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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딤전6:11-14)-2021.12.5

작성자최규진|작성시간21.12.04|조회수211 목록 댓글 0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딤전6:11-14)-2021.12.5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이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수시로 질문해 보아야 할 말이요, 누군가로부터 들었을 때 확실한 증거와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를 향해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사람!!! 이 말은 예수 믿는 모든 성도들이 가장 듣고 싶은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을 붙일 수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만 들을 수 있는 가장 명예스러운 호칭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복음의 아들이요, 제자요,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빛나는 호칭을 불러줍니다. 정말 영광스러운 호칭이지요. 사실 디모데는 신약 성경에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런 디모데에게 목회적인 원리와 목회자의 자질과 자세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디모데전서와 후서, 디도서를 우리는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그중에서 디모데전서1장에서 4장까지는 목회의 신학적인 원리를 가르쳐주고, 5장과 6장을 통해서는 목회자의 자세와 실천윤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젊은 목회자 디모데(딤전1:3)에게 목회적인 원리를 지도하는 바울은 디모데의 영적인 아비요, 스승이며, 멘토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을 불러줌으로써 동역자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지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때문에 그런 훌륭한 스승을 둔 디모데야말로 정말 행복한 목회자였던 셈이지요. 복음의 거장 바울 사도가 멘토링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좋은 스승이나 동역자를 만나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할 덕목이요, 행동지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목회지침서를 통해서 과연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어떤 자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인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인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먼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1)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예수 믿는 성도가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존귀한 이름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일 것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러준다면 우리 마음이 어떠할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신분과 소속에 대한 정체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말이에요. 사람은 자기가 속한 것에 따라 평가를 받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고,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의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지요. 당연히 더러운 사단에 매어있는 사람이라면 사단의 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은 소속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소속이 바르고 분명해야 해요. 오늘날 우리 주변에 소속이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요. 설령 소속이 바를지라도 소속이 분명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지요. 현대인들의 가장 위험한 것 중에 하나가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자기의 신분이나 소속을 모른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잘못된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이 많아요. 이른바 이단에 속한 자들이지요. 문제는 자기들이 소속된 곳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이단들은 좀처럼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건전한 교회에 속할지라도 소속감이 없는 자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큰 교회들은 익명의 크리스천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런 사람들은 소속감도 없고, 책임감도 없습니다. 동질감이나 일체감도 없고, 목적의식도 없는 거예요. 나무꾼이 어느 날 깊은 산중에서 나무를 하다가 갑자기 총을 든 사람으로부터 검문을 당했답니다. “손들어, 너는 누구냐?, 너는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더랍니다. 간첩을 수색하던 대원들이 간첩으로 오인하여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꾼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너는 누구냐? 너는 무엇하는 사람이냐?”라는 말이 떠나지 않고 생각나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내가 누구인지요? 우리 시대에 가장 큰 비극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거예요. 그만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씨로 거듭난 사람이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통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살아갑니다. 삶의 목적이나 가치관, 삶의 방법이나 목적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름은 솔직히 아무에게나 붙여주는 이름이 아닙니다. 구약에 보면 불과 소수의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어요. 모든 사명을 완성하고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출애굽의 영웅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를 받았어요(신33:1). 그리고 하나님께 합한 자로 여김을 받고 한평생 하나님만 생각하며 살았던 다윗 왕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가 주어졌습니다(대하8:14). 사무엘 선지자가 받은 호칭이요(삼상9:8), 갈멜산의 전투의 영웅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을 받았어요(왕상17:18). 한마디로 소수의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붙여진 이름이었지요(삼상2:27). 그만큼 희소성이 있는 명품 브랜드였던 것이지요.

 

물론 신약시대에 와서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벧전2:9)이라는 뜻과 상통하기 때문에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붙여진 일반화된 이름으로 사용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조심스럽고 두렵고 떨리는 이름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최고의 브랜드를 가지고 격식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귀족처럼 우아하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말로 천국백성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분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최고의 브랜드가 싸구려 취급을 당하고 있는 거예요. 미안하지만 어떤 통계에 따르면 종교인들의 신뢰도 조사에서 기독교인들의 신뢰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의 사회봉사는 타종교에 비해 월등히 높았어요. 그렇게 선한 일에 적극적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신뢰를 얻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만큼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른바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살지를 못했다는 것이지요. 누구 탓을 하겠습니까? 먼저는 교회 지도자로서 목회자의 잘못이요, 성도인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름은 인격과 본질에 대한 호칭입니다. 단순히 소속 되었다고 붙여진 이름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나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만 붙일 수 있는 거룩한 호칭이에요. 믿음의 인격과 본질이 하나님을 닮은 자에게 붙여질 수 있는 이름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먹칠하면 안됩니다. 반드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속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지 않아요. 그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히 누가 나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러 줄 수 있을까요? 누군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외적인 변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람은 인격이 바뀌고 본질이 바뀐 사람이지요. 이른바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인격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또한 본질이 변화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도 위험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그 이름은 지상에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이름입니다. 정말 영광스러운 이름이요, 두렵고 떨리는 이름입니다.

 

물건도 진품이 있고 짝퉁이 있습니다. 그리고 명품도 있지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름은 명품 중에 명품입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아무에게나 붙여서도 안되고, 붙일 수도 없는 호칭이에요. 그러나 전혀 붙이지 못할 정도로 희귀한 이름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작정하여 그렇게 살기로 결단하셨다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기에 아무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도 그런 자들을 향하여 기꺼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역시 당신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러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완전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그분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내 스스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종교적인 열심이나 공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혹은 착한 행실과 정직함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 주변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초대교회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은 그들을 향하여 나사렛이단(행24:5)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그것은 비아냥거리는 이름이요, 불명예스러운 이름이었지요. 그럼에도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들에게 저항하지도 아니하고 복음으로 살았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이방 땅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행11:26)이라는 호칭을 듣게 된 것입니다. 비로소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가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얼마나 존귀한 이름입니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이요, 또한 경멸조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남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인정을 받았다는 신호입니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나를 인정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 끼리만의 크리스천이 아니라 남들이 인정해주는 크리스천이라면 정말 괜찮은 크리스천일 것입니다. 물어보십시오. “당신은 그리스도인이십니까?” 다시 묻습니다. “당신은 진짜 그리스도인이십니까?”

 

(2)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람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을 되짚어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교회만 출석하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단정해 버립니다. 아닙니다. 수 십 년을 다녀도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상태로 다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요, 신분과 소속이 바뀐 사람입니다. 그리고 인격과 성품이 바뀐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지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람은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난 자들이어야 합니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나 능으로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어떤 교육이나 학습으로 되어지는 것도 아니요, 믿음의 경륜이나 직분으로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내 의지나 노력, 수고와는 상관없이 위로부터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안되고 싶다고 안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에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새 언약의 방식입니다. 새 언약의 방식은 옛 언약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새 언약의 방식은 복음의 방식이요, 옛 언약의 방식은 율법의 방식입니다.

 

구체적으로 옛 언약의 방식이 육신의 생명에 하나님의 말씀을 맡겨서 사람에게 배우는 방식이었다면, 새 언약의 방식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친히 내안에 들어오셔서 나로 하여금 말씀을 듣고 이루어가게 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율법의 방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우리가 열심을 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고 잘 배우며 잘 행한다고 할지라도 절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열 가지 계명 중에서 아홉 가지 계명을 잘 지켰을지라도 한 가지 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모든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의로워 질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른바 율법으로는 아무도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친히 이스라엘 민족이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율법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법이 주어졌고,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이 주어졌습니다. 나름대로 그들은 율법을 잘 가르치고 잘 배우려고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맡은 이스라엘은 한번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의 기준에 이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구약시대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요, 지금의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율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른바 전통적으로 경건한 유대인들의 율법을 지키려는 의지는 눈물겨울 정도지요. 한마디로 그들의 종교심이 대단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의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절대 안됩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서 복음의 눈이 열어져야 하는데 아직까지 율법의 비늘이 벗겨지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그들에게 맡겨주신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이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아래 있는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지요. 물론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삽니다. 그들의 선민사상은 대단하지요. 그들이 여전히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착각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망하는 것입니다. 율법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말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으면 절대 될 수 없는 거예요. 물론 지금도 이스라엘이 여전히 율법에 붙들려 사는 것은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에요. 이것을 사도 바울은 영적비밀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로마서11장25절을 보면,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스라엘에게도 구원을 얻는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율법시대에도 새 언약을 이루실 것을 예언해 주셨거든요. 예레미야31장3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비록 지금 이스라엘이 율법 아래 있을지라도 반드시 하나님이 그들을 새 언약으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셨어요. 물론 지금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율법 아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복음 안에 들어온 자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온 자들이 있어요. 예수 믿는 자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다만 그 수효가 극히 미미할 뿐이지요.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율법의 방식이 아니라, 복음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옛 언약의 방식이 아니라 새 언약의 방식이라는 말이에요. 새 언약의 방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안에 오셔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은혜 중에 은혜요, 축복 중에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람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성경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3장16-17절로 말씀하시기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함이니라”고 말입니다. 성경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도하는 교과서요, 예수님은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시는 주체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은 차이가 있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된 것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결단이 분명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부르시는 효력있는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모두 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적이 주어졌고,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요. 자기 조국 대한민국을 팔아먹는 사람도 있고, 자기 조국을 배신한 사람도 있으며, 조국을 이용해 자기들의 배만 채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고 모두가 다 대한민국 국민처럼 사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에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된 것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하나님의 사람처럼 사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지요. 소정의 절차를 따라 합법적으로 목사가 되었을지라도 모두가 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목사로 사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에요. 이른바 되는 것과 사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의 차이는 의지와 결단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은 내 의지와 결단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믿음으로 추인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행함으로 추진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일까요?

 

(3)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최종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안주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은 나의 믿음에 관해서는 어떤 관심도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믿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이른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으며, 사단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인정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끼리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을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행동지침서예요. 그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본문에 나오는 몇 개의 동사를 주의해 보아야 합니다. 11절에 “피하고, 좇으며”, 12절에 “싸우라, 취하라”, 14절에 “지키라”, 16절에 “돌릴지어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들은 경건에 관련된 단어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단어들이지요. “버릴 것은 버리고, 얻을 것은 취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잘 버리고 잘 취하라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수비도 잘해야 하고, 공격도 잘해야 합니다. 어느 것 한 가지만 잘한다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격과 수비를 균형 있게 잘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축구를 예를 들어 들어보십시다. 공격을 잘해서 골은 넣었으나, 수비가 약해서 골을 먹어버린다면 승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지요. 반대로 수비는 잘해서 골은 먹지 않았지만, 공격이 약해서 골을 넣지 못한다면 이도 역시 승리는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군인도 마찬가지에요. 공격도 잘하고 방어도 잘해야 합니다. 공수양면으로 잘해야 해요. 만일 공격이나 방어 중에서 취약한 곳이 생긴다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사는 것도 조건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싸움을 잘해야 하지요.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군대요, 충성된 군사입니다(딤후2:3). 한마디로 우리는 영적 싸움꾼이에요. 이른바 거룩한 싸움꾼, 선한 싸움꾼이지요(엡6:10-19).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본문에 나오는 동사형 단어를 잘 응용해 보아야 합니다. “피하고, 좇으며, 싸우고, 지키고, 돌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동사는 모두가 다 군사적 용어들이에요. 이중에서 피하라는 단어만 수비형 단어이고, 나머지는 모두가 다 공격형 단어들입니다.

 

물론 14절에 나오는 “지키라”는 단어는 해석에 따라 수비형 단어가 될 수 있고, 공격형 단어도 될 수 있습니다. 명령을 지키라는 뜻이 간직하라는 소극적인 내용도 되지만, 행하라는 의미의 적극적인 명령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라’는 말은 결국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피하고, 좇고, 싸우고, 취하며, 지키라”는 말씀들은 결국 16절에 나오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에 걸리게 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가 무엇인가요? 잘 피하고, 잘 좇고, 잘 싸우고, 잘 취하고, 잘 지키라는 것이지요.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종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소극적인 방법은 잘 피하고 잘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것을 피해야 할까요? 그것은 6장3절부터10절에 나오는 것들입니다. 이른바, 다른 교훈, 교만, 변론, 언쟁, 투기, 분쟁, 훼방, 악한 생각, 부패한 마음, 진리를 잃어버린 경건, 다툼, 정욕, 돈을 사랑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런 것들을 잘 버리고 잘 피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조건 버리고 피한다고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적극적으로 취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11절). 이른바 의와 경건,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입니다. 이런 것들을 좇으라는 것입니다. 좇는다는 것은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부단히 달려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 싸움을 잘해야 합니다(12절). 그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과 악한 영들입니다. 믿는 자는 무조건 수비만 해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해야 합니다. 원수마귀 악한 것들과 싸울 때는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의 기쁨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영생을 취해야 합니다(12절).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명령들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끝까지 지켜야합니다(14절). 지키라는 것은 사수하라는 말이고 간수하라는 말입니다. 절대 영적인 것은 빼앗기지 말고 지켜야 합니다. 만일 에서처럼 장자권을 지키지 못하고 빼앗기게 되면 망령된 자로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도 잘 지켜야 하고, 분복도 잘 지켜야 하며, 사명도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영적 지계표를 잘 지켜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명령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하는 것이지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덕목들입니다. 반드시 듣고 순종해야 할 것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진지하게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십시다. 과연 내가 하나님의 사람인지, 혹은 세상 사람인지를 말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인지, 아니면 세상에 속한 자인지를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한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조롱도 있을 것이고, 핍박도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묵묵히 그런 모든 것들을 감수해야 합니다. 오히려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시대에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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