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받는 성도의 삶(시144:12-15)-2012.11.4
사람마다 복에 대한 정의와 개념이 다르고 기준이 다릅니다. 그래서 개인에 따라서 무엇이나 한가지가 복이라고 설명해도 틀리지 않으며, 모든 것을 복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한가지 받은 복을 가지고 일생의 복으로 여기며 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을 불평하며 복을 달라고 징징거립니다.
그래서 제가 결론적으로 느낀 복에 대한 정의는 어떤 조건이나 소유가 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받아드리는 감정이 복이요, 느낌이 복이며, 누림이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복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있고, 아무리 큰 것도, 아무리 많은 것도 복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추상적인 설명 같습니까?
사람에 따라서는 자기 통장에 들어있는 백만원의 돈을 큰 돈이라고 생각하여 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어떤이는 거지의 푼돈보다 더 가치없는 돈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이는 아파트 20평만 되어도 자기 평생에 받을수 없는 과분한 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이는 애완용 개집밖에는 안된다고 푸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복 받기를 좋아하며,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복이 무엇인지 알아보십시다. 성경은 복에 대한 말씀이 참으로 많습니다. 복에 대한 정의도 시대와 장소, 사람과 환경에 따라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크게는 영적인 복이 있고, 육신의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육신의 복보다는 영적인 복을 더 중요하게 다루십니다. 그렇다해서 하나님이 육신의 복을 무시하거나 거부하지 아니하십니다.
때문에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너무 쉽게 기복신앙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육체를 이 땅에 두고 있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육신의 복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영적인 복이 항상 우선이었고, 영적인 복을 통해서 육신의 복이 흘러 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 복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얼마든지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복있는 사람에 대하여 한마디로 말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누구보다 다윗은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을 누구보다도 풍성하게 받은 사람입니다. 자기 경험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복의 주체이시며 복의 근원임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사람입니다.
전체적으로 본 시는 하나님이 부족한 자신을 기억하사 은혜 베푸심에 감사하는 내용과, 장차 자기 백성들이 누리게 될 복에 대해서 증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통해서 다윗이 말하는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자기 백성들이 구체적으로 누리게 될 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후손의 복(12절)
아마도 부모된 모든 사람들은 자신보다는 자기 자식들이나 후손이 잘되는 복을 기대할 것입니다. 비록 자신은 못 먹고 못 쓰고 주릴지라도 자기 자식들은 풍성하고 풍요롭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 국가를 통치하는 다윗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왕의 기준으로 볼 때 백성들은 자기 자식들과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은 백성들의 부모입니다.
그래서 12절에 기록한 우리 아들들과 딸들이라는 표현은 왕의 입장에서 백성들을 말합니다. 왕은 국가의 부모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군사부일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다윗이 말하는 복중에 하나는 자식들이 잘되는 복입니다. 후손의 번영을 말하기도 합니다. 왕이 보는 아들들은 마치 장성한 나무와도 같았습니다. 나무는 주로 건물의 기둥을 의미하며 실제 기둥으로 사용합니다. 기둥이 중요합니다. 기둥이 튼튼하고 단단해야 건물이 든든합니다.
하지만 모든 나무가 기둥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둥감이 있습니다. 나무가 어리거나 바르지 못하면 기둥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나무가 장성하고 곧아야 기둥으로 사용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재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에는 어린아이와 같았지만, 이제는 제법 장성해졌다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다윗 시대를 부요케 하셨고, 평안케 하셨으며, 형통케 하셨습니다. 어린아이의 틀을 벗고 제법 규모있게 잘 자란 성년같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무엇이나 책임질 수 있는 성년이 되었다는 의미요, 영적으로 그만큼 성숙해졌음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자기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다는 것입니다. 모든 건축물에는 견고한 기둥도 필요하지만, 모퉁이 돌도 중요합니다. 건축물을 세우려면 항상 모퉁이 돌로부터 시작합니다. 집을 지을 때도 모퉁이 돌이 제일 중요합니다. 모퉁이 돌을 세워야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모퉁이 돌이 모든 건축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모퉁이 돌에서 모든 건물의 연결이 이루어집니다. 건물은 어느 것 하나라도 독립된 것이 없습니다. 전체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퉁이 돌 위에 기둥이 세워지고, 그 기둥 위에 서까래와 버팀목이 연결되며, 그 위에 지붕이 덮여지면 건물 전체가 완성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누가 모퉁이 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내 삶의 든든한 기초가 되어줄 것이 무엇입니까? 귀중한 내 인생을 올려놓아야 할 모퉁이 돌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모퉁이 돌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그 기초에 근거하여 세워져야 합니다. 그 위에 가정을 올려놓으면 가정이 무너지지 않고, 국가를 올려놓으면 국가가 무너지지 않고, 기업을 올려놓으면 그 기업이, 지식을 올려놓으면 그 지식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건축자들이 버린 모퉁이 돌이시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이 다 무너질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퉁이 돌이 되시면 만세반석입니다. 든든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모퉁이 돌로 삼으면 안전합니다. 절대 흔들림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견고합니다. 모든 것을 막아내고 지켜주고 우리를 도와줍니다. 원수마귀 악한 것을 막아주십니다. 세상에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모퉁이 돌을 삼기 때문에 실망합니다. 낙심합니다. 좌절합니다. 건축하는 중간에 부도가 납니다. 그리고 포기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여러분의 인생에 모퉁이 돌을 삼기 원하십니까? 내 인생의 모퉁이 돌이 무엇이기를 원하십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퉁이 돌 되시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다윗이 고백하는 12절 말씀은 이스라엘의 아들과 딸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하나님나라를 상징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딸들은 아름답게 잘 다듬어진 모퉁이 돌이 되었으며, 그 위에 세워진 아들들은 든든한 대들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축복을 받았음에 감사하는 고백이기도 하지만, 장차 하나님을 믿는 자기 백성들이 받을 복을 염원하는 기대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영적으로는 다윗의 왕국이 장차 주어질 그리스도의 왕국의 모형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지상에 세워진 다윗의 왕국은 부족하고 완전치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다윗의 계보를 통해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요, 다윗의 왕국으로 통해서 만왕의 왕되신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나라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한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이 얼핏 보기에는 다윗의 왕국을 자랑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나라의 견고함과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보기에 좋은 모습입니까? 아들과 딸들이 자기들의 처소에서 장성하고 아름답게 잘 자라주었으니 말입니다. 아들들은 든든하게 장성해준 것이 복이요, 딸들은 아름답게 잘 자라줌이 복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솔직히 우리 자녀들을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12절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 보십시다. 절대 믿음의 자녀는 걸식함이 없습니다. 시편37:25“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금년에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면서 우리 자녀를 향하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2) 생활의 복(13-14절)
다윗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또 다른 복중에 하나는 생활의 복을 말합니다. 이른바 성도는 지금 삶의 현장에서 필요한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함께 이 땅에서의 복도 무척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을지라도 분명히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갑니다. 때문에 성도는 이 땅의 복도 받아야 합니다. 하늘의 복은 하나입니다. 신령한 복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복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건강의 복도 있고, 물질의 복도 있으며, 다른 종류의 복도 많습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복이 다르다고 생각 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질의 복에 집착합니다. 아마도 대부분 재물이 최고의 복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애나 어른이나 돈을 싫어하는 사람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재물의 복이 최고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물질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세상을 이끌어가는 가장 위대한 신이 재물의 신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돈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돈이라면 부모형제도 원수가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도 죽입니다. 돈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팔아버립니다. 몇 푼의 돈에 자기 영혼까지 팔아버립니다. 돈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물을 잡기 위해서 평생을 허비하며 죽습니다. 그러나 내가 재물을 쫒는다고 잡히는 것도 아닙니다. 재물의 복도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곳간에 백곡이 가득하다고 말씀합니다. 창고에 백가지 곡식들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백곡은 지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곡식의 총칭입니다. 한마디로 창고가 넘쳐나는 복은 물질에 부족함이 없는 재물의 복입니다. 예전에 시골에서 살 때에 조금 잘사는 사람의 집을 가보면 곳간이 있는데, 곳간이 항상 가득차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볏가마들로 넘쳐났고 고구마라든지 먹거리들이 가득했습니다. 한 겨울철에 조금 여유있는 집의 곳간에는 고구마가 쌓여 있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나도 저렇게 고구마 많이 저장해놓은 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본문에 곳간이 가득하다는 말은 재물의 복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곳간만이 아닙니다.
들에는 양들이 넘쳐났다고 증언합니다. 천천과 만만의 양들이 번성했다는 것입니다. 천천만만은 셀 수 없는 무리입니다. 양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백곡의 축복도 엄청나지만, 가축과 동물의 복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참 놀라운 복입니다. 거기에다가 일하는 수소는 짐을 무겁게 실었다고 했습니다. 건강의 복도 되지만, 재산이 많아서 수레에 짐을 가득 실어 날리는 풍성한 복을 상징합니다. 하다못해 장에 나가서 팔 물건이 있어야 수소를 가지고 나가지요.
그런데 다윗은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부족함이 없는 복을 말합니다. 다윗은 시편23편에서“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만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들도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아야 이런 복을 받는다고 증언합니다. 아니 자기 백성들은 일찍이 이런 복을 받은 백성이라는 말이지요.
한마디로 다윗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복을 받은 백성입니다. 아무것도 잘난 것도 없고 잘한 것도 없지만, 한가지 하나님의 택함을 입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았기 때문에 받은 복입니다.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개인이나 국가라면 예외없이 받을 수 있는 복이기도 합니다.
(3) 심령의 복(14절)
앞에서 거론한 두가지 복이 모두 육안으로 쉽게 드러나는 복이었다면, 14절에서 말하는 복은 우리의 육안으로 분별하기가 쉽지 않는 복입니다. “...우리를 침로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평화의 복입니다. 화평의 복입니다. 심령적인 복입니다. 말씀을 정리해 보면, 누구에게 얻어 맞는 일도 없으며, 누구를 두들겨 패야하는 일도 없다는 말입니다. 치고받는 일이 없는 복입니다. 한마디로 평안의 복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졌을지라도 심령의 복을 받지 못하면 오히려 재물이 화가 됩니다. 가진 재물 때문에 도둑이 들어오고, 가진 재물 때문에 강도가 들어옵니다. 차라리 갖지 못했다면 이런 불행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때문에 재물의 복도 좋지만 심령의 복이 함께 주어져야 좋습니다.
아무리 후손들이 번영하는 복을 받았을지라도 심령의 낙이 없으면 오히려 고통이 됩니다. 어떤 자식이 사고를 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장성한 아들이 어떤 사고를 칠 줄 모릅니다. 아름다운 딸들이 무슨 사고를 당할지 모릅니다. 때문에 후손의 복도 좋지만 항상 심령의 복이 함께 주어져야 좋습니다. 이른바 평안의 복 말입니다.
앞에서 거론한 두 종류의 복보다 더 중요한 복이 심령의 복입니다. 심령이 평안한 복입니다. 하나님이 성을 지켜 주셔야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가 안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침로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도 누군가를 보복하거나 원수갚는 일을 내가 하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복도 받아야 합니다. 전쟁은 한쪽만 공격해도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전쟁은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아무리 좋은 전쟁이라도 피해는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는 울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다윗이 자기 백성들이 자기 시대에 이런 복을 받았다는 고백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다윗 시대를 눈동자처럼 지켜 주셨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케 하셨다는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안전을 보장해 주시면 완전합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국가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을 통해 다윗은 자기 백성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들은 반드시 이런 복을 받는다고 말입니다. 물론 이 성경을 보는 모든 독자들에게도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만 이런 복을 받으려면 한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아야 합니다. 물론 입으로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1:1-2절을 보시면 정확한 답이 나옵니다.“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악인의 꾀나 죄인의 길이나 오만한 자의 자리에서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우리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복 받는 방법은 정말 쉽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복을 잡으려고 쫒아 다니면 복은 달아납니다. 그러나 지금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잡으면 됩니다. 복을 잡으려고 하지말고 하나님을 붙잡으시면 된다는 말입니다. 절대로 내가 복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수고하고 노력한다할지라도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한가지를 성취해서 복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사실은 복이 아닙니다. 복은 하나님이 심령의 낙과 함께 주셔야 참된 복입니다. 만일 혼자 길을 걷는 어린아이의 손에 1억원짜리 수표가 주어져 있다한들 복이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어린아이의 생명이 위험하여 오히려 근심만 더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금년에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복을 기억해 보십시다. 우리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복을 기억해 보십시다. 우리 교회위에 부어주신 복을 기억해 보십시다.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정상입니다. 그 복이 진짜 복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지 아니하고 이 땅에서 만들어진 복은 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입니다. 우리 모두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하심에 적극적으로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장차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소망하며 기대하십시다. 우리 모두 하늘의 신령한 복과, 이 땅에 기름진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복을 받읍시다. 만복의 근원이신 우리 하나님이 주신 복이 진짜 복임을 믿고 감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2012.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