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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의 변경 : 봉성의 지명 개칭에 따라 본관도 변경되었음. 봉성 → 곡성 → 서원 → 파주
본관을 '관', '관향'이라고도 하며, 호적등본에서는 '본'이라고 등재되어 있습니다. 우리 파주염씨의 본관이 '파주'로 삼게 된 것은 고려사 등의 자료에도 있듯이 시조이신 '염형명'선조와 그 후손들의 설명에서 보면, 봉성현(파주의 옛이름)에 대대로 이어오는 집과 농토를 가지고 대를 이어 살았다는 기록이 말해주듯이 처음에는 '봉성'이었다가, 다음 1354년(공민왕 3년)에 중시조이신 매헌 충경공(염제신)선조께서 '곡성부원군'에 봉해지자 본관을 '곡성'으로 개관하였다가, 다시 지명이름으로 개관하였는데 이때는 '봉성'이 '서원'으로 바뀐뒤라 '서원'으로 하였고, 서원이 정부의 행정명칭 변경에 따라 '파주'로 바뀌어 우리 본관도 자연히 '파주'로 된 것입니다.
만성보와 일부 성보에 용담, 순창, 담양, 개성, 서원 등 70여본이 나타나 있으나, 이는 우왕 14년인 서기1388년의 무진참화를 피하기 위하여 각지방으로 분산되어 살면서 조상의 유업지, 또는 각자의 주거지명을 본관으로 삼았기 때문이고, 우리나라 염씨는 모두 동근동원으로 파주염씨 단일본임. 이는 마치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고려 태조 왕건의 후손을 멸족시키려 함으로써, 이들이 왕씨 성을 버리고 모친의 성을 따르거나, 王자가 든 玉, 全, 田, 琴, 馬, 龍 등으로 성을 바꾼 것과 다름없다.
용담염씨 역시 흥방의 후손들이 무진참화후 피난처 용담을 본관으로 삼았던 것이다. (용담은 현재 경기 여주군 금사면 용담리). (염태호, 2000). 참고 : 대종회 종보 1997년판 제10호 5면 '우리의 본관은' 참조
한자 ; (姓譜),(同根同源), (옥, 전, 전, 금, 마, 용), (龍潭廉氏), (廉興邦) -. 파주염씨이면서 호적의 본관이 '파주'가 아니고 서원, 봉성, 파평, 용담 등 다른 이름으로 된 경우는 변호사에게 의뢰하여 '가정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호적을 고칠 수가 있으며, 참고로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전체 염씨는 19,807가구에, 인구수는 63,951명으로 나타났음.
참고로 집성촌을 말하면(순서는 특별한 의미 없음)
경남 거창군 남산면 월평리 전남 나주시 송월동 신월부락 전남 나주군 세기면 동신부락 전남 광산군 본량면 남산리 전남 보성군 문덕면 양동리 양지부락 전남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 전남 화순군 청풍면 세청리 반하부락 전북 고창군 고창읍 석교리 경남 함양군 서하면 해평리 전북 임실군 신평면 원천리 충북 옥천군 군북면 용호리 충북 옥천군 청성면 구음리 경기 수원시 율전동 충북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등지인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답니다. 그래서 지명 이름도옛이름 그대로 적은 것이니 참고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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