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행26:24-32)-2021.2.21
사람에게 가장 듣기 싫은 소리 중에 하나가 미쳤다는 말일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어떤 감정을 느끼시겠습니까? 인격을 모독하는 소리라 하여 발끈할는지 모릅니다. 언어폭력이라고 분노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뭔가에 미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미쳤다는 말속에는 부정적인 어감도 있고, 긍정적인 어감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어감은 정신적인 장애가 있다는 말이요, 긍정적인 어감은 무슨 일이든지 집중력이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차원으로만 듣고 기분 나빠하지 마시고 긍정적인 차원으로 접근하셔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보는 좋은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미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냥 적당히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정말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하는 세상이에요. 그래서 대부분 뭔가에는 미쳐 사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 살든지,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나 특기에 미쳐 살든지 말입니다. 미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니까요.
세상은 미친 자들이 운행합니다. 소수의 미친 자들에 의해 세상이 굴러가는 것이에요. 솔직히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적인 혜택을 보세요. 대부분 미친 자들이 연구하고 개발하여 창조한 것들입니다. 누군가 그 방향으로 미치지 않았다면 더 이상의 진보나 성장이 있었겠습니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냥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거든요. 대부분 미친 자들이 미치지 않으면 창조될 수 없는 것들이지요. 속칭 미친 자들이 그 분야에 몰두하여 연구하고 개발하지 않으면 결코 누릴 수 없는 혜택들이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세상은 소수의 창조적인 미친 자들에 의해 분화되고 진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정하든지 안하든지 모든 사람들은 미친 자들의 덕을 보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만일 그런 자들이 없으면 세상은 더 이상의 진보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미쳤다는 말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고 오히려 건강한 용어로 승화시켜 감사하며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어떤 분야든지 미친 자들이 많아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고 붙였습니다.
미쳤다는 말의 헬라어는 ‘마이네’로서 헛소리를 하다는 뜻입니다. 보편적으로 정신적인 장애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꼭 부정적인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집중과 성취의 의미를 담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떤 일에 집중하거나 열정을 가진 사람을 미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자기가 하고자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한마디로 집중력이 대단한 사람이지요. 그러나 또 한 가지 의미는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말이에요. 목적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뜻이지요.
그런 차원에서 보면 미쳤다는 말이 그리 기분 나쁜 말이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그냥 좋게 생각하십시다. 사실 우리가 미치지 못해서 문제지요. 제대로 미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어설프게 미치니까 사고를 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말에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반드시 미쳐야 할 것에 미친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른바 미쳐야 할 일에 미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이지요. 문제는 미쳐서는 안 될 일에 미친 사람, 혹은 미쳐서는 안 될 사람에게 미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지요.
(1) 예수에 미친 바울
저는 오늘 제대로 미친 사람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예수께 미친 사람입니다. 자기 스스로도 미친 사람으로 고백하고, 다른 사람이 볼 때도 분명히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그는 고린도후서5장13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고 고백합니다. 만일 자신이 미쳤다면 하나님을 위해 미친 것이라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바울은 예수께 미친 사람입니다. 사실 제대로 미치면 온전한 사람이지요. 어설프게 미치니까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겁니다. 바울은 예수께 제대로 미친 사람입니다.
전도자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다가 수없이 많은 소송을 당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고난을 당하였지요. 그런데 바울은 그럴 때마다 오히려 그런 것을 복음을 변증하고 증거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오직 복음을 증거하는 전천후 전도자였던 셈이지요.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했거든요. 사도행전22장 이하에 보면, 예루살렘 공회에서, 벨릭스 총독이 주재한 가이사랴 법정에서, 그리고 벨릭스 총독을 이어 총독이 된 베스도가 주재한 법정에서, 그리고 본문의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오직 예수만 전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로마의 황제 앞에서도 예수만 증거 했지요.
2년 가까이 바울을 가이사랴에 억류하던 벨릭스 총독이 해임되고 베스도가 총독이 되었습니다. 베스도는 총독 취임차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랬더니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합니다. 가이사랴에 억류되어 있는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벨릭스 총독은 유대인들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유대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원했던 것이지요. 그런 유대인들이 바울을 처벌해 달라고 청원한 것입니다. 이른바 가이사랴에 있는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재판을 하도록 해달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들은 간사한 꼼수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길목에 매복하였다가 바울을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임 총독 베스도가 유대 사정에 미숙한 점을 악용하여 간사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지요. 그런데 의외로 베스도는 그들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며칠 후에 가이사랴로 돌아갈 터이니 유대인의 유력자들이 함께 내려가서 바울을 송사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지요. 하나님이 그들의 무모한 계획을 막아버리신 것이에요. 아시다시피 우리 하나님은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아직 바울에게 남은 사명이 있는데 죽음의 사지로 몰아넣으시겠습니까?
그리고 가이사랴에 도착한 베스도가 이튿날 재판을 열었습니다. 주변에는 예루살렘에서 같이 온 유대지도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바울도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바울을 송사했습니다. 그들이 송사하는 내용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그가 율법을 뒤엎고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부족하다는 것이요, 그가 가는 곳마다 소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며, 특히 로마황제와 로마제국에 반역죄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울에게서 어떤 증거도 찾지를 못했습니다(7절).
이제 바울이 그들을 대상으로 변명을 시작합니다. 자신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다고 변명합니다(10절). 자신이 어떤 죄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베스도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고소와 바울의 반론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방인인 베스도는 이 사건의 본질도 파악할 수 없었거든요. 그래도 베스도는 바울을 편들어주기 보다는 산헤드린 회원들의 손을 들어주기를 원했던 겁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재판을 받을 생각이 없냐고 물었던 것입니다(9절). 그러나 바울은 베스도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는 로마 황제 앞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로마의 시민권자인 바울은 황제 앞에 상소할 권한을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결국 산헤드린의 음모와 총독 베스도의 정치적인 타협이 성과없이 끝난 것입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바울이 로마 황제 앞에 상소함은 예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것입니다. 사도행전9장1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 바울이 로마 황제 앞에 상소함은 결국 이 예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사실 바울은 그동안 로마에 가기를 갈망했습니다. 그가 로마를 방문하고자 했던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지요. 로마서에도 그가 로마를 방문하고자 했던 목적이 나옵니다. ‘무슨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어 그들을 견고케 하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롬1:11). 한마디로 복음 때문에 가고 싶었던 것이지요. 당연히 로마 황제에게도 복음을 전하려는 목적 때문이지요. 그래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로마 황제에게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소망은 이루어졌습니다.
베스도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사건을 로마에 이첩함으로서 정치적인 짐을 덜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숙제가 있었습니다. 바울을 로마로 보내려면 사건 개요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베스도가 작성하기에는 무리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마침 헤롯 아그립바 왕이 자기 누이 버니게와 가이사랴를 방문한 것입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방문을 받고 정말 기뻤을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황제로부터 평판이 좋은 아그립바 왕의 방문을 받고 바울 사건의 조언을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 서야 했습니다. 물론 그 재판은 큰 영향력은 없습니다. 이미 바울이 로마에 간다고 청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론할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물론 구차하게 자신을 변론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때문에 그는 먼저 자신이 유대인들로부터 송사 받는 이유를 설명하고, 자신이 개종하기 전과 개종한 이후의 삶을 간증합니다. 바울의 변증은 매우 성경적이고 역사적이었습니다. 그의 변증은 진실했고, 힘이 있고 생명력이 풍성했습니다.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이런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는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변증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최후진술이 끝나자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대부분의 청중들의 반응은 매우 우호적이고 긍정적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만한 행사가 없다는 것입니다(30-31절). 그러나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은 우호적이지 않고 부정적이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이 선포되면 반드시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수용하든지 부정적으로 거부하든지 말입니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바울의 변증을 듣고 가장 먼저 총독 베스도가 큰 소리로 외칩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24절).
베스도는 바울의 변증을 받아드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에게 미쳤다고 비아냥거린 것입니다. 바울이 많은 학문 때문에 미쳤다는 것입니다. 많이 배워서 미쳤다는 것이지요. 그럴 수 있습니다. 주변에 공부를 많이 해서 미쳤다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거든요. 베스도는 바울의 폭넓은 지식과 논리적인 변증을 듣고 학문적인 깊이에 심리적인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비아냥거린 것이지요. 칭찬이 아니라 빈정대는 말입니다. 어쩌면 학문 없는 자신의 열등감을 그렇게 표출했는지 모릅니다. 마치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말문이 막히면 ‘그래 너 똑똑하다, 잘났다’고 빈정거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아그립바 왕의 반응도 아주 애매하고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28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짧은 시간에 자신을 설득하려 한다는 것이지요. 자신을 가볍게 생각했다고 면박을 주는 말이에요. 마치 자신이 한 두 마디의 말로 넘어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어쩌면 자기가 그렇게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반박일 것입니다. 역시 자신의 교만한 생각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것이에요. 청중들은 바울의 변증을 듣고 비교적 긍정적이었지만 왕과 총독은 부정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마음을 열어 영접하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까?
그러자 자신을 미쳤다고 큰 소리를 친 베스도를 향해 바울이 말합니다. 25절입니다.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하나이다”. 사실 미친 사람은 베스도입니다. 그는 정치적인 야망에 미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한 가지에 미치면 다른 것이 안 보입니다. 미친 사람은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미치지 못해요. 그래서 어떤 것이든지 미친 사람은 집중력이 대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이에요.
(2)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이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면 일의 끝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에요. 오해 없이 들으세요. 제대로 미치면 성공합니다. 어설프게 미치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거예요. 그러나 미치면 성과가 드러나요. 원하는 것에 도달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미친 사람들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비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사람들을 누가 말릴 수 있어요. 미쳤다는 말은 긍정적으로 접근하면 귀한 말이에요. 영적으로는 더욱 그렇지요. 우리가 예수에 미치면 역사가 일어나는데 미치지 못해서 어떤 일도 안 일어나는 거예요. 어설프게 미치니까 진짜 미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여기서 미친 사람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에요.
어릴 적 시골에서 교회를 다닐 때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예수께 미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비가 오나 눈이오나 교회를 가는 모습을 보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른바 그들이 말하는 것은 예수를 잘 믿어서 하는 소리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을 비하하는 수준의 말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쟁이라는 비난의 소리였겠지요. 사실 우리의 믿음이 좋아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면 얼마나 황송한 소리였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우리의 믿음의 수준을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자기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정도로 말을 했을 것입니다. 정말 우리의 믿음이 좋아서 그런 소리를 들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마디로 우리의 믿음이 좋아서 주님으로부터 듣는 소리라면, 혹은 사람들로부터 듣는 소리라면 정말 좋았겠지요. 예수께 미친 자라는 소리는 들을수록 좋은 소리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예수께 미친 자입니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거든요. 좋아하는 일에 미치는 것도 당연하구요. 코카콜라 회장은 코카콜라를 주야로 묵상하고 코카콜라만 말하고, 코카콜라와 사랑에 빠져 미쳤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자기 혈관 속에는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코카콜라가 흐르고 있다고 고백하겠습니까? 얼마나 코카콜라에 미쳤으면 그런 소리를 하겠어요? 코카콜라에 미친 사람이지요.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한 헐리웃의 황제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에 미친 사람입니다. 그는 영화에 미친 나머지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답니다. 너무나 설렌 나머지 잠에서 깨어 아침밥을 먹을 수 없었다지요. 그는 정상인이 아닐 정도로 영화에 미쳤답니다. 1993년도에 나온 쥬라기 공원이라는 한편의 영화로 우리나라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할 수 있는 돈을 벌었다 합니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설립자 빌게이츠는 세계인들의 모든 책상에 PC 한대씩을 올려놓을 것을 생각하고 컴퓨터 운영체계(MS-DOS)를 개발했답니다. 결국 컴퓨터산업의 혁명을 일으킨 것이지요. 이런 미친 사람에 의해 역사가 바뀐 거예요. 세상이 바뀐 거지요.
언젠가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 한국축구의 전설 차범근 감독은 공을 찰 때는 축구만 생각하고, 축구를 안 할 때는 공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앉으나 서나 축구생각만 했던 것이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좋은 일에 미쳐야 합니다. 좋은 사람에게 미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미친 사람이 돼요. 우리가 듣기 싫어하는 진짜 미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정신장애를 입은 사람 말이에요. 그러나 정상적인 것에 미친 거라면 정상입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사람들이 미쳐야 할 것에는 안 미치고, 미쳐서는 안 될 것에 미쳐 있거든요. 그래서 문제예요.
믿는 자는 세상에 미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미친 자들입니다. 이른바 육신으로 미친 자가 아니라 영적인 것에 미친 자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믿는 자중에도 세상에 미친 자도 많고, 영적인 것에 미친 자도 많습니다. 물론 세상적인 것에 미쳤다고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에 미쳤다고 무조건 잘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영적인 것에도 잘못 미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거든요. 잘못된 종교집단에 미친 자들도 많습니다. 이단에 미친 자들이 많다는 말이지요. 미안하지만 그런 자들은 자기들이 미쳤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속칭 우리가 말하는 미친 자들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중독에 걸려 있습니다. 사실 중독이라는 말은 미쳤다는 말과 같거든요. 하지만 대부분 중독이라는 말은 싫어합니다. 물론 그보다 미쳤다는 말은 더욱 싫어하지요. 한번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당신은 스마트폰에 미쳤어, 당신은 춤에 미쳤어, 당신은 도박에 미쳤어, 당신은 낚시에 미쳤어, 당신은 술에 미쳤어, 당신은 여자에 미쳤어’라고 말한다면 당신의 반응은 어떠할까요? 정말 듣기 싫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큰 싸움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물론 좋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그러겠지요.
(3) 누가 당신에게 예수께 미쳤다고 말하면 당신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런데 누가 당신에게 예수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의 반응은 어떠할까요? 그 소리도 듣기 싫으시겠습니까? 정말 우리가 그런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사람이지요. 과연 우리 중에 그런 소리를 들을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혹시 누군가 나에게 예수께 미쳤다고 말한다면 나의 신앙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듣는 소리는 아닐는지요? 혹시 나의 신행이 바르지 못해서 듣는 소리는 아닐는지요? 혹은 지나치게 율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한 고지식한 언행 때문에 듣는 소리는 아닐는지요? 어쩌면 대부분 그런 것으로 인해 듣는 소리는 아닐까요? 한번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진짜 내가 예수님이 없으면 살수 없는 신실한 믿음 때문에 듣는 소리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혹은 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하고 존중해서 듣는 소리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나 우리가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율법적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듣는 소리라면 속칭 우리가 말하는 미친 사람일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종교적인 열심이 미친 자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면 우리는 한번쯤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위선적인 신앙심으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라면 정말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해요. 어쩌면 우리는 진짜 미친 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소개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도 부정할 수 없는 분이지요. 무조건 예수님만 노래한다고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분들이 진짜 예수님께 미친 자가 아니거든요. 잘못된 믿음으로 오히려 자신들이 미쳐가는 것을 모르는 거예요. 예수님께 미치되 바르게 미쳐야 합니다. 예수님께 바르게 미치면 지극히 이성적이고, 감성적입니다. 한마디로 지극히 정상적이지요. 그런데 바르게 미치지 못하니까 자신이 진짜 미친 것을 모르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요.
오히려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진짜 미친 사람들이에요. 부정적인 의미로 말하는 미친 사람들이라는 말이에요. 바울은 미친 자라고 말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누가 정상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그는 본문에서 베스도 각하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한다고 말입니다(25절). 그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도 말합니다. 만일 자기가 미쳤다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입니다(고후5:13).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여 미친 사람이라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지요.
그리스도인은 예수께 미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진짜 예수님께 미친 자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실 미쳤다고 해도 자기에게 미친 자들이 태반이에요. 이른바 예수님을 빙자하여 자기 스스로 미친 자들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들의 열심을 예수님을 향한 열심이라고 착각을 해요. 우리 안에 예수님이 없는 열심은 잘못 미친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열심이 제대로 미친 것이지요. 바르게 미친 거예요.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안에서 예수님을 위한 미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솔직히 예수 믿는 것은 미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에요. 이해되지 않아도 믿음으로 수용한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미친 것이지요. 솔직히 믿음 안에서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 한 두 가지입니까? 성경에는 우리 이성과 지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또한 인간의 과학으로 입증되지 않는 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세상적인 학문과 충돌하는 것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어지잖아요. 한마디로 어떤 상황에서도 믿어지잖아요. 미치지 않고 믿어지시겠습니까?
점잖지 않는 말처럼 들리기에 거북하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사실 믿는 자는 예수님께 미친 자들입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할 것들이 수없이 많은데 우리는 전혀 의심 없이 믿어지잖아요. 우리 믿음이 좋아서 그런가요? 예수님의 말씀에 미쳤기 때문이요, 예수님께 미쳤기 때문이에요.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어요.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해요. 미쳐야 해요. 예수님께 미쳐야 해요. 그러면 제대로 된 거예요. 나를 찾아오신 예수, 내안에 나를 성전 삼고 나와 함께 사신 예수님께 미치면 돼요. 그러면 어떤 곳에서든지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어떤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살아 갈 수 있어요.
예수 안에서 미친 자여!!! 정말 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미친 자인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고, 날마다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주님과 함께 사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나의 힘으로 사는 것은 예수님께 미친 자가 아닙니다. 그는 자기 생각으로 사는 자요, 자기 마음으로 사는 자이기에 자기 자신에게 미친 자인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미친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사는 자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 생각이 맞는 것 같을지라도 주님의 생각대로 삽니다. 자기 마음이 옳은 것 같을지라도 주님의 마음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진짜 예수께 미친 사람이지요. 예수께 진짜 미치면 영원히 사는 거예요.
혹시라도 예수께 미쳤다는 말을 들으신다면 절대 부끄럽거나 거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예수님도 이 땅에 사실 때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셨어요. 요한복음 10장20절에 보면, 예수님의 선포하는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에게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저가 귀신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고 힐문했습니다. 하물며 예수님도 그런 소리를 들으셨는데 내가 예수님께 미쳤다고 말한다면 기분이 나쁘시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백번 천번 예수께 미쳤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우리는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들을 수만 있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다만 예수님께 진짜 미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내가 예수께 어설프게 미친 자가 아닌지 내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 제대로 미친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