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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조건(겔36:26-38)-2021.9.5

작성자최규진|작성시간21.09.04|조회수286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조건(겔36:26-38)-2021.9.5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사 제사장적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요. 이보다 더 좋은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언약은 일찍이 모세를 통한 언약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19장5-6절은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언약을 선포하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서약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들 앞에게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말씀을 낭독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겠다고 동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의 보고를 받고 언약을 비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세상에 이 언약보다 귀한 언약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언약은 세상에서 가장 완전하고 복된 언약입니다. 감히 창조자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다니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요.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기업이 된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모든 삶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영육간의 모든 삶을 하나님이 완전하게 책임져 주신다는 말이에요.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런 관계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그것은 하나님이 예상했던 일이었지요. 예상대로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으며 살았던 것이지요.

 

시대마다 하나님의 간헐적인 징계를 받으며 살았지만 에스겔 당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강경한 징계를 내리신 것이지요. 유다백성들을 바벨론의 포로로 유배시킨 거예요. 그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본적이 없는 가장 수치스런 징계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소망이 있었던 것은 바벨론의 포로가 한시적인 징계였다는 것입니다. 징계의 기한이 70년으로 정해져 있었던 거예요.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전제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지요.

 

그래서 36장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1절에서15절은 이스라엘 땅을 회복해 주신다는 말씀이요, 16절부터 38절은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1절에서15절은 공동체를 회복하심이요, 16절에서 38절은 각 개인을 회복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목적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아끼신 것입니다(21-22절). 이스라엘은 자기 땅에 있을 때나, 포로로 잡혀간 곳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지 못했지요. 하나님의 명예를 이스라엘이 실추시킨 것이지요.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스스로 당신의 거룩함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 백성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변함이 없어요. 비록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했을지라도 여전히 그들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 거예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하신 것이지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징계를 받았지만 그들을 회복하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계셨던 거예요. 그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옛 언약의 방식으로는 아무도 하나님의 기대치를 이루어드릴 수 없음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옛 언약, 율법을 주신 것은 자신들의 연약함과 비참함을 스스로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의로움으로는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셔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는 것이지요.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실 새 언약을 바라보게 하신다는 말이에요. 이른바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하시는 것이지요.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조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안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1) 새 언약이 이루어질 때(26-27)

 

무엇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지요. 진짜 효도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고 헤아려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부모님에게 아무리 잘한다 할지라도 진정한 효도가 아닙니다. 믿음은 영의 아버지 하나님께 효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분별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믿는 자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했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기들 마음대로 살았던 거예요. 때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고 차용했지요.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이용한 거예요. 무엇보다 그들은 하나님의 둥지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어요. 그러나 실상 둥지밖에 있는 이방인들보다 둥지 안에 있다고 자부하던 이스라엘이 위험한 거예요. 그들은 집안에 있는 탕자와 같았지요. 나름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붙인 채 자기들 마음대로 살았던 거예요. 어쩌면 이방인들보다 더 위선적인 모습이었지요.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백성들이거든요. 이것은 지금 우리시대 교인들의 모습인지 모릅니다. 기독교 공동체 속에 들어와 있다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자기들 마음대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말이에요. 사실 율법은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율법이 주어진 것은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신10:13).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한 것입니다. 그래서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이스라엘의 한계지요.

 

이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옛 언약의 방식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의 방식으로 이끌어 가실 것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새 언약의 방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돌비에 새겨주시는 것이 아니라 심비에 새겨주시는 것입니다. 의문에 새겨주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주시는 것이지요. 의문에 새겨주는 것은 옛 언약의 방식이요, 마음에 새겨주는 것은 새 언약의 방식입니다. 물론 옛 언약도 사명이 있습니다. 옛 언약은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만 유효한 몽학선생이지요.

 

옛 언약은 아브라함과 가장 먼저 약속하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어주실 것이요, 이름을 창대케 해주실 것이며, 땅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창12:1-7).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그 약속을 이루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옛 언약은 죄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요, 범죄를 더하게 하는 것입니다(롬5:20).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해마다 죄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지요(히10:3). 이와 같이 옛 언약은 성경에 약속하신 말씀대로 자기 사명을 충분히 다 이룬 것입니다. 옛 언약은 거기까지가 자기 사명인 거예요. 그래서 옛 언약으로는 아무도 하나님의 의로움을 이루어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옛 언약은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이요, 새 언약은 죄사함을 가르쳐주는 것이거든요.

 

이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새로운 방식의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새 언약의 방식이지요. 옛 언약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임에 반해,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순종하는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백성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에요.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확대됨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식이 쉬워졌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범위가 확대된 거예요. 하나님이 직접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새 언약의 방식으로 다루어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이 어떤 것입니까? 본문26절과 27절을 보십시다. 자기 백성들에게 새 영을 부어 주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새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령을 우리 안에 두셔서 우리로 하여금 새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역사해주신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게 해주시겠다는 말이지요(갈2:20). 그것은 주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해주시겠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 절차는 성경에 있습니다. 로마서10장10절의 말씀처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물론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려면 반드시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거든요(고전12:3). 그런데 하나님이 새 영을 우리 속에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26절). 내 안에 새 영이 부어지면 새 마음이 되어 집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6장13절을 보면,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사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옛 언약 아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문에 새겨서 잘 가르치고 잘 배우고 잘 지켜야 했지요. 이 가운데 하나라도 부족하면 옛 언약은 이룰 수 없습니다. 감히 세상 어떤 사람이 잘 가르칠 수 있고, 잘 배울 수 있으며, 잘 지킬 수 있겠습니까? 잘 가르치는 사람도 없고, 잘 배우는 사람도 없으며, 잘 지키는 자는 당연히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안에 오신 성령께서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말씀을 잘 듣고 지켜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4장26절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안에서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신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내안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새로운 관계를 원하십니다. 옛 언약의 관계가 아니라 새 언약의 관계입니다. 옛 언약은 우리 힘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해가는 방식이나, 새 언약은 하나님이 주도해 가시는 방식입니다. 이른바 예수님이 나를 성전삼고 왕으로, 주인으로, 전부로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사 예수님과 한 생명 되어 예수님은 머리가 되고 나는 그분의 몸이 되어 예수님이 주는 마음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살게 하시겠다는 방식이지요. 이것이 새 언약입니다. 우리 안에 새 언약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 언약을 믿으면 더 이상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내 안에 오신 성령께서 나로 하여금 친히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거든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직접 우리 마음을 주관하시어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31:31절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새 언약의 방식은 하나님의 법을 자기 백성들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렘31:33).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34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랍니다. 새 언약 안에 사는 자는 하나님이 친히 하나님 되심을 알려주신다는 말이에요. 더 이상 사람에게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에요. 이보다 확실한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보다 하나님을 통해 배우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분명한 것이지요.

 

(2) 악한 길에서 돌아설 때(31)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우리가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31절). 우리가 새 언약의 복음을 믿으면 새 언약의 백성이 됩니다. 그러면 새 언약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새 언약의 백성은 내안에 주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자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지만 선물을 받은 우리로서 해야 할 일이 있지요. 새 언약의 백성답게 사는 거지요.

 

새 언약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내안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고, 그분의 통치를 받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 언약의 복음 안에서 자신들을 보게 됩니다. 옛 언약의 거울을 가지고 살 때는 보이지 않던 자신들의 몰골이 새 언약의 거울로 보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 모습은 정말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지요. 그들은 자신들의 악한 행실과 불선한 행위들을 기억하며 치를 떨 것입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새 언약의 거울로 보니 역겨운 모습이 꼴도 보기 싫은 거예요.

 

새 언약 안에 들어오면 옛 언약 안에 살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지 드러날 것입니다. 옛 언약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거예요. 한마디로 자신들의 악한 길과 불선한 행위들이 기억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저질렀던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이 스스로 밉게 보입니다. 이른바 자신들의 죄에 대한 증오심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최고의 은혜는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것이요, 자신의 죄에 대한 증오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거든요.

 

자신 안에 선하고 의로운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죽을죄만 가득 쌓인 모습을 보게 될 때 스스로가 얼마나 밉겠습니까?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안에 죄에 대한 미운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회개의 영이 부어진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미운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에요. 자신의 죄에 대한 미운 감정은 회개를 촉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증오심으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자신 안에 감추인 죄가 드러날 때 감정이 어떠하던가요?

 

대부분 자신에 대한 극도의 실망감을 느꼈겠지요. 죄를 이겨내지 못하고 넘어진 자기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내 자신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에 대한 실망감이지요. 그리고 죄에 대한 미움이 자신을 압도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추악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몰골을 보고 그 모습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지 죽도록 미워 보일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죄가 미운 것이지 죄인이 미운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새 언약을 깨닫지 못하고 옛 언약 안에서 살다가 지은 그 죄가 미운 것이지요.

 

사실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자로 살면서 옛 언약 안에 살 때는 몰랐는데 새 언약 안으로 들어와 보니 이전에 행하던 모든 일들이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는 거예요. 이제는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미운 것이지요.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면 죄악이 미워 보이는 것이 정상이에요. 그러나 새 언약 안에 들어온 나는 너무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제는 미워할 대상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보시기만 해도 소중한 존재거든요. 그러므로 내가 미운 것이 아니라, 내가 짓던 죄가 밉게 보인 거예요.

 

옛 언약 안에 살 때는 내 안에 있는 악한 길과 불선한 행위들이 자신과의 타협을 통해 대부분 가리어져 있었지요. 그러나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으로 바뀐 순간부터는 전에 행하던 나의 악한 길과 불선한 행위들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지 상상조차 하기 싫어요. 옛 언약 안에서의 나의 죄는 상대적이었기 때문에 용서가 가능하고 타협이 가능했지요. 옛 언약 안에서 나의 죄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죄의 경중을 따졌거든요. 심지어 죄의 유무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결정했어요. 사람을 의식한 것이지요.

 

한마디로 옛 언약 안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그다지 미워 보이지 않던 죄가 새 언약의 눈으로 보면 더럽기가 그지없는 거예요. 새 언약 안에 사는 사람은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행하던 티끌 같은 죄도 하나님의 거울로 보면 미워 보이는 것이지요. 더 이상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부끄러운 죄악으로 보인다는 말이에요. 그러므로 당연히 자신의 악한 길과 불선한 행위들이 미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옛 언약 안에 사는 자와 새 언약 안에 사는 자의 죄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요? 옛 언약 안에 사는 자들은 자신의 죄가 미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가 커 보이고 미워 보이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죄를 정죄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새 언약 안에 사는 자는 자신의 죄가 커 보이고 미워 보이지요. 그래서 자기 죄에 대한 증오심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은 결국 회개로 연결됩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죄에 대한 인식과 증오심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둔감하거나 덤덤한 자는 회개가 어렵습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거듭해서 말씀하십니다. 32절을 보십시다. ‘...이스라엘 족속들아 너희 행위를 인하여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고 경고하십니다. 새 언약의 복음을 믿는 자는 죄에 대해 미워하는 감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고 부끄러워하고 한탄할 줄 압니다. 어쩌면 이것은 회개의 과정입니다.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새 언약의 복음을 믿는 자는 자신의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에 대한 미운 감정이 먼저 일어납니다(31절). 그리고 부끄러운 수치심이 일어나고 한탄이 일어납니다(32절).

 

여기서 한탄은 회개를 말합니다. 한탄은 죄에 대한 자각과 뉘우침의 수준을 지나 슬픔의 통곡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기 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죄가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미움의 대상인지 알게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죄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야 합니다. 죄에 대한 자각은 죄를 범할 때 나타나는 수치심입니다. 새 언약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죄의 인식은 있을지라도 죄에 대한 자각능력이 부족합니다. 한마디로 죄를 짓고 부끄러운지를 모른다는 말이에요.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양심이 마비된 거예요.

 

맹자의 사단설(四端說)이 있습니다. 사단은 인간이 지켜야 할 이성과 지성과 감정의 절제선이 있다는 것이지요. 인간에게는 측은지심과 수오지심, 사양지심과 사비지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측은지심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요, 수오지심은 옳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사양지심은 사양하는 마음이요, 시비지심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입니다. 그중에서 수오지심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날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요.

 

자신들이 범죄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뻔뻔하고 당당하지요. 인간이 범죄하면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너와 나 모두에게도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고요. 그런데 양심이 죽은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죽은 양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려두심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1장26절에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려둠을 당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자들을 정욕대로 버려두시고(롬1:24), 부끄러운 욕심에 버려두시며(26절),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28절). 이런 자들은 사형에 해당한답니다. 그중에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다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인간이 자기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불쌍한 줄 아십니까? 죽을죄예요.

 

보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새 언약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자기 수치심을 전혀 모르지요.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면 정상이 아니에요. 사람이 자기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인식할 때 한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회개가 일어나는 거지요. 이른바 진정한 회개는 자기 죄에 대한 인식과, 부끄러움을 통한 자각, 그리고 자기 죄에 대해 슬퍼하는 탄식으로 발전되는 거예요. 물론 이 모든 일은 새 언약의 복음을 믿는 자에게 동시에 일어나지요. 한번에 진행되는 거예요.

 

(3)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할 때(37)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고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능력이지요. 하나님은 당신이 작정하시고 언약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습니다. 물론 우리의 간구하는 소원에 따라 이루시는 것도 많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은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새 언약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루신다고 말씀하십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미안하지만 그들이 구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37절을 보십시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나님이 이루실지라도 이스라엘은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해야 할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때로 우리가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차피 하나님이 하실 일인데 굳이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기도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의 목적을 응답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도의 목적은 우리가 구하는 것에 대한 응답이 아닙니다. 응답의 유무와 상관없이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눕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지라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친밀해지면 기도의 목적은 달성된 것입니다. 때문에 예측이 가능한 일이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혹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이성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지라도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기도의 목적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기도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너무나 뻔한 것을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도 기도해야 합니다. 솔직히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보십시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을 기도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래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숙한 자는 범사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상식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것이지요. 이른바 지극히 뻔한 일에도 우리가 기도하는 결정적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기에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솔직히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주시는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저녁이 되면 아침은 찾아옵니다. 저녁에는 달이 뜨고, 낮에는 해가 뜹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되어지는 일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래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관계가 친밀해지고 돈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목적은 응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문에서 당신이 약속하신 모든 일들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36절)는 말씀은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겠다는 다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조건이나 단서도 붙이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행위와 상관없이 이루실 것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걸고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이 그 일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도하라고 요청하십니다. 그래도 기도하라고 말입니다. 이는 기도의 목적에 충실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른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이지요.

 

기도의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았던 인물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다니엘입니다. 하나님이 유다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보내시면서 한 가지 언약을 하셨습니다. 70년의 포로살이가 끝나면 본토로 귀환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 약속이었지요. 거기에 어떤 조건이나 단서가 없었어요.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처음부터 약속을 하신 채 포로로 붙이신 거예요. 포로귀환을 위한 어떤 조건이나 단서가 없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그 사실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다니엘이 바벨론 땅에서 보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서9장에 보면,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은혜를 깨달은 것이지요. 자기 백성들이 칠십 년 만에 포로에서 귀환한다는 소식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의 기도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기도합니다. 그것도 흉악한 결박을 풀어준다는 금식기도를 드립니다. 그는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한 것입니다(단9:3). 마치 자신의 기도가 있어야 포로귀환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갈급한 기도를 드린 거예요. 이른바 금식기도라는 전투적인 기도를 드린 거예요. 자기 육체를 쳐서 굴복시키는 기도를 드린 것이지요.

 

분명한 것은 다니엘의 기도와 상관없이 포로귀환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다니엘의 기도와는 상관없이 포로귀환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기도를 보십시오. 그의 기도를 분석해보면 감사의 기도라기보다는 회개의 기도에 가까웠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포로귀환을 깨닫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요? 혹은 대부분 하나님이 약속하신 언약이 차질 없이 진행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다니엘의 기도는 다소 의외였습니다. 우리의 통념을 깨뜨리는 기도였어요. 그의 기도는 포로귀환에 따른 감사 기도도 아니요, 하나님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 주시라는 간구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도의 분위기는 온통 회개였습니다. 그는 먼저 자기 열조들과 백성들의 죄를 부둥켜안고 기도한 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범하고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했다고 탄식한 것입니다. 역시 기도의 사람 다니엘의 기도는 평범한 기도가 아니었던 셈이지요. 그는 자기 기도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정을 바꾸는 기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의 목적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바꾸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춘 거예요. 한마디로 다니엘 기도의 핵심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구속과 회복에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통렬한 회개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지요. 왜냐면 당시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크게 변화된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긍휼을 간구한 것입니다. 성숙한 기도자는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 가지고 일희일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최고의 목적에 두지요. 그런 사람의 기도는 차원이 달라요. 다니엘은 기도의 목적을 아는 자였습니다.

 

우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잘 압니다. 물론 하나님도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실제 하나님의 약속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루어주십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악한 길에서 떠날 때 이루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할 때 이루어주십니다. 하지만 그보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루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 언약을 통해서입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이 당신의 약속을 우리 마음속에 두고 이루어 가시는 방법입니다.

 

누구든지 새 언약을 믿으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왕, 나의 전부로 삼고, 그분의 성전이 되어, 그분 안에서, 그분이 주시는 음성을 듣고, 그분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한 생명이 되어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사는 것이지요. 그러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사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조건입니다. 날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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