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나심(마1:18-25)-2023.12.24
성탄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보내심을 받은 날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온 인류가 기쁨으로 맞이하는 최고의 축제일입니다. 다만 그날과 그 시는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감추어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알려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탄은 예수님이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찾아오신 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시기 전,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말씀으로 계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요한복음1장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증언하십니다.
그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보내심을 받은 것이지요.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품속에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영원 전부터 계셨습니다. 그 독생자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나타내신 것이지요. 하나님이 독생자를 우리 가운데 보내심은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세상을 사단이 자기들의 놀이터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이유는 세상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 놓으신 인간이 사단의 꾐에 빠져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은 더 이상 하나님의 동산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더 이상 세상을 사단의 놀이터로 방치하실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다시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형대로 복원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이지요. 창조의 원형대로 복구하기를 원하셨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심혈을 기울이셔서 만드신 최고의 걸작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만큼 세상은 하나님 사랑의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항상 세상을 향하고 있었고, 세상을 구원할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계획이라 함은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으로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우주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당신의 형상을 입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세운 공간일 뿐입니다. 세상이라는 우주적인 공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들을 위하여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주적인 공간, 세상이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우주적 공간이라는 세상의 타락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인 것이지요. 그래서 로마서8장19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피조물들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말입니다. 우주적 공간을 이루고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학수고대하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말입니다. 왜냐면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들이 악의 지배아래 놓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들이 제발 인간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신분으로 회복되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자신들도 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목적대로 회복된다는 말입니다. 비록 말 못하는 피조물들이라도 고대하는 바가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기 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소망이 깨어진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들은 인간이 본래 자리로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리로 돌아올 때 모든 피조물들도 역시 자신들의 본연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모든 피조물들의 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말은 세상을 관리하는 인간들을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당신이 만드신 최고의 걸작품인 인간을 사랑하셨다는 말이지요. 결국 세상을 사랑하셨다함은 인간을 사랑하셨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할 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시기 위하여 말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한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아니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재가를 받아 사셨던 것이지요.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하여 죽으심과 부활과 모든 일정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사신 것이지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고, 그렇게 사셨으며,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렸던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삶에는 자기가 없었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1) 예수는 여인의 후손으로 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이미 작정되어 있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예수님의 나심에 대하여 창세기3장15절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남자의 후손으로 태어납니다. 모든 인간은 남자와 여자의 성적결합으로 인하여 탄생하는 것이지요. 남자의 씨를 받지 않고 태어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생명도 남자의 씨를 받지 아니하면 태어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남자의 씨입니다. 남자의 씨는 아담의 죄를 유전 받은 씨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죄의 씨를 받아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때문에 성경은 인간에 대하여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라고 선포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이 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거예요. 모태로부터 죄 중에 잉태하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 이후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닙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다릅니다. 아담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 남자의 후손과 상관없이 태어난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말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와는 상관없이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여자의 후손은 남자의 생식적인 기능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고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태어난 것이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죄와는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은 남자의 성정을 통하지 아니하고 성령으로 나신 분이십니다. 마리아라는 여자의 후손을 통해 탄생하신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조건 마리아가 여자 후손의 대명사라는 말은 아닙니다. 마리아도 남자의 후손으로 태어난 여자입니다.
다만 예수님을 잉태할 당시 마리아가 여자의 후손 상태였다는 것이지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마리아도 남자의 후손으로 태어난 여자입니다. 마리아도 여전히 죄의 씨를 받아 태어난 사람이요, 죄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말이지요. 절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한 가지 조건 때문에 그동안 남자의 후손으로 태어나고 자랐던 모든 죄가 사라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신성시하거나 숭배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마리아가 은총을 입은 여자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은총을 입었다는 사실로 모든 죄가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은총을 입혀주신 분이 계십니다. 오직 은총을 입혀주시는 분, 그분만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은총을 입혀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하나님만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 하나님의 순결하고 정결한 그릇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그녀 안에 있는 원죄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사하심을 받아 없어졌을지라도 처음부터 그녀 안에 원죄가 없었다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할 당시 마리아는 여자의 후손의 상태였습니다. 요셉이라는 남자와 정혼은 했지만 동거하기 전이었기 때문이지요(18절). 한마디로 요셉이라는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갖지 아니했던 동정녀였던 것입니다. 순수한 우리말로 하면 남자를 전혀 알지 모르는 숫처녀였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임신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임신을 했습니다. 잉태한 것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마리아의 임신은 남자의 씨를 공급받아 잉태한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한 잉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생명을 마리아의 배에 넣어주신 것이지요.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성령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비록 마리아는 남자의 후손이었지만, 예수님을 잉태할 당시 여자의 후손으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편이 되었던 것이지요. 비록 죄인이었지만 의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지요.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마리아의 어떤 수고나 공로가 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것입니다.
(2) 예수는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로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는 이름이요, 그리스도는 관직명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히브리식 이름으로는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성경전체는 예수의 이름이 흐르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구원입니다. 때문에 성경에는 구원사상이 흐르고 있는 것이지요. 신구약 전체에서 말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을 기록한 책이고, 신약은 오신 예수님을 기록한 책이지요. 그래서 구속사상을 빼놓고는 성경을 설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스토리나 모든 인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빼어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성경에서 구속경륜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일반 종교의 경전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지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심은 세상을 구원하심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원하시려는 것이지요.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편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처럼 말입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로 삼으신다는 것이지요.
다만 우리가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이 모든 백성을 구원하는 이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 이름은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의 이름입니다. 자기 백성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할 의무는 없습니다. 물론 자기 백성이라도 예수님이 반드시 구원하셔야 할 책임이나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전적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시겠다는 증표인 것이지요. 예수의 이름은 하나님 사랑의 완전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이요, 하나님이 주신 이름이요, 구원의 이름입니다. 사도행전4장12절에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온 천하에 예수 이름 외에는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의 이름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면 자기 백성에 방점을 찍은 이름인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 이름으로 아무나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자기 백성, 즉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만 구원하시는 이름인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지구촌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을 의무적으로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을 받기로 작정된 자만 믿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1차전도 여행을 하다가 경험한 것을 고백합니다. 사도행전13장48절입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만 믿더라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뜻이 이루어진 것을 정확하게 경험한 것이지요.
그래서 주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자는 먼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하심을 입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신 것이지요. 엄밀하게 따져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을 알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작정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라는 법적 신분의 구속력이 발생한 것이지요. 그리고 성령의 인치심과 함께 자기 확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 이름은 구원을 완성하는 이름인 것이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을 보면 참으로 신묘막측합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아무리 주의 이름을 외쳐도 애써 외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와 상관없이 옆 사람에게 전하는 복음을 듣고서 주님 앞으로 나오는 자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택과 유기의 결정적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을 받은 사람은 주의 이름을 듣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됩니다. 사실 그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옷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지요(골1:15). 사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분입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려면 육신을 입어야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영이심으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본 자는 없습니다(요일4:12). 하나님을 볼 자도 없습니다(딤전6:16). 하나님을 본 자는 죽습니다(출33:20). 물론 육신의 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부정한 인간은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을 입고 오신 결정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은 죽음을 전제한 것입니다. 죽음을 전제함은 죽으러 오셨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죽으러 오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는 것은 죄의 삯을 지불해야 합니다.
실제로 주님은 친히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이른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결정적 목적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오심으로 임마누엘이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척 다양합니다. 실제로 성경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다양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잃은 자를 찾으려고 오신 예수, 죄인을 부르려고, 영생을 얻으려고, 불을 던지려고, 검을 주려고, 섬기려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려고,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오신 예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뜻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살고자함입니다. 이른바 임마누엘이지요.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사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연합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지요. 그 신비로운 연합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를 우리 가운데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예수 안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요10:30).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의미요,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 안에 나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 안에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래서 요한일서5장12절은 말씀하십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러 오신 분이십니다. 실제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지요. 무엇보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임마누엘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이지요.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함은 하나님이 내주하시는 처소가 되었다는 말이요, 천국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안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왕이 되고, 주가 되며, 전부가 되어 머리되시는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마음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산다는 것입니다(요10:27). 이른바 복음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모른 채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복음을 모르는 성탄은 이방인들이 즐기는 성탄절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믿는 자는 성탄을 찬양하지만, 이방인들은 성탄절을 즐깁니다. 성탄의 의미를 모른 체 성탄절의 분위기와 문화를 즐기는 것이지요. 성탄을 모르는 성탄절은 의미가 없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육체를 입고 나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요, 그분이 탄생하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성탄을 알려면 예수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알아야 복음을 압니다. 그래서 성탄은 복음인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성탄절이 복음을 이루는 거룩한 성탄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