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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성경은 왜 66권일까?

작성자박나무|작성시간26.06.21|조회수0 목록 댓글 0

성경은 왜 66권일까?

 

정경 형성의 역사와 신학적 의미를 찾아서

이 책은 어떻게 내 손에 오게 되었을까?

우리는 매일처럼 성경을 펼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총 66권의 책이 한 권으로 묶여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이런 질문이 우리 안에 고개를 듭니다.

왜 이 책들만 성경일까?

누가 어떻게 정한 걸까?

다른 문서들은 왜 빠졌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가 의지하는 믿음의 근거가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묻는 매우 중요한 신앙적 질문입니다. 성경이 단지 고대 문헌들의 모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경건한 분별과 겸손한 신학적 논의를 거쳐 왔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위대한 여정을 천천히 따라가보려 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을까?

성경은 하늘에서 한 번에 떨어진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은 처음엔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점차 문자로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모세가 율법을 받아 기록했고, 이후 선지자들과 시인들, 역사가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기록해나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초기 유대 공동체는 어떤 책이 하나님의 말씀인지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식과 구별을 경험하게 됩니다.

 

히브리 전통 속에서 모세오경은 매우 일찍부터 권위 있는 책으로 받아들여졌고, 바벨론 포로 이후로는 예언서들과 역사서, 시가서들이 점차적으로 정리되어갔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미 유대인들이 ‘율법, 선지자, 시편’이라는 세 가지 범주로 성경을 구분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구약 39권의 구조와 유사합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동안 이 구약 정경을 인용하셨고, 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셨습니다. 따라서 구약 성경은 유대 공동체 내부의 역사적 전통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준이라는 두 축을 통해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어떤 책을 성경으로 읽었을까?

신약 성경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그분의 행적과 말씀을 증언하고, 교회 공동체에 주신 사도들의 가르침을 보존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복음서, 사도행전,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서신,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모두 1세기 후반까지 기록되었고, 교회는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회중 앞에서 읽고, 가르침의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초기 교회가 곧바로 “이 27권이 신약이다”라고 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문서들이 교회 안팎에서 유통되었고, 어떤 문서들은 이단들에 의해 왜곡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마르키온(Marcion)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유대 전통을 부정하며 신약에서 자신의 교리에 맞는 책들만 골라서 정경을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교회에게 충격을 주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무엇이 진짜인가를 분별해야 할 책임을 자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때부터 교회는 더욱 분명한 정경의 기준을 세우고, 영감된 말씀과 그렇지 않은 문서를 구별하는 일에 힘쓰게 됩니다.

정경의 기준

교회의 선택인가, 하나님의 인도인가?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질문이 등장합니다.

교회가 성경을 선택한 것인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성경을 드러내신 것인가?

정경 형성 과정을 둘러싼 핵심 논쟁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통 기독교의 입장은 “교회가 성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고 교회는 그 말씀을 분별해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정경은 교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의 자연스러운 인식과 수용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교회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통해 정경을 인식했습니다.

첫째, 사도성과 연관성이 있는가 – 사도 본인이거나, 사도의 직접적인 제자에 의해 기록되었는가.

둘째, 교리의 정통성 – 초대교회의 복음과 일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가.

셋째, 보편성 – 지역 교회를 넘어 널리 사용되고 있는가.

넷째, 영적 권위 – 읽는 자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감동과 권위를 일으키는가.

이 기준들은 단순한 판단 잣대가 아니라,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공동체적 응답이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정경은 어떻게 확정되었는가?

교회는 수 세기에 걸쳐 정경 목록을 점차 명확히 해갔습니다. 2세기 말경 작성된 무라토리 정경(Muratorian Canon)은 거의 모든 신약의 책들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때 이미 상당수가 교회 안에서 권위 있는 책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줍니다.

 

3세기와 4세기에는 오리게네스, 터툴리안, 이레니우스 등의 교부들이 자신들의 신학적 저술에서 신약 문서들을 인용하며, 정경으로서의 위치를 점점 공고히 해갑니다.

결정적으로는 아타나시우스(Ἀθανάσιος, 296–373)가 AD 367년 부활절 서신에서 지금 우리가 가진 27권의 신약 목록을 정확히 언급합니다. 이후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는 이 목록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며 서방 교회 내에서 정경이 확정됩니다.

이 과정은 단번에 이루어진 결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교회가 말씀 앞에 엎드려 분별하고 검증한 신앙의 역사였습니다.

외경 논쟁과 개혁신학의 입장

종교개혁 시대에 들어서면서 정경 논쟁은 다시 불이 붙습니다. 특히 구약 외경(토비트, 마카베오서 등)을 둘러싼 논의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구분을 더욱 명확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가톨릭 교회는 외경을 ‘제2정경’으로 선언하며,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부여합니다. 반면 개신교는 유대 전통과 예수님의 인용에 기초하여 구약 39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합니다.

루터, 칼빈, 츠빙글리 등 개혁자들은 외경을 역사적·윤리적 가치가 있는 문서로 평가했지만,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으로는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칙 아래,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명확히 구별되어 있으며, 외경은 교리 형성이나 신앙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1. 내가 읽는 성경이 어떤 역사를 통해 우리 손에 오게 되었는지 알고 있는가?

2. 유튜브나 SNS에 떠도는 신비한 문서들보다 성경 66권을 더 신뢰하고 있는가?

3. 자녀나 다음 세대에게 왜 이 성경이 유일한 권위인지 설명할 수 있는가?

4. 성경을 단순히 정보의 책으로 읽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권위 있는 음성으로 듣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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