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상담을 할 때 지켜야 할 원칙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털어놓을 수 없다는 것은 정말 답답한 일이다. 나는 자주 그런 답답함을 느끼며 산다. 직업상 나에게 고민을 상담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나는 내 문제를 상담할 곳이 없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께 고민을 털어놓았고 결혼 전에는 친구들에게 내 문제를 의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리 힘들어도 나 혼자 해결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아이들 잘 자라겠다, 회사도 별 어려움 없이 꾸려가겠다, 도대체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말하지만 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은 없다. 성적 문제, 진급이나 동료와의 갈등 문제, 부부간의 성격 차이로 인한 갈등, 자녀 교육 문제, 노년의 외로움 등 사람들이 저마다 안고 사는 고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어쩌면 어렴풋이 철이 들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람들은 크고 작은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간혹 감당하기 힘든 고민거리 때문에 죽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고, 소수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저히 살 수 없을 것처럼 힘들어하다가도 나름대로의 고민 해소법을 통해 툴툴 털고 일어난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고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담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흔히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은 환자가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말을 다 들어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전문적인 상담이건 의논 차원의 상담이건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상대방이 마음놓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신뢰감을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지금의 고통스러운 상황이 훗날 제삼자에게 알려질까 봐 두려워한다.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선뜻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담하는 사람을 신뢰하게 되면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을 수 있다. 가슴을 툭 터놓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상담을 잘하려면 상담을 마친 후에도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한다. 만약 상담 후에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그 말이 돌고 돌아 당사자의 귀에까지 들어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 사이는 영원히 금이 간다.
상담에서 또 하나 중요한 덕목은 상담을 받으려는 사람이 엉뚱한 말이나 행동을 하더라도 중간에 제지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말하는 사람이 행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털어놓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어야 상담에 성공할 수 있다.
나는 연년생인 두 아들의 교육을 위해 아이들이 유치원생일 때 아동심리학자 엑슨이 쓴 《딥스》라는 교육서를 본 적이 있다. 이 책은 인텔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폐아 딥스를 상담 치료한 엑슨의 보고서다. 내가 여기서 이 책을 언급하는 이유는 상담자의 인내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딥스의 심한 자폐증세는 대학교수인 부모들조차 손대지 못할 만큼 심각했다. 그러나 엑슨은 딥스의 행동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묵묵히 아이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다. 엑슨은 아주 간혹 딥스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만 슬쩍 던져놓고는 딥스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처럼 상담할 때는 절대로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지 말고 상대방이 스스로 행동을 교정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영국의 서머힐학교에 대한 리포트도 인상적이었다. 그 학교는 어린 학생들이 무슨 짓을 해도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둠으로써 스스로 자아를 찾도록 한다.
부모는 자식을 가장 잘 안다. 그런데도 자녀의 고민을 상담해주지 못하는 이유는 자녀의 고민을 들어주기보다 부모의 생각을 억지로 주입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엄마한테는 무슨 말을 못해, 진짜!”
중학교 3학년인 예선이는 엄마가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자 화를 냈다. 예선이는 지난밤에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비밀을 엄마에게 어렵게 털어놓았다. 엄마에게 속시원하게 이야기하고 조언도 구하고 싶었기 때문인데 엄마는 딸의 비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에게 공개하며 재미있다는 듯 웃는 게 아닌가. 예선이 엄마로서는 벌써 딸이 저만큼 컸구나 하는 생각에 대견해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예선이는 그 순간 다시는 엄마에게 비밀을 털어놓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이처럼 부모자식 간에도 상담을 해주는 역할을 맡았을 때는 반드시 비밀을 지켜주어야 한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상대방은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만다.
*> 말 성형 포인트 <*
- 상담에서는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신뢰감이 가장 중요하다.
- 상담 후에는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한다. 비밀 누설로 생긴 불신은 영원히 치료할 수 없다.
- 상담을 할 때는 상대방의 말을 제지하거나 가로막지 말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 한국형 대화의 기술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