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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밀실로 들어가라(사26:20-21)-2020.9.13

작성자최규진|작성시간20.09.12|조회수506 목록 댓글 0

당신의 밀실로 들어가라(26:20-21)-2020.9.13

 

지금 교회는 한번도 경험해 본적이 없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런 경험들이 어쩌면 우리에게 장차 다가올 고난의 때를 이겨낼 수 있는 예방주사를 맞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그나마 지금은 온라인으로라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르지요. 장차 우리에게 이런 예배도 드릴 수 없는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동영상으로도 볼 수 없고, 음성으로도 들을 수 없는 예배의 때가 올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으로 볼 때 분명히 그런 시대는 올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그런 때를 대비하여 훈련을 시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좋게 생각합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를 한두 번 더 드리고, 못 드리는 것으로 우리의 믿음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예배에 어떤 절차나 과정이 없을지라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를 찾으시고, 그런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여 드리는 예배보다,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영으로 드리는 예배를 찾으신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예배의 시간이나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니 어느 것이 맞습니까? 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의 대답을 들어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4:21). 그러면서 그 유명한 예배에 관한 말씀을 하시지요. 요한복음423절과 24절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이는 예배의 장소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예배는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의식을 가지고, 일정한 사람들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그런 시대를 대비하여 영적 훈련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물론 이런 일들을 경험해 본적 없었기 때문에 답답하고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재정이 넉넉하고 규모가 큰 교회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도입하여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방송국을 뺨칠 정도의 화려한 기자재와 시스템을 구축하여 온라인 예배시대를 열어가는 곳도 있습니다. 교회의 형편에 따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무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예배자입니다. 예배의 환경이나 시스템이 아니라 예배자입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한 예배가 아니라,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지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지금 코로나로 인하여 모든 것이 폐쇄되고, 모든 것이 축소되고, 모든 것이 위축당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예배라고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예배가 제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의 슬픔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그런 마음을 세상이 알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나 정부는 교회를 마치 사업장과 같은 시각으로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더 아픕니다. 그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믿는 자들끼리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입니다. 다들 자기들 믿음의 수준에서 자기들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주장과 다르면 너무나 쉽게 공격하고 아픈 말들을 토해냅니다. 다들 자기들의 믿음이 옳고, 자기들의 방법이 옳다는 거지요. 마치 지금 우리 시대가 자기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사사시대를 보는 것 같습니다(21:25). 이럴 때일수록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우연은 없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뜻이 있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어떤 시대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 코로나시대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정답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 아시지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만의 방법이 옳다고 고집부리면 안됩니다. 제발 자기 믿음이나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본문 말씀으로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소나기 올 때는 피하라는 말이 있지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는 소나기입니다. 멈출 것입니다. 잠간 피하면 됩니다. 물론 소나기로 인해 교회가 겪고 있는 아픔과 슬픔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이지요. 가장 큰 슬픔이 무엇일까요? 예배의 자유가 제한된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예배의 자유가 제한된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지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예배의 자유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배를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예배의 자유가 없어지면 교회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고, 성도의 생명력은 급속히 악화됩니다. 신앙이 도태되거든요. 그런데 지금 예배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도들이 신앙의 자유가 제한된 것처럼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지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종교적인 양심을 걸고 예배의 자유를 위하여 결사 투쟁해야 할까요? 아니면 묵묵히 정부의 방침에 따라야 할까요? 솔직히 저는 둘 다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 문제는 투쟁의 방식이냐 혹은 동조의 방식이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어떤 시대 어떤 일일지라도 하나님은 당신과의 관계를 더 원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예배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원하십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제사를 안 드려서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나요? 아니에요. 오죽하시면 말라기110절에서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실까요? 이럴 때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 못 드린다는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잠간 밀실로 들어가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경청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고,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것은 율법적 사고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예배로만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근거가 없습니다. 가장 위험한 신앙은 한 구절의 성경을 가지고 성경 전체를 해석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은 한 구절의 성경으로 성경 전체를 풀이하려고 하지요. 성경은 통으로 보아야 합니다. 때문에 현장 예배를 고집하는 사람도 나름대로 철학을 가지고 그럴 것이요, 온라인으로라도 예배를 드리려는 사람도 그 나름대로 철학을 가지고 그럴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 논쟁하지 말고 잠간 나만의 밀실로 들어가십시다.

 

(1) 밀실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믿음은 전천후가 되어야 합니다. 이른바 교회 안에서의 믿음과 교회 밖에서의 믿음이 동일해야한다는 말이지요. 그런 차원으로 말씀드리면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믿음이나, 공개되지 않는 장소에서의 믿음이 동일해야 하겠지요. 이른바 믿음의 안마당이나, 뒷마당이 같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 보여지는 공간에서의 믿음이나, 보이지 않는 밀실에서의 믿음이 동일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때문에 무조건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믿음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밀실에서의 믿음이 가장 정직한 믿음일 것입니다. 밀실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밀실은 은밀한 장소요, 기도의 골방입니다(6:6).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밀실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밀실은 자기만 들어갈 수 있는 아지트요, 공간입니다. 자기 허락을 받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요. 그래서 본문도 네 밀실로 들어가라고 말씀합니다. ‘네 밀실에 어중이떠중이가 다 들어오면 안됩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있도록 오픈하면 밀실이 아니지요. 오픈된 공간은 밀실일 수 없는 거예요. 그야말로 밀실은 나만의 공간이요, 내 허락을 받은 자만 들어올 수 있는 비밀의 공간이에요. 물론 자기만의 물리적인 공간도 밀실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밀실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내 영혼이 출입하는 곳이에요. 우리는 이곳을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성전이라는 개념으로 밀실을 말하자면 지성소를 말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임을 감안할 때 내 심령의 좌소를 밀실이라고 말하겠지요. 더욱 쉽게 말하면 내 마음을 의미합니다. 오직 그곳은 나와 하나님만 만나는 곳입니다. 추하고 더러운 것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고, 들어와서는 안 될 곳입니다. 아무나 들어와서는 결코 안 될 곳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이 자기 심령에 아무나 들어올 수 있도록 잠금장치를 해제해 버렸습니다. 비밀번호를 해제해 버린 것이에요.

 

그래서 아무나 수시로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지요. 한마디로 잠금장치가 없어요. 나만의 밀실이 오픈되다 보니 더 이상 하나님을 모시는 처소가 안되는 거지요. 하나님은 더러운 것과는 상종을 안하시고, 더러운 곳에서는 거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밀실이 모든 것에 개방이 되어 더 이상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곳이 아닌 거예요. 성도에게 나만의 밀실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밀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밀실을 반드시 구별해야 합니다.

 

마치 아가서에서 솔로몬이 침실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침실은 아무에게나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침실은 둘만의 사랑의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성도의 밀실은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침실이에요. 밀실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독대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영적인 밀실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해 버렸기 때문이에요. 밀실의 기능이 사라진 거지요. 사단은 가장 먼저 성도의 밀실을 공격합니다. 밀실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밀실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역사가 일어나거든요.

 

결코 우리는 나만의 밀실을 아무에게나 오픈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사단에게 노출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은 성도의 밀실을 노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 시대입니다. 솔직히 언제 끝날지 모를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사단에게 나만의 밀실을 너무 쉽게 공개해 버린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우리의 치부가 다 들어나 버렸습니다. 우리의 민낯이 다 공개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교회도 밀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밀실이 사단에게 공개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흑암의 세력이 교회의 밀실을 야금야금 들어와서 장악해 버린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유대왕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비교적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지요. 이사야 39장에 보면, 히스기야가 죽을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에게 축하 사신을 보냅니다. 그러자 히스기야가 사자를 인하여 기뻐하여 그에게 궁중보물,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와 보물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한마디로 궁중의 소유와 전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39:2).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에게 그 사람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이고, 무슨 말을 하였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그 때 까지도 히스기야는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이사야 선지자에게 왕의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고, 자기 보물 중에서 안 보여준 것이 없었다고 말합니다(39:4). 마치 자랑하듯이 말입니다. 이것이 히스기야의 결정적 실수입니다. 그는 자기를 드러내고 세상의 보물을 자랑하는 데만 급급한 것이지요. 히스기야의 죄는 교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히스기야를 징계하십니다.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날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바 된다는 것입니다(39:6). 그리고 그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다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감으로 그대로 성취되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는 한순간의 교만함으로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단의 세력에게 모두 다 오픈한 것입니다. 공개해서는 안 될 것을 공개한 것이지요.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밀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적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영적인 비밀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마귀에게 공개하는 것은 영적 스파이입니다. 그것은 밀실을 공개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그것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마귀의 세력과 내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신다는 말입니다.

 

절대 나만의 밀실을 오픈하면 안됩니다. 밀실의 주인은 자기 자신입니다. 내 밀실의 열쇠를 누가 가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내 밀실의 키는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도 네 밀실로 들어가라고 주문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자기만의 밀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밀실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밀실 아닌 밀실이 너무 많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자기만의 밀실에 세상의 좋아하는 모든 것을 다 감추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돈이 있습니다. 명예와 권세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자기 밀실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더 이상 영적인 밀실이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 한국교회가 대부분 그런 것은 아닐까 모릅니다. 그래서 작금의 코로나는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있는 밀실을 청소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각 개인의 심령의 밀실을 하나님이 청소하시는 중인지 모르지요. 마치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케 하시던 주님처럼 말입니다. 밀실이 밀실 같아야 밀실이지요. 더 이상의 밀실이 아닙니다. 성도의 밀실은 세상 사람들의 밀실과는 달라야 합니다. 성도의 밀실은 영적인 밀실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 영적인 밀실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밀실 안에 세상적인 오만잡동사니들이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쓸모없는 쓰레기들만 가득한 것은 아닌지요? 혹시 나의 영적 밀실이 파괴된 것은 아닌지요? 나만의 밀실이 파괴되었다면 지금 당장 나의 밀실을 복원하십시다. 그리하여 나만의 밀실로 들어가십시다. 밀실보다 좋은 곳은 없습니다. 밀실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최고의 장소입니다. 밀실은 하나님과 내가 친밀히 교제하는 곳입니다.

 

(2) 당신은 영적 밀실을 갖고 있습니까?

 

각자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지금 나만의 밀실이 있는지요? 그 밀실은 어떤 상태인지요? 당신은 그 밀실을 얼마나 자주 이용하는지요? 어떤 자의 밀실은 거미줄만 쳐 있는지 모릅니다. 쓰레기만 가득할는지 모릅니다. 지금 당신의 밀실을 점검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우리로 하여금 그 밀실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잠간만 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한마디로 모든 사역을 잠시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도 잠간 내려놓으라는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주님보다 사역을 더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주님보다 주님이 맡겨주신 성도를 더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혹은 주님보다 주님의 교회를 더 사랑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대부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함정입니다. 대부분의 사역자들이나 믿는 자들이 주님보다 주님에 관련된 것을 더욱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사역일 수 있고, 사람일수 있으며, 주의 몸 된 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하면 속을 수 있는 함정입니다. 주님보다 사랑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예배일지라도 말입니다. 예배보다 더 중요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역보다 예수님이 우선입니다. 사람보다 예수님이 우선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주님보다 사역을 더 중시했고, 사람을 더 중시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이 지금 말씀하십니다. 잠시 밀실로 들어가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잠간 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죽을 것 같았는지 모릅니다.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면서 마치 주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밀실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잠간만 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오직 밀실에서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과 교제의 깊은 시간을 가지라는 말이지요. 주님은 사역이나 사람보다 주님과의 교제를 더욱 간절히 원하십니다. 사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나 없어도 지역전도는 이루어집니다. 우리 교회가 없어도 지구촌선교는 이루어집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영적인 훈련의 시기를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때문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만의 밀실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밀실은 당신의 은밀한 말을 지켜 줄 것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속삭이는 음성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물론 본문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대환난 날에 성도가 취해야 할 자세를 말합니다. 그 날에 성도된 자들은 세상과의 분주한 모든 거래를 중단하고, 하나님과 은밀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랬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 그와 가족들이 방주로 들어갔던 것처럼, 애굽 땅에 임한 하나님의 재앙 가운데 자기 백성들을 집으로 들이켜 문을 닫은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렇게 보호하실 것입니다.

 

마치 어미닭이 병아리를 모음같이 말입니다. 병아리는 어미닭의 품속이 밀실입니다. 밀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야 합니다. 문을 닫는다는 말은 세상이 즐겨하던 모든 것을 차단하라는 말이지요. 그동안 나의 밀실에 드나들던 모든 것을 차단하라는 것이지요.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밀실로 너무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고, 출입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분주했고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밀실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잠간 숨어 있으라고 말입니다. 그 시간은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키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일지 모릅니다. 모든 것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를 향하신 선한 목적이 있을 것이니까요. 때문에 지금 억지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서두르지 말고, 밀실로 잠간 들어가십시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어렵고 힘들다고 불평하지 말고 밀실로 들어가십시오. 더러운 세속의 문을 닫고 오직 하나님과 교제하십시다. 그리고 내 영혼을 하나님께 맞추십시다. 내 영혼을 정화시키는 시간으로 삼으십시다. 분명히 하나님은 이 기간에 내 영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성도들이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밀실을 찾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아니 밀실을 관리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자는 자기의 밀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피곤하다는 핑계로 나만의 밀실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두 가지 핑계는 바쁘다피곤하다입니다. 이 두 가지가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당신의 바쁜 것이 내려놓아지고, 당신의 피곤함이 내려놓아짐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더 바쁜 자 되시고, 하나님과 더 친근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얼마든지 내 영혼을 유익케 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나만의 밀실에서 조용히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더 적극적인 사랑을 나누며 교제하십시오. 그래서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으로 삼으십시오.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죽이는 가장 좋은 타이밍으로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시간도 의미 없는 시간은 없습니다. 어떤 이는 코로나로 인하여 마치 우리가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처럼 생각될는지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친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개인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요, 교회도 교회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감사하고 평안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하십시다. 분명한 것은 이 또한 반드시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간만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본문도 잠간만 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어떤 영광과도 비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지금 밀실로 들어갈 때입니다

 

지금 우리가 밀실로 들어가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결코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분노를 참으사 당신의 처소에서 나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거민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이른바 당신의 분노를 쏟으실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살해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이 땅에 억울한 모든 것들을 신원하신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 감추지 아니하신다는 말이지요. 그들이 행한대로 보응하신다는 말이에요. 한마디로 원수 갚는 것은 우리 일이 아닙니다. 악인들의 행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지금도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악한 것의 시비를 가리려고 따지고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올무에 빠질 수 있지요. 분명히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오히려 선으로 악을 갚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의도도 같은 맥락입니다. 밀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잠간 숨으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잘못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 일입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의 부지런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우리 스스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열정이 하나님의 열심을 앞서려고 합니다. 또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보다 앞세웁니다. 우리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빠르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더 고상한 방법을 고안해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이사야서558절과 9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여러분은 이 말씀에 동의하십니까?

 

감히 어떤 인간이 하나님의 생각을 앞설 수 있고, 하나님의 방법을 초월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하기 때문에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도와주는 조력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조력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통로요, 도구일 뿐입니다. 절대 우리가 하나님을 도와준다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십시오. 율법적인 사람들은 계명의 한 가지라도 자기들이 지키고 도와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의를 주장하고 자랑하며 사는 법이지요.

 

그러나 새 언약을 믿고 새 언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 그런 망언을 할 수가 없고, 망발을 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되어짐이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냥 밀실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잠간만 기다리면 됩니다. 물론 이것마저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되어짐이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하는 것처럼 안달 부달하지 마십시오. 혹은 내가 없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금방 무너지는 것처럼 착각하지 마십시오.

 

시대가 악할 때일수록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멈추어야 할 때 멈추고, 나아갈 때 나아가야 합니다. 멈추어야 할 때 달리는 것이 불순종이고, 달려가야 할 때 멈추어 있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둘 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죄악입니다. 사사로운 자기감정으로 시대를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믿음의 성도와 교회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밀실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비겁한 것이 아닙니다. 혹은 게으른 것도 아닙니다. 내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취하는 최고로 값진 시간이요, 숭고한 믿음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현상을 바라보며 더 이상 싸우지 말고, 각자의 밀실로 들어갈 때가 아닌지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내가 들어갈 진정한 밀실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은신처요, 피난처이십니다. 그래서 시편119114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나의 진정한 밀실은 주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밀실의 주인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먹고 마시며 사는 것이 진정한 밀실신앙입니다. 지금 우리가 밀실로 들어갈 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간만이라도 나만의 밀실로 들어가십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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