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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정통 신학에 있어서 신학적 일치점과 차이점

작성자박나무|작성시간26.06.17|조회수1 목록 댓글 0

정통 신학에 있어서 신학적 일치점과 차이점

 

존 칼빈의 주석과 후대에 17세기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주석을 비교해 보면 성경 해석에 있어서 다소간 차이가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존 칼빈과 후대 17세기 개혁주의 신학자들 사이에 중대한 교리적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 일치된 신조와 신앙 고백을 따라서 신학적 활동을 한다.

 

그런데 근래에 개혁주의 신학자들 간에 중대한 교리적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소간에 성경 해석상의 차이를 가지고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시비를 가리려고 하는 어리석은 신자들을 본다.

 

그래서 누구는 칼빈파 누구는 쯔빙글리파 누구는 베자파 누구는 위그노파 누구는 화란파 누구는 대영제국파로 나누어서 파벌 싸움한다.

우리는 이러한 자들을 교조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특정한 인물의 신학에 매몰되어서 개혁주의 정통 신학을 모른다.

 

쮜리히의 쯔빙글리와 불링거 그리고 제네바의 칼빈과 베자와는 서로 다소간 차이가 있으나 어느 쪽의 신학이 그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프랑스 개혁 교회와 화란의 개혁 교회와 대영제국 장로교회는 서로 다소간 차이가 있으나 어느 교회가 그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란의 개혁 교회와 항론파의 교회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알미니우스주의를 신봉하는 항론파 교회가 그른 것이다. 이는 개혁주의 교리와 중대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성경 신학자들의 주석들이 조심스러운 것이 거기에 있다. 그들의 성경 해석은 다소간 해석상의 다른 것이 아니라 중대한 교리적 차이가 있다.

 

그것은 그른 것이다. 칼 바르트, 판넨베르그, 알브라이트 리츨, 슐라이마허와 불트만 등의 성경 해석은 개혁 신학과 다소가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그렇게 개혁 신학자들 사이에 다소간의 성경 해석상의 차이를 두고 어느 특정한 신학자의 성경 해석을 절대시하며 다른 개혁 신학자들을 극도로 배척하는 행위들은 모두 교조주의적이다. 16~17세기 개혁 신학은 특정한 신학자의 신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16~17세기 종교 개혁의 역사 가운데 논의된 신학적 토론의 결과로서 신앙 고백서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교적 후대에 정리된 도르트 총회(1619년)의 일치 신조와 그보다 더욱 후대에 최종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정리된 웨스트민스터 총회(1647년))의 표준 문서가 모든 개혁 교회가 추구해야할 신학적 표준이다. 그 교리적 입장에 일치한다면 다양한 성경 해석은 열려 있다. 적절한 방법에 도움을 받아서 신자들조차도 좀더 풍성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있다. 다만 개혁주의 정통 교리에 일치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통 교리에 대한 일치성과 함께 그 범주 안에서 풍성한 성경 해석이 가능하다.

 

신자들의 성경 해석이 다양하고 풍성한 것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그 성경 해석의 결과들이 개혁주의 정통 교리에 어긋나 있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여러 개혁 신학자들의 성경 해석의 결과물을 다양하게 받아들여도 된다. 다만 개혁주의 정통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도르트 총회의 일치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표준 문서들이다. 이 두 종류의 신조와 신앙 고백서를 거부한다면 거룩한 보편 교회의 일체성과 통일성이 무너져서 사도 신조가 고백하는 거룩한 보편 교회(Credo Sanctam Catholicam Ecclesiam)가 되지 못한다. 거룩한 보편 교회는 사도 시대부터 일정한 방향으로 전승되어온 정통 교리를 따라 세워지는 것이다.

 

그 첫 기초가 사도 신조이며 뒤이어서 니케아 신조와 칼게돈 신조와 아타나시우스 신조가 있는 것이다. 첫 세대 거룩한 보편 교회로서 사도 시대와 정통 교부 시대의 디다케를 수납하여서 결정된 그러한 고대 정통 교부 시대의 신조들은 모든 교회가 수납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기초가 16~17세기에 정리된 개혁주의 정통 신학이다.

 

그것은 주로 도르트 총회의 일치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표준 문서이다. 이러한 고귀한 기준들을 버리면 교회는 분명히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모든 개혁 교회를 추구하는 성도들은 이러한 표준적 지침을 따라서 다양한 성경 해석의 풍요로움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근본주의자들의 편향되고 왜곡된 과도한 집착을 경계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자들의 표준적 지침조차 없는 혼합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누구든지 근본주의에 빠지거나 자유주의에 빠진다. 전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빈약하고 후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왜곡되어 있다.

 

배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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