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목마른 자들아(사55:1-7)-2016.4.3
인간은 누구에게나 목마름이 있습니다. 물어보십시오. 세상에 목마르지 않는 사람이 있는지? 어떤 방면으로든지 모든 인생은 목마름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에 따라 목마름도 아주 다양합니다. 돈에 대한 목마름으로 애타는 사람이 있고, 건강에 대한 목마름으로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사랑에 목말라하고, 어떤 이는 명예와 권세의 목마름으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목마름이 없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많이 가졌다고 목마름이 없을까요? 많이 배우면 목마름이 없을까요? 아니면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은 목마름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목마름이 훨씬 더 할는지 모릅니다. 언젠가 잡지에서 본 기사입니다. 최고 정상을 누리던 연예인이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정상의 자리에서 언젠가는 내려와야 할 것이고, 그러면 팬들로부터 잊혀지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답니다. 인기에 대한 목마름이 여전했다는 말입니다. 육신의 목마름도 있지만 영혼의 목마름도 있습니다. 문제는 육신의 목마름보다 영혼의 목마름이 훨씬 더 고통스럽고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에게는 어떤 목마름이 있습니까?
문제는 세상 어디에도 목마름이 없는 장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목마르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정에도 목마름이 있고, 직장이나 사업장에도 있으며, 이 사회 구석구석에 목마름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도 목마름이 있습니다. 때문에 목마르지 않는 장소를 찾는 일은 헛되고 무익한 수고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목마름이 없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하여 별스런 방법을 다 해봅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장소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결론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목마름을 가장 잘 아시고 가장 정확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목마른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자신이 목마르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말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습니다. 목마른 자들의 범주 속에 제외될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감히 누가 이런 초청장을 발송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 초청하실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초청장이 하나님의 초청장이 아니라 다른 신들의 초청장이라면 당신의 영혼은 더욱 목마르고 갈증 날 뿐입니다.
본문은 ‘너희 목마른 자들아’(1절상)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너희’는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염두 해 둔 말입니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이 번영을 누리게 될 것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청 대상이 반드시 이스라엘로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열방의 모든 백성들로 확장됩니다(6-7절). 그러므로 해아래 수고하는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초청의 대상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만민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장인 것입니다.
이 초청장이 모든 시대 모든 인류에게 발송되었습니다. 이미 발송되었고, 지금도 발송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발송될 것입니다. 수많은 선지자와 예언자들이 초청장을 전달해 왔습니다. 지금도 셀 수 없는 주의 종들과 선교사들이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초청장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초청장의 원본입니다. 시대마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초청장을 받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숱한 사람들이 초청장을 무시하고 수령을 거부하며 찢어버립니다. 심지어는 초청장을 전달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만큼 인간의 마음이 강퍅하고 사악하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초청장을 접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초청을 정중히 받아드려야 합니다. 당신의 목마름을 해결할 다른 방법이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당신의 목마름은 단번에 해갈됩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조건없이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1,7절)
당신의 목마름이 해갈 받으려면 가장 먼저 목마름을 인식해야 합니다. 당신의 목마름을 인식하지 않는 한 당신은 결코 하나님의 초청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빵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습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의 목마름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초청에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말라하면서도 애써 담담한 척 합니다. 마치 자신들의 약함이 노출될까봐 자신을 속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상외의 목마름으로 울고 있습니다. 삶이 엉망진창이 된 채로 말입니다. 자기를 포장하며 속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상담을 해보면 자기 안에 있는 목마름을 스스로 끄집어 내놓습니다. 그럴 때 상담하면서 적잖이 놀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 저분에게도 저런 아픔이 있었구나, 저분에게 저런 목마름이 있었구나’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누구나 다 비슷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말 못할 목마름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만일 당신이 목마름이 없다면 당신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사람이라면 있어야 정상입니다. 육신의 목마름은 성격이 낙천적이어서 없다손치더라도 영적인 목마름은 있습니다. 만일 영적인 목마름도 없다면 당신은 정상적인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뭔가 부족하든지 잘못 됐든지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목마름을 가지고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목마름이 있다는 것이 연약하다거나 무능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있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목마름이 없는 것처럼 애써 부인하거나 속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정직하게 당신의 목마름을 인식하고 인정하면 됩니다. 그래야 당신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그래서 감히 자기 스스로 자기 안에 있는 목마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과정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한 채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인생에 더 큰 사고를 치고 맙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에게도 목마름이 있다고 당당히 선포하십시오.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할 때 길이 보일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시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초청장을 수령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당신의 목마름을 해갈 받을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 듣지 마십시오. 쓸데없는 것을 찾지도 마십시오. 얼마 남지 않는 인생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오직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구촌에 거하는 모든 인생들에게 당신의 초청장을 다 보내십니다. 그분의 초청에는 인종이나 국적이나 신분이나 어떤 것도 제한이 없습니다. 그분의 부르심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분의 부르심에는 조건도 없습니다.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우리가 지불할 대가도 없습니다. 그분의 부르심을 듣고 그냥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한마디로 빈 마음으로 나오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자꾸만 엉뚱한 조건을 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데 발목을 붙잡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데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육신의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7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하는 이유는 육신의 생각 때문입니다. 알량한 육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악인의 생각이요, 불의한 자들의 생각입니다(7절). 그래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만 생각하는 것입니다(롬8:5). 육신의 생각에 매인 자는 결코 영의 생각을 가질 수 없습니다.
로마서8:6절의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는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면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단이 주는 생각이요, 사망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붙드시지만, 사단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과 생각을 누가 주장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주인이 달라집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살지만, 사단의 종들은 사단이 주는 마음과 생각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는 결국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육신의 생각을 내려놓아야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내려놓으면 하나님의 생각이 들어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이 영의 생각입니다. 물론 거짓 영의 생각도 있습니다. 때문에 분별해야 합니다. 사단은 인간의 육신에 못된 것만 집어넣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으로 살면 망할 수밖에 없고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영에 하나님의 마음을 넣어주십니다. 그래서 영이 육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러면 생명을 얻습니다. 때문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길은 육신의 생각을 차단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의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보면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사사건건 충돌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롬8:7). 그러므로 날마다 육신의 마음과 생각을 차단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의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날마다 자기 자신을 쳐서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이요 경건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아니하면, 결코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7절). 신약시대에는 우리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입니다(마11:28). 마태복음 5장6절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결국 목마른 자들을 초청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을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된 초청장을 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기만 하면 어떤 목마름이라도 해갈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물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1절). 여기서 물이 상징하는 것은 메시아 시대 이후에 존재하게 될 축복이나 영생수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수요, 영생수입니다. 요한복음4장 14절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결코 목마름이 없고 갈함이 없는 물은 우리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입니다. 이 생수를 마셔야 영생을 얻습니다. 영육간의 모든 목마름이 해갈됩니다.
(2)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2-3절)
그리고 그분 앞으로 나온 자는 반드시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2-3절). 2절에 ‘나를 청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청종이라는 말은 외적으로 듣고 마는 수준이 아닙니다. 잘 듣고 순종하는 것이 청종입니다. 듣되 잘 들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잘 못 들어서 사고를 칩니다. 잘못된 것을 잘 듣는 것도 문제요, 잘된 것을 잘못 듣는 것도 문제입니다. 둘 다 문제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잘된 것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잘못된 것은 잘 들으려는 청개구리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귀라고 다 같은 귀가 아닙니다. 들을 귀가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듣는 것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되 잘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요즘 엉뚱한 소리는 잘 들으면서 하나님의 소리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라고 명령합니다. 구체적으로 3절에서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고 권면하십니다. 이른바 귀를 쫑긋하여 들으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집중하여 들으라는 말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세상의 더럽고 시끄러운 소음으로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온갖 지저분한 잡음을 다 집어넣습니다. 엊그제 북한의 GPS교란 작전으로 항공기와 선박 등의 피해가 있었습니다. 네비게이션 등 GPS전파를 사용하는 기기는 수송신에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항공기나 선박들에 교란이 일어나면 큰일 납니다. GPS교란으로 동해와 서해안에 조업하는 어선과 여객선의 운항에 어려움을 겪었답니다. 무려 280척의 어선이 조업을 중단했다합니다. 북한이 전파방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도록 엄청난 전파를 발송하여 교란시킵니다. 사단도 고출력의 전파 장비로 음파를 방해합니다. 심지어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전파방해를 시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우리들의 영적인 귀를 닫아버립니다. 혹은 다른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반드시 영적인 귀를 열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채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파수를 고정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채널은 이사야서입니다. 주파수는 55.1에서 7입니다. 이사야 55장1-7절이라는 말입니다. 사단은 채널을 방해하고 주파수를 틀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도록 전파방해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몸은 이곳에 앉아서 예배는 드리는 것 같으나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엉뚱한 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천국 채널로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안테나를 하나님께 고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게 정상입니다. 요한복음10장 27절은 말씀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청종하면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2절). 무엇보다 내 영혼이 소생합니다(3절). 당연히 인생의 목마름은 자동적으로 해갈되는 것입니다.
(3) 그분을 날마다 찾고 구해야 합니다(6절)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은혜는 아무에게나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구하고 찾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라는 말은 은혜의 성격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은혜가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나 열심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있는 자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구하는 자에게 주어지고, 찾는 자가 찾게 됩니다. 은혜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자에게 은혜가 부어지며, 은혜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 자에게 채워진다는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은혜도 받을만한 사람이 받습니다. 은혜 받을 만한 그릇으로 준비된 자에게 은혜가 부어진다는 말입니다. 본문 6절은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날마다 찾고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러 다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하나님을 찾으려고 이곳으로 저곳으로 쫓아다닙니다. 마치 오늘은 이 기도원으로 내일은 저 기도원으로 쫓아다닙니다. 혹은 이 교회 저 교회를 쇼핑하듯이 찾아다닙니다. 정말 잘못된 믿음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마치 하나님이 저 하늘이라는 공간속에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미숙한 사람들도 대부분 그런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과 숨바꼭질을 하듯이 말입니다. 정작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상은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막상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물으면 대부분 하늘을 쳐다보거나, 교회만 연상합니다. 혹은 믿음 좋은 사람을 떠올립니다. 내안에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면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 때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데 시간의 제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6장2절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구하고 찾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은 아주 가까이에 계십니다. 하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이방인들 입장에서 보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먼데 계시지 않고 가까이에 계십니다. 성경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데 하나님이요 먼데 하나님은 아니냐”(렘23:23). 또한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계심같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신4:7). 그래서 본문 7절은 악인들과 불의한 자들을 향하여 자기들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 곁에 계십니다. 내 곁에 계십니다. 계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물론 믿지 않는 자들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악인이나 불의한 자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만나주십니다. 그래야 인생의 모든 목마름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적당히 안주하거나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할 수만 있거든 부지런히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긍휼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믿는 자의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안에 나와 함께 계십니다. 가까이 계시는 것과 함께 계시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는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생수를 부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일입니다. 믿는 자는 더 이상 이산가족을 찾듯이 하나님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믿는 자가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은 내안에 나를 성전삼고 계시는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은 결국 주님의 마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안에 나를 성전 삼고 오신 우리 주님의 마음을 찾고 구하면 내안에 주님의 마음이 흘러넘치게 됩니다.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을 감싸게 됩니다.그리고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결국 나는 내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새 언약이고, 천국복음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마음을 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 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복음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