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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바다 덮음같이(합2:14)-2023.1.29

작성자최규진|작성시간23.01.28|조회수626 목록 댓글 0

물이 바다 덮음같이(합2:14)-2023.1.29

 

한때 한국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주던 복음 송이 있었습니다. 그 곡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라는 복음송입니다. 물론 지금도 그 복음 송은 믿는 자들의 마음을 부흥으로 뜨겁게 하고 선교의 열정을 갖게 합니다. 그 곡은 본문을 가지고 예수전도단의 고형원 선교사가 만든 노래입니다. 고형원 선교사는 부흥한국의 대표로 섬기는 분인데 ‘부흥’, ‘비전’, ‘파송의 노래’, ‘모든 열방 주볼 때까지’라는 감동적이고 가슴 벅찬 복음 송을 만들어 한국교회에 선물하신 분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물이 바다 덮음같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른 채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물이 바다를 덮다니요? 무슨 뜻일까요? 물론 이사야서 11장9절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말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신32:2). 그리고 바다는 세상을 상징하지요(단7:2,3).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바다는 사단이 주관하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사27:1). 그렇다면 도대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라는 말은 장차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을 덮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바다 같은 세상을 하나님이 말씀으로 정복하실 것이라는 말이지요. 사단이 꿈틀대는 바다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바다 같은 세상이 덮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죠. 이른바 여호와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에요.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믿는 자들에게 엄청난 도전과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이른바 바다가 물을 덮는 것이 아니라 물이 바다를 덮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는 배경은 이렇습니다. 바벨론 제국에 의해 이스라엘이 정결한 심판을 받은 후에 바벨론제국으로 상징되는 세상 나라들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지면서 여호와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여 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른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십시다.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십시다. 하박국 선지자 당시 유다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물론 비교적 의로운 왕이라는 평가받은 요시야가 8살이라는 나이에 왕이 되어 개혁을 시도하며 유다의 마지막 부흥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나 애굽과 앗수르의 싸움에 마지못해 개입했다가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지요. 결국 유다의 마지막 자존심과 같은 요시야왕의 죽음으로 유다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무질서에 빠지게 됩니다. 풍전등화 같은 신세에 놓이고 말지요. 유다라는 배가 서서히 바다 속으로 침몰해 갑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박국이라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칩니다. 너무나 다급한 위기 앞에서 하박국 선지자의 외침은 경고였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들은 척을 안합니다. 그래서 혼란만 가중될 뿐입니다.

 

혹시 목회자의 가장 큰 외로움이 어떤 것인 줄 아십니까? 말씀을 전해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그때가 가장 힘들고 비참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동일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왜 자기의 외침을 들어주시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들어 주시지 않겠냐고 투정을 부립니다(합1:2). 다른 말로 하면 아무리 외쳐도 그들이 침묵하는데 왜 하나님이 개입해주시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왜 구원치 않으시냐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의 불의함을 하나님께 탄원하는 것이지요. 목회적인 관점에서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기도라고 생각하지요. 하나님의 섭리는 일반 은총으로 접근하면 해석이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특별은총으로 접근해야 이해가 되는 것들이 허다하지요.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섭리를 일반 은총으로 접근하려는 것입니다. 인과응보적인 사상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선지자와 비슷한 선지자가 구약에 한 사람 더 있었지요. 요나 선지자입니다. 요나 선지자도 하박국 선지자와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려기보다는 자기 민족적인 감정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아무튼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공평하심에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그런 하박국 선지자의 의구심에 대해 하나님은 마치 “나도 다 생각이 있다. 나도 다 계획이 있다”는 식으로 말씀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유다 백성들을 위해 갈대아라는 몽둥이를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1:6). 갈대아는 바벨론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오히려 하박국 선지자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유다를 징계하시는데 왜 하필 바벨론을 사용하시냐는 것이지요. 갈대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 같지도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그들은 사람을 다룰 때 마치 바다의 어족같이 취급하고 주권자가 없는 곤충같이 여긴다는 말입니다(1:14). 그런 못된 족속에게 어찌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맡기시려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선지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고지순한 섭리를 모두 다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사야서55장8절과9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다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의 길을 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날마다 내 생각을 죽이고 하나님의 생각을 찾아야 합니다. 날마다 내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법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의 의구심을 풀어주기 위해 두 가지의 메시지를 내어 놓았습니다. 하나는 2장4절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비록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의 한복판에 있을지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안전지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악이 관영한 곳에서 살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유다 청년들의 믿음을 통해서 충분히 검증이 되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그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습니까? 그들은 그곳에서 바벨론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았고, 그들과 적당히 협상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들만의 방식은 오직 믿음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이 없는 땅, 바벨론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수없이 많은 회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지요.

 

때문에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그들을 죽음의 사지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서 건져주셨던 것이지요. 왜냐면 다니엘은 사자굴속에서도 믿음을 지켰고,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들을 죽음의 사지에서 건져주신 것이지요. 한마디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 처했든지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만 있으면 반드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에게 한 가지를 추가해서 말씀하십니다. 본문14절을 읽어 보십시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지금까지 하나님은 유다라는 나라의 상자 속에 갇혀 계셨습니다. 유다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독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유다의 징계를 통해 바벨론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바벨론제국의 멸망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범세계적으로 확장되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답답할 정도로 유다에 갇혀 계셨던 하나님께서 바벨론이라는 제국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소개할 때가 된 것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탈유대화가 시작된 것이지요. 그 같은 예는 다니엘서를 통해서도 충분이 검증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유다백성들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원대한 섭리를 다 알 수 없다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때문에 그는 만일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을 당하면 세상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뿐만이 아니라 영광이 사라질 것이라고 오해를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하박국의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으면서 하나님을 더욱 그리워하게 되고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바벨론의 포로기에 있던 유다에 기본적인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보통 포로라면 자유가 철저히 억압받고 통제받는 것을 연상하는데 유다백성들의 바벨론 포로기는 억압이라든지 극심한 통제가 없는 비교적 순탄한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지요.

 

그래서 그들은 비교적 더 활발하게 율법을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실한 선지자들이 준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그들은 포로 전보다는 포로기간 동안에 훨씬 더 영적으로 성숙해졌고 건강해져 갔습니다. 망나니 같은 자식이라도 집을 떠나면 철이 들어 부모형제를 그리워하게 되고 변화되듯이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벨론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장 잘 퍼트릴 수 있는 최고의 시장이었던 것이지요. 기독교의 세계화를 이룰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던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줄기차게 예언했습니다. 바벨론 포로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고 말입니다.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고 말입니다(렘29:11).

 

오직 하나님의 관심은 좀처럼 깨어지기 힘든 유다민족의 단단한 종교 장벽을 무너뜨리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자기들이 독점하려고 했거든요. 아주 못된 선민사상이었지요.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를 해체하시기로 하신 것이지요.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과 영광을 온 세계에 전파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복음이 온 세계위에 편만해지기를 소망하셨던 것이지요. 그런 차원으로 본문 말씀을 접근해 보아야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장차 신약시대의 교회탄생을 알려주는 것이요, 복음의 확장을 선포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온 세계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모든 믿는 자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바벨론을 통해 여호와의 이름이 온 세계에 널리 전해질 것이며,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드러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 신앙의 세계화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유다의 범죄로 바벨론에 의한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바벨론도 바사제국에 의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우려했던 일들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위에 높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말입니다.

 

 본문 말씀은 그렇게 견고하던 큰 성 바벨론이 함락되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고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예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그러한 예언이 성취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종 바사왕 고레스를 쓰실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전 538년에 이 말씀은 문자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사왕 고레스는 다니엘의 지도를 받아서 유대인들의 하나님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바사제국 아래 거하던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들에 비해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이스라엘 하나님의 존귀함을 높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온 세상을 지배하던 페르시아 황제들이 대부분 예루살렘에 전을 두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도록 했거든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던 것이지요. 성경에서 말하는 물은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신32:2). 본문에서 나오는 물은 여호와의 영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물론 바다는 공포와 두려움과 혼돈이 가득한 세상을 의미합니다. 바다는 물이 가득해야 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바다는 물이 없습니다. 물이 있어도 가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바다는 온통 더러운 인간들의 탐심으로 가득하지요. 온갖 더러운 오물과 쓰레기들로 넘쳐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덮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은 세상이라는 바다가 물로 덮여지기를 원하십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덮여지기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이라는 바다는 물이 덮음 같지 않습니다. 마치 돈이 바다를 덮음 같습니다. 혹은 성(섹스)이 바다를 덮음 같습니다. 온갖 불법과 부정과 부패와 비리가 바다를 덮음 같습니다. 차마 상상할 수 없는 더러운 죄악이 지구촌의 모든 바다를 덮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라는 바다는 악취가 진동합니다. 썩는 냄새만 날뿐입니다. 이제 바다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물이 채워지면 됩니다. 물은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이라는 바다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덮여지시기를 원하십니다. 

 

물이 바다를 덮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들이 가로채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했습니다. 이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더러운 죄악으로 오염된 바다라 할지라도 물이 들어가면 서서히 정화될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으면 바다는 완전히 정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반드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다 같은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스며들게 하십니다. 아니 물이 바다를 덮게 하십시다. 마치 에스겔서 47장에 나오는 성전문지방에서 나온 물이 처음에는 스미어 나오다가 그 물이 발목에 차고, 무릎에 차며, 허리에 차고, 건너지 못할 강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지요.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 안에서 그렇게 일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1) 먼저 내 심령의 바다에 물이 채워져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작은 바다 같은 내 심령에 물이 공급돼야 합니다. 그러면 내 영혼이 적시어집니다. 내 영혼에 물이 없는데 주변에 물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먼저 내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의 물이, 은혜의 물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충만히 채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내 심령에 생수를 부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와야 하거든요. 그래야 내 주변을 적시게 됩니다. 내 주변에 있는 바다를 살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내 심령에 생수가 없는데, 한마디로 물이 없는데 어떻게 주변에 있는 바다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세상이라는 큰 바다를 물로 채워달라는 기도보다는 내 심령이라는 작은 바다를 먼저 물로 채워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내 심령의 바다에 물이 들어오면 내 영혼이 소생합니다. 내 영혼이 소생하면 어디를 가든지,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물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물은 하나님의 은혜요, 영광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내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물을 받아들일 파이프를 설치하고 밸브를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받아들인 물을 저장할만한 탱크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심령에 먼저 은혜의 물이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흘러넘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의 심령에 물이 없습니다. 마치 가뭄에 갈라진 땅과 같이 부석부석 먼지만 납니다. 그러기에 생명이 자라지 못하는 메마른 땅, 건건한 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땅을 길가에 비유하고, 돌밭에 비유하며, 가시 떨기에 비유합니다. 그런 땅은 생명이 소생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 생명도 위태합니다. 그래서 물이 없는 영혼은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그런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수용하지 못하고 반발을 합니다. 노골적으로 거부합니다. 내 심령의 바다에 물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분명히 어떤 이의 바다에는 아무 생명체도 살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심령의 바다 속에 들어가면 어떠한 생명체도 살수 없습니다. 들어만 가면 죽어버립니다. 또한 어떤 이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답답하여 숨이 멎어버릴 것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자꾸 오염이 되다보니 이제는 어떤 생명체도 살기 어렵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모든 것을 다 수용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다 짜증이 납니다. 예전에는 감사가 넘쳤는데 이제는 불평만 가득합니다. 예전에는 제법 온유했었는데 이제는 얼마나 난폭하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참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내 심령의 바다가 오염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먼저 내 심령의 바다에 물을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심령의 바다에 물을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물로 덮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살수 없는 황량한 바다가 되고 말 것입니다. 내 심령의 바다가 메말라 사막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내 심령의 바다에 물이 마르면 은혜가 고갈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가 사라지고 짜증과 신경질만 증폭되는 것입니다. 어떤 좋은 맘도 생기지 않는 것이지요. 좋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당연히 좋은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면 내 심령의 파괴는 물론이요, 여러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상처만 남기게 됩니다. 때문에 가장 먼저 내 심령의 바다에 은혜의 물을 채워야 합니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게 됩니다. 지금 내 심령의 바다에 물을 채우십시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말입니다. 지금 내 심령의 바다에 물이 있는지를 점검해 보십시다. 혹시 물은 없고 썩은 오폐수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혹은 고인물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닐는지요? 깨끗하고 맑은 물을 채우십시다. 그 물은 하나님이 돈없이 값없이 주시는 생수입니다. 생수가 채워지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게 됩니다.

 

(2)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물이 채워져야 합니다

 

 개인의 심령에 물이 채워지면 각 개인이 살아납니다. 개인이 살아나면 내가 속한 주변이 살아납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살아난다는 말입니다. 모든 시작은 나로부터입니다. 내가 살면 내 주변이 삽니다. 내가 먼저 물이 바다 덮음 같은 은혜를 받아야 내가 속한 공동체가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한 공동체는 가정과 이웃과 교회와 직장입니다. 더욱 확대하면 내가 속한 나라도 공동체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 전염이 됩니다. 내가 속한 가장 가까운 공동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나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부터 은혜의 파장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로 인하여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공동체가 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내 가정이, 내가 속한 교회가, 내가 살고 있는 이웃이,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이 물로 덮여져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 물이 채워지지 않고 세상의 다른 것으로 채워진다면 가정이라는 공동체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해체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공동체가 아픔을 당하는 것은 물이 없어서 그럽니다. 물만 있으면 다른 것이 부족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참고 이겨낼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 우리 가정이 하나님 은혜의 물로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 물난리가 났으면 좋겠습니다. 생수가 펑펑 솟아나면 좋겠습니다. 믿는 성도가 하나라도 들어있는 가정이라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내가 속한 교회가 여호와의 생명의 물로 채워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생수로 채워지지 않으면 거룩함을 잃어버립니다. 세상에 어떤 교회는 돈으로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어떤 교회는 부동산으로 채워지기 원합니다. 어떤 교회는 인간의 정으로 채워지기 원합니다. 안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생수로 채워져야 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말입니다.

 

 여호와의 생수로 채워지지 않으니까 목마르다고 난리입니다. 갈증 난다고 탄식합니다. 답답하다고 불평합니다. 오직 교회는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물로 채워지면 살아납니다. 부흥이 됩니다. 비록 당장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 같아도 길이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속한 직장이나 사업장이 물로 채워져야 합니다. 물로 채워지지 않으면 삐걱거리는 소리만 난무합니다. 일에 재미가 없습니다. 능률도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속한 모든 공동체가 여호와의 말씀의 물로 채워지기를 축원합니다.

 

(3) 또한 지구촌 온 세상이 물로 채워져야 합니다

 

 실제로 본문 말씀은 온 세계에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말씀이 넘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가장 큰 소망이시고 제일 되는 목적이십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이 같은 예언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이스라엘을 통해 온 세계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꿈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기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유다를 바벨론에 포로로 붙여버리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서 당신의 작정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시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낙심하거나 실망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시니까요.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이스라엘에게 맡기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세상 모든 민족과 나라들을 위한 장자로 구별하신 것이지요. 이른바 제사장적 나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그런 소망을 이루어드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수없는 선지자들을 동원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기다렸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지요. 결국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더 이상 방관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 것이지요. 그들을 바벨론의 포로로 붙여버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입장에서 바벨론 포로는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자기들의 철천지원수 국가 바벨론이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것이 최선의 방책이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지요. 하나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심이요, 또 다른 하나는 교만한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구원이요, 다른 편으로는 바벨론의 심판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자기 백성들을 집어넣은 후에도 그들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진노 중에 긍휼을 잊지 아니하신 것이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나라 바벨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똑똑히 보여주신 것이지요. 하나님은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온 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교만한 바벨론 제국을 꺾으시고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공표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관심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로 삼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님의 생각도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생각이 아들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반드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각 나라와 족속과 온 세계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나로부터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십시다. 내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십시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말입니다.

 

 가장 먼저 내 심령의 바다에 채우십시다. 그리고 내가 속한 모든 주변의 바다로 흘러가게 하십시다. 그래야 나로 말미암아 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온 세계가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세상이 되게 하십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망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은 그 일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일군들이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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