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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솔개를 쫓아라(창15:8-17)-2013.4.21

작성자최규진|작성시간13.05.04|조회수363 목록 댓글 0

영적 솔개를 쫓아라(창15:8-17)-2013.4.21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도대체 성취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브라함이 무척 조급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성도를 가장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조급증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백성들의 특징이 빨리빨리 아닙니까? 그래서 성도들도 얼마나 조급한지 모릅니다. 뭐든지 금방하다가 안한다고 난리입니다. 금방해놓고 안된다고 난리입니다. 정말 급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패스트산업이 가장 잘 발달된 민족이 우리나라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배달의 기수입니다. 퀵서비스 문화가 가장 잘 발달된 나라입니다. 어떤 피자는 삼십분안에 배달을 못하면 금액을 깎아준다거나 한판을 더 드리겠다고 광고하며 장사합니다. 아마도 총알택시문화도 우리나라가 가장 잘 정착한 나라일 것입니다. 아무튼 급한 민족입니다. 빠른 것이 좋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는 분명히 대단합니다. 그러나 영적생활은 정말 부작용이 많습니다. 마치 오늘날 성도들이 영적조급증에 걸려 있는 듯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조급한 마음으로 빚어진 행동을 보게 됩니다. 솔직히 어느 누구도 아브라함이 가졌던 조급한 마음이나 행동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아니 제가 그 입장이었다면 당연히 그랬을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후사를 주어 복의 근원을 삼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언제입니까? 창세기 12장에보면, 아브라함은 75세의 나이에 하나님으로부터 공식적인 부르심을 받고, 큰 민족과 후손에 대한 축복의 언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거의 십년이 다 되는데도 후사에 대한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정말 답답할 노릇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이상 중에 나타나시어 하신 말씀은 더욱 가관입니다.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가 되심이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사실 얼마전에 아브라함은 전쟁을 치르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었습니다.

 

이른바 가나안의 남북전쟁에 참여한 것이지요. 사해근방에서 발발한 갈대안 연합국과 가나안 연합국의 전쟁에 불가불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 조카 롯 때문에 말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승리합니다. 그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함을 알았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방패라고 하시는 것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큰 상급이 되신다는 말씀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에게 가장 큰 상급은 태의 열매요, 후사입니다. 후사를 주시는 것이 가장 큰 상급이라는 말입니다. 시편127:3“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면 도대체 자기에게 언제 무슨 상급을 주시겠냐는 것입니다(2절). 섭섭한 심정을 담아 따지듯이 물은 것입니다. 거기다가 한가지를 추가하여 말합니다. 마치 어깃장을 놓듯이 말입니다. 그냥 자신은 무자하오니 자신의 상속자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로 확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식입니다.

 

그러면서 3절에 부연 설명까지 착실하게 합니다. 모든 책임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후사를 안주셔서 자기집에 있는 종을 후사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일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기다림에 약합니다. 무척 조급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조급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그르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나 역사하심을 자기 스스로 바꾸려고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도와주려는 인본주의적인 시도까지 서슴치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도권을 무시하는 불신앙적인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결정권을 빼앗으려는 무모한 시도입니다. 아니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도와주려는 어떤 유혹이나 시도를 버려야 합니다. 인간은 인내심이 없을지라도 끝까지 참고 인내하시는 우리 하나님은 다시한번 아브라함에게 시청각교육을 통해 언약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하늘에 떠있는 뭇별들을 세어보라고 하십니다. 이와같이 네 자손을 번성케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방법은 꼭 한가지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른바 네 몸에서 날자가 네 후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상식으로 이해가 안되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비록 답답할지라도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설득에 믿음의 확신이 붙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6절). 하지만 이번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분명한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즉, 자기가 확신할 수 있는 어떤 증거라도 한가지만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믿음이 없어서 증거를 요구했다고 섣부른 판단을 하면 안됩니다.

 

성경에는 이런 예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기드온/삿6장, 마리아/눅1장). 증거를 보여 달라는 아브라함의 주문앞에 하나님은 어떤 책망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고 핀잔을 주지도 아니하십니다. 이번에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약속을 친히 보여주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확실한 증거를 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들은 언약을 위한 제물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기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고대 근동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언약체결 방식과 같은 것입니다. 언약을 위한 제물들을 준비한 후에 중간을 쪼개어야 합니다. 그리고 쪼갠 상태로 마주 대하여 놓습니다. 그런 후에 언약을 위한 두 당사자가 그 사이로 지나가는 방식입니다. 만일에 둘 중에 하나가 언약을 어기면 이 제물들처럼 죽음을 당한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언약은 중요한 것입니다. 언약은 자기 목숨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언약은 두말할 것도 없고, 세상 사람들과의 약속도 중요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언약이나 약속들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가볍게 파기하는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언약이나 약속은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둘로 쪼개진 제물들처럼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언약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솔개가 주는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서 우리의 믿음을 굳게 다지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1) 솔개의 영적인 의미

 

성경에서 솔개는 매우 부정한 생물입니다. 레위기서11장:13절에 보면,“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이것들이 가증한 즉 먹지 말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매의 종류” 라고 말씀합니다. 솔개는 매목 수릿과에 속한 새로서 몸길이가 약60센치 정도 됩니다. 주로 들쥐라든지 물고기와 조개 따위를 잡아먹는 맹금류입니다. 솔개는 영적으로 죽음을 상징하는 아주 부정한 생물입니다.

 

무엇보다 솔개는 독수리와는 다릅니다. 사실 전문가들이 아니고서는 솔개와 독수리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굳이 아는 상식으로 구분하자면, 솔개보다는 독수리가 덩치가 큰 편이고, 수명도 길며 눈이 툭 튀어나와 있는 반면에, 솔개는 독수리보다 덩치도 작고 수명도 짧으며 눈이 움푹 들어가 있는 모양새 정도입니다. 물론 성경은 독수리나 솔개 모두 다 먹으면 안되는 부정한 생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와 솔개가 외견상으로는 비슷한 것 같지만 영적인 의미는 차이가 있습니다. 보통 성경에서 독수리가 영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 하나님의 보호라든지, 능력이나 지혜, 용기를 상징합니다. 때로는 성도의 믿음을 상징하기도 하고, 심지어 복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독수리 복음이라는 별명까지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솔개는 전혀 그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영적인 것을 방해하는 악한 세력으로 묘사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선악을 구분한다거나, 참과 거짓을 분별하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정말 구분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영적인 것은 더욱 그러합니다. 믿음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것을 분별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는 더욱 그렇습니다. 서로들 자기들이 진짜라고 난리입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같습니다. 어지간한 영성이면 분별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수많은 이단들이 진리를 위장하고 파고듭니다. 양의 탈을 쓰고 말입니다. 마치 독수리와 솔개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정말 영적인 것을 분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비슷한 것 같아도 정말 다릅니다. 작은 차이점 하나가 때로는 전부를 다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단은 대부분 맞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것 하나가 다르므로 전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장 작은 것 하나가 가장 결정적인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의미로 보면, 독수리와 솔개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분별력이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영적분별력이 있어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모든 종교가 하나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또한 같은 기독교의 간판을 걸고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모든 종교가 같은 줄로 압니다. 심지어 알쏭달쏭한 기독교의 교리까지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 할뿐 아니라, 생명과 죽음마저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안하지만 그래서 요즘 신종 이단들이 정상적인 교회를 자기들의 종교를 확장시키는 가장 큰 시장으로 삼고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공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신천지라든지, 하나님의 교회라든지, 안식일교라든지, 여호와증인들 같은 세력들 말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기성교인들이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아픔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영적 분별력을 가지십니다. 그래야 내 영혼이 삽니다.

 

(2) 솔개를 쫓는 아브라함의 믿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시기 위하여 제물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언약의 당사자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삼 년 된 암소,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수양을 취하여 중간을 쪼갰습니다. 그리고 쪼갠 짐승을 서로 마주보게 놓았습니다. 이른바 쪼개짐을 통해 희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쪼개짐에는 피 흘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마리의 비둘기를 취했습니다. 하나는 집비둘기요, 하나는 산 비둘기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는 쪼개지 않은 채로 그냥 마주 보게 놓았습니다. 학자들의 견해가 분분하지만 복잡한 이야기 할 것 없습니다. 비둘기가 쪼개기에는 너무 작은 것이기 때문에 쪼개지 않았다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비둘기는 두 마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정보만 가지고 너무 무리한 해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비둘기는 안 쪼갰습니다.

 

그때 쪼개진 동물의 냄새를 맡고서 가장 먼저 찾아온 손님은 반갑지 않는 솔개였습니다. 본능적으로 동물의 피 냄새를 맡은 솔개가 덤벼든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솔개라고만 번역되어 있지만, NIV 영어성경에는“birds of prey"라고 쓰여 있습니다. 문자대로 번역한다면 먹이를 포획하러 다니는 맹금류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짐승의 피 냄새를 맡고 가장 먼저 솔개가 찾아 온 것입니다. 한 마리가 아니라 떼를 지어 왔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사단은 우리보다 영적으로 훨씬 더 민감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일을 도모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사단은 비상이 걸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기로 작정하면 사단이 가장 먼저 찾아와서 유혹을 합니다. 아니 한 영혼을 전도해서 교회 나오기로 결정한 순간 사단이 먼저 그 영혼을 심방하여 훼방을 놓습니다. 영적인 계획을 방해하고 수포로 돌리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영적인 사람은 수시로 경험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금식기도 하려는 순간 사단이 금식 냄새를 맡고 음식을 가지고 찾아옵니다. 우리가 기도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사단이 먼저 기도 냄새를 맡고 찾아옵니다. 우리의 영적인 일을 망가뜨리고 방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무슨 일을 하려고하면 사단이 가장 먼저 찾아와서 방해합니다. 지금 본문에서 그런 역할을 솔개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불사르는 예식을 사단이 방해하려고 찾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방해하려고 말입니다.

 

사단이 솔개에게 사단의 옷을 입힌 채로 방해하려고 파견한 것입니다. 그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단순하게 피 흘린 동물의 사체를 뜯어먹기 위해 찾아온 것으로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사체를 뜯어 먹는 것을 막아내려고만 시도하는 것도 무지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서든지 영적인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엇이든지 영적으로 접근하고 해석하려는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솔개가 사체를 뜯어 먹으러 찾아온 것은 단순한 의미 그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려는 간사한 궤계가 그 속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언약이 성취되려면 우리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결재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구약에 드려지는 모든 제사에는 하나님의 불이 임하사 제물을 태우시고 당신의 임재를 드러내셨습니다.

 

물론 오늘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됨을 알려주시는 방식은 연기나는 풀무속에서 불타는 횃불로 언약을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하나님의 불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쉴 새 없이 내려오는 솔개를 피곤하지만 계속 쫓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불이 임할 때까지 말입니다. 솔직히 피곤해도 쉴 수가 없었습니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마음 놓고 갈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최소한 하나님의 불이 임할 때까지 말입니다.

 

우리는 그가 몇 시간을 그렇게 했는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해가 지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어둠이 밀려옵니다. 얼마나 피곤하고 졸렸든지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깊은 잠을 잤다고는 말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전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우리도 쪽잠을 잘 때 깊은 잠에 취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운전하다 피곤할 때 휴게소 들어가서 5분만 깊은 잠을 자도 개운하듯이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다리는 현장에서 열심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자기 본분을 다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믿음있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3)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솔개를 쫓아라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솔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잘 분별하여 쫓아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추방하지 않으면 영적인 걸림돌은 물론이거니와 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내 믿음을 방해하는 솔개가 어떤 것인지를 찾아보십시다. 반드시 추방해야 합니다. 솔개는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방해꾼이요, 훼방자입니다. 악한 사단의 세력입니다.

 

성도는 솔개를 쫓아야 합니다. 영적솔개를 쫓아내지 아니하면 실패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내안에 있는 솔개를 찾아야 합니다. 내안에 있는 솔개가 때로는 물질일 수 있습니다. 명예나 권세가 솔개일 수 있습니다. 건강의 솔개, 이성의 솔개, 헛된 망상이나 생각의 솔개, 이상이나 비전의 솔개, 시기와 질투의 솔개, 잡념이나 의심의 솔개, 불신이나 불평의 솔개일 수도 있습니다.

 

영적인 솔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영안을 열고 내안의 솔개를 찾아내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마다 솔개를 모른 채 오히려 키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솔개를 마치 독수리처럼 오해하고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적분별력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어떤 솔개라도 반드시 찾아내어 추방해야 합니다. 영적 솔개를 쫓아내십시다.

 

특별히 솔개는 우리의 예배를 방해합니다. 예배 때 가장 강렬하게 활동합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으르렁대며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광명한 천사처럼 찾아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 어떤 솔개가 앉아 있는지 모릅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그리고 추방하십시오. 어떤 이에게는 졸음의 솔개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허탄하고 망령된 생각을 타고 솔개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괜한 불안감을 통해서 솔개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아니면 섭섭한 생각을 타고 솔개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지금 내 곁에 어떤 솔개가 찾아와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더 이상 내 주변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추방하십시오. 내 영혼을 방해하는 더러운 솔개, 반드시 쫓아내십시오. 비록 한 마리의 솔개라도 쫓아내지 아니하면, 수없는 솔개들이 집단으로 찾아와서 내 영혼을 공격할지 모릅니다. 더 이상 어떤 솔개라도 내 주변에 오는 것을 절대적으로 용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솔개를 쫓으십시다. 할렐루야!!!(201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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