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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예배신앙(창15:7-21)-2021.4.18

작성자최규진|작성시간21.04.17|조회수1,008 목록 댓글 0

아브라함의 예배신앙(창15:7-21)-2021.4.18

 

기독교 신앙은 예배중심의 신앙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친밀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그러므로 교회는 예배가 우선이고, 믿는 자도 예배가 우선인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믿음이 연약해지거나, 믿음이 병들었을 때 나타나는 공통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대부분 예배에 대한 열정이나 사모함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예배는 믿음의 건강상태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가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예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학자 칼바르트는 예배에 대해 3가지로 말합니다. 예배는 가장 중요한 것이고 가장 긴급한 것이며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동의하십니까? 어떤 이는 중요하게는 생각하는데 긴급함이 없고, 어떤 이는 긴급하게는 생각하는데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배의 생명은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한주에 몇 번이나 될까요? 아마 10회 이상은 될 것입니다. 거기다가 비공식적으로 드리는 예배까지 말한다면 수없이 많을 테지요.

 

그런데 과연 그 수많은 예배 중에서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가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를 하나님이 열납해 주신다면 소원이 없겠지만 하나님의 소원과는 상관없이 드려지는 예배도 많을 것입니다. 분명히 성경에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에 대한 모범이 나와 있습니다. 이른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방법과 규정이 나와 있다는 말입니다. 구약은 하나님이 열납하신 제사의 사례가 많이 나와 있고, 신약은 예수님을 통해 예배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요한복음4장24절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절차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하는 자의 마음의 자세, 심령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요. 얼마나 좋은 장소에서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예배를 드렸는가가 아니라 예배자가 어떤 심령의 상태로 예배를 드렸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말이지요. 누구든지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성공은 바른 예배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른 예배는 가장 성경적인 예배를 말합니다. 성경적인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말하는 것이지요. 사실 예배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바르게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지만, 바르지 못한 예배는 오히려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괴롭히는 제사가 어떤 것인지 말라기서 1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눈먼 것, 병든 것, 저는 것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헛된 제사입니다. 차라리 드리지 않는 것보다 못합니다. 그것은 오늘날 예배도 마찬가지지요. 예배에 대한 사모함이 없고 그냥 종교적인 의무감으로 예배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몸은 예배의 자리에 나와 있는데 마음은 세상으로 가 있는 예배라면 과연 주님이 받으시겠냐는 말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영광과는 전혀 상관없이 나의 유익과 욕심을 좇는 예배라면 하나님이 받으시겠냐는 말이지요.

 

예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예배에도 예의가 있고, 규칙이 있거든요. 하다못해 우리가 연극이나 영화, 공연을 본다거나, 혹은 운동장에서 스포츠를 관람해도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입장권 뒤에 이런 주의 사항이 있지요. 대충 이런 내용들입니다. 원만한 질서를 위하여 공연 개시 10분 전에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6세 이하의 어린이는 부모님이 잘 보호해주시기 바랍니다. 공연 중에 자리를 이동하거나, 사진 촬영이나 앞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어떻습니까? 어쩌면 영화나 연극, 공연을 보는 것보다 더 무례하고 무질서한 것은 아닌가요?

 

(1) 아브라함은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믿음이 있다 없다, 혹은 믿음이 좋다 나쁘다의 여부는 예배드리는 자세나 모습으로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믿음의 판단이나 예배의 판단은 전적으로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 보기에도 예배가 우리 믿음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가 됩니다. 두말할 것 없이 건강한 믿음을 가진 자는 예배를 귀히 여기고 경건하게 드립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 예배보다 소중한 것은 없는 것이지요. 믿는 자는 예배를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예배를 삶의 우선에 둡니다. 자기 삶의 모든 스케줄을 예배중심으로 짜는 것이지요. 예배가 넘버원입니다. 예배를 최상의 가치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병들었거나 식었을 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가 자기 삶의 중심에서 밀려납니다. 모든 일정 가운데 예배는 가장 후순위로 밀려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시간이 되면 예배드립니다. 혹은 생각이 나면 예배드립니다. 컨디션이 좋으면 예배드립니다. 예배에 대한 믿음이나 열정이 없는 것이지요. 예배가 자기 삶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도 못됩니다. 그냥 자기 삶의 들러리 정도에 불과하지요. 그런 자들은 예배를 드려도 믿음이 아니라 종교행사에 참여하는 듯합니다. 예배를 드려도 집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우리 믿음의 건강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예배관은 어떠했을까요? 그는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당시는 제사중심의 삶이었지요. 그는 어디로 가든지 가장 먼저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던 흔적을 보겠습니다. 창세기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가나안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했던 첫 번째 행동은 제단을 쌓는 일이었습니다(창12:7). 그리고 다시 그는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역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8절).

 

그런데 그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옮겨갑니다. 물론 그곳에서 잠시 기근을 피한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나오게 되지요. 어찌보면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하게 될 출애굽을 아브라함이 먼저 체험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아브라함은 남방으로 올라갑니다(13:1). 그곳에서 그는 은금이 풍부한 복을 받지요. 그는 다시 남방을 떠나 벧엘에 이릅니다. 그곳은 전에 아브라함이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온 이유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던 아브라함의 믿음이요, 흔적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엄청난 부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신 것이지요. 소유가 너무 많아 더 이상 자기 조카 롯의 목자들과 함께 동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양보로 조카 롯과 헤어집니다. 조카 롯이 아브라함 곁을 자기 욕심을 좇아 떠나가게 된 것이지요. 인간적으로 보면 조카로부터 받은 배신감 내지는 허전함 때문에 아브라함의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조카를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헤브론으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그는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13:18). 한마디로 어디로 가든지 가장 먼저 제단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자기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제단을 쌓는 일이요,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가만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 친구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벗으로 삼아주셨습니다(대하20:7, 사41:8, 약2:23). 그리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별칭을 하사하신 것입니다(출3:15, 마22:32).

 

한마디로 ‘열국의 아비’라는 최고의 칭호를 부여해 주신 것이지요(창17:5).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중심의 신앙, 곧 예배중심의 신앙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신앙에서 예배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우리는 아브라함의 예배를 사랑하는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배를 중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아마도 아브라함에게는 은근한 걱정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미 후손에 대한 축복을 약속하셨거든요. 창세기12장2절을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은금도 많아졌고, 소유도 많아졌습니다. 재산이 늘어났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자꾸 마음에 불편한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 아들을 낳아서 후손이 창대케 될 것인가에 대한 부담감입니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이상 중에 말씀하시지요(1절). ‘...아브라함이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직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오신 하나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려냐고 말입니다(2절). 그것은 아브라함이 그동안 불편하게 생각한 것이었지요.

 

그래서 자기 속에 있는 말을 꺼낸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무자하오니 상속자는 다메섹 엘리에셀이라’고 말을 하지요. 거기다가 덧붙이는 말이 더욱 가관입니다. ‘하나님이 씨를 주지 아니하셔서 자기 집에서 길리운 종을 후사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무척 서운한 투의 말이지요.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이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후사가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서 뭇별을 가지고 후손을 약속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드리지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롭게 여겨주신 것입니다(6절).

 

그러면서 하나님은 당신의 존재를 일러주십니다.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라’는 것입니다(7절하).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 땅을 업으로 삼게 하시는 증표를 보여 달라고 청원합니다. ‘내가 이 땅을 업으로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겠습니까?’라는 것이지요(8절). 결코 믿음이 없거나 의심 때문에 그런 청을 드린 것은 아닙니다. 확실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였을 것이지요. 그러자 하나님이 방법을 제시해주십니다(9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 집비둘기를 취할지니라”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언약에 필요한 제물을 준비하라는 것이지요. 제사를 드릴 때 필요한 제물입니다. 제물로 볼 때 세 종류의 제사를 암시받을 수 있지요. 암소는 화목제물, 암염소는 속죄 제물, 그리고 비둘기는 번제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이 제물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시는 제물입니다. 우리는 이 언약을 횃불언약이라고 부릅니다.

 

(2) 예배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물을 준비하여 중간을 두 조각으로 쪼갰습니다. 다만 비둘기는 쪼개지 아니했지요. 비둘기는 율법에도 쪼개지 아니해도 된다는 규정이 있을 뿐 아니라(레1:14-17), 몸체가 작아서 쪼갤만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준비된 제물을 노리는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솔개입니다. 솔개가 피 냄새를 맡은 것입니다. 성경속의 솔개는 부정하고 가증한 것입니다(레11:13). 그래서 솔개가 피 냄새를 맡고 내려와서 제물을 도둑질하려고 하는 것은 원수 마귀 악한 것의 궤계입니다. 제사를 방해하는 사단, 예배를 방해하는 사단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본문에 나오는 솔개는 제사를 방해하는 원수입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원수이지요. 솔개가 쪼개진 제물들의 피 냄새를 맡고 사체위에 내려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실 언약식의 제물위에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야 성사가 되는데 자꾸 솔개가 내려옵니다. 솔개가 제물을 가로채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것이지요. 여호와의 불이 내려오면 모든 것은 끝이 나는데 불이 내려오기 전에는 더러운 것들이 계속해서 내려오지요. 제물을 준비하여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솔개가 아니라 여호와의 불입니다.

 

그래서 제사도 마찬가지고, 예배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솔개가 내려와서 방해하거든요. 제사 드리는 제물위에 내리는 솔개는 눈에 보이는 솔개가 대부분이지만, 오늘날 예배드릴 때 내리는 솔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솔개가 대부분이에요. 아무튼 솔개가 상징하는 것은 예배를 방해하는 원수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솔개가 내려와요. 우리가 드리는 예배시간에 우리 마음에 찾아오는 솔개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수많은 솔개가 내려옵니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우리가 준비한 제물을 낚아채 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예배할 때 정신 차리고 근신해야 합니다. 이른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예배해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하지요. 여차하면 솔개가 내려와서 예배를 방해하거든요. 결국 그런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아니하십니다. 오늘날 예배를 방해하기 위해 내려오는 솔개들이 얼마나 지능적이고 다양한지 아십니까? 예배시간 오래전에 찾아오는 솔개도 많고, 예배시간에 맞추어서 찾아오는 솔개도 많습니다. 물론 예배시간에 찾아오는 솔개는 더 많습니다.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솔개가 내려오지요.

 

작년부터 찾아와서 우리를 괴롭히는 솔개는 코로나19라는 옷을 입고 왔습니다. 그 솔개는 믿는 자들로 하여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한국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수많은 갈등과 분열을 초래케 한 솔개입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비판하고 비난케 한 솔개입니다. 한국 교회는 코로나19옷을 입은 솔개에게 무차별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솔개가 무서워서 예배를 드리러 교회로 오지 못합니다. 솔개는 쫓아야 할 대상이지 도망쳐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준비한 제물위에 솔개가 쉬지 않고 내려옵니다. 아브라함은 솔개를 쫓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12절의 해질 때입니다. 해가 질 무렵에 아브라함이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몇 시간째 솔개를 쫓았는지는 모릅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이 피곤했을 것입니다. 분위기상으로도 해가 질 무렵이기에 피곤이 몰려올 시점입니다. 사실 그때가 위험합니다. 영적의미로 볼 때 잠도 솔개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의 불이 내려오기까지 기다려야 했던 아브라함에게도 잠은 정말 물리치기 힘든 솔개였던 셈입니다.

 

그래서 잠은 우리 예배를 방해하는 가장 보편적인 솔개인 것이 분명합니다. 잠이라는 솔개는 믿는 자들 대부분이 한번쯤은 경험해본 솔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상하게 예배시간만 되면 찾아오는 잠은 솔개 중에서도 가장 핑계가 많은 솔개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잠이라는 솔개를 결코 가볍게 여기면 안됩니다. 반드시 잠이라는 솔개는 쫓아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준비한 하나님의 제물을 솔개가 다 먹어치워 버립니다. 그러면 그 예배는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는 한순간도 방심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물론 잠이 솔개라고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잠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알게 하시려는 의도를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잠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통로로 사용하신 것이지요. 그냥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평범한 잠을 당신의 특별한 계시의 수단으로 사용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잠을 통해서 당신의 의지를 분명히 약속하십니다. 요지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이방의 객이 되어 섬기다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잠을 당신의 계시의 수단으로 활용하신 것이지요. 그만큼 아브라함의 예배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것이지요. 목적이 잘못된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는 일에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최종의 목적은 ‘여호와를 위하여’(창12:7,8, 13:18)였습니다. 하다못해 결혼식의 목적도 분명합니다. 그 목적은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를 축하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결혼식에 가서 음식을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지요. 하물며 예배의 목적은 더욱 분명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예배가 진짜 예배인 것이지요. 그래서 예배의 모든 초점이 하나님께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예배가 사람 위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자꾸 사람을 의식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현대화된 시스템을 갖추고 예배의 화려한 기교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경건의 능력은 없고 경건의 모양만 갖춘 예배는 생명이 없는 예배입니다. 그런 예배는 지양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예배를 통해 어떤 만족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절대 잘못입니다. 예배의 목적이 하나님께 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예배의 목적을 자기에게 두는 자는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자기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예배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예배의 목적을 분명히 하셨습니다(9절). ‘나를 위하여’라고 말씀하셨지요. 목적이 바르지 못한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찬송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자기감정이나 기분에 상관없이 드려야 합니다. 자기 형편이나 여건에 상관없이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가지고 하나님과 협상하는 것은 예배의 목적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른바 내가 예배를 드림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지원해주시라는 생각이나 협상은 예배의 질을 떨어뜨리고 예배의 목적을 상실한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드려야 합니다. 비록 한번의 예배를 드릴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로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내안에 오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이른바 주님의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이지요.

 

(3) 영광스러운 예배는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불이 임합니다. 예배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응답이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기다림이지요. 17절을 보십시다. ‘해가 져서 어둘 때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말씀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드디어 하나님이 제물위에 응답하실 때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12절의 해질 때보다는 더욱 깊은 어둠이 내려올 때입니다.

 

사실 어둠은 사단과 죄에 예속되어 있는 흑암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어둠이 더할수록 자기 백성들을 어둠에서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더 크게 드러날 것입니다. 이른바 어두울 때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로마서5장20절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씀합니다. 이른바 어둠이 깊을수록 은혜가 돋보이는 법이지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응답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제물을 준비했고, 수많은 시간동안 솔개를 쫓으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아브라함에게도 잠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해가 져서 어두워졌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실 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불이 내려와야 언약은 체결되거든요. 물론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도 성령의 불이 내려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입니다. 그리고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갑니다. 하나님이 불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불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의 현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현현입니다. 드디어 제물이 응답되고 열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성사된 것이지요. 예배는 제물만 드리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응답이 있어야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는 것이지요. 성령의 불이 임하는 예배가 진짜 예배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예배 가운데 주의 임재를 경험하고 주의 역사하심을 보는 것입니다. 예배의 생명은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당연히 역사하시는 성령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삼위 되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을 보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는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진정한 예배는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것이요, 소통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제는 주고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린바가 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린 모든 것을 하나님이 열납하셔서 응답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신령한 은혜를 받습니다. 신령한 은혜가 응답입니다. 물론 그 응답이 처음부터 부어지는 것도 있지만 기다림을 통해 부어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은혜가 임합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준비한 제물을 불로 통과하심으로 언약이 성사되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비준하신 것이지요. 그 언약의 핵심은 계시입니다. 계시는 장차 되어질 일을 알게 하시고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장차 행하실 일을 미리 알려주시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미래를 알 수만 있다면 우리 마음은 얼마나 편안할까요? 정말 기쁘고 즐거운 일이지요. 사람들이 보험을 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지요. 장차 어떻게 될지를 몰라서 보험을 드는 거예요.

 

그런데 장차 되어질 일을 안다고 생각해보세요.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이것이 계시의 은혜이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습니다. 계시의 내용은 이것입니다(18-19절). 애굽 강가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에 이르기까지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른바 가나안에 거하는 족속들을 네 손에 붙이고 그 땅을 네 자손에게 주신다는 말씀이에요. 사실 이 문제는 아브라함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거든요. 왜냐면 하나님이 먼저 7절에서 그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업을 삼겠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땅을 자기가 차지할만한 명분도 없었고 확신도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증표를 보여 달라고 했던 거예요.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준비한 제물을 통해 당신의 뜻을 보이시고 나타내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의 고민을 깨끗이 해결해주신 것이지요. 잊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예배를 통해서 소통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은혜는 전적으로 예배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예배의 소중함을 아는 자요, 예배의 가치를 아는 자이며, 예배의 영광을 아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아브라함이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예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예배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예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하나님의 영광을 담고 있습니다. 갈수록 예배에 대한 사모함이 퇴색되어 가는 이 시대에 우리는 예배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되새기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회복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말로만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지 말고 아브라함의 예배신앙을 다시한번 본받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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