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의 법칙(출35:20-29)-2018.4.22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믿음, 소망, 사랑, 은혜와 축복이라는 단어가 아닐까요? 그러면 가장 인기 없는 단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헌신이라는 말이 아닐까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하지만 성경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시는 단어가 헌신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성경에 믿음이라는 단어는 246회, 소망은 185회, 사랑이라는 단어는 733회 정도 나옵니다. 그런데 헌신이라는 단어는 놀랍게도 2285회 정도입니다. 그만큼 헌신은 하나님의 관심사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단어들은 대부분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들입니다. 주로 우리가 받는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헌신은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는 것에는 익숙하나, 드리는 것에 인색하고 큰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원리는 우리와 다릅니다. 성경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을 강조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지 않고 거두려는 생각이나,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주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다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돌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즉 헌신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신은 우리 믿음의 반응과 열정이고, 믿음의 결과요 열매입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드리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드립니다. 예배와 예물을 드립니다. 찬송을 드리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서 드리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드리는 것을 축복의 마중물로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드리기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에게 드리라고 요구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좋은 것을 주시려고 그렇습니다.
드려야 받습니다. 안 드리면 썩습니다. 물질을 드리지 않으니까 물질이 좋지 않는 곳으로 흘러갑니다. 더러운 곳으로 흘러가서 썩어지는 것입니다. 몸을 안 드리니까 건강이 썩고, 시간을 안 드리니까 삶이 썩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을 너무 가난한 하나님으로, 혹은 인색한 하나님으로 치부할 때가 많습니다. 드리라고 하면 얼굴이 일그러지고, 어두워지고, 어떤 이는 창백해지며 반발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성도들의 믿음을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헌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면 헌신하고 싶어집니다.
유수한 대학의 총장의 아내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서 정신까지 잃고 남편까지 알아보지 못
했다합니다. 남편이 대학 측에 사직서를 제출하자 재단 이사 중에 한 사람이 총장의 사표를 만류하면서 ‘사모님은 총장님의 얼굴을 몰라보시는데요’ 라는 말을 합니다. 그때 총장은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저는 50년 전 제 아내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을 했답니다. 지금 제 아내는 저를 알아보지 못해도 저는 제 아내를 똑똑히 알아볼 수 있답니다’. 두말없이 사표를 제출하고 자기 아내의 병수발에 전심을 다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어떤 사람이 현대인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 자신의 호주머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영리한 설교자는 그들의 호주머니를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세상적으로 똑똑하고 영리한 설교자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민감한 곳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신실한 설교자는 그들의 호주머니를 건드려 주어야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지,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할지를 분별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주의 종들이 오직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열망하십니다.
때문에 건강한 교회는 헌신하는 자들이 넘쳐납니다. 건강한 성도는 헌신의 열정이 불타는 성도입니다. 헌신할 때 우리의 믿음이 강화되고 평강이 넘쳐납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직분이 있다할지라도 헌신하지 않는 자는 병든 성도입니다. 헌신은 축복의 통로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바른 헌신을 해야 합니다. 한번 따라서 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으로 구원하시고, 헌신으로 축복 하신다". 때문에 우리가 믿음이 있다는 것은 헌신되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헌신하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 되었다는 것은 헌신할 준비가 되어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때에, 당신의 사람을 부르시고, 당신의 방법으로, 당신의 일을 하게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본문은 아름다운 헌신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광야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건축하라고 명하십니다. 어차피 광야에서 오래 살 것도 아닌데 굳이 성막을 지어야 하는가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번거롭다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온 백성들이 힘을 다하여 헌신에 참여합니다(5,21,22,24,29절). "드리고, 드렸으며. 가져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헌신의 바른 법칙을 배우고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1) 헌신의 법칙 제1조
헌신의 법칙 제1조는 헌신의 주체를 아는 일입니다. 헌신할 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헌신은 하나님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합니다. 마음이 감동한 자, 자원하는 자가 헌신합니다(21절). 마음이 원하는 남녀 모두가 헌신합니다(22절).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이 헌신합니다(25절). 그리고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가 헌신합니다(29절). 한마디로 하나님을 아는 모든 사람은 헌신해야 합니다. 성막을 건축하는데 구경만 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불평이나 불만을 가진 자도 없었습니다. 또한 방해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헌신에 참여했습니다. 이것이 진정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헌신은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자라면 누구나 헌신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헌신되지 않는 자를 헌신자로 만드는 곳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성도들은 헌신을 통해서 믿음을 배우고 성장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은 헌신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이고, 유익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누구든지 헌신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해야 합니다. 요즘은 세상도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난리를 치는데 교회가 여러분의 복 받는 헌신의 자리를 제공할 때 절대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때문에 교회는 새신자를 헌신자로 만드는 특수대학교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주님은 총장님이시고 목사는 교수입니다. 보통 헌신대학에는 많은 학과들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영광을 돌리는 학과도 있고,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학과도 있습니다. 기도로 영광을 돌리는 학과도 있고, 전도로 영광을 돌리는 학과도 있습니다. 거기에 철야전공, 심야전공, 금식전공, 새벽전공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외에도 많은 학과들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헌신대학에 들어오면 할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헌신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교회도 헌신할 수 있는 성도를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얼마나 헌신하지 않기에 헌신예배를 드리겠습니까? 여러분? 혹시 조폭들의 헌신식을 들어보셨나요? 그들은 피를 나누어 마시고 문신을 새기고 몽둥이로 백대 이상을 때리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절대 배반하지 않고 헌신을 서약한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헌신하기로 작정하는 성도들이 조폭들보다 더 의리가 없고 배짱도 없으며 용기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헌신을 배우고 알아갑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과 정성과 예물과 찬양과 기도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헌신의 종합예술, 혹은 헌신의 비타민"과 같은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의 총합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온전한 헌신입니다. 예배보다 더 온전한 헌신은 없습니다. 예배는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며 몸과 마음과 영혼을 드립니다. 기도를 드리고 고백을 드리며 소원을 드립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드리는 헌신의 종합입니다.
한국이 미국에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책을 쓴 사람이 오연호씨입니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반미주의자였습니다. 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잘못한 것을 끄집어내어 4권의 책을 썼고 미국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미국유학까지 갔다 왔답니다. 그가 가서 보고 깨달은 것은 소련도 망하고 동구권의 사회주의가 다 몰락하고 구라파가 경제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데 미국은 수년간 왜 호황을 누릴 수 있을까? 이유는 미국은 발런티어 정신이 있어서 망할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자원봉사자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적어도 미국인은 일주일에 몇 시간, 혹은 한 달에 몇 번은 자원봉사를 생활화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안하면 그 사회에서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무려 일년에 4천만명이상이 자원봉사에 참여하더랍니다. 우리나라도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하여 자원봉사활동을 늘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대학을 가기위한 일종의 속임수로 활용하고 있는 현실이지요. 사람으로 태어나서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성도로 부르심을 입고 주님을 위해 헌신을 할 수 있는 것은 보통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헌신은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이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알고 헌신도 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압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지 헌신할 수 있다고 생각될 때 결코 머뭇거리지 말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나중에 헌신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헌신하기 가장 적당한 타이밍입니다. 헌신은 내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지 아니하면 헌신의 기회가 사라지고 맙니다. 만일 우리에게 헌신의 기회가 사라지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축복받는 기회, 상급받는 기회를 상실하고 맙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주님이 나를 헌신자로 부르실 때 시간이 없다고, 능력이 없다고, 상황이 안된다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주여 나를 지금 사용하여 달라고 기꺼이 나가십시오. 주님 앞에 헌신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님을 섬기는 종입니다. 심지어 성철이라는 스님도 이런 말을 했답니다. “종노릇은 사람노릇이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한번 신중하게 새겨 볼 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위하여 헌신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면 안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바보가 있습니다. 첫 번째 바보는 불렀는데 안 나가는 사람입니다. 요나 같은 케이스입니다. 두 번째 바보는 안 불렀는데 나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사고 칩니다. 예컨대 웃시야와 사울 같은 사람이지요.
(2) 헌신의 법칙 제2조
헌신의 법칙 제2조는 헌신의 자세입니다. 이른바 어떻게 헌신하느냐는 것입니다. 헌신은 감동과 자원함과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21절,29절). 헌신의 능력은 감동과 자원함과 즐거움에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억지로 한다거나 무덤덤하게 하면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을 뿐 아니라, 기쁨이나 감격도 없습니다. 특히 주님의 일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헌신의 방법 3가지 원칙을 말씀드린다면 이렇습니다. 먼저, 헌신은 감동으로 해야 합니다. 이른바 감동의 법칙입니다. 우리 주님은 나를 구원하시면서 얼마나 감동하셨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분으로 인하여 감동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어지간한 일에 감동을 잘 안합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감동적인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선행이나 효행이나 미담 같은 사례들이 우리 마음을 감동케 하는데도 크게 감동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심령이 메말랐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적으로 말씀드리면 마음이 완악하고 심령이 강퍅해졌다는 말이지요. 헌신은 감동으로 하는 일입니다. 이른바 감동받은 자가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동은 사모하면 받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일은 감동으로 해야 합니다. 감동으로 하지 않으면 감정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군은 두 종류가 있는 것입니다. 감동일군과 감정일군입니다. 감정일군은 자기 기분이나 감정으로 일합니다. 그러나 감동일군은 도둑처럼 조용하게, 신속하게, 깔끔하게 일을 처리합니다.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일합니다. 목사도 감동으로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헌신은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이른바 자원함의 법칙입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 보다 자발적으로 하면 기쁨이 배가됩니다. 물론 안하는 것 보다는 억지라도 하는 것이 낫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주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가다가 후손이 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원하여 감당하면 더 큰 은혜와 복이 주어집니다.
강단에 있는 꽃을 일반헌금으로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름 없는 천사들에 의해서 거르지 않고 올라옵니다.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인 헌신자들이 꽃꽂이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주로 하던 사람들이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헌신하면 훨씬 더 좋습니다. 또한, 헌신은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 이른바 즐거움의 법칙입니다. 주의 일은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 즐거움으로 헌신하지 아니하면 안하는 것만도 못합니다. 어떤 이는 하면서도 불평합니다. 왜 나만 청소해야 하냐고 불평하려면 차라리 안하고 감사하는 편이 낫습니다. 주방에서 봉사하면서 왜 나만 해야 하냐고 불평한다면 차라리 안하고 불평하지 않는 편이 더 낫습니다.
주님께 헌신하려면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 사실 헌신에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혹시 주님께 헌신하면서 불평하고 싶던가요? 헌신하고 나서 성질이 나던가요? 헌신하면서 후회가 나오던가요? 항상 우리가 느끼는 일이지만 헌신하고 나면 정말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 밀려옵니다. 하다못해 교회당을 청소하고 난 뒤에 찾아오는 기쁨은 청소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저는 지금까지 주님의 일을 하고나서 억울하다거나 속상하다고 불평하는 영혼들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짓기 위해 헌신하면서 모두가 감동으로 했고, 자원함으로 했으며, 즐거움으로 했습니다.
(3) 헌신의 법칙 제3조
헌신의 법칙 제3조는 헌신의 도구입니다. 이른바 무엇으로 헌신할까라는 것입니다. 헌신은 우리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헌신의 재료가 됩니다.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과 재능이나 지식 모든 것이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없는 것을 가지고 헌신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헌신하기 원하십니다. 하늘에서 별을 따오라고 시키는 분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지만, 역사하실 때에는 유에서 유로 역사하십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 십일조를 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없어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크게 선심을 쓰는 것처럼 헌신하지 마십시오. 마치 목사를 도와준다는 느낌으로 헌신하지 마십시오. 서로 비참해지고 불편해집니다. 우리가 헌신을 할 때 기억해야 할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1)최상의 것을 원하십니다. (2)최고의 것을 원하십니다. (3)최선의 것을 원하십니다. 결코 이 세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눈먼 것이나 저는 것, 상한 것이나 병든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최상의 것과 최고의 것, 최선의 것을 기뻐하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신은 최상의 것을, 최고의 수준으로 하여, 최선을 다해 드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쓰다 남은 시간이나 물질, 피곤하고 지친 영혼을 드리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예물을 보십시오. 가보처럼 여기는 최고의 물건들이었습니다. 여인들은 자기들이 가장 소중하게 아끼는 가슴 핀, 귀고리, 가락지, 목거리, 금폐물을 드렸습니다(22-28절).
어떤 이는 수양과 해달의 가죽을, 어떤 이는 은과 놋그릇을, 어떤 이는 조각목을, 어떤 이는 자기가 직접 수놓은 베실을, 어떤 이는 호마노와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과 등불과 기름과 향품을 드렸습니다. 얼마나 소중한 예물들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이토록 귀한 예물을 받으십니다.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예물을 가져오던지 모세는 그만 가져오라고 정지를 시킬 정도였습니다(36:5-7). 솔직히 우리들이 드리는 예물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양심이 부끄럽지 않으면 위대한 신앙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던 저는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는 헌신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물질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까지도 포기하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헌신을 통하여 복을 받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사람의 손을 빌리시겠습니까? 그분이 말씀으로 명령하사 기초공사, 토목공사, 전기공사, 소방공사, 설비공사, 인테리어 끝내시면 될 터인데 무엇 때문에 우리의 손을 빌리려 하시겠습니까? 이유는 복을 주시려고 그러십니다.
따라 하십시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헌신으로 상급받자”. 솔직히 우리가 주님을 위해 아무리 고상한 헌신을 한다해도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찢기고 죽으신 주님의 헌신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헌신하면 할수록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헌신은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성전 된 우리 안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헌신의 영을 부어주실 때 그분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헌신을 기뻐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런 헌신된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 헌신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다 헌신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당신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헌신의 주인공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