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3: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오래 전에 선천성 면역 결핍성에 걸리 아이가 TV에 나온적이 있었다. 후천성 에이즈 그러니까 에이즈 말고 선천성 결핍증은 선천적으로 항체가 몸에서 만들어 내지않는 그런 병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 선천성 병이들면 8~10세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 그런 무서운 병이다. 4세된 여아가 감기만 걸려도 낳지 않고 조그마한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도 치유가 안 된다. 그렇게 아이가 아프면 엄마가 너무 아파하는 걸 아이가 이젠 안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 밤새도록 기침을 한다. 엄마는 옆에서 계속 간호해주고 그런데 아이가 밤새 기침을 하다가 엄마에게 "엄마 미안해" '엄마 너무 아파'가 아니다. 자기가 아파서 엄마를 귀찮게 해서 하는 말이다. 4세 아이가 이러는 것.
어떤 교회 청년이 담임목사에게 와서 자기의 어려운 사정을 죽 이야기 하면서 울다가 이야기 하다가 그러더니 "목사님 죄송해요" 그러더라는 것. 그 담임목사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단다. 자기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 하다가 왜 목사인 나에게 죄송하다고 하는가?.... 한참을 생각했단다. 알고보니 평소 목사 자신이 교회 청년들에게 하도 소리를 질러 청년들이 주눅을 들게 해서 혹 그리스도인이 그정도 가지고 뭐가 그렇게 슬프냐? 이런 야단을 맞을까 봐 이야기를 해놓고도 목사에게 죄송해요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던 것. 그래서 그 담임목사가 얼마나 반성을 했는지 모른단다. 목사가 소리를 지르고 바른 삶을 강요한다고 해서 - 자신도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 그게 그렇게 쉽게 고쳐지겠는가? 목사의 말을 듣고 성도의 삶이 고쳐진다면 왜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겠는가? 그 담임목사는 열심히 예수 믿고 혹 지옥가면 어떻하나하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랬던 것인데, 그랬다곤 하지만 내심 자신의 마음속에 난 그래도 이정도 인데 너는, 여러분은 왜 그렇게 열심을 내지 못하는가? 하는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음을 회개했단다. 그건 정말 교만한 생각이다. 그래서 그 일이 있은 후 부터 이 담임목사는 정말 겸손한 마음으로 진정 성경이 말씀하는 것만 잔잔하게 그리고 바르게 전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이번 시간부터는 아가서다. 히브리어로 <쉬르 하시림> 이건 '노래들 중의 노래'라는 뜻이다. 70인 역에도 "<아스마 아스마톤>" 벌게이트 역에도 "<칸티쿰 칸티크룸>" 다 '노래중의 노래'라는 뜻이다. 우리 말로 "아가"라고 번역을 해놓은 것. "아"는 우아할 아(雅), "가"는 노래 가(歌), 그래서 '우아한 노래' 또는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으로 "아가서"로 번역을 한 것이다. 아가서는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성과의 사랑을 담고 있는 시(詩)다. 그렇다고 이 아가서가 남녀간의 애정문제의 해결을 제시하는 그런 책이 아니다. 어느 교회에서 이 아가서를 놓고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아가서에 솔로몬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신랑이 떠났을 때 신부가 어떻게 처신을 하는가하는 내용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것이 단순히 연인간의 문제를 다루는게 아니다. 성경은 늘 그렇듯이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결론이 나야 한다. 성경은 그런 생활의 지헤를 얻어내는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