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하나님의 백지수표(대하1:7-13)-2020.11.1

작성자최규진|작성시간20.10.31|조회수314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백지수표(대하1:7-13)-2020.11.1

 

요즘은 모든 것이 감동시대입니다. 물건을 만들어서 사고파는 것도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개발해도 고객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래서 기업들마다 고객을 감동시키는 마켓팅 전략에 전력을 다합니다. 그것은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것도 그렇습니다. 믿음도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이른바 하나님을 감동케 하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믿음은 하나님이 먼저 나를 감동시켜주신 선물입니다. 성도는 이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라는 선물을 확장시키고 확대시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이른바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먼저 나를 감동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감동치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감동의 연속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우리가 얼마나 무뎌졌는지 모릅니다. 어지간한 일에는 감동이 안됩니다. 어지간한 서프라이즈는 눈 깜짝도 안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영적으로 민감한 자는 하나님의 감동에 민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아주 소소한 일이나 일상적인 일들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감동의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케 해드려야 합니다. 믿음은 생명입니다. 생명은 자라는 게 정상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믿음의 선물을 주셨지만 이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선물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감동시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믿음에도 크게 감동하십니다. 작은 행동 하나에도 무척 기뻐하시고 감동하십니다. 하나님은 감동에 아주 민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왠만한 것에 감동치 않으나,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믿음, 볼품없는 언행 하나하나에도 무척 감동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감동시킨 적이 얼마나 될까요? 먼저 하나님을 감동시킨 성경의 인물들을 알아보십시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인물들이 동일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는 믿음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각 사람에게 주어진 성품이나 기질이나 은사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한마디로 각 사람에게 하나님을 감동시킨 특징들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에게 하나님은 다양한 것을 가지고 충분히 감동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지요.

 

큰 틀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감동시켰고, 이삭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감동시켰으며, 야곱은 열정을 통해 하나님을 감동시켰고, 요셉은 정직과 진실을 통해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을 통해 하나님을 감동시켰고, 다니엘과 세 친구는 죽음의 사지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감동시켰습니다. 또한 욥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감동시켰으며, 다윗은 일편단심 하나님만 신뢰하는 믿음으로, 사도 바울은 사나 죽으나 십자가의 예수만 전함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을 감동시킨 믿음의 거장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에게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고유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어떤 이는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을 감동시키기도 하고, 어떤 이는 고난 속에서 감동시키기도 하며, 어떤 이는 가난을 통해 하나님을 감동시키기도 합니다. 결국 성경은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과 사단을 감동케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리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사단을 감동시키겠지요.

 

누군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면 사람도 감동하고 세상도 감동합니다. 그런데 사단은 흥분하고 충동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하고 쉬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어떤 것이라도 결국 믿음으로 연결됩니다. 한마디로 믿음의 언어, 믿음의 행실, 믿음의 구제, 믿음의 선행, 모든 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것에 감동하신다는 말이지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던 베드로의 말 한마디에 주님이 격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큰 감동을 받으신 것이지요. 가버나움 백부장이 주님께 나아와서 자기 하인의 중풍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하면서도 주님의 심방을 감당치 못하겠다는 백부장의 말 한마디에도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보신 적이 없다고 감동하십니다(마8:10). 귀신들린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하소연하는 가나안 여인에게 혹독한 언사까지 다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여인의 믿음이 크다고 감동하시고(마15:28),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의 헌금을 칭찬하신 주님, 옥합을 깨뜨리는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신 주님의 감동을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본문은 솔로몬을 통해서 감동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이 왕위가 견고해지고 심히 창대하게 될 때 그는 온 이스라엘의 재판관과 방백들과 족장들과 회중들과 함께 하나님의 회막으로 가서 놋단에서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6절). 그러자 하나님이 그 밤에 급하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 들어보지 못할 질문을 하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백지수표를 건네주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은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큰 감동을 받으셨으면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한마디로 기분이 최고조에 이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면 하나님은 우리를 평생 감동시켜 주십니다. 솔로몬의 작은 행실을 통해 감동하신 하나님은 솔로몬의 생애를 감동으로 충만케 해 주셨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솔로몬의 어떤 것에 이렇게 큰 감동을 받으신 것일까요? 바꾸어서 솔로몬은 무엇으로 하나님을 감동케 했을까요?

 

(1) 솔로몬은 예배로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2-6절)

 

솔로몬은 일천번제로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구약의 제사는 지금의 예배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가장 탁월한 방법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예배를 가장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배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섬기는 것이며,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무조건 모든 예배에 감동하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예배도 있습니다.

 

본문이 구약 제사시대이기 때문에 제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겠습니다. 구약에도 제사를 잘못 드려서 하나님이 진노하셨던 사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고 진노하신 적은 없습니다. 다만 제사를 잘못 드려서 진노하신 사례는 많이 있지요. 하다못해 성전에서 다른 불로 제사 드리던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를 불이 나와서 삼켜버렸습니다(레10:2). 말라기 시대에 잘못된 제사를 드리던 이스라엘을 향해 책망하시고 진노하시던 하나님을 아십니까? 눈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던 이스라엘을 향해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말1:8).

 

오죽하시면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실까요(말1:10). 제발 번폐스러운 제사 좀 드리지 말라는 선포입니다. 또한 자질도 되지 않으면서 제사를 드리다가 혼쭐난 왕들도 있습니다. 사울왕은 불순종으로 제사를 드리다가 하나님의 버림을 당하고, 웃시야 왕도 주제파악을 못하고 성전제사를 강행하다가 문둥병의 저주를 받고 일생을 마칩니다. 그러므로 제사를 드리되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감동하시는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물론 예배도 그렇지요. 예배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말입니다.

 

솔로몬은 부왕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으로 취임을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은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다윗이 늙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고자 반역을 시도했습니다. 물론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지요. 하나님의 은혜로 솔로몬이 왕이 되었지만 극복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경험은 없는데 시국은 시끄럽고, 임무는 막중하니 참으로 암담하기 그지없었지요. 먼저 제사장 아비아달을 파면하여 추방하는 일과 군대장관 요압을 제거하는 일이며, 다윗 왕을 저주하던 시므이를 제거하는 일등 정권초기의 진통이 만만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솔로몬의 왕위는 견고해져 갔고 심히 창대케 되었습니다(1절). 그가 창대케 된 것은 그냥 단순하게 되어 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솔로몬에게 믿음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어떻게 극대화시켜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느냐는 것은 솔로몬의 믿음의 반응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감동시킬만한 믿음을 가질 것이냐, 아니면 사단을 충동시키는 믿음으로 전락할 것이냐는 것은 결국 솔로몬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믿음은 하나님을 감동케 하는 믿음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정권을 잡은 후에가장 먼저이스라엘의 각료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기브온 산당으로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각료들을 임명하고 의견을 수렴한다고 워크샾을 하던지 축하잔치를 했을는지 모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에서 중대한 자리에 임명된 자들은 가장 먼저 국립묘지를 참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을 삼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믿는 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특별히 국가의 위정자들이 보고 배워야 할 자세요, 덕목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세우는 일은 믿음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니 보통 믿음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솔로몬은 모든 국가의 각료들과 참모들과 회중까지 동원하여 기브온 산당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모세가 광야에서 지어놓은 하나님의 회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성전이 없었으므로 어디에 가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고민되는 때였습니다.

 

물론 다윗왕 때 궁궐 안에 성막과 법궤를 모시고 있던 장소도 있었지만 솔로몬은 기브온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유는 모세가 만든 성막이 있는 곳이고 놋 제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놋 제단은 모세이후 약 480년간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 역사적인 제단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가장 많은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정기가 서려있는 유서 깊은 곳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솔로몬은 그 유명한 일천번제를 드립니다. 일천번제는 양과 수에 상관없이 어마어마한 제사입니다.

 

번제의 특징은 희생제물을 잡아 피를 제단에 뿌린 다음에 각을 뜨고 속에 있는 내장을 제거한 후에 통째로 제단위에 불로 사르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온전한 헌신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드리는 자원제사였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원했기에 일천번제의 희생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습니다. 당시 선지자가 일천번제를 드리라고 힌트를 준 것도 아닙니다. 솔로몬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놋 제단은 길이가 2.3m, 높이가 1.4m, 넓이가 2.3m의 청동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아마 1주일간은 족히 제사만 드렸을 것입니다. 모든 만사를 다 내려놓고 솔로몬은 오직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에만 집중했을 것입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솔로몬은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집중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급한 마음에 약식으로 간단한 제사를 드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어떤 사람도 드려 본 적이 없는 일천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한마디로 일천번제로 왕의 사역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희생적이고 자발적이며 통 큰 제사에 크게 감동하셨습니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주면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하나님은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큰 감동을 받으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신약의 예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요? 당연히 예배입니다. 예배는 영어로 worship입니다. worship은 worth와 ship의 합성어입니다. 즉,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최고 최상의 가치를 인정해 드리는 가장 감동스런 예식입니다.

 

예배에는 우리의 전 인격적인 요소가 다 들어 있습니다. 몸을 드리고 마음을 드리고 영혼을 드리며 시간과 물질을 드립니다. 또한 정성을 다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드립니다. 한마디로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바치는 종합예술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의 경중을 따집니다. 그래서 대예배, 혹은 소예배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어떤 예배라도 집중하여 드리면 최고의 감동을 받으십니다. 어쩌면 예배보다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좋은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고객에게 드리는 서비스 유형이 3가지 정도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마지못해서 억지로 하는 서비스가 있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억지로 하는 서비스입니다. 두 번째는 상식선에서 하는 서비스가 있답니다. 의무적으로 고객이기 때문에 하는 유형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는 감동을 주는 서비스가 있답니다. 고객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 유형입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요? 예배를 통해서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에 하나님은 감동하십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보다 성경적으로 말씀드리면 솔로몬이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솔로몬의 제사에 감동하셨다는 말이지요. 먼저 우리에게 감동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오, 우리를 통해 감동을 받으신 분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감동의 주체는 하나님이시지요. 지금까지 솔로몬을 감동케 하신 하나님이 솔로몬의 작은 믿음에 감동하십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백지수표를 내미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7절). 무엇이든지 다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2) 솔로몬은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8-10절)

 

여러분 같으면 무엇을 달라고 하시겠습니까? 솔로몬은 또 다시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필요한 것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기를 위하여 구하지 않았습니다. 8절에 보니 솔로몬은 주께서 전에 자기 아비 다윗에게 주셨던 은혜를 추억했습니다. 그는 자기 아비 다윗 시대를 형통케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은혜마저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감히 자기 열조에게 주신 은혜까지 기억하는 솔로몬을 보십시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체험한 민족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먼저 잊어버리는 민족도 이스라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홍해를 건너 출애굽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수르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길쯤 행한 후에 물을 얻지 못하자 곧바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스라엘의 불평의 속도는 정말 빨랐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체험했던 기가 막힌 기적들을 잊어버린 것일까요? 아마도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여기서부터 유래되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방법 중에 하나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은혜로운 사람은 한마디 말을 해도 감동스럽게 합니다. 지금 솔로몬은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감동의 연속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구하는 것은 의식주 문제에 국한되어 있습니다만 솔로몬은 그런 구차한 것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자기가 잘나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왕이 되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8절).

 

그리고 자기 아비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받았고, 하나님께서 어떤 언약을 세우셨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 아비 다윗에게 허락하신 언약들을 굳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 말은 다윗과 세워주신 언약을 이루어 주실 것을 간구한 것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다윗에게 세워주신 언약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사무엘하7장 8절에서 16절까지가 다윗에게 세워주신 언약입니다. 그 언약의 세 가지 큰 특징은 이것입니다.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삼하7:9절), 평안케 하리라(11절), 견고케 하리라(12절)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종합해 보면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나옵니다. 그것은 다윗의 왕권을 든든히 세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왕권의 견고함과 평안함과 존귀함입니다. 무엇보다 다윗의 뿌리에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나신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윗 왕정의 정통성과 연속성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뿌리에서 나셔야 하기 때문에 솔로몬은 다윗의 왕정이 법적으로 정통성 문제에 흔들림이 없어야 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정통성과 함께 연속성이 있어야 함도 잘 알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솔로몬은 오직 아비 다윗 왕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이 자기를 통해 이루어지고 유지되어짐을 최고의 관심사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우선적으로 그것을 구했던 것입니다. ‘다윗에게 허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감동스러운 일이겠습니까?

 

(3) 솔로몬은 삶의 우선순위로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8-10절)

 

솔로몬은 보통의 왕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왕권초기부터 자기의 영달이나 자기의 유익을 쫓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간구했던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두었던 것입니다. 마치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우선순위처럼 말입니다(마6:33절). 무엇보다 그는 자기 아비 다윗을 통해 언약된 메시아왕국이 든든히 세워지기 위해서는 통치자로서의 지혜와 지식의 필요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10절상). 그 이유도 얼마나 멋집니까?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자기에게 맡겨주신 백성들을 잘 재판할 수 있게 말입니다(10절하). 그것만이 다윗을 통해 세워진 자신의 왕정이 든든히 세워지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10절 말씀 속에는 자신의 연약함과 무지함, 무능함이 다 들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신 하나님께 구한 것입니다. 모든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지혜와 지식으로 백성들을 치리하면 평안하고 안전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지혜와 지식으로 백성들을 통치하면 고통만 따릅니다. 때문에 솔로몬의 지혜와 지식은 모든 세대를 초월하여 고유한 트렌드가 되고 리더쉽이 된 것입니다. 우리 보기에도 이렇게 감동스러운데 하나님은 얼마나 감동하실까요? 솔로몬이 구한 지혜와 지식은 다시한번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솔로몬의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기쁘게 받으신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칭찬해 주십니다. 그리고 구하지 아니한 모든 것까지 더하여 주십니다(12절).

 

지혜로운 사람은 일의 우선순위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일이 중요한 것인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입니다. 일에는 급한 일이 있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이런 일을 구분하는 것이 우선순위입니다. 하지만 미련한 사람은 일의 우선순위를 알지 못합니다. 그는 바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하지도 못합니다. 솔로몬은 일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아는 자였습니다. 그러기에 가장 우선적인 것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와 지식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와 지식을 구했습니다.

 

그런 솔로몬의 마음을 가상히 여긴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뿐만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와 재물과 존영까지 더하여 주신 것입니다(12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감동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감동시키는 모든 자에게 아낌없는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마6:33절). 때문에 예수 믿는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은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동하시는 일은 하늘에서 별을 따오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수준에 맞는 언행심사와 믿음의 모든 행위를 가지고도 하나님은 충분히 감동하십니다. 우리 안에 간직한 작은 마음에서부터 언행심사까지 모든 것은 얼마든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충분한 자원과 에너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은 그런 것들을 하나님께 집중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고를 원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원하십니다. 사실 솔로몬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은 솔로몬에게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에게 이미 주어진 것들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자원들을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집중시켜 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솔로몬의 지혜인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모두전심을 다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집중시켜야 합니다. 솔로몬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또한 우선순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우리 모두 솔로몬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주인공들이 되십시다. 할렐루야!!!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