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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시50:22-23)-2023.10.29

작성자최규진|작성시간23.10.28|조회수383 목록 댓글 0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시50:22-23)-2023.10.29

 

본 시편은 아삽의 시이다. 내용은 참된 예배의 본질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그동안 외부적인 의식만 강조하며 잘못된 제사를 드리고 있던 이스라엘을 향한 책망이다. 이른바 유대인들의 형식적인 예배를 질타하는 것이다(7-15절). 당시 이스라엘은 성전에 올라가서 제물을 드리는 자체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속칭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제사에 함몰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삽은 외식적인 가면을 벗어버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율법주의 내지는 형식주의는 내적 성결함을 잃어버리게 하는 무서운 범죄이기 때문이다.

 

아삽은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밝힌다. 하나님은 세 가지로 소개한다. 전능하신 자요, 여호와이시며,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공의를 선포하시는 심판장으로 소개한다(6절). 그리고 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호출하신다(1절). 그것도 동서남북에 걸친 자기 백성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책망하신다(7-15절). 물론 그들은 종교적인 외식에 대해서는 책망 받을 것이 없었다(8절). 그만큼 외적인 형식에는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적 진실함이 없었다(9-14절).

 

하나님은 제물보다 제물을 드리는 자의 마음을 중시하시기 때문이다. 영적인 것이 결여된 화려한 외적제사는 오히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삽은 이스라엘에게 올바른 제사법을 제시한다(14-15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반드시 감사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사는 제사의 핵심이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갖고 있던 잘못된 제사관념(예배관념)을 바꾸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잘못된 관념을 바꾸는 것은 모든 제물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의식이다(10-12절).

 

그런데 우리는 내 것인 것처럼 생색을 내고 인색하게 드려왔다. 그래서 억지로 드리든지, 혹은 세금을 추징당한 것처럼 마지못해 드려왔는지 모른다. 과연 우리가 금년 10개월을 지나면서 어떻게 드렸을까? 오늘이 10월의 마지막 주일이다. 금년도 벌써 10개월이 지났다. 다음 주일은 우리가 추수감사주일로 드린다. 어쩌면 금년 한해를 결산하는 주일이다. 알다시피 추수감사절은 추수한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가 아닌가? 그러기에 금년 한 해 농사를 결산하는 절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추수감사절은 유대인의 절기로 말하면 수장절에 가깝다(출3:16). 수장절은 추수한 알곡을 창고에 거두어드리는 절기이다. 과연 하나님의 창고에 거두어들일 열매는 얼마나 될까? 물론 금년에 차곡차곡 알곡을 저장해 놓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크기로 말하면, 어떤 이는 소쿠리에 담아서 저장한 사람도 있을 것이요, 어떤 이는 큰 수레에 실어서 저장해 놓은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종이컵도 안되는 분량을 담아 드린 자도 있을 것이요, 어떤 이는 아예 드린 것이 전혀 없는 자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금년에 내가 하나님의 창고에 거두어드린 열매가 얼마나 될까요? 이번 추수감사절을 통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1) 하나님과 제사로 언약한 성도(5)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성도라고 부른다. 거룩한 무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를 성도로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성도로 부르신 것이다(1절). 그러면 성도는 어떤 사람들인가? 성도는 하나님과 제사로 언약한 자이다(5절). 제사로 언약했다는 말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언약한 것이라기보다는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존재라는 말이다. 죄악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인간은 제사라는 절차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절대 제사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이른바 제사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제사에 목적을 두었다. 아니다.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오늘날도 상당수의 성도들이 예배자체에 목적을 둔다. 안된다.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목적이 되지 않는 제사, 예배는 다 헛것이다. 아삽은 그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라는 제도를 통하여 당신을 만나는 방법을 제시하셨다. 그래서 제사제도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물론 신약시대의 예배도 마찬가지다. 너무 혁신적인 사람들은 이 부분을 오해한다. 그래서 예배자체를 가벼이 여기는 자들이 많다. 이른바 제사를 말이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라.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가장 먼저 제단을 쌓았다. 제사를 드렸다는 말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랬고, 이삭이 그랬으며, 야곱이 그랬다. 물론 아브라함 전에 살았던 위인들이나 후에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은 마찬가지였다.

 

절대 아삽은 제사 자체를 혐오하거나 제사제도 자체를 책망하는 것이 아니다. 제사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마련하신 제사제도를 감히 누가 책망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그럴 수 없다. 다만 그 제사제도를 믿음으로 오해하거나 악용하는 자들을 책망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방해하고 믿음의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반드시 잘못된 제사제도는 철폐 당함이 마땅하며 바른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그것은 오늘날 예배도 마찬가지다.

 

기억하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예배가 아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자를 찾으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제사자를 찾으시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성도로 부르신 목적을 알 수 있다. 무엇인가? 답은 본문14절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른바 우리를 성도로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다. 제사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사에 있다. 감사로 드리는 제사를 원하신다는 말이다. 그 일을 위하야 성도로 부르신 것이다.

 

(2) 감사로 드리는 제사

 

제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가? 감사다. 제사의 생명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도 감사다. 감사가 없는 제사는 무효다. 헛것이다. 미가 선지자의 외침을 들어보라(미6:6-7).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위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하나님은 감사 없는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다. 그것은 뇌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계적으로 드리는 어떤 제사도 사양하신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는 외친다. 너희가 눈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고 말이다. 이런 것은 마치 생활 쓰레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그런 제사는 드리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오죽하시면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겠는가? 얼마나 하나님이 괴로우셨으면 그런 표현을 쓰시겠는가?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다양한 종류의 예배를 생각해보자.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얼마나 될는지 말이다. 수없이 드려지는 많은 예배 가운데 진짜 하나님이 기쁨으로 받으시는 예배가 과연 몇 번이나 되었을까요? 아니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참으로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리고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물론 구약 시편의 언어로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그래서 성도는 제사를 중요하게 여긴다. 물론 예배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제사의 생명은 무엇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분명한 것은 제물에 있지 않다. 제물을 드리는 헌제자에게 있는 것이다. 이른바 제주에게 있다는 말이다. 물론 전혀 제물이 상관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른 제사에 대하여 좀 더 성경적으로 말씀드리면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이른바 제사를 드리는 헌제자의 믿음과 제사를 집례해주는 제사장의 믿음, 그리고 정결한 제물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중에 하나라도 합력하지 아니하면 그 제사는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지극히 당연한 논리다. 제사는 아무나 드릴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집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제사를 드려주는 전문가가 존재한다. 제사장이다. 그리고 제물은 헌제자의 몫이다. 하나님은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이 될 때 그 제사를 열납하신다. 만일 어느 것 하나라도 부정하면 당연히 그 제사는 받지 아니하신다. 그 제사는 열납지 아니하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이 드리는 대부분의 제사는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되지 못했다. 그것의 일차적인 책임은 제물이 아니었다. 제사장과 제사를 드리는 헌제자에게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은 제물은 만족할만한 것으로 드렸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8절에서 너의 제물을 인하여서는 너를 책망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제사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라는 말씀으로 볼 때 끊임없는 제사행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좋은 제물을 가지고 수없이 많은 제사를 드렸을지라도 제사를 드리는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과 상관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책망을 피할 수 없었다. 아삽은 그런 자들을 향해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이라고 한다(22절).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무시했다는 말이다. 우리도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제사를 드리면서도 책망을 받았다. 그렇다면 충분히 우리도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이라고 말이다.

 

(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23)

 

그러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는 어떤 사람일까? 본문 23절을 찾아보자. 그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요, 자기 행위를 옳게 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물론 이것은 그들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을 그렇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이 그런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함이 옳다. 그러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베푸시는 것일까?

 

먼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하신다. 소요리문답 제1문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지의 여부는 감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감사는 믿음의 시작이요, 마지막이다. 감사는 믿음의 열매요, 믿음의 전부이다.

 

감사가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감사가 풍성한 자는 믿음이 충만한 자다. 그런데 반대로 감사가 풍성치 않는 자는 믿음이 초라하거나 빈약한 사람이다. 지금 당신의 믿음의 건강상태를 감사로 측정해 볼 수 있다. 감사는 분명히 당신의 건강을 정확하게 체크해 줄 것이다. 솔직히 당신이 기도생활을 많이 하는 사람일지라도 감사가 없으면 당신은 속고 있는지 모른다. 혹은 당신이 예배생활을 충분히 하는 자일지라도 감사가 없다면 역시 당신은 종교인으로 당신이 속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뜻이다. 말로는 쉽지만 결코 쉽지 않다. 더욱 위험한 것은 감사가 풍성할지라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사는 것이 항상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감사도 믿음 안에서 나오는 감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감사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일치되려면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되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절대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믿음과 감사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질 때 자동적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 그의 행위를 옳은 데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아무도 자기 스스로는 자기 행위를 옳게 할 수 없다. 아무리 우리가 똑바로 걷고 싶지만 내 마음대로 되던가요? 할 수 없다. 그래서 자기 행위를 옳게 하시는 분이 필요하다. 그분이 바로 전능하신 자요, 나를 성도로 부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성도로 부르시어 나로 하여금 옳은 데로 인도하신다. 이른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신다는 말이다. 많은 성도들이 믿음과 삶이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방인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 믿음과 삶이 일치되려면 반드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이른바 믿음이 하나님께서 나오는 믿음이어야 하고, 삶이 그 믿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옳은 데로 이끌어 가신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로 옳은 데로 이끄심을 받은 자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다. 그런 자를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추어주시겠다고 다니엘서는 말씀하신다(단12:3).

 

그리고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복된 은혜는 하나님이 자기 구원을 나타내신다는 것이다. 자기 구원을 드러내신다는 말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구원을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에게 베풀어주신다. 물론 구원받은 자이기 때문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일 것이다. 같은 말 같지만 분명히 다른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착각하면 안된다. 누군가 감사로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이기 때문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라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는 분명히 자기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져도 무방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자기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감사로 제사를 드림이 마땅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만 구원받은 자라고 생각하면서도 감사가 없는 자라면 자기 구원을 정직하게 다시 원점에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혹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지 못한다면 이 역시 심각하게 자기 구원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두말 할 것이 없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라면 반드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여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결코 잊지 말자.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분별은 믿음을 통해 가능하다. 그리고 믿음에 대한 분별은 감사를 통해 가능하다. 그만큼 감사는 영적인 온도계요, 약방의 감초와 같다. 지금 내안에 감사의 온도계가 어느 정도인지 체크해 보자. 만일 감사의 온도계가 바닥을 치고 있다면 지금 끌어올리라. 그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당신 안에 있는 감사의 게이지가 올라갈 것이다. 감사의 게이지가 올라간 것만큼 당신은 하나님과 가까워질 것이다.

 

다음 주일은 매년 우리 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이다. 굳이 추수감사라는 말에 집착하지 말고 감사라는 말에 중점을 두었으면 한다. 혹시 잘난 사람들이 추수감사절이라는 말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비난할지 모르지만 그것에 더 이상 괘념치 말자. 만일 우리가 매주 52주를 감사주일로 지킨들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나는 매년 추수감사절이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감사를 다시 한번 생각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자기 생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챙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육신의 생일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말이다. 당신은 당신의 생일을 최소한 일년에 한번은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축하를 받을 것이다. 내가 태어난 생일을 기억함으로 인하여 나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지 않는가?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생일을 기억하고 챙기는지 모른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을 통해 그동안 잊어버린 내 감사를 회복하는 절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잃어버린 감사라면 반드시 되찾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이번 추수감사주일이 기다려진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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