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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아름]인용자료

4세기의 신라 3: 麗燕전쟁 이후 - 김상

작성자麗輝|작성시간04.09.20|조회수87 목록 댓글 0
3. 여연전쟁 이후의 신라

북방초원지대를 모두 석권했던 전연의 모용황군이 고구려를 침공한 직후인 344년부터 신라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보자.

(1) 왜국의 청혼을 거부함 (흘해 35년, 344년) - 담로국에서 벗어나고 있다.
(2) 강력한 기마부대를 가짐 - 신라본기는 康世가 강한 기병(勁騎)으로 왜병을 물리쳤다고 하고 있다.
(3) 새로운 계통의 왕이 즉위함 - 내물이사금이 등장함.
(4) 寐錦이라는 왕호가 등장함
(5) 백제에 대하여 동등한 주권국이 됨 - 이전에는 신라사신이 내빙하였으나 이제는 백제사신이 내빙함
(6) 천체주권을 회복함 - 혜성을 기록함
(7) 고구려에 굴욕외교를 함 - 실성을 고구려에 인질로 보냄
(8) 말갈과 전투를 개시함 - 거의 2백년만에 다시 말갈과 전투함
(9) 신라사 최초로 중국왕조인 前秦에 사신을 보냄 - 대외지식에 밝아짐

내물이사금이 전진에 사신을 보낸 기록은 통전을 비롯한 중국기록에도 남아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국에서 사신이 오면 그 나라의 국가원수의 이름을 물어보며 안부를 교환하는 것이 외교의 상례이다. 신라는 제17대 내물이사금 26년(AD 381) 신라사 최초로 중국에 사신을 보낸다. 다음의 이야기는 신라 사신 衛頭가 당시 북중국의 패자였던 秦(前秦)왕 符堅(부견)을 만나서 나눈 대화 내용을 알기 쉽게 극화한 것이다.

"海東의 사정이 예와 같지 않다니 어찌된 일인가? 시대가 바뀌면 명칭도 바뀌는데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 신라왕의 이름은 무엇인고? 예, 마 립간(樓寒)이라 하옵니다.'<通典>"
符堅時 其王<樓寒>遣使衛頭朝貢, 堅曰 「卿言海東之事與古不同 何也」, 答曰 「亦猶中國 時代變革 名號改易 今焉得同」

이것을 종래의 학계는 아시아 촌구석 시골나라 사신이 최초로 북중국에 나갔다가, 왕의 이름을 물어보는데 그만 왕에 대한 호칭을 물어보는 것으로 착각하여 東問西答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신라사신은 동문서답하지 않았다. 내물왕의 성과 이름은 마립간(모루한)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나중에 신라사를 기록할 때 모루한과 비슷한 발음을 가지는 한자들 중에서 모(麻)씨로 세운(立) 왕(干)이란 뜻을 가진 마립간을 선택한 것뿐이다.

마립간 시대는 내물왕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마립간이라는 왕호가 내물왕의 이름이면 내물왕의 정치적 경쟁자였던 실성왕은 마립간이라는 왕호를 쓸 리가 없다. 따라서 실성왕은 이전의 이사금이라는 왕호를 사용하였을 것이고, 마립간이라는 왕호는 내물왕의 아들이 왕이 되는 눌지왕부터 사용해야 한다.

삼국유사를 펴보니 과연 내물왕부터 마립간으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를 펴보니 과연 실성왕까지는 이사금이고 눌지왕부터 마립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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