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中國畵家쓰기

선사시대 회화-암 각 화 /암각화 종류

작성자이태관|작성시간07.07.26|조회수1,593 목록 댓글 0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음산암각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음산암각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연운항장군애암각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란찰포암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운남성창원암각화1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운남성창원암각화2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화산 암각화

 

 

중국은 고대 암화(岩畵)유적이 매우 풍부한 나라이다. 근래 30여년간의 조사자료는 많은 지역에서 암화유적이 발견되었음을 말해준다. 선사시대에 속하는 암화는 모두 새겨서 만든 암각화이다.

 예를들어 내몽고자치구 중남부의 음산(陰山)암각화, 강소성 연운항(連雲港)장군애(將軍崖)암각화, 운남성(雲南省) 창원(滄原)암각화 등이 대표적이다.

 

가장 초기의 유적지 중 한 곳인 내몽고의 음산(陰山)에는 높이 70m, 너비 120m인 절벽전체에 암화가 그려져 있다. 1만년 이상의 세월 동안 만들어진 수천 개의 그림들은 서로 연결되고 중첩되면서 동서의 길이 300km에 이르는 산맥을 하나의 화랑으로 바꿔 놓고 있다. 시공상(時空上) 거대한 규모의 이런 작품들은 종교 혹은 무술 신앙(巫術신앙)의 존재를 말해준다. 여러 대에 걸쳐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돌산위에 공들여 수많은 그림은 제작한 것은 바로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음산에 있는 암화 가운데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짧은 선으로 에워싸인 원형도상이 있는데 이는 다음에 보이는 연운항(連雲港)에서도 유사한 도상이 보인다. 그밖에도 야생동물, 수렵, 무도, 부락전쟁과 천문도상 등을 새겼는데 제재가 풍부하고 형상이 고졸하면서도 생동감이 있어 유명하다. 왼쪽은 <圍獵圖>부근의 큰 암벽에 그려진 것으로 무릎을 꿇고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이다. 오른쪽은 마치 상고춤을 추듯 머리에 긴 무언가를 흔드는 모습이다. 정말 재미있는 표현이다.


  오란찰포암(烏蘭察布岩) 역시 내몽고의 대청산(大靑山)에 분포하고 있는데 이 그림은 무당의 춤추는 모습으로 추정된다. 


  해변에 위치하여 한때 원시 농경문화가 꽃피던
연운항(連雲港)의 장군애(將軍崖)암화유적지에는 사람얼굴, 식물의 줄기와 잎등의 표현과 함께 앞의 음산에 표현된 태양의 상징적 도상이 나타나지만 오히려 식물의 열매형상이다. 이 그림을 통해 당시(선사시대)의 사람들이 공유했던 신앙, 요컨대 인간이 살아있는 우주의 알부라는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 우주는 동물, 식물, 물, 강, 산 그리고 천체로 이루어졌으며 그 모든 것들이 살아 있는 의식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가시적 세계를 도상으로 바꿔놓음으로써 생명의 자연적 진행과정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운남성(雲南省) 창원(滄原)에서 발견된 암화에는 수렵, 춤, 제사의식, 전쟁 등 인간의 활동이 묘사되어 있다. 활과 화살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 그림들이 다소 늦은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무기가 발명되어 사회 경제생활에 도입된 것은 신석기시대에 이르러서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암화의 구도가 점차 복잡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고립적인 개별 도형보다는 상호 연관되어 동감(動感)이 표현되어 있는 인물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초기 태양숭배전통을 계승한 듯한 흥미로운 암화가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운남창원암각화>는 빛을 발하는 원형천체 안에 한 손에는 활을 들고 다른 손에는 장대를 든 인물이 서있다. 그 옆에는 높은 깃털 머리장식을 한 인물이 서 있는데 주술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똑같은 활과 장대를 들고 있다. 이 사람은 태양속의 인물을 반영하여 태양의 힘을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구도가 점점 복잡해 짐에따라, 일상생활을 묘사하는 장면이 늘어났다. 수렵 장면의 어느 한 순간 - 물소, 산양, 사슴, 호랑이 등을 겨냥해 활을 잡아당기고 있는 사수-을 묘사해 놓은 그림도 있다.  사회생활모습을 묘사해 놓은 장면에는 집단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마을사람들을 나타내기도 한다. 창원 암화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그림이 바로 왼쪽의 암화이다. 이 그림은 구성이나뉘어

는데, 제일 아랫부분은 격렬한 전투장면을 보여주고 중간부분은 가축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 제일 윗부분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주도하는 종교의식속의 춤추는 장면을 보여준다. 우두머리는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몸짓이 크고 독특한 머리장식을 하고 있는데 이 모두를 통해서 그 인물의 신분이 특수함을 표현하고 있다. 화가는 의식적으로 이 그림을 계층구조로 배열했음이 틀림없다. 그림 중간에 그려진 짧은 가로선은 가축이 서 있는 지면을 나타낸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그림이 내용과 구도 면에서 훨씬 후기인 기원전 6세기에 출현하는 청동기의 문양장식과 아주 닮았다는 점이다.
   오른쪽 도판에서 보이는
화산암각화는 전국시대에서 동한(東漢)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화산(花山)은 광서장족자치구의 영명현(寧明顯)의 강가에 위치한다. 강에 접한 암벽은 가파르고 넗은데 그곳에는 크고작은 사람의 형상이 표현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에 짐승, 북, 바퀴 등의 도상이 있다. 사람은 1천3백여명이 그려져 있고, 그중에 큰 사람은 3m에 이르고 작은 사람은 겨우 30mm이다. 표현내용은 대략 수렵후의 가무를 즐기고 출정하는 모습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표현은 신분화 사회지위의 차이가 있는 표현으로 보여진다.

 

  암화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되어 많은 의문점들이 제시되고 있고, 계속 연구되어야 한다. 제일 큰 어려움은 연대설정이다. 지금까지 채회(彩繪)도안의 안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연대를 측정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암화 진화과정에 대한 가설은 주로 연구자 본인의 미학적인 판단을 반영하였다. 이런 고대 회화의 후기 중국 회화의 관계 역시 확실하지 않다. 지금까지 발견된 암하는 모두 문명의 중심지였던 황하(黃河)와 양자강(揚子江)하류 지역이 아닌 먼 변두리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암화가 발견됨으로써 중국회화연구에서 커다란 빈자리를 메우게 되었다. 이러한 고대의 그림들, 특히 구석기와 신석기 초기의 그림들은 회화발전과정에서 이 시기가 매우 중요함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 시기에는 형상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한 노력은 많이 하였지만 화가들은 아직 명확한 '화면(畵面)'개념을 갖고 있지 못했고 도안, 구성에 대한 개념 또한 없었다. 바위면은 그림을 그리기에 적합하도록 바탕이 다듬어지지도 않았고, 화가는 정해진 경계가 없는 공간에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