다섯 번째, 반공의 문제였다. 60년대를 전후하여 한국교회는 WCC문제로 인해서 심한 갈등을 일으켰다. 문제의 핵심은 WCC가 이념을 뛰어 넘는다는 좌우를 포함하는 로선을 걸었다. 많은 경우 WCC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냉혹한 비판을 하면서 공산독재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 한국교회의 갈등이 있었다. 한국교회는 월남 기독교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이념적으로 모호한 WCC에 대해서 비판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래서 WCC 가입을 놓고 한국교회가 분열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한국교회사상 가장 큰 분열이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반공인데, 한국교회를 지원하는 미국의 모교회는 이것을 뛰어넘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 많은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해방 후 한국교회의 젖줄이었던 외국교회와 단절하고 독자적으로 독립했던 것이다. 그러나 통합 측의 경우 반공의 입장과 미국교단과의 갈등관계에서 줄다리기를 하였다.

여섯 번째, 지역갈등의 문제이다. 한국사회의 중요한 갈등 가운데 하나가 지역갈등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합동측 내부의 분열은 영남의 주류와 호남의 비주류사이의 갈등이다. 이것을 계기로 장로교회가 수많이 분열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분열은 이전과는 달리 명분 없는 분열의 경우가 많았고, 각 지역의 보스들에 의해서 분열이 조장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일곱 번째, 교단에 대한 불신과 독립교단의 출현이다. 도시화는 인구의 집중을 가져왔고, 이런 과정 가운데 개교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대교회가 되었다. 이런 대교회 가운데는 교단의 구조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처음부터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새로운 독립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다. 사실 미국에서는 교파시대는 끝나가고 독립교회 시대가 오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에도 그런 분위기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교회의 이런 분열의 원인이 현재 한국교회의 분열과 갈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첫 번째로, 현재 더 이상 선교사가 새로운 교파를 가지고 들어오는 경우는 끝났고, 두 번째 선교사가 철수한 마당에 선교사와 한국교회의 갈등으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없고, 세 번째, 신사참배문제도 이미 지나간 문제이며, 여섯 번째 지역 갈등도 많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네 번째 신학적인 문제, 다섯 번째 이념에 관한 문제, 일곱 번째 교단구조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교회로 하여금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남아있다.

분열의 해결책과 연합방안

필자는 진정한 연합운동은 분열에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장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분열에는 거기에 합당한 이유가 있으며, 이것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할 때 진정한 연합은 이루어진다. 만일 이유가 없이 분열했다면 그것은 당시 분열했던 사람들을 절대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모든 분열에는 거기에 합당한 이유가 있으며, 이것을 존중하면서 상호 연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위에서 언급한 한국교회의 분열원인 가운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며 연합할 수 있을까?

첫째 교회 분열의 중요한 원인은 신학적인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분열의 원인이 신학적인 데에 있지 않고 단지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정치란 명분을 가지고 움직인다. 아무리 나쁜 정치가라도 명분을 내세우기 마련이다. 그리고 명분이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근거이다. 그리고 그 명분이 신학이라면 여전히 신학은 중요한 문제이다. 실제로 미국교회는 19세기 전반에 원죄에 관한 논쟁으로 갈라졌고, 20세기 초에는 성서영감설을 중심으로 분열되었다. 한국교회 역시 해방 직후 성서영감설을 중심으로 분열되었다. 지금도 한국교회를 하나로 만드는데 어려움을 갖는 근본원인 가운데 하나는 신학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신학을 몇몇 신학자의 소유로 보지 않고, 한국교회로 확대해서 생각한다면 문제 해결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교회는 대부분이 복음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양극에 보수와 진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보수와 진보는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흐름이 아니라 오히려 외국 신학사조의 영향을 받았다. 극 보수가 ICCC의 영향을 받았다면 진보세력은 WCC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 신학이 한국교회의 신앙을 표현해야 하는데, 거꾸로 외국의 신학을 대변하고, 이들이 한국교회의 신학을 주도해 왔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사실 한국교회의 주류는 복음주의이고, 약간의 보수와 약간의 진보가 있을 뿐이다. 이런 정도는 어느 단체나 있고, 때때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중도적인 복음주의가 한국교회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양극에 의해서 분열된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교회에서 건전한 복음주의가 주도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중심으로 한국교회는 연합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교회 분열의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이념이다. 해방 후 한국사회는 극심한 이념적인 혼란을 겪었다. 남한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확립되는 과정 가운데서 좌익이 숙청되었고, 북한에서는 공산주의가 확립되는 가운데 우익이 월남하거나 숙청당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기독교는 자유민주주의의 입장에 분명하게 서서 대한민국의 건국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해방 후 한국교회는 반공에 가장 앞장선 종교였다.

이런 한국교회에 소위 진보적인 사상이 소개되었다. 그것도 한국교회의 후견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미국의 장로교와 감리교를 통해서였다. 여기에 한국 기독교의 고민이 있었다. 한국교회는 반공인데, 한국교회의 후견인은 반공의 입장에 서지 않았다. 여기에서 한국교회의 구조개편이 이루어졌다. 반공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기독교는 WCC를 반대했고, 미국교회와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친선교사파 기독교는 WCC를 용인했다. 사실 당시 재정의 대부분을 서구교회에 의존했던 한국교회가 반 WCC를 주장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반공을 강조하였고, 한국의 진보주의는 민주화를 강조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공산주의를 막지 아니하면 자유민주주의는 어렵고, 자유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전체주의에 빠진다. 사실 한국교회는 월남기독교인을 중심한 반공의 노력을 인정하고, 동시에 진보주의를 중심으로한 민주화운동을 인정해야 한다. 국가건설의 초기에는 반공이 중요하고, 발전된 단계에서는 민주화가 주요하다. 필자는 한국교회가 연합하기 위해서는 반공과 민주화를 하나로 묶는 가치의 공동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셋째,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파구조의 붕괴와 함께 독립교회의 출현이다. 사실 교파는 예배형식, 신학의 차이, 정치제도, 경제적인 계층, 인종문제들이 엮여서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교회에서 교파에 따른 경제적, 인종적 계층은 없다고 본다. 이 점이 미국교회와 다른 점이다. 또한 과거 한국교회에는 교파에 따른 예배형식, 신학의 차이, 정치제도의 차이는 엄존하여 왔다. 하지만 지금은 장로교회적인 순복음교회가 있는가 하면, 순복음교회 같은 장로교회도 있다. 기장에도 복음주의교회가 많은 반면 보수장로교회에도 진보적인 인사가 있다. 감리교회, 침례교회에도 장로제도가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에 교파제도가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에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네트웍 시스템이다. 교파를 초월해서 다양한 목적으로 네트웍이 형성되고 있다. 그래서 목회정보를 공유하고, 성경공부교재를 개발하며, 공동으로 집회를 개최한다. 기존교파구조가 정치구조인데 비해서 네트웍 구조는 오히려 목회를 위한 구조이다.

이것과 아울러서 새로운 현상은 독립교회의 출현이다. 기존 교파구조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이 기존 교파를 탈퇴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독립교회로 시작한다. 사실 미국에는 이런 새로운 독립교회가 많이 생기고 있으며,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은 독립교회이다. 필자는 이것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기존교파구조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게 될 때 새로운 구조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연합운동의 기초: 차이의 존중

필자는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연합하기를 원한다면 분열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싸우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에 싸운다. 제 3자의 눈에는 별것 아닌 것 같이 보인다고 할지라도 당사자의 눈에는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장로교의 경우 통합은 합동측을 향해서 분열의 원인은 모 인사의 스캔들을 감추려는 의도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거나, 합동측은 통합측을 향해서 용공분자라거나 하는 식으로 공격하면 안 된다. 통합측은 보수주의 기독교가 염려하는 것을 이해해 주어야 하며, 합동측은 통합측이 염려했던 세계교회와의 연대를 진지하게 고려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자세가 먼저 필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인정하면서 필요에 따라서 연합에 참여하면 된다. 신학이 중요한 이슈가 되면 보수와 진보가 연합하기 힘들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고, 한국기독교를 발전시켜야 한다면 보수/진보를 떠나서 한국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다.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을 하려는 인사들은 가능한 한 서로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사이드로 제쳐 놓고, 공통분모를 확인해 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특정성향을 가진 국제대회를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의 새로운 전기로 삼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이것은 한쪽에게 치명적인 패배감을 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쪽이 분명한 거부 입장을 가진다면 그것을 존중해 주는 것이 진정한 연합운동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다종교사회에서 한 목소리로 정치권에 강력한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일부 종교에서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집약해서 각 후보에게 전달하였다. 그 결과 정부로부터 막대한 약속을 받아 냈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립학교법, 미션스쿨의 종교의 자유, 해외 선교사 보호, 교과서 왜곡, 동성애차별금지법, 북한의 종교의 자유, 복지단체의 자율성문제 등 수많은 문제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아울러서 기독교전체가 힘을 합하여 추진해야 할 기독교역사박물관건립과 근대문화정책의 강화 등 수 많은 이슈들이 눈앞에 있다. 진정으로 연합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은 제쳐두고 서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할 것이다. 총선과 대선이 있는 2012년 한국교회는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서, 성서적인 가치관의 구현을 위해서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함께 노력하다보면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되고, 결국 한국교회는 연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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