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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의 복(시73:23-28)-2018.2.4

작성자최규진|작성시간18.02.03|조회수1,312 목록 댓글 0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의 복(73:23-28)-2018.2.4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의 복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가까이 해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믿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가까이 합니다. 가까이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수준과 관심사를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면면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이 땅에서의 삶의 방향이 결정되고, 영원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근묵자흑이라는 말처럼 가까이하는 것에 사람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부적인 것은 차치하고 크게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영적인 사람과 세상을 가까이하는 육적인 사람으로 구분이 됩니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절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가까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세상과 멀어지고, 세상을 가까이하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원리처럼 말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 그렇습니다.

 

(1)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

 

성도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은 하나님과 친근하고 친밀함을 의미합니다. 가까이함은 허물없이 대화가 통하고 비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하나님께 다가서는 것이라고 말하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한발자국 하나님께 다가서는 것이 믿음의 진보입니다. 그런데 요즘 자꾸만 하나님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예 하나님을 가까이하기에는 먼 당신처럼 여기면서 교회생활을 적당히 하려는 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삶속에 개입하시는 것을 무척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혹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자신의 삶이 노출될까봐 연막작전을 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 붙잡힐까봐 도망 다니기도 합니다. 무지한 사람들이지요.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책망합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29:13). 젖먹이 어린애가 엄마 품에 있어야 평안하고, 병아리가 어미닭의 품안에 있어야 안전하듯이, 성도는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복입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세상이 나를 점령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어떤 의미일까요? 본문 23절에 답이 있습니다. 가장 정확한 답은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임마누엘 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 내가 주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의 말씀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직 주님 외에는 다른 것을 알지 아니하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처럼 말입니다. 오직 하늘과 땅에 내가 의지할 분은 주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사는 삶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14절을 통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은 오직 주님 안에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5:24). 정말 하나님을 가까이하려면 세상에서 즐겨하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버리기가 아깝지만 버려야 합니다. 포기하기가 고통스럽지만 포기해야 합니다. 끊기가 힘들어도 끊어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과 얼마나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마음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며 행동이 통합니다. 솔직히 하나님을 옆집 아저씨로 보는 것처럼 서먹서먹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먼 사돈팔촌 대하듯이 거북스럽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잔소리 많은 시어머니 대하듯이 불편한 관계는 아닙니까?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복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은 하나님과 친해지는 것입니다. 서로가 친근해지면 눈빛만 봐도 그 사람의 상태를 알 수 있고 의중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교회를 다녔어도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알 수 없습니다.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과도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을까요? 이른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야고보서 48절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며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본적인 방법 몇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2)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방법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각과 성품과 섭리를 문서로 기록하여 담아놓은 보물창고입니다. 일점일획도 가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십니다”(4:12). 하나님을 믿으려면 말씀을 보고 들어야 합니다. 당연히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때문에 요한계시록 13절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최고의 방법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성경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말씀 속에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싫어하시는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고난당할 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방법이 들어 있고, 억울하고 답답할 때, 외롭고 쓸쓸할 때, 실수하고 실패했을 때, 기쁘고 즐거울 때. 평안하고 형통할 때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방법이 다 들어 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방법이 말씀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사람이 건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졌다는 사람들은 위험합니다. 성경보다 우리를 하나님과 친밀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른 어떤 경건서적보다도 말씀과 가까워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떠나서 가까워지려는 사람들은 불순하고 불경한 사람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19:105). 그러므로 시편 1305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그리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또 다른 방법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거룩한 통로요, 쉽고도 빠른 방법입니다. 예배보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존중하는 시간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도 없습니다. 예배속에 기도가 있고 찬양이 있으며, 헌신과 희생과 교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삶이 예배라는 말들을 참 쉽게 합니다. 삶을 예배답게 살지도 못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교회 안에서 드려지는 공적인 예배보다 하나님을 집중하는 방법이나 시간도 없습니다. 성도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배우고 누리게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거룩한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예배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분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와 교제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타협하거나 절충하면 안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예배를 조작해서도 안됩니다. 예배의 날짜나 시간, 순서나 방법이 성경에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로 약속된 것이라면 불의한 의도를 가지고 예배를 폄하하고 판단하거나, 불평하고 불참하는 것은 건강한 믿음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공적인 예배에 충실하신 분이 예배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 중에는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도 있고, 예배를 경홀히 여기는 사람들도 있으며, 만홀히 여기는 자들도 있습니다. 절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보통 신앙이 병들었다는 증상 가운데 하나가 예배에 대한 불만입니다. 이 땅에 당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예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배에 대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예배의 기준과 평가를 자기주관으로 판단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감정으로 예배를 판단하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주도권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요, 드리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과 정성, 시간과 물질과 삶의 모든 것을 다하여 전제와 같이 부어지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리고 위로부터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드려야 잘 받습니다”. 세상에 아무도 예배를 판단할 자는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지 못했다는 표현보다는 자신이 잘못된 예배를 드렸다는 고백이 정직할 것입니다. 사실 예배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방법도 없습니다.

 

또한 성전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곳이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만나주시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만나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654절은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은 하나님 백성들의 영혼의 목장이요, 마음의 고향이며, 어머니의 젖줄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지만 성전을 통해 만나주시겠다고 언약하십니다. 이른바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최고의 미팅장소였습니다.

 

물론 구약 성전은 우리 시대 교회라는 장소로 승계되고 확대됩니다. 교회는 우리 주님이 피 흘려주고 사신 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처소는 없습니다. 오직 교회는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만 말하며,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거룩한 처소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반드시 성전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전을 멀리하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성전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본문의 시편기자 아삽도 성소에서 저희 결국을 깨달았습니다(17).

 

아삽이 깨달은 결국은 무엇일까요? 아삽이 실족할 뻔 정도로 고민했던 문제는 의인의 고통과 악인의 형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성소에서 깨달아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인은 보호하시나 악인은 멸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의인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이요, 악인은 세상을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을 성소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진정한 성전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모시고 있는 내가 성전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

 

그러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온통 관심은 복에 있습니다. 믿는 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교회를 통하여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가르침을 받아왔기에 그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믿음과 복을 동일시하는 경향으로까지 오염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위험한 것은 믿는 자들이 말하는 복이 세상이 말하는 복의 개념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떠한 기준도 없이 세상이 말하는 복을 추구하며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162절은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시편 654절은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내안에 나를 성전삼고 계시다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왕, 나의 머리, 나의 전부로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성전이 되어 사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안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본문 27절을 보십시오.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이것이 바로 아삽이 깨달은 인생의 결국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현세에서도 복을 받고 내세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모든 복을 다 받습니다. 영적인 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육신의 복도 받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복이 주어지는지 본문 23-24절을 보십시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이미 자기 오른손을 붙잡아주신 복을 받은 것입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23). 비록 나의 연약한 믿음이지만 내가 지금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내 오른손을 붙들어주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은 주의 교훈으로 인도하시는 복입니다(24절상).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을 방편으로 사용하시는 수단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5). 말씀 안에 교훈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훈 속에는 인생의 심오한 진리와 철학과 삶의 모든 지혜와 지식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교훈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이끌어주시면 나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결코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분으로부터 적극적인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가 살다보면 내 육체와 마음이 쇠잔할 때가 있습니다. 영육이 지치고 낙심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주님이 내 마음의 반석이 되어주시고 영원한 분깃이 되어주십니다(26). 환난 날에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28). 비록 염려와 근심이 내 안에 잠간 머물다갈지라도 그런 것으로 인해 내가 염려와 근심의 바다로 빠지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금방 헤쳐 나옵니다. 반석 되시는 주님이 내 마음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분깃되시는 주님이 내 삶을 행복하고 풍족하게 보장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평강의 복입니다. 세상에 평안과 위로보다 좋은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모든 복보다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복이 주어집니다. 영원한 복을 받게 됩니다. 영생의 복입니다. 2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후에는 나를 영광으로 영접해주신다는 말씀은 영생의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복은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이요, 하나님을 가까이해야하는 최종의 이유입니다. 다른 복은 몰라도 우리 모두 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영생의 복은 인생최고의 복입니다.

 

사람이 어떤 사람과 가까이하느냐, 어떤 것에 가까이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고 영원이 달라집니다. 좋은 사람을 가까이하면 은연중에 좋은 사람을 닮아가는 데, 좋지 못한 사람을 가까이하면 나도 모르게 좋지 않은 물로 오염되고 맙니다. 세상을 가까이하면 세상 물에 젖어들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젖어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가 최고로 복된 자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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