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후사(롬8:12-17)-2023.6.4
바울을 통해 로마서라는 서신서가 기록되기 전 이미 로마에는 교회가 세워지고 기독교가 신흥종교로서 태동을 하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복음이 로마에 어떤 경로로 들어갔는지는 확실히 모릅니다. 하지만 신앙이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았고 신학적인 배경이나 지식도 그만큼 부족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그들 중에 더러는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믿음을 바로 세워주기 위해 로마서를 기록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한번도 로마를 방문해 본 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바울이 직접 로마에 복음을 전한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로마에 가고 싶은 바울의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방문하여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고 피차 안위를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번번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교회에 바른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오직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것이지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받은 성도는 반드시 그리스도인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은 육신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만일 육신으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의 행실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강조합니다(13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면 가장 먼저 자신의 신분을 확인해야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믿음의 눈을 열어 보면 두 종류의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 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지요. 미안하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꽤나 있을 것입니다. 또 한 종류의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실을 바라보며 자기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둘 다 불쌍한 사람들이지요.
우리가 믿음생활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야 신분에 걸맞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자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배우 같은 삶을 사는 것이지요.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고 살아가면 마치 배우가 자기에게 맡겨진 배역을 위해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때로는 맞지도 않는 역할을 연출하면서 살아가야 할 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교회절기상 삼위일체주일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을 한 하나님으로 믿는 자들인 것이지요.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시원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계시해 주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고의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반박하는 자들도 있지만 성경의 깊은 뜻을 잘 모르는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성부 하나님이 나오시고, 성자 예수님이 나오시며, 성령 하나님이 나오십니다.
(1) 믿는 자는 하나님의 기업을 유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후사입니다
복음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후사입니다. 후사는 상속자라는 말이지요. 물론 후사라는 말보다 상속자라는 말이 우리 듣기에는 익숙할는지 모릅니다. 상속자는 아버지의 모든 가업을 이어받을 후계자입니다. 아버지가 일구어 놓으신 모든 유산의 후계자라는 말이지요. 영적 상속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후사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말이지요. 물론 하나님은 육신의 아버지처럼 죽음으로 유산을 상속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유업으로 누릴 수 있는 상속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땅의 모든 만물과 하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과 만유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업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기업의 혜택을 지금 우리가 살아서도 누리고 있고, 장차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가 영원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기업을 유업으로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들이거든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당연히 아버지의 소유를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누려야 할 하나님의 기업은 특징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장4절을 보면, 그 기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기업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간직해 놓으신 기업입니다. 그래서 그 기업은 세상 기업과는 전혀 다른 특징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썩지 않습니다. 더럽지 않습니다. 쇠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하늘의 기업은 세상 기업과는 그 본질과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지요.
때문에 하나님의 기업은 완전하고 완벽하며 영원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기업은 반드시 썩고 더럽혀지며 쇠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기업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산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것을 위하여 아등바등 목숨 걸고 싸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의 유산을 위하여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합니다. 영원토록 변질되지 아니하며 손상되지 아니하고 안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나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후사는 자기 스스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후사라면 후견인이 지정해야 합니다. 영적인 후사도 그렇습니다. 영적 후사는 하나님이 지명하십니다. 하나님의 후사로 지정을 받은 자라야 후사가 됩니다. 후사의 지명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적후사의 지명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라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나를 후사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법적으로 나를 당신의 후사로 지명해주신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후사로 지명하시면 아무도 취소할 수 없습니다. 사단도 하나님이 지명하신 후사를 취소할 수 없습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이 행사하신 후사 권한을 제한하거나 방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행사하신 후사 권한은 완전하고 막강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 권한을 축소하거나 제대로 사용하지를 못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후사된 자는 이 땅에서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후사답게 살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승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하나님의 후사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후사로 지명하시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은 아주 간단합니다. 오직 한 가지 기준만 보십니다. 그 한 가지 기준은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지의 여부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통해 세상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고 계셨습니다(요3:16). 그래서 당신의 품속에 있는 독생자를 우리 가운데 나타내신 것입니다(요1:18).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셨습니다(요1:14). 오직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세상을 구원할 자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요일5:12).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합니다. 미안하지만 하나님은 그 외에 다른 조건은 하나도 안 보십니다. 딱 한 가지 조건만 맞으면 됩니다. 당신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못한 자라면 당신은 절대 하나님의 후사가 될 수 없습니다.
비록 당신이 신앙의 연조가 오래됐을지라도, 혹은 교회를 통한 거룩한 직분이 당신에게 주어졌을지라도 말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후사임을 확신한다면 반드시 당신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입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지 않으면서 은근히 당신이 하나님의 후사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당신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합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문밖에서 당신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노크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그분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면 그분은 지체없이 당신에게로 들어와서 당신을 성전삼고 거하십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 순간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은 시간이나 공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마음을 열어 주님을 영접하시면 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롬10:10). 다만 그것도 당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구하고 찾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주도해주신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구원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요, 하나님의 후사되는 것도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생활하면서 자꾸만 속는 것이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것입니다. 믿음도 율법의 믿음이 있고, 복음의 믿음이 있습니다. 열심도 율법의 열심이 있고, 복음의 열심도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의 믿음과 율법의 열심을 복음으로 착각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향한 율법적인 열심을 갖고 있습니다. 특별한 열심을 가진 자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열심을 좋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제아무리 열심이 특심할지라도 율법적인 열심은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열심은 복음 안에 있는 열심입니다. 율법적인 열심은 자기 의를 드러내는 열심이거든요. 율법의 열심에는 하나님의 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오직 복음 안에만 있거든요. 율법안에 있는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대표적으로 사도 바울이 복음을 만나기 전 율법 안에서 열심을 내던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복음을 훼방하던 예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후사는 절대 율법아래 있는 자는 안됩니다. 율법은 우리를 종으로 다스립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종의 영을 부어주기 때문이지요. 종의 영은 무섭습니다. 율법은 한가지라도 지키지 못하면 무섭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후사는 양자의 영을 가진 자입니다. 양자의 영은 성령을 통해서 부어주시는 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후사는 종의 영을 가진 자는 안되고 반드시 양자의 영, 곧 아들의 영을 가진 자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종이 그 집안에서 열심히 부지런히 일할지라도 그 집을 이어갈 후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서도 확증하셨습니다. 창세기15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상속자 문제를 거론하십니다. 아브람은 자기 집에서 충성하던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후사로 점찍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절하십니다. 하나님이 지명하신 아브람의 상속자는 사라의 몸에서 날 자라는 것입니다. 하갈을 통해 태어날 이스마엘도 아니요, 그 집에서 충성한 종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명하신 상속자는 이삭이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영적인 상속자는 하나님이 지명하십니다. 그런데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이 당신의 후사로 지명하신 것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조건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때문이지요.
(2) 하나님의 후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후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은 전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후사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후사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이지요. 아무도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가 된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이요, 예수님의 은혜, 그분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머리로 두고 사셨습니다. 여자의 머리가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신 것처럼 말입니다. 머리를 두고 살았다는 것은 머리를 주인삼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머리로부터 공급하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살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들을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독생자이시지만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지요.
요한복음1장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자는 당연히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이지요. 이른바 예수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아들이면 당연히 후사입니다.
그래서 본문17절을 보면,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이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풀어보십시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후사라는 말은 후사의 신분을 말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라는 말은 자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후사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된 것이지요. 그러므로 당연히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지요(갈2:20).
그리스도와 함께 한 하나님의 후사라면 당연히 그리스도께서 당하셨던 고난을 함께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17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으니 당연히 그분이 당하셨던 고난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분은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받으실 영광은 어떤 영광이었을까요? 그리스도의 영광은 자기 스스로의 영광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영광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아버지의 영광만 바라보고 사셨습니다. 자기를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의 영광을 목표로 하여 사신 것이지요.
십자가는 예수님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영광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아버지의 영광을 목표로 사셨다면 그분의 자녀된 우리도 마땅히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고난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요, 후사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받는 것을 꺼려합니다. 자기 영광만 쫓아다니는 것이지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후사된 자로서 우리가 이래도 되는 것인지요? 우리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유업을 함께 물려받을 상속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영광스런 상속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가 당하셨던 고난에 참여해야 합니다. 고난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가 지셨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후사라고 말하면서도 받을 것만 계수하고 있습니다. 후사로서 받을 특권과 상급만 바라보고 가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있는 한 우리는 분명히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남겨놓으신 고난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내게 태운 십자가의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스스로 후사된 자는 없습니다. 자기의 능력이나 열심으로 후사된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복음으로 후사된 자라는 말이지요. 만일 복음으로 후사된 자가 아니라면 율법으로 후사된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아래 후사된 자라고 믿는 자라면 절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수 없는 후사입니다. 그는 자기 혼자 하나님의 후사라고 속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믿음 생활하면서 자기행위로 인하여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입니다. 항상 심령에 자유함이 없이 무섭고 두려운 것이지요.
그런데 교회 안에 그런 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일이지요. 미안하지만 복음 안에서 후사된 자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양자의 영을 가진 사람입니다. 종의 영을 받은 자는 절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종과 아들이 한 집안에 살지라도 아버지를 대하는 자세는 전혀 다릅니다. 아들은 자기 행동과 무관하게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종은 부르지 못합니다. 과연 누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당당하게 부를 수 있습니까? 성령을 통한 양자의 영을 가진 자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3) 내가 하나님의 후사된 것을 성령이 보증해주십니다
삼위 하나님은 한번도 독단적으로 사역하지 아니하십니다. 반드시 삼위 하나님은 공동으로 역사하시지요. 다만 영적질서를 위하여 주도적으로 일하시는 것을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무지한 사람들은 삼위 하나님을 자꾸만 분리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심지어 신학이 일천할 때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마저도 삼위 하나님을 이렇게 찢어버렸습니다. 구약은 성부시대요, 신약은 성자시대며, 지금은 성령시대라고 말입니다. 아닙니다. 절대 삼위 하나님은 찢어지지 않습니다. 삼위 하나님은 신비스러운 일체를 이루시고 항상 함께 계셨습니다.
바라옵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분리시키거나 해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삼위 하나님은 만세로부터 만세에 이르기까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우리 보기에 때로는 성부 하나님이, 때로는 성자 예수님이, 혹은 성령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사역하신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성부 하나님 안에 성자 예수님이 계시고, 성자 예수님 안에 성부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당연히 성령 하나님도 함께 계셨지요. 노골적으로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없는데 자꾸만 삼위일체 하나님을 주장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비록 당신들이 보기에는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없을지라도 삼위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양식이 성경전체에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짧은 시간에 성경을 확인하지는 않겠지만 대표적으로 오늘 본문이 삼위 하나님의 존재양식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요, 우리가 예수님의 후사가 된 것은 성령 하나님의 보증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 즉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된 것을 우리에게 보증해주십니다. 성령이 보증해주시지 아니하면 아무도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된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된 것도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은 오직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16절).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된 것을 확신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 때문이요,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라는 것을 믿는 것도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보내신 영이십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믿고 누리게 하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라면 반드시 성령의 임재하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자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4절).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는 양자의 영을 받은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양자로 번역된 ‘휘오데시아’는 어떤 자녀를 자신의 자녀로 입양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법률적인 언어입니다. 양자 삼는 것은 주후 1세기 로마인들에게는 상당히 친숙한 단어였지요. 그래서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친숙한 이 단어를 의도적으로 차용한 것입니다. 양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책임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양자로 입양된 자는 아버지로부터 친 아들과 다름없는 사랑과 권리를 보장받은 것입니다.
사실 양자라는 단어는 유산상속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요. 바울은 이 양자됨의 원리를 통해 복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복음으로 풀어주는 것이지요. 우리가 한 가정의 구성원이 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연적인 출생을 통해 그 가정의 구성원이 되는 방법이 있고, 법적인 수속을 받아 가정의 구성원이 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구성원이 되면 법적 신분보장은 물론이거니와 가족의 특권과 권리를 보장받게 됩니다. 자연적인 출생을 통한 가족이나 법적인 입양을 통해 가족의 일원이 되든지 동일한 신분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양자됨의 원리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도 영적으로는 양자됨의 원리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원래 이방인인 우리도 그리스도밖에 있던 외인이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단의 자녀들이었지요. 에베소서2장11절의 말씀을 빌리면, 그 때 우리는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던 자들이었지요(엡2:11). 심지어 그리스도밖에 있던 사람들이요,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습니다.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었고, 세상에서는 소망이 없는 자요, 하나님도 없던 자들이었지요(엡2:12).
그런데 이제는 멀리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 것입니다(엡2:13).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를 중매시켜 주신 것이지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께 중매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외인도 아닙니다. 손도 아닙니다.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된 것입니다(엡2:19절).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양자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령이 친히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본문 15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다. “너희가 다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됨은 성령의 역사로 된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양자의 영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성령께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되었음을 인식시켜 주신 것이지요. 성령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의 영입니다. 갈라디아서4장6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양자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양자의 영이 하나님의 아들의 영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증거하기 위해 우리 가운데 보내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양자의 영이신 성령께서 친히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양자의 영이신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절대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육신의 깨달음을 통해서는 결코 내가 하나님의 자녀됨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내안에 임하시어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지요. 성령 안에서 역사하시는 양자의 영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 한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됨을 인식하고 살아감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삼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이지요. 내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이 삼위 하나님이 이루신 합작품이요, 또한 내가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을 아는 것도 삼위 하나님이 나를 향해 이루신 합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삼위로 계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삼위일체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