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목하시는 한 사람(행8:26-40)-2025.3.2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주목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디서나 자기를 부각시켜 돋보이게 하지요. 실제로 주목 받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주목받는 것은 존재감을 인정받는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목받는다는 것은 시선이 머무는 것이요, 마음이 집중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른바 돌아봄이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주목받는 것은 거리상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머무는 것은 주목받고 있다는 증거이거든요. 사람들은 자기의 관심사가 아니면 주목하지 않습니다.
혹시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를 아십니까? 대중들로부터 잊혀지는 것이 가장 두렵답니다. 비록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지라도 언젠가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폭음하는 연예인들이나 마약에 손을 대는 연예인들이 많습니다.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인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져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선도가 떨어지면 주목도가 떨어지거든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로부터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 주목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사람이나 세상으로부터 주목받으려 하지 말고 한번 주목하시면 영원히 주목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목받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한번 주목하시면 결코 당신의 주목을 취소하지 아니하니하시거든요.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시선으로부터 회피할 뿐이요, 하나님의 시야로부터 벗어나려 할 뿐이지요. 우리가 이 부분에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목하여 부르시고, 주목하여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목하심과 주목하심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목하심은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부르심입니다(사43:1). 그리고 지목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를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주목하십니다.
주목하심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돌아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분이시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의 주목하심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성경 구절은 민수기서6장25-26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내게 비추사 은혜베푸시기를 원하시며, 여호와는 그 얼글을 내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는 시편34편15절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이 당신의 시선을 고정하시고 당신의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목하심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요, 축복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자녀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자여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주목을 받으려면 하나님으로부터 발견되어져야 합니다(빌3:9). 하나님으로부터 발견됨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로 인하여 그를 주목하실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주목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 사람을 주목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역사는 한 사람을 주목하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한 사람 아담을 주목하심으로 시작된 인류 역사는 지금도 한 사람을 주목하사 세상을 경영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주목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목을 받으면 하나님은 당신의 시선을 외면치 아니하십니다. 끝까지 주목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의 시선을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께 시선을 외면하지 않는 이상 당신의 시선을 절대 외면치 아니하십니다. 끝까지 우리를 주목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아무나 주목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주목하시는 이유는 우리 안에 남다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를 주목하십니다. 예수 때문에 우리를 주목하신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 당신의 모든 마음과 시선을 집중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을 주목하십니다. 예수님을 모신 자를 주목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잘난 것이나 똑똑한 것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화려하고 예쁜 것을 주목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 있는 자를 주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자인지의 여부를 분별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지의 여부를 아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을 주와 왕으로, 전부로 모시고 사는 자는 마땅히 하나님의 주목을 받고 사는 자입니다. 다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목하심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일지 모릅니다.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자기 안에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스도로 모시고 살지 못한다는 불신앙의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믿는 자는 항상 하나님의 주목을 받고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주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주목하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주목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주목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주목하시어 당신의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은 하나님으로부터 지목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먼저 지목하시고 끝까지 주목하십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지목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는 것이고, 주목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보심을 받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주목하심이 없으면 위험합니다. 하나님이 주목하셔야 안전합니다. 하나님이 주목하시면 행복합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주목을 받는 자들이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무조건 주목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목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지구촌에 80억이 넘는 인류가 살고 있다지만 하나님이 80억을 동일하게 주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기로 작정하신 자에게 주목하신다는 표현이 옳습니다. 당신의 자녀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먼저 주목하신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17장에 나오는 열 명의 문둥병자를 보십시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의 은혜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목하시는 문둥병자는 한 명뿐이었습니다. 아홉 명의 문둥병자는 고침을 받고 예수님의 시선에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 명의 문둥병자는 예수님께 엎드리어 사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당연히 주님은 사마리아 문둥병자를 주목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러자 둘 다 예수님 맞이할 준비에 바빴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대접할 음식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합니다. 아마도 다과를 준비하느라고 바빴을 테지요. 마리아도 바빴습니다. 그녀는 예수님 앞에 예배 상을 준비하고 말씀을 들으려는데 바빴던 것입니다. 물론 둘 다 예수님을 대접하려는 사랑과 정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우리가 조심할 것은 마르다와 마리아 중에서 누가 더 믿음이 좋다거나 혹은 나쁘다는 관점으로 비교하면 안됩니다. 물론 믿음의 우선순위로 접근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여인 중에서 예수님은 마리아를 주목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투정하는 마르다를 향해 예수님은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두둔해 주십니다. 비록 혼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있고, 주목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마가복음 12장에 나오는 과부는 아무도 모르게 두 렙돈을 연보 궤에 넣었습니다. 부자들은 많이 넣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중에서 과부의 두 렙돈을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먼저 나를 주목하심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같이 넓은 공간에서 티끌보다 더 연약한 나를 지목하사 주목하셨습니다. 나를 지명하여 부르신 것이지요. 그리고 나를 지속적으로 주목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만 우리를 주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 마귀도 우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먹잇감을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이 주목하는 사람은 허무한 것에 주목하는 사람입니다(잠23:5). 그래서 사람은 누구에게 주목받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에게 주목받기보다는 하나님께 주목받아야 행복합니다. 마귀에게 주목받으면 큰일납니다. 깡패에게 주목받으면 깡패가 될 확률이 많고, 도박꾼에게 주목을 받으면 도박꾼이 될 확률이 많습니다. 마약꾼에게 주목을 받으면 마약꾼이 될 확률이 많고, 이성에게 주목을 받으면 성적으로 타락할 확률이 많습니다. 가끔씩 TV에서 스포츠 중계를 보다 보면 클로우즈업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촬영기사가 주목받을 만한 장면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께 주목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자를 주목하실까요?
(2) 하나님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사람
강의할 때나 설교할 때 유난히 강의나 설교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강사나 설교자는 당연히 그런 자를 주목합니다. 우리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고 말합니다. 물론 성경에 있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 말의 의미는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말입니다. 게으름을 피우며 잠자는 사람을 도우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깨어 경성하는 자를 도우신다는 말이지요. 이 말에서 스스로 돕는 자는 누구를 스스로 도울 것이냐는 것입니다.
만일 자기를 돕는 자라는 의미라면 열심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일 것이요, 하나님을 돕는 자라는 의미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을 의미할 것입니다. 혹자는 이 경구를 비성경적이라는 말로 폄하하기도 합니다. 성경의 정서와 맞지 않다는 말이지요. 우리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주목하신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주목하는 사람을 주목하신다는 말이지요.
믿음 생활을 해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자가 있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주목하실까요? 하나님은 당신을 주목하는 사람을 주목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주목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께 자기 시선을 고정하고, 자기 마음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오직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목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산만합니다. 영적인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세상 것에 두리번거린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려도 시선이 산만한 자들이 많습니다. 마음이 분요한 자들도 있습니다. 몸은 예배드리는 자리에 있으나 마음은 딴 곳에 있는 자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주목하지 않는 자들이지요. 당연히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주목하실 리가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주목하는 사람을 주목하십니다.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성경의 흐름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하나님을 주목하는 일에 전심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뭔가를 주목한다는 것은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주목하지 않습니다. 또한 주목한다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을 주목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주목하지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주목은 관심으로부터 시작되나 사랑으로 지속됩니다. 그래서 주목은 열정이 필요합니다. 화초를 좋아하는 사람은 앉으나 서나 화초 생각뿐입니다. 일어나자마자 화초에게 인사하고 잠들기 전에도 화초에게 인사하고 잠을 청합니다. 화초만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다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주목하는 사람은 주목하는 대상에 대해 진지합니다. 초원에서 먹잇감을 사냥하는 맹수들을 보십시오. 먹잇감이 포착되면 얼마나 진지합니까? 숨이 막힐 정도로 진지합니다. 그것이 주목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수업할 때 선생님을 주목하는 학생들을 보십시오.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수업에 지장 받을까 봐 숨을 죽이듯이 진지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자들을 보고 가르칩니다. 설교하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놓칠까 봐 숨을 죽이듯이 집중하는 영혼들로 인하여 힘을 얻어 말씀을 전합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주목’이라는 단어입니다. 선생님이 ‘주목’이라고 외치면 산만하던 학생들이 선생님께 집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주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자를 주목하실까요?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사람은 얼굴이 예쁜 사람이 아니요,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며, 일을 잘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기도를 잘하는 사람이나, 성경을 남다르게 많이 보고 아는 사람도 아닙니다. 착하고 정직한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시선과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주목하는 사람을 주목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주목하지 않은 채 얼마든지 성경을 많이 읽을 수 있고, 기도도 많이 할 수 있고, 찬송도 열정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착한 종교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주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주목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주목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자기 마음을 두고 시선을 고정하는 사람입니다. 이른바 예수안에 있는 자를 주목하신다는 말입니다. 만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안 계신다면 하나님은 결코 나를 주목하시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한 사람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빌립입니다. 그는 초대 예루살렘교회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가해집니다. 그러자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믿는 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집니다. 흩어진 자들을 통해서 사도행전1장8절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지요. 그중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빌립입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전도의 풍성한 열매가 맺혔습니다(행8:6-13).
그런데 어느 날 주의 사자가 빌립을 찾았습니다. 빌립을 향해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하십니다. 그 길은 광야입니다(26절). 가사는 예루살렘 서남쪽 70KM 떨어진 지중해 연안이지요. 나름대로 전도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는 빌립에게 하나님이 색다른 미션을 주신 것입니다. 이유는 빌립이 최선을 다해 복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빌립을 하나님이 주목하고 계셨던 것이지요. 누구보다 복음의 뜨거운 열정을 가진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했습니다. 일어나 가서 보니 하나님이 그곳에 또 한 사람을 주목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를 가진 내시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에디오피아 왕실의 보물이나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는 고급관료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빌립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그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지요. 그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아마도 복음을 정확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예배만 드리고 자기 고국으로 가던 참이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은 그 영혼을 주목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왜 그 내시를 주목하시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는 먼 나라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러 예루살렘으로 찾아온 사람입니다.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어림잡아 1,500KM가 넘는 거리입니다.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는 당시 여건으로 볼 때 엄청난 거리이지요. 병거를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봐서 왕복 한 달 정도는 소요되었을 것입니다. 그 먼 거리를 예배드리기 위해 찾아온 것이지요.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그런 자를 어찌 주목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복음의 열정을 가진 빌립을 주목하셨고, 복음을 간절히 사모하는 내시를 주목하신 것입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사람은 복음과 관계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복음이 필요한 영혼을 주목하신다는 것이지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사람은 복음 안에 있는 자요, 장차 복음 안에 들어올 자입니다. 모두 다 복음을 위해 준비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미 복음 안에 들어온 빌립을 주목하셨고, 장차 복음이 필요한 에디오피아 여왕 내시를 주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것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사람이 있는 곳을 주목하십니다. 내시가 있는 곳은 광야였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이든지 성전이든지 하나님의 주목받는 사람이 머문 곳을 주목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이 보편적으로 주목하시는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주목하시나 그중에서도 이스라엘을 주목하십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예루살렘을 주목하십니다. 예루살렘 가운데 성전을 주목하시고, 성전에서도 지성소를 주목하시며, 지성소에서도 법궤를 주목하십니다. 법궤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곳은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있는 성전을 주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주목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자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성전에 내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왕상9:3). 물론 보이는 성전을 말씀하신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장차 성령을 통해서 세워질 보이지 않는 성전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주목하신다는 말씀은 성전에 있는 자를 주목하신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른바 성전된 자를 주목하신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곳을 주목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현장을 주목하십니다. 다니엘의 사자굴이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들어간 풀무불 속을 주목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고난받는 욥의 현장을 주목하셨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던 다윗의 은신처를 주목하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원수들과 싸우는 현장을 주목하십니다. 때로 우리가 숨으려고 발버둥을 쳐도 하나님은 그를 주목하사 하나님이 주목하는 현장으로 가게 하십니다. 요나를 보십시오. 니느웨는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현장이나 다시스는 요나가 주목하는 현장입니다. 다시스로 도망하는 요나를 주목하사 니느웨로 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주목받는 사람이 주목받는 곳에 있지 않으면 주목받는 곳으로 가게 하십니다. 가끔 하나님의 주목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목받는 곳을 떠나려고 합니다. 믿음의 사각지대를 찾아 도망하지요. 그러나 그를 주목하시는 하나님의 레이더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추격하사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현장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주목을 받고 사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주목하고 계십니다.
다만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현장이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른바 예배당만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현장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예배하는 자리만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현장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곳은 하나님이 주목을 받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나는 모든 비행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큰 틀에서는 하나님이 주목하고 계시는 것은 맞습니다. 하나님의 주목받는 곳에서 제외되는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상태의 보편적인 주목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쉽게 말해 비행기를 타고 외국 여행을 갈지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타고 있는 비행기를 하나님이 주목하신다는 말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주목하시되 어떤 목적으로 주목하시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주목하시되 위험해서 주목하시는 자가 있고,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주목하시는 자도 있습니다. 마땅히 그런 장소도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믿는 자는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곳에 있어야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곳을 주목하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당신의 길을 가는 자를 주목하십니다. 당신의 길을 가는 자는 당신의 뜻을 좇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욥기서34장21절은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22절에 ‘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큰 틀에서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길을 주목하십니다. 하나님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속일 자도 없고, 속일 장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정확히 감찰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십니다(욥34:23).
그러나 믿음의 눈을 열어보면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된 자가 가는 길을 특별히 주목하십니다. 혹시라도 딴 길로 가지 않을까, 혹은 곁길로 새지 않을까, 아니면 악한 길로 가지 않을까 염려돼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는 길을 주목하사 서치라이트를 비추듯이 대낮처럼 환하게 인도하십니다. 낮에 해처럼 밤엔 달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목받는 인생이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주목하시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다가 봉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나의 가는 길을 주목하시면 안전합니다. 그리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주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나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비록 내가 어디 있든지 말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주목하셨던 이유는 아프리카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사도행전16장에서 바울에게 마게도냐의 사람 하나를 주목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를 통해 유럽으로 복음을 수출하는 통로로 사용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목하는 분명한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께 주목받는 자들이 되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