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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아름]인용자료

고구려 관등과 관직에 대하여 - 김용만

작성자麗輝|작성시간04.10.01|조회수283 목록 댓글 0
고구려 관직에 대해서는 우선 내가 쓴 고구려의 발견 177-188 까지를 읽어보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책에는 전기, 후기, 그리고 관직과 관등 등으로 나누어 설명했기 때문에 일목요연하게 설명되지 못한 면이 있기는 합니다.
여기서 다시 정리를 해보지요.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관직과 관등입니다.

관등은 조선시대에 정일품, 종일품, 정이품, 정삼품 등과 같이 신하들의 높고 낮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조선시대는 18등급이 있었고, 정3품 이상을 당상관이라고 불렀듯이 고구려에서도 대개 13등급과 5위 이상을 대로라 하고 대로회의(귀족회의)에 참가할 자격을 주었습니다.

먼저 초기를 보면 상가, 대로, 패자, 고추가, 주부, 우태, 승, 사자, 조의, 선인 정도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상가는 제가회의 의장으로 1위에 해당하겠고, 대로, 패자, 주부, 우태가 그 다음으로 중앙만이 아니라, 각 부에서도 대로, 패자, 주부, 우태 등이 있었습니다. 사자와 형, 조의, 선인은 그 보다 하급의 관등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부와 사자, 형의 경우 대주부, 대사자, 대형 등과 소형 등으로 나중에 분화되는데 이것은 관등이 분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4세기 이후 각 부의 세력이 약화되고, 중앙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대가 들의 세력에 따라 주어졌던 패자, 우태 등의 관직은 소멸되고, 대신 형의 명칭이 붙는 관등이 등장합니다.

고구려 후기에는 13등급의 관등이 있는데 가장 신빙성이 높은 "한원"의 기록에 따르면 1위 대대로, 2위 태대형, 3위 주부, 4위 태대사자, 5위 위두대형 6위 대사자, 7위 대형, 8위 발위사자, 9위 상위사자, 10위 소형, 11위 제형, 12위 선인, 13위 자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관직을 알았다면, 다음 예를 보지요.

환나부 패자 설유.
여기서 패자는 관등이지,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담당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 환나부의 부족장에 해당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다음 예, 연나부 조의 명립답부를 국상으로 임명하고, 가작하여 패자로 삼아 내외병마를 맡아보게 하고, 양맥 부락을 함께 다스리게 했다.

여기서 조의는 연나부에 낮은 직급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가 신대왕을 왕으로 만드는데 공이 컸으르모, 그의 관등을 부족자에 해당하는 패자로 올려주고, 수상에 해당하는 국상 관직을 주었고, 국상의 일은 국방에 관계된 일을 주로 담당하게 했다는 뜻이며, 양맥부락을 함께 다스리게 했다는 것은 그에게 준 식읍이란 것입니다.

국상은 관직입니다. 관등과 엄밀히 구분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 관직을 살펴보지요.

먼저 최고 관직 즉 수상격에 해당하는 관직은 그 명칭에 시대에 따라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대보 - 좌보, 우보(3대 대무신왕때 확대) - 국상(8대 신대왕 때 명림답부가 처음) - 대대로(대체로 고구려 후기) 로 시대에 따라 변했습니다. 초기에는 상가(相加)도 수상격인 귀족회의 의장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초기에 관직으로 알려진 것은 중외대부 뿐입니다. 중외대부는 처음 을파소에게 임명한 관직인데, 무엇을 하는 관직인지가 불분명합니다. 다만 국상보다는 낮은 관직이지요.

고구려의 관직에 대해 조금 자세히 알 수 있는 시대는 광개토대왕 시대입니다 소수림왕때 율령이 반포된 후에 관직이 정비된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의 관직으로는 외교사절을 접대하는 발고추가가 있는데 4위 관등이 태대사자 이상이 임명되는 자리입니다. 사인, 통사, 전객은 외교사절을 만나는 자리로 하급직입니다. 통사, 전객은 소형 이상이 맡습니다. 장사, 사마, 참군은 지방통치와 관련된 직책입니다. 대모달, 말객, 당주는 무관들의 관직인데, 대모달은 5위 위두대형 이상이 맡는 직위로 대당주라고도 했습니다. 대개 만명 이상을 지휘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오늘날로 치면 사단장이나 군단장에 해당되겠지요.

당과 싸웠던 위두대형 고연수가 욕살의 관직을 지녔는데, 욕살은 5부의 장관입니다. 즉 조선시대 관찰사에 해당되지요. 그런데 욕살과 대모달은 거의 같은 등급의 관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욕살이 문관직이라면, 대모달은 무관직에 해당됩니다. 당시에는 욕살과 대모달을 겸직한 사람이 많았을 것입니다.

말객은 7위 이상 대형이 임명되는데 대략 1000명 정도를 거느렸습니다. 말객은 작은 성의 성주인 처려근지와 동급의 직위입니다.

그 아래의 무관직인 당주는 100명을 거느린 것으로, 대개 문관직인 루초에 해당됩니다. 루초는 아주 작은 성의 성주입니다. 참고로 아차산 일대의 고구려 군사기지의 수장은 말객에 해당되고, 아차산 4보루의 수장은 당주에 해당됩니다.

고구려는 수도와 지방에 각기 5부를 두었는데, 고구려 후기에 3경에도 모두 5부가 있는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욕살은 5명이 아니라, 약 20명 정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수도에 있는 5부의 수장을 대인으로 불렸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이 문제는 더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사, 태수, 군주 등의 관직도 있었는데, 고구려의 일부지역에는 주-군-현 제가 실시되었기 때문에 그 곳의 지방관에게는 이러한 관직이 부여된 것으로 봅니다. 유주자사 진이 대표적이지요. 자사는 곧 욕살에 해당됩니다. 자사 밑에는 장사, 사마, 참군이 보좌하는 관리였습니다.
고구려 초기에는 성, 곡-촌으로 지방이 편제되기도 했으며, 압록곡에는 압록재(宰)라는 관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보다 상위가 바로 태수입니다. 신성재 고노자가 나중에 신성태수로 진급하는 경우를 봉상왕 시대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재라는 관직은 작은 지방관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제 중앙 관직입니다.
신라나 백제의 경우 기록이 남아있어 어떤 어떤 관청이 있었고, 그 수장을 무엇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집사부의 시중 이런 식입니다. 조선시대 예조에는 판서가 있고, 그 밑에 전랑 등의 관직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에는 이러한 관청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오직 남아있는 것이 중리부에 대한 것입니다.

중리부는 이문기 선생에 의해 최근에 조금 구체적인 실상이 밝혀졌는데, 우선 중리부는 인사, 첩보, 그리고 일부 군사력까지 보유한 매우 강력한 부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개소문 정권은 중리부를 중심으로 정치를 했습니다. 중리부에도 중리위두대형, 중리주활 등의 관직(또는 관등)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고구려 관직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것은 구체적인 부서의 명칭이 기록된 사서가 없기 때문에 행정조직이 어떻게 편제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병부, 형부, 이부(인사부) 등 중요한 부서는 물론 있었을 것이고, 그에 따른 다양한 관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알 수 없는 것이 안따까울 뿐입니다.

** 그리고 노파심에서 한가지 지적하자면, 박영규 님의 책을 인용하는 것은 삼가 했으면 합니다. 엄밀히 말해 그분이 쓴 고구려왕조실록은 역사연구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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