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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성령의 임재

작성자박나무|작성시간26.06.17|조회수2 목록 댓글 0

성령의 임재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며 과학적인 실험으로 증명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며 대자연을 다스리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 그 뿐 아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함 받았기에 하나님과 이전의 화목했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하고 영접하면,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삶과 영혼을 인도해주시고 천국으로 이끌어 가실 것을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성령이 안에 계신 것을 믿고 계신가?

 

이 말씀을 의심하는 크리스천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성령이 아니면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자가 없다는 성경말씀을 근거로 말이다. 또한 꼬박꼬박 주일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내며 성실하게 교회봉사를 하고 있으니까,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을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설교 단상에서, 교회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어서 천국에 들어갈 것을 의심치 말라는 투의 설교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을 터이다. 그래서 당신 안에 성령이 계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계신가?

 

암요, 그렇다마다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말고요. 그런가? 그렇다면 성령이 계신 증거가 무엇인가? 위의 약속의 말씀이라고? 물론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성령의 내주를 굳게 믿고 있는 그 증거에 대해서 찬찬히 생각해보고 싶다.

 

성령이 누구신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더불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즉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바로 성령이시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와 계셔서 삶과 신앙을 인도해 주고 계시다. 그렇다면 성령이 당신 안에서 당신의 영혼과 깊고 친밀한 친교를 나누고 계신가? 여기서부터 말문이 막히는 크리스천이 허다할 것이다. 성령이 안에 계시다는 것은 성경 말씀을 근거로 믿고는 있지만,성령이 안에 계신 증거가 미미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있는 것 같기고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령이 계시기는 한데,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성령이 안에 계시기는 한 데,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게 아니라 단지 존재감을 드러내시지 않을 뿐이라고? 그렇다면 당신 안에 들어있는 성령은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신 탓인가? 아니면 피곤해서 자느라고 인기척이 없으신가?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왕상18:27,28)

 

위의 말씀은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바알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서로 자신의 신을 부르며 진짜 신이 누구인지 대결해보자고 하면서, 아무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조롱하는 말이다. 만약 당신 안에 성령이 계신 게 확실하다면 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가? 당신이 만약 갈멜산에 서있는 엘리야의 입장이라면 어떤 일이 발생했겠는가? 바알 선지자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당신의 숨통을 끊어버렸을 것이다. 왜냐면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도 보여주지 않으며 최소한의 존재감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

 

위의 말씀은 예배의 끝내는 순서로 담임목사가 축도 시에 하는 구절이다. 여기에서 성령의 교통하심이라는 말씀을 눈여겨보자. 교통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이다. ‘코이노니아’는 ‘교제’, ‘친교’라는 의미로 교회에서 자주 쓰는 용어이다. 그런데 성령과 교제한다는 말투가 좀 거시기해서인지, 교통이라는 말로 바꾸어 번역하였나보다.하나님은 우리와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면서 우리가 문을 열고 환영하면, 우리와 함께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눌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신데, 어떻게 아무런 느낌이나 증거가 없을 수 있는가?

 

청춘남녀가 서로 사귀면 만나고 싶어 어쩔 줄 모른다. 하루 종일 전화와 문자, 카톡은 물론,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 메신저로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만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와 계시다면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싶어 하시지 않을까? 하나님과 만나는 통로는 기도와 말씀이다. 그렇다면 기도하는 시간이 사모해져서 틈만 나면 기도를 하고 있으며, 성경말씀이 쫀득쫀득하게 들어와 성경 읽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기도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설령 기도자리에 앉았더라도 아무런 감흥이 없어 자신의 요구사항만 주구장창 읊어대고 있으며, 성경책을 언제 들쳐보았는지 기억도 없어서 성경책이 먼지를 폴폴 쓰고 앉아 있다면, 당신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은 명백한 증거이다.

 

하나님은 당신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신다. 그런데 당신은 예배행위와 희생적인 신앙행위만을 반복할 뿐,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서 교제를 나눌 생각이 없다. 만약 당신 안에 성령이 계시다면 기도하는 시간이 기다려지며 기도할 때마다 깊게 몰입이 되어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놀랄 지경이며, 일상의 삶에서 평안과 기쁨과 자유함으로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아니라면 아닌 것이고 없다면 없는 것이다. 없는데도 있다고 우기지 마시라. 없는 데도 있다고 하니까,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벌거벗고 돌아다녀도 부끄럽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오랜 신앙의 연륜에도 삶에 힘이 없고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 상태로 이 땅을 떠난다면 당신의 영혼의 종착역은 지옥일 확률이 100%이다. 거기서 땅을 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긴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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