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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복음(롬1:16-17)-2021.8.29

작성자최규진|작성시간21.08.27|조회수374 목록 댓글 0

완전한 복음(롬1:16-17)-2021.8.29

 

복음에 있어 완전성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만일 복음의 완전성이 확보되지 못한다면 복음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요. 만일 0.1%의 부족함이 발견된다 할지라도 복음이 될 수 없는 것이지요. 복음의 완전성은 복음으로서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고,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 그런 복음이 있을까요? 한마디로 세상 종교에는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 세상에 없는 세 가지를 아십니까?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 없고, 완전한 것이 없고,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완전한 복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세상은 전적으로 부패했고,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전적 부패와 전적인 타락은 완전한 타락을 의미하지요. 인간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지정의의 모든 것이 완전히 타락한 거예요.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회복이지요. 그것도 부분적인 회복이 아니라 완전한 회복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그 완전한 회복이 무엇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인간이 추구하는 선이나 윤리나 도덕으로 가능할까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부패한 세상을 회복하는 것은 복음밖에 없고, 타락한 인간을 회복시키는 것은 복음밖에 없는 것입니다. 속칭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음밖에 없는 거예요. 이른바 완전한 복음이지요. 완전한 복음만이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완전한 복음은 복음으로서의 기능이나 목적, 결과에 대해 하나님의 기대치를 100%충족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복음의 목적에 한 치의 오차나 부족함이 없어야 해요.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이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복음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설계하신 것입니다. 모든 만물이 주에게서 나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처럼 복음도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복음은 하나님의 것이에요. 때문에 복음을 설명할 때 하나님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고,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고는 전할 수 없는 거예요.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복음이에요. 쉬운 말로 영생이 구원이고, 구원이 복음이에요.

 

물론 복음은 하나님이 설계하신 것이지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외에는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행4:12). 예수 이름이 구원이에요. 구원이 복음이구요. 때문에 예수와 구원과 복음은 하나인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 구원, 복음 이 세 가지는 떨어져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거예요. 결국 완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복음의 완전함에 이르는 결론이고, 십자가는 복음의 완전성을 이루는 핵심이에요.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이 가장 완전한 복음인 것이지요.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고, 완전한 복음이 확보되는 거예요. 십자가를 통하지 않으면 구원도 이룰 수 없고, 복음의 완전함도 이룰 수 없는 거지요. 십자가는 우리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의가 교환되는 곳이거든요. 한마디로 완전 타락한 인간의 죄와 완전한 복음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환이 되는 거예요. 십자가에서 완전한 복음이 성취된 것이지요. 십자가에서 완전한 복음이 성취되었다는 말은 십자가에서 우리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지불해야 할 더러운 죄 값을 모두 다 지불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인간의 수고나 공력이 추가될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그분의 죽으심으로 내가 죽은 것이요, 그분이 다시 살으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분 안에서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비록 나는 불완전할지라도 복음이 완전하시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것이 없는 거예요. 자꾸만 자기 스스로 불완전함을 걱정하는 것은 복음의 완전성을 100%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이른바 하나님의 완전성에 대한 의심이지요. 정말 우리가 복음의 완전성을 믿는다면 우리 안에 있는 불완전한 생각이나 마음이 떠나갈 줄로 믿습니다.

 

(1) 하나님이 완전하심으로 복음은 완전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 할지라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복음의 한조각 퍼즐을 가지고 복음의 전부라고 떠들어 댑니다. 이른바 불완전한 복음을 가지고 완전한 복음이라고 속이고 속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세상 어떤 사람도 복음의 전부를 알지는 못합니다. 감히 어느 신학자나 교수, 목사가 복음의 전부를 알겠습니까? 하나도 없지요. 그러나 비록 우리가 인간의 수준에서 복음의 전부를 알 수는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수준에서 복음의 전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그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거예요. 예수님이 복음이니까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복음을 아는 것이요, 예수를 믿는 것이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는 복음의 전부를 아는 자요, 믿는 자이지요. 그래서 복음의 전부를 믿는 자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른바 복음의 완전성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 것이지요. 복음의 완전성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충분합니다. 예수 이름이 복음을 이루는 필요충분이지요. 예수 이름이 복음이에요. 우리가 복음의 완전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고 부정하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세상을 구원하시는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우리의 구원에 대한 의심이나 두려움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면서도 그렇게 믿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선행이나 공력이 추가되어야 구원이 확보되는 것처럼 생각해요. 때문에 자기의 선행이나 공력을 추가하려고 열심을 내는 거예요. 결국 이 말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복음의 완전성을 믿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사실 세상 모든 종교에서 추구하는 구원과는 다르게 기독교의 구원은 인간의 의지나 공력이 추가되지 않으므로 어쩌면 싱겁다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마치 자신이 구원받는 데 아무 공헌도 하지 않기 때문에 뭔가 개운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찜찜하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아주 염치없는 구원이요, 값없는 구원처럼 생각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므로 염치없이 받은 구원이요, 값없이 받은 구원이지요.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지불한 것이 있나요?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인간도 자기 구원을 위해 대가를 지불한 것이 없습니다. 한 푼의 돈을 지불한 적이 없고, 한번의 수고를 한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염치없이 받은 구원이요, 값없이 받은 구원인 것이지요.

 

기독교의 구원은 일방적으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완전한 거예요. 만일 우리 인간의 수고나 공력이 첨가되는 것이 구원이라면 구원을 받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할까요? 인간이 구원받는데 필요한 기준이 어느 정도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구원받는데 필요한 인간의 가장 모범적인 샘플이 어떤 사람일까요? 감히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복음의 샘플이 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인간은 고만고만하거든요. 다들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지요.

 

요즘 내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을 보세요.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있던가요? 다들 자기들은 아니라고 큰 소리를 치지만 들추면 들출수록 냄새나고 더럽잖아요. 털면 털수록 먼지가 나고, 까면 깔수록 더러운 것이 나오잖아요. 아무도 예외가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에요. 감히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어요. 한 사람도 없지요. 다른 사람의 흠집을 찾아 덕을 보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부족함을 쿨하게 인정하고 정책으로 승부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물며 세상일도 그러한데 감히 어떤 사람이 복음의 완전한 샘플이 될 수 있겠어요? 굳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타락한 인간은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지요. 기대하면 실망해요. 때문에 복음의 완전성은 인간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복음의 완전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는 거예요. 정죄함이 없다는 말은 복음의 완전성이 이루어졌다는 말이지요. 복음의 완전성을 믿지 못하면 누구나 정죄감에 붙잡혀 살거든요. 비록 그 정죄감이 외부로부터 온 것인지, 혹은 자기 안에서 만들어진 정죄감 일지라도 말입니다.

 

정죄감은 사단이 내 영혼을 참소하는 바이러스예요.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거예요. 왜냐면 예수님은 아무도 정죄하지 않거든요. 비록 우리 안에 더러운 죄악의 바이러스가 침투한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를 정죄하지 않아요.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장차 내안에 들어올 죄악의 바이러스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신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더러운 죄악의 바이러스를 이기고 승리케 하신 주님만 바라보고 사는 거예요. 그러면 주님이 알아서 못된 바이러스를 차단하시고 정결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복음의 완전성을 믿지 못하는 자는 복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뭔가 자기의 선행이나 공력을 쌓으려고 해요. 종교적 선행이나 업적을 쌓으려 한다는 것이지요. 혹은 자기 양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해요. 자기양심에 보호막을 치는 거지요. 세상 모든 종교는 대개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하지만 인간의 수고와 공력을 추가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은혜의 신앙이에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되어지는 신앙이지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는 복음의 완전성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완전성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수용하는 사람이지요. 만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믿지 못한다면 복음의 완전성을 믿지 못하는 거예요. 복음의 완전성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믿는 믿음이지요. 내가 복음의 완전성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믿는 거예요. 그래서 복음의 완전성은 하나님 은혜의 절대성을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복음의 완전성을 믿는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믿는 사람이에요. 이 시간 내 자신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인정하고 사는 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통해 복음의 완전함을 드러내시거든요. 그러므로 내가 복음의 완전성을 믿는 지의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신뢰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보면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복음이 불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니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복음이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또한 말이 안됩니다. 그래서 복음의 완전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같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면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거든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결코 복음은 탄생할 수 없고, 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질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과 은혜는 같은 거예요. 복음이 은혜이고, 은혜가 복음이지요. 때문에 복음의 완전성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충분히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2) 새 언약의 복음이 완전한 복음입니다

 

완전한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완전한 복음에 참여한 자요, 완전한 복음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복음이 완전하다는 말은 불완전한 우리를 구원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고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의 완전함을 위해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공력을 추가한다면 복음의 완전함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복음의 완전함을 믿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대한 어떤 불안함도 있을 수 없습니다. 복음에 대해 어떤 걱정도 없는 것이지요. 복음이신 주님이 내안에서 모든 것을 완전하게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냥 복음이신 주님 안에 편하게 있으면 됩니다. 우리가 걱정한다고 복음이 완전해 지는 것이 아니요, 우리가 염려한다 해서 복음이 완전해지는 것도 아니거든요. 복음의 완전성을 믿는다면 복음이 이루어주실 것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없이 100% 믿어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완전함을 믿는다면 당연히 복음의 완전함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주안에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하시기로 하시면 하시는 것입니다. 이른바 그분은 당신이 작정하신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복음도 완전함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도 우리 의지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복음이신 주님이 내안에서 나를 성전삼고 나로 하여금 복음의 완전함을 믿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셔야만 가능합니다. 나는 다만 내안에서 행하실 그 주님께 내 시선을 고정하고, 내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결국 완전한 복음은 새 언약의 복음입니다. 새 언약의 복음을 믿지 않으면 당연히 불완전한 복음을 믿는 것이지요. 그는 율법아래 사는 자니까요. 율법은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어떤 종교적인 공헌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믿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런 사람은 복음의 완전성도 믿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무엇인가 자신들이 하나님의 일에 공헌함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완전성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 믿음은 복음의 완전성을 믿지 못하는 거예요.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두말할 것 없습니다. 복음의 완전성에 대한 어떤 의심도 가져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굳이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져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우리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에요. 왜냐면 구원 얻는 믿음은 주님이 주시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져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아주 복잡한 고민을 한다는 거예요. 나름대로 어느 정도의 선행이나 공력을 쌓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부질없는 걱정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지 구원을 위한 선행이나 공력을 추가하려고 하지요. 예를 들어, 분에 넘치는 헌금을 하든지, 내키지 않는 헌신을 하든지, 아니면 남을 돕는 구제활동에 참여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그런 행위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어떤 선행이나 공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만일 그것이 아니고 우리의 선행이나 공력이 추가된다면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일 수 없는 것이지요. 결국 그것은 복음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증거인 것이지요.

 

복음이 완전하다는 것은 복음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담보합니다. 복음은 세상에서 가장 완전하면서 가장 안전합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입을 수 있는 피해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른바 복음을 믿었는데 천국이 없다면 우리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복음이 완전하다는 것은 복음이 최고로 안전하다는 말입니다. 복음의 안전성은 반드시 천국이 있다는 것이요, 복음을 믿으면 반드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절대 안전합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한마디로 복음을 믿었는데 천국에 들어가지는 못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100% 구원을 받습니다.

 

복음이 안전하듯이 우리의 믿음도 안전합니다. 복음을 믿기 때문에 복음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안전한 것입니다. 복음이 안전한 것은 복음이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완전성은 복음의 안전성으로부터 담보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험을 드는 것은 미연의 사고에 대비하여 보장을 받으려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경제적인 안전성을 확보하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복음을 믿으면 복음은 나의 영혼의 안전을 100% 보장해 줍니다. 내가 믿는 복음이 나의 안전보장을 해 준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천국보다 좋은 안전보장은 없습니다.

 

(3) 완전한 복음을 믿는 자는 믿음도 완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일이기에 가장 완전합니다. 하나님이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거든요. 이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복음이 완전할 수밖에 없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완전함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믿는 자요,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믿는 자는 복음의 완전함을 믿는 자입니다. 만일 누군가 복음의 완전함을 믿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믿지 못함이요,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믿는다면 복음의 완전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하시기에 복음이 완전하니까요.

 

그리고 복음이 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의로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거든요. 비록 나에게는 구원받을만한 의로움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의로 구원받는 거예요. 인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 구원받는 거예요. 그래서 믿는 자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거든요. 그 복음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그가 유대인이든지 헬라인이든지 상관없어요. 이것이 바로 복음이 완전하다는 증거입니다. 완전한 복음은 어떤 편견도 없는 겁니다.

 

또한 완전한 복음은 아무도 속이지 않습니다. 혹시 주변에 복음을 믿고 속았다는 사람을 만나 본 적 있습니까? 물론 가짜 복음이나 짝퉁 복음을 믿다가 속임을 당한 경우는 수없이 많이 있지요. 만일 누군가 믿음생활하면서 속았다고 말한다면 분명히 잘못된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복음은 아무도 속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복음을 복음이라고 믿는 자는 속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잘못된 복음은 사람의 영혼을 속이는 기만술이거든요. 하나님이 설계하신 복음은 절대 사람을 속이거나 후회하심이 없는 것이에요. 완전한 복음은 아무도 속이지 않고, 어떤 후회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완전성이에요.

 

그리고 완전한 복음은 어떤 것으로도 변질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복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어요.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진리에요. 그러므로 복음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합니다. 한마디로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 것이지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에요. 구약시대 성도들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신약시대 성도들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며, 지금 우리 시대 성도들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물론 구약 성도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믿었지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거예요.

 

그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을 입기전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거예요. 그런데 2천 년 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지요.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거예요. 그것을 우리는 성육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구약 성도들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믿었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었다는 말과 같은 거예요. 다시 말해, 신약 성도들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고, 구약 성도들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을 믿었던 것이지요. 어느 시대든지 예수를 믿어야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은 거예요. 이른바 어느 시대,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에요. 그 믿음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구약성도들도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고, 신약성도들도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원리가 동일한 것은 복음이 완전하다는 증거예요.

 

그리고 완전한 복음은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완전한 복음은 어느 시대, 어떤 민족이나 종족, 사람에게 차별없이 공평했던 것입니다. 만일 공평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완전한 복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복음이 시대나 사람마다 다른 기준의 차별을 가지고 있었다면 과연 그런 복음을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완전한 복음은 어떤 시대도 차별하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도 차별하지 않으며, 어떤 장소도 차별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처럼 완전한 것은 없다는 말이에요.

 

또한 완전한 복음은 더 이상 어떤 수정이나 개정이 필요치 않습니다. 복음에 어떤 것을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이단들은 복음의 완전성을 믿지 않기 때문에 자기들이 만든 양념을 추가합니다.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것은 추가하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빼버리지요. 무엇보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만 강조하고 가르칩니다. 때로는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겁박을 하지요. 이른바 복음을 빙자하여 종교적인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복음에 사람의 손을 대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악입니다. 그것은 복음의 완전성을 믿지 못하는 더러운 범죄에요.

 

그래서 복음의 한 조각 퍼즐을 가지고 복음의 전부인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거예요. 무엇보다 복음의 한 조각의 퍼즐을 가지고 유별나게 강조하는 것은 정말 위험해요. 분명히 함정이 있거든요. 예수님의 생애 전체가 복음이지요.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이 복음이요, 육신으로 오신 예수가 복음이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복음입니다. 장차 우리에게 심판주로 오실 예수님이 복음입니다. 가장 중요한 복음은 지금 나를 성전삼고 오신 예수님이 복음이요, 지금 나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복음이에요. 이른바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이 복음이에요. 이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것이 복음의 완성이에요.

 

하나님이 설계하신 복음은 더 이상 사람의 손을 댈 것이 없습니다. 시대가 맞지 않아서 손을 보거나, 현실에 맞지 않아서 손을 댈 필요가 없어요. 아무 사람도 손을 볼 필요가 없고, 어떤 종교집단도 손을 댈 수 없는 거예요. 손을 대는 것은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불완전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설계하신 복음은 일점일획도 손을 대면 안돼요.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경고하시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복음의 완전성을 증명하는 거예요. 복음은 세상에서 가장 완전합니다.

 

이처럼 완전한 복음을 믿는다면 당신의 믿음도 완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완전하다는 것은 행실의 완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행실의 완전함도 포함은 돼지요. 그러나 우리 믿음의 완전함은 복음에 대한 절대적 신뢰, 절대적 복종을 의미하는 거예요. 복음에 대한 어떤 의심이나 불신이 없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복음의 완전함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지요. 복음의 완전함을 믿지 않는 사람이 완전한 행실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겠지요. 그러나 복음의 완전함을 믿는다면 언행심사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의 완전에 이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복음의 완전성을 의심하며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실수하거나 범죄행위가 드러나면 혹시 우리의 구원이 취소된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그런 경험이 대부분 있었을 것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 구원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던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영적인 컨디션이 좋을 때는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다가 영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구원에 대한 회의심에 빠져 힘겨운 삶을 살았는지 모릅니다. 한마디로 하루에도 수 십 번씩 구원이 붙었다 떨어졌다 요동을 친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구원에 대한 완전함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복음의 완전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과연 구원이 붙었다 떨어졌다 요동을 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범죄 할 때마다 구원이 떨어지고, 회개하면 구원이 붙는다면 세상에 구원받을 사람이 있을까요? 창세 이후에 구원받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비록 구원받았을지라도 얼마나 불안전한 복음일까요? 만일 우리의 죄의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구원이라면 누가 그런 복음을 믿을 수 있을까요?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이 불완전하다면 아무도 복음 안에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복음은 인간의 행위에 따라 춤을 추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기 때문이지요.

 

비록 우리의 확신이 잘못될지라도 한번 받은 구원이 취소되거나 빼앗기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른바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는 말이에요. 그만큼 우리의 구원은 완전한 것이라는 말이에요. 그 말은 복음이 완전하다는 말이지요. 모든 그리스도인은 완전한 복음에 참여한 자가 된 거예요. 그러므로 믿는 자는 반드시 복음의 완전함을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고 거룩한 하나님의 장막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복음의 완전함을 의심하지 말고 담대하게 살아야 해요. 내가 믿는 복음이 가장 완전하니까요.

 

만일 복음을 믿노라고 말하면서 복음의 완전성을 믿지 못한다면 자기 마음의 상태에 따라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완전하지만 당신 안에 있는 당신의 믿음이 완전하지 못해서 당신의 믿음에 빨간불이 켜진 거예요. 그러므로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복음의 완전함을 믿지 못하는 것은 나의 믿음이 불완전하다는 증거에요. 절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은 가장 완전하고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복음의 완전함을 누리는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믿는 복음은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복음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도 복음의 완전함을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됩니다. 세상 어떤 종교에도 완전한 복음은 없고, 세상 어떤 인간에게도 복음의 완전함은 없습니다. 만일 어떤 종교나 어떤 인간에게 복음의 완전함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분명히 그것은 당신의 영혼을 노리는 종교적 사기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설계하여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가장 복된 선물이요, 가장 완전한 선물임을 믿으시고 모든 영광과 찬송을 하나님께 돌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완전하시듯이 하나님의 복음은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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