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성도로서 ‘목사’
[목회에 대한 이해]
나는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만30년 동안 줄곧 한 교회에만 시무해왔다.
나의 ‘목회철학’에 대한 원고청탁을 받고나서 보니 그에 대한 특별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교회 가운데 직분을 맡은 한 사람의 성도로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따름이다.
목회자가 교회 내부에서 다른 교인들에 비해 더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목사가 교회로부터 생활지원을 보장받는 것은 개인의 목적을 추구하지 말고 오직 교회의 거룩한 요구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각 교회에 속한 목회자와 성도들은 예외 없이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목사라고 해도 맡겨진 직분적 사역 외에는 부족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 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것이다.
따라서 다른 직분자들이 교회를 위한 자신의 봉사를 감당할 때 그에 대한 직분적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는 각 직분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나름대로 은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와 설교자로서 목회자]
목사는 일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의 직분을 맡은 성도일 뿐 신분적 특권을 가진 구별된 인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목사가 교회 가운데서 가져야 할 특별한 책임과 의무는 막중하다.
일반 성도들은 공적으로 가르치는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설령 잘못된 주장을 펼친다고 할지라도 사사로운 견해에 지나지 않으므로 영향력이 크지 않다. 하지만 목사는 교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직분을 맡은 성도이므로 만일 그릇된 교훈을 설파한다면 전체 교인들에게 치명적인 손상이 갈 수 있다. 즉 교사가 영적인 소경이 되면 전체 교회를 사망의 골짜기로 끌고 갈 우려가 따르게 된다.
나는 한 평생 설교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설교에 자신이 없다. 설교자로서 나의 결정적인 콤플렉스 가운데 하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이 어렵고 공적으로 회중을 설득해낸다는 것은 더욱 힘들다. 나는 설교할 때 목소리가 좋지 않고 발음이 분명치 않을뿐더러 소리의 톤의 높낮이가 거의 없다. 가끔 주위에서 괜찮다고 격려하는 자들이 있어서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될 따름이다.
나는 웅변조로 박력 있게 설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우리 교회에서는 공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 중 초등학생들과 학력이 낮은 분들뿐 아니라 박사들도 다수 있다. 나는 저들의 연령과 교육정도, 그리고 일반적인 지적 수준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설교의 내용이 어려우면 나중에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부모나 그 가족이 시간을 내어 설명해주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약간의 미안함과 더불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설교가 밋밋하고 재미없을 텐데도 크게 불만스런 표정을 짓지 않고 인내하며 따라 와주는 것이 여간 고맙지 않다. 그러다보니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은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또한 설교자로서 나는 주일 공 예배 시간에 선포되는 설교본문을 임의로 선택하지 않는다. 그에 대해서는 당회가 공적인 논의를 통해 구약이나 신약 성경의 한 서책을 본문으로 결정한다. 목회자가 매주일 설교할 본문을 선정해야 한다면 매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설교자가 때때로 본문을 선택하다보면 개인의 뜻을 설교시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할 우려가 따를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목사가 자신의 사사로운 견해를 공 예배 시간을 이용해 회중에게 전하고 그에 대한 수용을 강요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설교자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몸된 교회에 하시고자 하는 뜻을 온전히 전달해야하기 때문이다.
[각 직분의 소중함에 대한 이해]
목사는 교회 가운데서 독단적으로 목회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지상 교회는 목사, 장로, 집사 등의 직분자들을 통해 세워지고 보존되어 간다. 교회에는 각 직분자들이 감당해야 할 고유한 사역이 있으며 성도들은 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해야만 한다. 즉 목사가 감당해야 할 사역이 있고 장로들과 집사들에게 맡겨진 직무가 있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각 직분자들의 사역이 존중되어야 하며 상호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목회자는 성경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더불어 영적인 면과 교리적인 면에서 보편교회의 원리 가운데 서 있어야 한다.당연히 목사의 주된 직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지도하며 가르치는 일이다. 그와 동시에 교회를 돌아보는 목양의 직분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또한 교회에서 목사와 함께 감독 직책을 맡은 직분자인 장로들에게는 고유한 직임이 맡겨져 있다. 그것은 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와 가르쳐지는 내용을 선하게 감독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감독이란 목사를 위압적으로 감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장로들은 목회자가 교회의 근본 원리 가운데 성경적인 교훈에서 벗어난 설교를 하지 않도록 매우 겸손한 자세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동시에 장로들은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가정을 균형 있게 심방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더불어 목사와 장로의 모임인 당회는 교회교육에 연관된 내용에 대한 결의와 허락을 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집사들은 교회의 운영과 재정에 관련된 제반 사항에 대한 논의와 실행의 주체가 된다. 그것은 집사회에 맡겨진 고유한 직분사역이다. 따라서 목사와 장로는 성경적인 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집사회의 직분 사역에 지나친 관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집사들이 목사와 장로들의 직분 사역에 부당한 간섭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의 한계]
타락한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단지 최선을 다해 성실한 자세를 유지하고자 애쓸 뿐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려 하지 않는다. 목회도 그렇고 설교도 그렇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바는 욕망이 가득 차 근본이 불안전한 상태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도리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든지 이기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잘못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된다면 말씀을 통한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소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배들은 인간의 ‘전적부패’와 ‘전적무능’을 그토록 강조했던 것이다.
[공적주의에 대한 경계]
목회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적 사역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들은 무언가 자신의 공적 쌓기에 급급하다.그와 같은 양상은 인간의 추한 욕망에 근거한 것으로서 현대 교회 가운데 그대로 들어와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바는 만일 목회자가 자신의 공적 쌓기에 열중한다면 그것은 종교를 앞세운 개인적인 야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세속화된 야망을 우선시하는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한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의 눈에 큰 공적을 쌓은 것처럼 비쳐지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존재한다. 지상 교회 가운데 그런 자들이 숱하게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 근거한 영원한 삶에 궁극적인 관심을 가질 뿐 타락한 세상에서의 종교적인 성취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두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이미 고백하고 있듯이 목회자들이 개인적인 실적이나 공적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교회 내에서 서로 간 불편한 비교를 하게 되며 부당한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양산하게 될 따름이다. 어리석은 종교인들은 죽은 후에도 자신의 공적이 영원한 영광으로 남아 있을 것처럼 착각한다. 성도들이 죽어 천상의 나라에 이르게 되면 이 세상의 것으로 인한 자랑거리들이 남지 않는다.
따라서 흔히 생각하는 목회의 성공 실패란 교회 가운데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교회의 교사로 세움 받은 목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기에게 맡겨진 신령한 직무를 성실하게 감당하게 될 따름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종교적인 성공을 거둔 것으로 여긴다면 아직 신앙이 미숙하거나 세속화된 사고에 빠진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목회자로서 그에 연관된 근본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또한 기억해야 할 바는 대형 교회를 이루어 목회를 하는 것이 인간들에게는 종교적 성공으로 비쳐질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유명한 신학교수가 되어 수십 수백 권의 책을 집필한 학자라 할지라도 그것 자체를 성공으로 볼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시대에 편승한 신학적 풍조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목회를 하는 성도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한 목회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맺음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써 살아가고 있다. 교회의 교사로 세움 받은 목회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중요한 사실은 지상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그렇듯이 목회자도 자기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목적으로 이 세상에서 활동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신앙이 성숙한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을 의지하며 그의 말씀을 좇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이기적인 태도를 버리고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이웃은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다. 교회에서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참된 교사라면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몸된 교회와 그의 거룩한 자녀들을 자기의 종교적인 욕망을 위한 도구로 삼으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목사들은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거나 교회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자기의 종교적인 야망 때문이 아닌지 반성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입술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오르내리지만 실상은 교회와 교인들을 자기의 성공을 위한 방편으로 사용할 우려가 따른다. 그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욕망을 이루어가기 위한 도구로 만드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광호 목사(대구 실로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