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본질을 회복하자(눅2:8-20)-2013.12.22 성탄주일
세상에 성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신불신을 막론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12월만 되면 성탄절을 생각하고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을만한 최고의 이벤트를 만들고 선물을 주고 받으며, 여행을 하고 일생에 가장 의미있는 일을 만들어갑니다. 필리핀 선교사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지만 카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는 상당수의 국민들이 성탄절 하루를 누리기 위하여 일 년 동안 저축해서 다 쏟아 붓는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성탄절을 지키기 위해 일 년 동안 일을 한답니다. 정말 열성적이지요?
그런데 정말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탄절을 우선순위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만큼 성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에게 성탄절이 그렇게 중요해서 기다리고 기리는 것일까요? 진정으로 성탄절이 무슨 날인지 알고 그러는 것일까요? 혹시 성탄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날인지나 알고 그러는 것일까요? 마치 해마다 해오는 관습에 따라 지키는 아무 생각없이 그저 년말을 보내는 공휴일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신자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과연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성탄절은 어떤 의미일까요? 진짜 거룩한 성탄일까요? 진심으로 아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거룩한 날일까요? 미안하지만 성도들마저도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 채 기독교 문화의 아이콘 정도로만 생각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마치 성탄절이 모른척하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허전하고 찝찝한 교회의 년례 행사로 굳혀져 가는 것은 아닐까요? 아마도 생명없는 기독교의 한 문화로 굳혀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탄으로 설레게 됩니다. 물론 주님의 몸된 교회는 두말할 것도 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들만의 축제 아닌 축제를 준비합니다. 일년의 가장 성대한 교회행사로 준비합니다. 사실상 모든 교회가 12월이 되기 전부터 성탄준비로 떠들썩합니다. 모든 교인들도 마음이 분주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진심으로 알고 그러는 것일까요? 해마다 찾아오는 성탄절, 과연 누구를 위한 성탄일까요?
우리는 성탄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성탄의 본질을 알기 원하면 가장 먼저 기본적인 몇가지 질문에 답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첫째, 누가 탄생하신 날인가? 두번째, 어떻게 오셨는가? 세째, 무엇때문에 오셨는가?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만 며칠날 오셨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도 오신 날짜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신 분이 중요하고, 오신 것이 중요하지 오신 날짜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성탄절의 날짜에 대해 이렇쿵 저렇쿵 말이 많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질문이지만 분명한 답을 내릴 수 없다면 당신은 성탄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지금까지 성탄의 의미와 본질을 모른 채 성탄절의 분위기만 누리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교회를 다니든지 다니지 않든지 상관없습니다. 사실상 교회안에 있는 많은 성도들도 성탄의 진정한 의미와 본질을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는 성탄의 의미와 본질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탄절을 지킬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은 보는 성탄이 아니라 느끼는 성탄이 되었으면 합니다. 노는 성탄이 아니라 누리는 성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지 아니하면 사단이 거룩한 성탄을 자기의 놀이문화로 타락시키고 말 것입니다. 성탄절을 자기 놀음마당으로 생각하고 온갖 장난을 다 칠 것입니다. 더 이상 거룩한 성탄을 사단에게 빼앗기면 안됩니다. 만일 교회와 성도가 정신 차리지 못하면 성탄은 더 이상 거룩한 성탄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 12월은 누가 뭐라고해도 성탄의 계절입니다. 누구든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12월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성탄절입니다. 그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사단은 온갖 훼방을 다합니다.
지난 17일 밤 MBC 방송국 PD수첩에서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에 대한 비리를 파헤치는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저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 아실 것입니다. 다만 방송국에 대한 아주 불쾌한 감정이 있습니다. 하필 성탄절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기독교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탄절의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사단의 물타기 작전입니다. 최소한 기독교에 대한 일말의 예의라도 있었다면 성탄절을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서 그럴 수 있겠습니까? 4월 초파일이 되어 불교계의 비리를 들춘 방송을 한번이라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런 방송을 보면서 사단이 얼마나 간교하게 장난을 치는지 보게 됩니다.
사단이 성탄절의 분위기를 파괴하기 위하여 얼마나 몸부림을 치는지 아십니까? 사람마다 성탄을 바라는 마음이 다를 것입니다. 성도들마다 성탄에 대한 믿음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탄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할 자격이 없습니다. 성탄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은 성탄절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는 성탄절의 분위기를 훼손하고 사단의 놀음에 놀아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성탄의 본질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탄의 본질을 모르면서 성탄절을 노래하는 것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훼방하는 아주 간사하고 더러운 범죄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성탄일까요?
(1) 온 인류를 위한 성탄입니다(10절)
성탄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물론 성자의 신분으로 말입니다. 성탄은 구약이 성취되는 가장 위대한 복음이기도 합니다. 구약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다리는 말씀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이사야서 9장6절 말씀의 성취입니다. 바로 한 아기, 한 아들로 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마1:21). 그분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친히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의 나심이 성탄입니다.
때문에 성탄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요3:16).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요1:1).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자기 품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내셨습니다(요1:18). 다른 말로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빌2:6-8).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이는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오신 날이 성탄입니다. 이른바 성자 예수께서 인간의 옷을 입으시고 인간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 땅으로 강림하신 날이라는 뜻입니다. 왜냐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룩하지 못한 인간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성경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다고 말입니다(출33:20). 감히 거룩하지 못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은 충돌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충돌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치 빛과 어둠이 만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자동적으로 소멸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인 인간은 감히 의로우신 하나님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본 자가 없다고 말씀합니다(요1:18).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인간들의 눈으로 친히 볼 수 있는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성자의 신분으로 말입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아기 예수로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가장 큰 목적은 무엇일까요?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세상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좋았던 세상이 인간의 범죄로 완전히 짓밟히고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세상을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오히려 망가진 세상을 회복하시러 오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본문 10절을 보십시다. 아기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천사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두 가지의 분명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소식이고,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모든 인간에게 가장 큰 소식입니다. 누구나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입니다. 하늘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소리는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입니다. 때문에 어느 누구도 소리가 작아서 듣지 못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복음처럼 큰 소리는 없습니다. 시대마다 복음은 가장 큰 소리로 시대를 깨우는 소리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진동할만한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이 소식보다 기쁘고 즐거운 소리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세상 소리에 즐겁고 기뻐하지만 그것은 가장 불행한 소리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소리가 가장 기쁘고 즐거운 소리입니다. 가장 기쁜 소리는 가장 큰 소리를 동반합니다. 너무나 기쁘기 때문에 조용하거나 침묵할 수 없습니다. 만일에 심마니가 산삼을 보았다면 침묵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심봤다라고 큰 소리로 외칠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소리임과 동시에 가장 큰 소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기쁜 소식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11절에 나옵니다. 구주가 나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른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가장 크고 기쁜 소식이라는 말입니다. 믿어지시면 아멘 하십시오. 할렐루야.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성탄이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10절에 가장 크고 기쁜 소식은 온 백성을 위한 소식이라고 말씀되어 있습니다. 복음의 가장 우선되는 대상은 온 백성입니다. 복음은 누구나 들어야하는 가장 큰 소식입니다. 누구에게나 복음은 필요합니다. 복음이 미치지 못할 대상은 없습니다. 복음은 어떤 나라, 어느 민족, 어떤 사람에게나 미쳐야하는 가장 크고 기쁜 소식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성탄의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성탄은 온 인류를 위한 성탄인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2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2) 택한 자를 위한 성탄입니다(11절)
물론 성탄이 온 인류를 위한 성탄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성탄의 은혜를 입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성탄을 거절하는 인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탄절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 모든 인류를 위한 성탄인 것은 분명하지만 성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성탄이라도 성탄의 믿음을 소유한 자에게만 효력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구원사적인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성탄이 인간에게 미치는 효력의 범위를 더욱 구체적으로 적용해보면 온 인류 그룹에서 더욱 작은 그룹으로 축소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속에는 택자와 불택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택한 자를 위한 성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도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 이라는 뜻입니다(마1:21). 그러므로 성탄의 궁극적인 효력은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입은 자에게 한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을 보십시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할 곳은 다윗의 동네입니다. 다윗의 동네는 베들레헴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동네, 즉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어 다윗의 계보를 이어가는 메시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유다지파입니다. 이른바 유다에서 홀이 떠나지 않는다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창49:10).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곳, 택하심을 입은 지역에서 탄생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동네는 택하심을 입은 동네입니다. 다윗의 동네는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입니다. 그 말씀이 성취되기 위하여 예수님은 자기 땅에 오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지 아니하였습니다(요1:11).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서정상 분명히 자기 백성을 먼저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셨음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마15:24).
그러나 성탄의 복음을 거절한 자기 백성들 때문에 복음의 혜택은 이방인들에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의 혜택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배려때문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각 나라와 족속과 열방 가운데 당신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성탄의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탄의 목적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때문에 성탄은 택한 자를 위한 것입니다.
(3) 내 영혼을 위한 성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은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이요, 또한 택한 자를 위함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내 자신을 위한 성탄임을 믿어야 합니다. 만일 이 세상에 구원받을 영혼이 나 혼자일지라도 예수님은 나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아무리 흥분하여 맞이하는 성탄절이라도 나를 위한 성탄으로 준비되지 아니하면 그 성탄은 더 이상의 기쁨의 성탄이 될 수 없습니다.
성탄절이 거룩한 성탄이 되기 위해서는 내 영혼을 구원하시는 성탄이어야 합니다. 이른바 나를 위해 준비하신 성탄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성탄이라면 그것은 세상의 어떤 이방종교의 잔치와 다를 바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의 효력은 지금 나에게 미쳐야 합니다. 성탄절의 효력범위가 온 인류에서 더욱 세분화된 택한 그룹으로, 그리고 가장 실제적으로는 나에게 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 영혼과 상관없는 성탄이라면 성탄은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성탄절이 가장 불행한 날이 될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면서도 성탄절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탄절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많습니다. 마치 성탄절을 어렸을 적 다녔던 추억의 교회 행사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실 성도의 마음은 날마다 성탄절의 분위기로 살아야 합니다. 아기 예수 그리스도가 항상 내 신앙의 중심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굳이 특정한 날을 택하여 성탄절로 지키기 원한다면 성탄절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내 영혼을 위한 성탄절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가 성탄절을 기독교의 문화적인 콘텐츠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전에는 교회에 성탄의 영적인 분위기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제는 세상이 만든 성탄문화가 교회를 주도해 나가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 세상이 교회보다 먼저 성탄의 소식을 전해줍니다. 성탄의 츄리를 세상이 먼저 공개하잖아요. 백화점이라든지 모든 상가에서 교회보다 먼저 성탄 츄리를 장식하잖아요. 그리고 길거리와 상가에서 교회보다 먼저 캐롤송을 틀어서 성탄절의 분위기를 띄워줍니다. 아마도 갈수록 더할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성탄절의 의미도 모른 채 성탄절의 특수를 노린 상술로 그렇다고 하지만 교회와 성도는 자기 신앙을 점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성탄입니까? 내 영혼을 위한 성탄임을 분명히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때문에 교회는 성탄절을 얼마나 화려하게 장식하느냐에 포인트를 맞추지 말고 각자의 영혼을 돌아보고 주님의 은혜에 다시한번 감사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즐거워하는 성탄에서 마음으로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는 성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분위기가 영적인 분위기로 바뀌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가 성탄절을 이벤트로 치르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성탄은 행사가 아닙니다. 성탄은 복음입니다. 성탄은 문화가 아닙니다. 성탄은 생명입니다. 해마다 성탄절을 년례 행사로 치르지 마십시오. 성탄절을 즐기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성탄절을 통해 내 영혼을 다시한번 돌아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십시오. 이번 성탄이야말로 진정으로 각자의 심령을 돌아보는 복된 시간들이 되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마리아처럼 겸손하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리아는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했습니다(18절). 그리고 성탄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려 드렸습니다(20절). 목자들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직접 현장에서 보기 위해 한걸음으로 달려가서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친히 영접했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의 소리를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이번 성탄절을 통해서 목자들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또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하여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베들레헴까지 찾아온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입니다. 그들은 별을 관측하던 시대의 지성인들입니다. 그들은 낯선 별을 관측하다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베들레헴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목마름 때문입니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미지의 땅까지 찾아온 그들이지만 빈손 들고 오지 않았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하여 찾아왔습니다. 이것은 아기 예수를 영접하기 위한 최고의 정성이요, 예의입니다. 그리고 헌신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정성과 헌신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처럼 성탄의 좋은 소식을 온누리에 전파하는 나팔수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성탄의 기쁜 소식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아니 내 가장 가까이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가 전하지 아니하면 성탄은 사단의 문화로 잠식되고 말 것입니다. 사단이 거룩한 성탄을 짓밟아 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성탄을 사단에게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때문에 성탄의 기쁜 소식을 온누리에 전해야 합니다. 천사들처럼 말입니다.
천사들이 성탄의 소식을 전달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 잉태와 아기 예수 탄생을 알려줬고, 목자들에게도 전달했습니다. 천사들은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였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탄을 알지 못하는 모든 이들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탄입니다. 과연 성탄이 누구를 위한 성탄인지를 다시한번 확인하여 성탄의 본질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한번 따라하십시다. 본문 14절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메리크리스마스” 할렐루야!!!(2013.12.22 성탄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