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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룻기에서 보는 고부문제

작성자박나무|작성시간26.06.19|조회수0 목록 댓글 0

룻기에서 보는 고부문제

 

1. 나오미의 장점

첫째, 자신보다 며느리들의 장래를 먼저 염려했다(1:8). 남편도 자식도 없는 그녀의 곁을 며느리들마저 떠난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워질까? 그러나 그녀는 자신보다 젊은 자부들을 걱정하고 있다. 나오미는 두 자부들에게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자신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며, 모처럼 신앙 안에 들어온 자부들을 이방세계에 돌려보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는 하나님께서 선대하실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자부들에 대한 친밀함이 있다(1:11). 나오미는 자부들을 "내 딸들아" 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의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를 며느리라 생각하지 않고 딸처럼 여기며, 며느리 역시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처럼 여긴다면 고부갈등이 왜 있겠는가?

셋째, 자부들의 재혼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1:12 외). 나오미 자신도 혼자된 처지이면서 자부들의 재혼에 깊은 관심이 있고, 후에 룻에게는 구체적인 지도까지 하고 있다. 자부들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면 기꺼이 재혼을 권유하고 있다.

넷째, 자부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있다(1:15, 18). 친정으로 돌아가겠다는 큰 자부의 의견,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는 작은 자부의 의견을 똑같이 존중해 준다.

다섯째, 자신의 당한 고난을 하나님이 주신 고난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1:13, 20).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오미(즐거움)라 부르지 말고 마라(괴로움)라 불러달라고 한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라" 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도 아니요, 다른 누구를 원망하는 말도 아니다.

 

여섯째, 자부에게 항상 자상한 관심을 갖고 대화를 나눈다(2:19).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이것은 간섭이나 잔소리가 아니다.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요 관심이다.

일곱째, 걱정하며 염려해 준다(2:22). 젊은 과부를 밖에 내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이겠는가? 그녀는 속으로 걱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염려스런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며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여덟째, 자나깨나 자부의 안식처를 염려하고 있다(3:1). 지금에 와서 자부가 안식처를 찾아 떠난다면 자신은 의지할 곳이 없는데도.

아홉째, 룻의 재혼에 구체적인 조언자가 되어준다(3:2-4). 당시 유대의 풍습이나 사정에 어두운 룻을 위해 하나 하나 조언을 해 주어 일이 성사되도록 한다. 보아스와의 결혼이 성사된 것은 전적으로 나오미의 지혜가 아닌가?

열째, 자부가 낳아준 아기의 양육자가 되어준다(4:16). 사실 룻이 낳은 오벳은 나오미의 손자는 아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나오미가 자식을 낳았다고 했다. 얼마나 잘 양육했으면 이런 표현을 썼을까?

 

2. 룻의 장점

첫째, 바른 선택을 했다(1:16-17). 현실적인 유익 즉 젊은 남자를 만나 재혼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어머니를 선택한 것은 곧 어머니의 나라를 선택한 것이요, 어머니의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다.

둘째, 책임감이 분명한 여인이다(1:16-17). 고생스럽다고 자신이 편한 길을 찾아 떠난다면 홀로된 시어머니는 누가 섬기겠는가? 그녀는 자신의 길보다 어머니를 위해 사는 길을 가기로 한다.

셋째, 결심이 분명한 여인이다(1:18). 룻의 분명한 결심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시어머니가 인정할 정도로 결심이 분명하고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넷째, 항상 시어머니와 가까이하고 상의를 한다(2:2). 그냥 나가서 이삭을 주워와도될텐데 집을 나갈 때 시어머니와 상의를 하여 허락을 받고, 또 돌아와서는 보고를 드린다.

다섯째, 예의를 아는 여인이다(2:7).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구태여 누구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될 일인데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이삭을 줍는다.

 

여섯째, 부지런하고 성실한 여인이다(2:7). 이삭 줍는 일이 얼마나 허리 아프고 힘든 일인가? 그런데 사람들은 룻이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하고 인정한다.

일곱째, 동네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2:6-7, 8-9, 11). 그러므로 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의적 도움을 받게 된다.

여덟째, 겸손한 여인이다(2:10).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보아스에게 땅에 엎드려 절하며 사례한다.

아홉째, 시어머니를 정성껏 공경한다(2:11, 18). 보아스의 친절한 배려로 먹다 남은 음식을 싸다 어머니에게 드린다. 보아스가 말한 대로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소문이 날만 한 여인이다.

열째, 순종하는 여인이다(3:5). "어머니 말씀대로 다 행하리이다" 그가 어머니의 말을 거역한 것은 '나를 따라오지 말라'고 했던 때뿐이다.

열한째, 현숙하기로 소문난 여인이다(3:11). 만약 그녀에게 이런 소문이 나지 않았다면 무슨 오해를 샀겠는가, 그러나 보아스는 자신의 이불 속으로 찾아온 여인이지만 그녀의 현숙함을 의심하지 않았다.

열두째, 그녀는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라고 소문이 난 여인이다(4:15).

 

3. 이들의 관계 속에서 발견하는 고부갈등 극복의 지혜

첫째, 자신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한다. 나오미는 항상 룻을 걱정하고, 룻은 나오미를 걱정한다.

둘째, 친밀함이 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딸처럼,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친정 어머니처럼 여겼다.

셋째, 서로 대화가 끊어지지 않는다. 크고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넷째, 고난을 탓하지 않는다. 가난은 불편할 뿐이지 죄는 아니다. 그들은 이 불편을 오히려 달게 받는다.

다섯째, 시어머니는 자부에게 영적 감화를 주고 있다. 그녀의 신앙은 이방여인 룻에게 그대로 전수된다.

 

여섯째, 자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칭송이 자자하다.

일곱째, 시어머니는 자부의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 노력한다. 재혼을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한다.

여덟째,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항상 순종한다. 3장에서 시어머니가 지시한 일은 현숙한 여인으로서 얼마나 순종하기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그녀는 이것까지도 순종한다.

아홉째,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젊은 며느리는 가정 살림을, 늙은 시어머니는 자부의 앞날을 위해 각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열째, 자녀 즉 손자는 고부간 사이를 더욱 친밀하게 해 주었다.

 

구속사적 관점에서 본 룻기의 본질

 

1. 룻기가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

첫째, 주님을 떠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고향은 베들레헴이다. 이곳은 다윗의 고향이며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다. 그 이름의 뜻이 '떡집'이라는 데서 암시하고 있듯이(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시다, 요 6:35) 그들이 베들레헴을 떠났다고 하는 것은 주님의 품을 떠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 땅에도 흉년이 찾아왔다. 더구나 다른 지역보다 물을 풍부히 공급받을 수 있던 베들레헴이 흉년들었다면 다른 지역은 더 말할 것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들의 기업이 항상 풍족해야 하겠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도착했지만 그 해에 흉년이 들었던 것처럼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에게도 흉년이나 기근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그들이 흉년을 이기지 못하고 떡집인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으로 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화근이다. 아브라함이 기근을 못이기고 애굽에 내려갔다가 망신을 당하고 돌아온 것처럼, 야곱이 7년 기근을 견디지 못하고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내려간 결과 후손이 400년간 종살이를 하게 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주님을 떠난다면 결과는 뻔한 일이다.

 

엘리멜렉이나 기룐과 말룐이 지병을 앓고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에 거처를 옮긴 사실 외에는 다른 어떤 이유로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압에 내려가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이 다 죽은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요셉의 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비록 7년의 긴 기간 극심한 흉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던 사람들이 다 죽어 없어졌단 말인가?

기억하자. 어떤 이유에서든 베들레헴을 떠난 것이 불행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유에서든지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영육간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불행이요 비극임을 알자.

 

둘째, 은혜와 축복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룻이 나오미의 집에 시집을 올 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아무튼 시집을 와서 살다 보니 하나님을 알았고 이들이 동족 모압과는 다른, 하나님의 선민임을 알았다.

 

큰동서 오르바는 어머니에게 큰짐을 지워드리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의 부탁을 따라 그녀는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룻은 모처럼 얻은 이 선민의 축복을 빼앗길 수 없었다. 시어머니의 만류도 있었지만 그녀의 결심은 단호했다. 육신적인 어떤 고난과 수모가 따른다 해도 - 설령 평생을 과부로 지내는 한이 있다 해도 하나님이 정하신 선민의 반열을 떠날 수는 없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8).

결국 모압과 암몬 사람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는 신명기의 선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신 23:3-6) 하나님은 이방 모압 여인을 통해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지는 다윗 왕가의 형통을 잇게 하셨다.

 

2. 룻기에 나타나는 하나님

1. 우리 곁에 가까이 계셔서 우리 각자의 삶을 주관하고 계신다. 나오미 일가가 약속의 땅을 버리고 이방 모압 지방으로 떠나갔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곳까지 따라가셔서 결국 다시 고향으로 이끄셨다.

2. 고난을 통해 훈련시키시고 훈련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약속하신다. 남편과 자식을 잃은 아픔이 있지만 이런 아픔을 통해 더 고부간에 더 두터운 정을 느끼게 하며 마라의 삶이 진정한 나오미의 삶으로 변하게 하신다.

3. 하나님은 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온 세계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다. 이방 여인의 몸에서 그리스도를 나게 하심으로써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구주만이 아니라 온 인류의 구주 되심을 나타내 보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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