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하신 하나님(히13:8)-2020.8.2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동일하십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동일하시다는 근본적인 취지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동일하시다는 말씀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로 동일하시다는 말씀이지요. 좀 더 확대시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존재가 동일하시고, 섭리가 동일하시며, 통치가 동일하시고, 사랑과 은혜가 동일하시다는 말입니다. 그분의 모든 역사가 동일하시다는 말이지요. 만일 하나님이 동일하지 않으시다면 하나님이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동일하십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동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변덕이 너무나 심합니다. 상대방에 따라 변하고, 분위기에 따라 바뀌며, 자기감정에 따라 변합니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변합니다. 어제와 오늘은 고사하고 한순간도 동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도 자기를 믿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동일하십니다. 당신이 결정하신 생각이 동일하시고, 약속이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도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이 동일하시다는 말은 흐트러짐이 없고 일정하시다는 말씀입니다. 변함이 없고 변덕이 없다는 말입니다.
호세아서 6장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라는 말씀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자기 백성들을 향해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선포하며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바르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일정하시다는 것입니다. 일정하시다는 말은 흐트러짐이 없고 변덕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른바 동일하다는 말이지요. 그의 나오심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합니다.
하나님은 새벽빛같이 일정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일정하시고, 하나님의 언약이 일정하시며, 하나님의 역사가 일정하십니다. 한 가지 예로 아무리 길고 어두운 밤이라도 반드시 새벽은 옵니다.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새벽을 거른 적이 있던가요? 당신은 혹시 밤이 깊어질수록 다시는 새벽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진 적은 없으셨나요? 정말 당신의 염려대로 새벽이 오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요? 물론 개인에게 따라 다음날 새벽을 맞이하지 못한 사람은 있을 수 있으나 한번도 새벽은 거른 적이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질서를 쫓아 만물을 운행하십니다. 하나님의 동일하신 성품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동일하시다는 성품은 기독교신학에 대단히 중요한 교리요, 우리 믿음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상황이나 시대에 따라 변하시거나 혹은 각 개인이나 나라에 따라 변하신다면 감히 우리가 무슨 근거로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믿음의 근본이 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구약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이 신약에 나타나신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시대를 초월해서 동일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동일하십니다. 각 나라와 족속에게도 동일하십니다. 그러면 짧은 시간에 하나님의 동일하심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고 핵심적으로 가장 중요한 동일하심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성품이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동일하심은 아무래도 하나님의 성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가장 확실한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알더라도 성품을 보고 평가하거나 판단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성품을 보면 하나님의 동일하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혹시 성경을 읽으시다가 하나님의 성품이 일정하지 않다고 여겨지던 곳이 있으셨습니까? 우리가 문자적으로 성경을 읽고 이해하다가 약간의 해석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의도가 다른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당신의 성격적인 결함을 드러내시거나 차이를 드러내신 적이 없으십니다. 아니 있을 수 없다는 표현이 적절하겠지요. 왜냐면 하나님의 성품은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기록된 말씀만 보더라도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고 변덕도 없으십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의 동일하심 때문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달라도, 상황이 달라도, 사람이 달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성품은 동일하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면서 하나님을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것처럼 무례한 생각을 서슴지 않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나님 입장을 두둔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너그럽게 이해하든지 안하든지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성품이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하나님이 신약의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동일하시다는 말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구약의 하나님은 아버지같이 무섭고 엄위하신 성품을 가진 하나님이시고, 신약의 하나님은 어머니같이 인자하고 다정한 성품을 가진 하나님이시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이 신약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동일하신 성품을 가지신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한번이라도 하나님의 성품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 적이 있으시던가요?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이 변개하신 적이 있으시던가요? 혹은 사람에 따라 달라지신 적이 있으시던가요? 물론 시대나 상황에 따라 혹은 사람에 따라 달라진 것처럼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성품이 변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다른 것이요, 상황이 바뀐 것이며, 사람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동일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그분의 성품이 달라진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만물을 운행하시는 그 하나님이시오, 또한 만물을 심판하실 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동일한 성품으로 만물을 지으셨고, 동일한 성품으로 다스리시며, 동일한 성품으로 장차 심판을 집행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일관성입니다. 하나님의 일관성은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성품이 동일하지 않으시다면 하나님은 일관성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일관성이 없는 하나님을 우리가 신뢰할 수 있을까요? 언제 어느 순간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요.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이 동일하시다는 것은 우리 믿음의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동일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품이 동일하신 하나님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한결같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수없이 많지만 대표적으로 하나님의 큰 성품의 두 가지 줄기는 공의와 사랑입니다. 그분은 공의와 사랑을 원칙대로 사용하십니다. 혹시 하나님이 공의로 다스릴 것을 사랑으로 덮어버리시거나, 사랑으로 감싸주실 것을 공의로 징계하신 적이 있으시던가요? 한번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다스릴 때는 공의로, 사랑으로 다스릴 때는 사랑으로 다스리십니다. 그분의 성품이 변덕이 없고,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당신의 성품을 변개시킨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동일하심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품의 동일하심은 부분적인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인 성품이 그러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의로 다스릴 자는 공의로 다스리시고 사랑으로 다스릴 자는 사랑으로 다스리십니다. 한번도 편법을 쓰신 적도 없고 눈감아 주신 적도 없으십니다. 한마디로 당신의 성품에 의심될만한 일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너무나 정확하십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동일한 성품을 가진 자가 없습니다. 인간은 아무도 스스로는 동일한 성품을 가질 수 없습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비교적 일관된 성품을 가진 자들은 사람들로부터 존중과 존경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동일한 성품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동일하신 성품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동일하신 성품을 가지신 분이 내안에 나를 성전삼고 계시므로 말미암아 나도 역시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한 자가 된 것입니다(벧후1:4).
이른바 신의 성품에 참예한 바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전수받은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른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나를 성전삼고 계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사는 것이요, 그분의 은혜로 사는 것이며, 그분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닮아서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사도 베드로는 이런 성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자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결론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동일하신 성품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동일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다스리시며, 말씀으로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말씀은 기록된 말씀 로고스가 있고, 깨달아지는 말씀 레마가 있습니다. 로고스는 객관적이고, 레마는 주관적입니다. 다만 레마는 로고스에 기초합니다. 성경은 전체적으로는 로고스이지만 레마로 사용된 용례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에는 로고스가 대략330회, 레마가 70여회 정도 나옵니다. 참고로 로마서10장17절의 말씀은 레마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변개시킨 적이 있으시던가요? 하나님이 말씀을 번복하신 적이 있으시던가요? 시대에 따라 말씀을 다르게 선포하시거나 적용하신 적이 있으시던가요? 나라와 개인마다 다르게 적용시킨 적이 있으시던가요? 민수기23장 19절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하나님이 인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동일하지 않으시다면 기독교는 생명 없는 종교요, 인본주의 종교일 뿐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다스리시며, 말씀으로 심판하십니다. 우리 믿음의 근거가 말씀이요, 구원의 증거도 말씀입니다. 복음이신 예수님은 말씀으로 선재하셨던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1절은 말씀하시기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가운데서 말씀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방법은 아주 다양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도 말씀하시고, 마음 판에 새겨진 말씀으로도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말씀을 읽으므로, 설교를 들음으로, 기도를 통해서, 찬양을 통해서 들려집니다. 때로는 꿈으로도 들려지고, 심지어는 구제와 봉사와 헌신을 통해서도 들려집니다. 어떤 식으로 들려지던지 하나님을 통해서 공급되는 것이라면 모든 말씀은 동일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말씀의 동일성입니다.
히브리서기자는 1장1~2절에서 “옛적에 선지자들과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고, 때로는 하나님의 천군과 천사를 동원하사 말씀하셨습니다. 때로는 꿈이나 우림이나 둠밈으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통로가 다양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말씀이라면 동일한 말씀입니다. 지금 주의 종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원리도 동일합니다.
물론 이제는 우리 주님이 오셔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 판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서 말씀하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방식입니다. 새 언약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첫 번째 언약처럼 의문에 새긴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두신다는 것입니다(렘31:33, 겔36:26, 히8:10). 그분이 친히 말씀을 우리 마음 판에 새겨주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사람을 통해 배우거나 깨닫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8장11절은 말씀합니다.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성령이 친히 내영으로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누리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보혜사 성령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요, 나의 왕이시며, 머리시고 전부이심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적용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8장16절을 기억하십니까? “성령이 친히 내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성령이 가르쳐주시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거절할 것도 없습니다. 성령이 가르쳐 주시면 가장 완전하고 완벽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분의 가르치심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가르치심도 성령하나님이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십니다. 성부의 말씀이 성자의 말씀이고, 성자의 말씀이 성령의 말씀입니다. 삼위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십니다. 그분을 통하여 공급되는 모든 말씀이 동일합니다.
(3) 하나님의 역사가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작정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역사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이제까지 이루신 일이 있고, 장차 이루실 일이 있습니다. 이른바 하신 일이 있고, 하실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모든 일은 일정하십니다. 그분의 스케줄대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 안에서 이루신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법을 세우시고 집행하심에 있어 법을 초월하시지 않습니다. 법을 무시하거나 취소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공의는 좌우로 치우침이 없는 하나님의 공평무사한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데 있어 말씀으로 법을 세우시고 말씀으로 집행하십니다. 물론 장차 하실 일들도 말씀으로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비록 오래전의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신 일을 보았고, 세상역사를 통해서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장차 하실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루신 하나님의 일은 너무나 공평하셨고 정의로우셨습니다. 이른바 동일하셨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세운 법이 동일하시고, 그분이 행하시는 역사가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동일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에 권위가 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스스로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돋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영광을 취하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동일하신 성품 때문이요, 말씀의 동일하심 때문이며, 역사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스스로도 흠과 점과 티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법도 만민에게 평등해야 합니다. 평등하다는 것은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법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할 때 권위가 서고 효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법은 만민에게 동일할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법이 평등하지 않다면 누가 그런 법을 신뢰하겠습니까? 물론 세상의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못합니다. 이른바 법의 집행이 동일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만민에게 평등하고 동일하십니다. 무엇보다 법을 집행하심이 동일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역사가 동일하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법대로 모든 역사를 이루십니다.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것은 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집행할 수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역사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비록 시대는 달라졌을지라도, 상황은 달라졌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역사를 동일하게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당신의 법을 변개하시거나 초월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의 법을 취소하시거나 무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동일하신 하나님은 동일한 말씀에 근거하여 당신의 법을 동일하게 집행하실 것입니다. 당신의 역사를 동일하게 이루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동일하신 하나님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동일하심이 좋습니다. 하나님이 좋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